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83화 (181/301)

183화

블랙 랜스로 올라온 빈우는 가지고 온 증거를 가지고 즉시 분석하러 갔다. 히토미는 그런 그에게 뭐라고 말을 붙여보려고 했지만, 빈우는 급히 해야 할 일이라면서 바로 조사하러 들어갔다.

“아나스타샤.”

문 앞에서 히토미가 옆에 있던 안드로이드를 불렀다.

“네, 의원님.”

“요즘…. 네 주인님 많이 피곤해?”

상원의원의 질문에 메이드가 머뭇거리면서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롱소드에서 내린 빈우의 얼굴은 꽤 심각해 보였다.

“…네. 많이 지치신 것 같아요.”

아나스타샤의 대답에 히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하다고 납득한 것이다. 지금 그에게 걸린 임무는 막중한 것인 반면, 이것을 나눠서 할 만한 사람이 없다. 오직 혼자서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밖에.

“근데, 조금 이상하긴 이상합니다.”

빈우를 태우고 왕복한 우지가 말했다.

“원래 팀장님은 저렇게 반응하는 분이 아니셨는데 말이지요.”

우지의 말대로 빈우는 이렇게 닥치는 대로 고문하는 성격은 아니다. 폭력을 가한다 해도 같은 군인이나 외계인에게나 그렇지, 민간인에게는 나름대로 부드러운 남자였다.

“상황이 상황이니까 그렇겠지.”

우지의 말을 받은 것은 파트리샤였다.

“지금 뻐꾸기 작전 발동 중이야. 범죄조직 따까리들 붙잡고 네 네 굽신굽신할 시간이 어디 있어? 차라리 사고치고 수습하는 게 빠르지. 그리고 저 양반, 생각보단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뉴 소노라에서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썼지만 그래도 선을 지켰었다? 오히려 부팀장님이 더 날뛰었단 말씀.”

파트리샤의 말대로 부팀장인 아룹은 헛소리를 하는 웨이블의 시장에게 치과 치료를 해주었다. 무마취로 사랑니 4개를 전부 뽑아준 것이다. 팀장인 빈우는 그것을 긴박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응급치료라고 보고서에 썼고, 또 인정까지 받았다.

“이년아, 너도 팀장님이 조금 이상하다고 했잖아.”

어느새 신통방통한 치과의사 아룹이 나타나 자신의 뒷담을 까는 파트리샤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아갸갹, 넹 그래요. 마카로니에서 팀장님이 조금 퀭해 보이긴 했어요.”

마카로니에서 빈우와 위르겐의 호위로 따라간 그녀는 혼자 남은 빈우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때의 빈우는 좀 힘들어 보였었다. 하지만 다시 농담 따먹기를 하고 목숨을 건 술래잡기까지 했었기에 그리 큰 문제는 아닐 거라 넘겼던 것이다.

“걱정 마세요. 주인님이 힘드시다면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아나스타샤가 나서자 팀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하긴 너라면.”

파트리샤가 싱긋 웃었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주인을 키워왔고 같이 자란 가족 같은 안드로이드다. 주인의 정신을 보듬어 주는 데는 아마 그녀가 최고일 것이다.

“그럼 아나스타샤. 네 주인을 부탁할게.”

히토미가 그렇게 말하며 떠나자 다른 사람들도 인사를 하며 문 앞을 떠났다.

“네, 제가, 뭐든지, 할 거예요.”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아나스타샤는 문 너머의 보이지 않는 주인을 향해 다짐했다.

* * *

빈우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상관 않고 미라의 분석에 열중했다. 클론은 이 하비에르 부뉴엘이 워프 비스트화 하던 중에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워프 비스트의 발동 조건 중 첫 번째 단계는 샤다이의 정신감염이고, 두 번째 단계가 정신적 충격과 그에서 비롯된 상처다. 이 갓난아기는 대체 어디서 상처를 입었을까?

잠시 후, 미라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역시나 의심스러운 요소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워프 비스트화는 현재 연방의 기술력으로는 판별하거나 치료할 수 없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을 뿐이다.

‘일단 마커스에게 보고를 해야겠군.’

빈우가 보고하는 곳은 직속 상관인 조지 레드우드 사령관과 이노우에 고토 국장이다. 그러나 마커스 타이 정보국 차장과는 친우임과 동시에 동맹 관계다. 따라서 둘 사이에는 좀 더 은밀한 정보가 오간다.

마커스가 젊은 나이에 군사정보국의 차장까지 올라간 것은 그 자신의 실력과 배경도 있지만, 빈우의 도움이 상당히 컸다. 그리고 빈우는 지금 그 친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다. 특수작전팀의 팀장과 정보부서의 차장은 그 권한과 능력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유능한 친구가 있는 현지는 한창 자고 있을 시간이다. 깨울 만큼 급한 일은 아니라 빈우는 발길을 병실 쪽으로 돌렸다. 알탄훼아나가 있는 곳이다. 그녀의 상태는 조금 나아져 파트리샤의 감시는 풀렸다. 대신 호위 겸으로 무인 어벤져를 옆에 붙여놓은 상태다.

빈우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모니카가 반긴다.

“왓, 팀장님 오셨어요?”

그녀는 언제나처럼 샤다이를 점검하고 있었다. 자기는 의사 면허 없다고 울상을 짓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나름 익숙해진 듯싶다.

“좀 어때?”

빈우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모니카가 아니었다.

“덕분에 많이 나아졌어.”

알탄훼아나가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앗, 잠깐. 그렇게 막 움직이면….”

모니카가 허둥지둥 만류해보지만, 샤다이는 억지로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눈빛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되살아난 것처럼 보였다.

“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인가? 다행이네.”

빈우가 침대 앞에 의자를 놓고 털썩 앉았다.

“일단 네 몸은 어떻게든 수리해 놨다.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말해.”

“수리라…. 고맙군.”

알탄훼아나는 다시 만들어 붙인 자신의 귀를 만지작거리다가 시선을 빈우에게 돌렸다. 그리고 침대에 기대어 앉아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빈우 역시 그녀를 마주 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알탄훼아나였다.

“안 보여.”

빈우는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내 선택의 흔적이 안 보이는 건가?”

“아니, 그건 시도도 안 했어. 그보다 네 안의 계단이 보이지 않는다. 너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계단이 보이지 않아.”

계단이라면 점프 게이트를 뜻하지만, 여기선 인간의 몸 안에 고대 샤다이들이 내려오기 위한 계기를 뜻한다. 모든 샤다이는 아니지만, 그녀 같은 직책이나 계급의 샤다이들은 이 계단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이 능력을 손에 넣는다면 연방에 숨어든 샤다이들을 일소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이유는 역시 부상 때문인가?”

알탄훼아나는 지구제국의 비홀더 전대에게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 육체적 고문도 고문이지만, 눈앞에서 동료들을 찢어발기는 정신적 고문이 더 심각했다.

“그래.”

애써 담담하게 대답하는 샤다이의 눈썹이 작게 떨린다. 지금 그녀는 어떻게든 그때의 상처를 딛고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떨쳐버리진 못하고 있었다.

“그쪽도 수리, 아니, 치료를 해주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

그녀가 가진 능력은 대단히 중요하기에 빈우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치료? 아아. 그래, 계단을 보는 나의 능력으로 너희 종족 안에 숨어든 우리 선조들을 밝혀내려는 거겠지?”

“물론. 어때, 치료를 받겠나?”

알탄훼아나는 뭔가 생각하는 것처럼 잠시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어차피 알탄훼아나, 너의 목적은 선조들의 귀환을 막는 것이잖아. 그렇다면 이미 귀환한 선조들도 배제해야겠지?”

그녀는 이어진 빈우의 질문에도 대답을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설마 이미 돌아온 자들은 목표가 아닌가? 우리의 목적은 겹치는 부분이 있으니, 중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조율이 가능하다.”

빈우와 대화하고 있는 이 샤다이 호민관의 능력 중에는 거짓을 파악하는 능력도 있다. 고문의 후유증 때문에 이 능력도 못쓰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빈우는 달리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 있을 워프 비스트의 출현을 잠시나마 막아주었고, 과거에 이미 내려온 워프 비스트의 색출에도 필요한 존재다. 때문에 빈우는 꽤 높은 수준의 협조와 양보를 해줄 의향이 있었고, 그를 위해 상부와 협상을 할 생각도 있었다.

마침내 알탄훼아나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은 이 감각기관과 관련된 문제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가락이 자신의 눈으로 향한다.

“너희의 단어로도 이것을 눈이라고 하지. 하지만 우리의 눈은 너희들처럼 단순히 빛만을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기관이 아니다. 빛도 감지하지만, 중력파와 전자기파 또한 감지한다.”

“과연! 그 수용기의 작용이-앗차, 죄송합니다.”

새로운 사실에 잠시 들떴던 모니카가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서 우리는 계단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 물론 그것을 위한 훈련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모니카, 라고 했나? 그대의 치료 덕분에 눈은 다 나았다. 그 부분에는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그것을 다시, 다시 보려면… 연습, 그래, 연습을 해야 한다. 노력하면.”

중간에 말을 잠시 끊는 알탄훼아나의 모습에서 익숙한 분위기를 느낀 빈우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부상 부위의 재활이 육체적 부분이 아니라 정신적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눈은 다 나았으니 달리 치료 방법이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은 네 마음에 달린 문제니까 거기서부터는 본인이 극복해야 한다는 얘기로군.”

빈우의 지적에 알탄훼아나는 대답이 없다. 아예 시선을 피하고 있다. 그래서 빈우의 지적이 정답이란 것은 알 수 있었다.

“너희들은 그런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지? 우리 인류는….”

빈우가 조심스레 고쳐 앉으며 질문했다. 하지만 ‘그런 상처’란 말에 그 상처를 입힌 원인이 떠오르는 듯 알탄훼아나가 부르르 떨었다.

“어, 어어. 그래. 난 이겨내야 해. 나는 나의 사명이, 사명이 있어. 여기서 멈출. 으흑.”

말을 더듬는 알탄훼아나의 몸에서 경련이 시작되었다. 푸른 눈 안의 금색 실타래가 엉켜 떨린다. 샤다이를 잘 모르는 인간이 봐도 평정을 잃은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샤다이인 그녀에겐 이것을 진정시킬 두뇌칩이 없고, 인간 쪽은 이럴 때 투여할 진정제가 뭔지 모른다.

“알탄훼아나 씨, 진정하세요. 이제 더 이상 비홀더 전대는 없어요. 당신에게 해를 끼칠 사람은 없다고요.”

모니카가 그녀의 팔을 잡고 진정시켜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간신히 눌러 침대에 눕혔지만 알탄훼아나는 마치 오한이 든 것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빈우는 대기하고 있던 어벤져를 불렀고, 무인 어벤져는 다가와 명령대로 진동 나이프를 꺼냈다. 그것을 받아든 빈우는 일어서서 알탄훼아나에게로 다가갔다.

“와악! 팀장님! 알탄훼아나 씨는 진정했어요. 멈추세요!”

그 모습에 놀란 모니카 말리려 했지만 빈우의 행동이 더 빨랐다. 그는 칼로 자신의 팔뚝을 찔렀다.

“꺅!”

모니카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지혈되지 않은 붉은 피가 알탄훼아나의 얼굴로 뚝뚝 떨어진다.

“이 상처가 보이나? 피차 마찬가지야.”

알탄훼아나는 누운 채 자신의 얼굴로 떨어지는 빈우의 붉은 피를 보고 있었다.

“너희 종족이 죽는 광경을 나는 많이 보았어. 푸른 피와 살점이 튀는 모습들. 그날 네가 봤었던 모습들이지. 고통스럽다는 것은 알아. 아주 잘 알고말고.”

빈우의 말에 알탄훼아나는 흠칫거리지만, 시선은 피에 집중되어 있었다.

“왜냐고? 나 역시 봐왔으니까. 이런 붉은 피가 난무하는 곳에서 살아왔으니까. 동료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아. 그래, 아주 괴롭지. 고통스러워. 하지만 말이야.”

붉은 피가 범벅된 손이 내려와 알탄훼아나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게 자신의 의무를 팽개칠만한 변명은 안 되지 않아?”

푸른 피부에 붉은 피가 묻은 샤다이가 움찔하고 몸을 크게 떨었다. 그리고 눈 안의 실타래가 평정을 되찾았다. 이어서 호흡과 몸도 차츰 가라앉고 있었다.

“그래, 그대의 말이, 맞다. 내 사명을… 포기할 순 없지.”

알탄훼아나는 언뜻 진정된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는.

원래 이런 정신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는 신경치료와 정신 상담을 병행한다. 그리고 시간 또한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했던 빈우는 이와 같은 극약처방, 충격요법을 쓴 것이다.

이 방법은 환자 내부에서 발작하는 충격을 외부에서 더 큰 충격을 주어 강제로 억누르는 것인데, 일시적으로 효과는 있을지언정 근원적인 치료는 되지 못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부작용이 심하다.

“왜 보지 못하는 거지?”

빈우는 팔에서 칼을 뽑아 지혈했다. 피는 금방 멈췄고, 상처 부위는 거품이 일며 재생하기 시작했다. 알탄훼아나는 그 모습을 찡그린 얼굴로 계속 보고만 있을 뿐, 대답은 없었다.

“무서워서? 계단을 보는 것이 무섭나?”

정곡을 찌른 지적에 알탄훼아나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그래. 내가 너희들의 계단을 보면, 그 마지막 부분을 보면… 그 마음속의 상처를 나도 보게 된다. 그리고 나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그게, 그게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는 그저 타인의, 아니, 다른 종족의 고통이었어. 하지만 이제 나는. 그것을 더 이상 멀리서 볼 수가 없다. 이제 볼 수가 없단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즉 계단을 보게 되면 그 계단이 생긴 상처와 고통을 알탄훼아나 본인도 느낀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는 다른 종족의 경험이라 마음속에 선을 그어놓을 수 있었던 모양인데, 비홀더 전대에게 받은 고문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지금의 그녀로서는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 알았다. 같이 치료해 보도록 하자.”

빈우가 흐느끼는 알탄훼아나를 보면서 말했다. 원인을 찾았으면 해결을 위해 방법을 찾으면 되는 일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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