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이어서 마커스가 다른 자료들을 보여준다.
-문제는 또 있어. 프리마에 보안국이 쳐들어가서 싹 쓸어버렸단다.
첩첩산중이다. 빈우가 쫓아야 할 장소들이 하나씩 차례로 사라진다고 하니 심각하다.
“잠깐, 보안국이 개척 행성인 프리마에는 왜 간 거야? 자기 업무 영역 바깥이잖아. 설마 대외공작조라도 있대냐?”
-예전에 프리마의 곰팡이가 샤다이의 공작이란 정보가 들어와서 출동했다네. 굳이 동결 중인 울토르 중대를 끌고 가서 이상하긴 했지만, 요즘 보안국 상황이 위태위태하니까 실적을 올리려는 거라 생각하고 넘겼어. 하지만 네 보고를 받고 미심쩍은 데가 있어서 다시 조회해보니까 당시의 서류가 수정되어 있더라. 정보사령본부의 회선에 부정접속이 발견되어 울토르 중대가 출동했다고 바뀌어 있다.
정보사령본부의 부정접속이라면 빈우와 클론의 두뇌동기화다. 놈들이 이걸 눈치챈 것이다.
거기까지 말한 군사정보국의 차장이 빈우를 마주 보았다.
-이거, 이노우에 국장이 직접 수정했어. 시기는 쿠사키나 국장이 우리 쪽을 방문한 다음이야.
“씨발.”
-욕하는 것보다 먼저 클론과의 동기화를 끊어. 추적당하고 있을지도 몰라.
군인에게 두뇌동기화는 금지되어있다. 그리고 자아를 가진 클론 또한 금지되어있다. 그것만으로도 위태위태한 마당에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이 함께 추적하고 있으니 이 회선은 지옥으로 가는 동아줄인 셈이다.
“너 이런 거 나에게 알려줘도 되냐?”
문득 빈우는 이런 고급정보를 막 던져주는 친구가 걱정되어 질문했다.
-어차피 난 모르는 일이야. 질러.
“좆같은 씹새끼가.”
이것도 골치 아픈 게 당사자인 빈우나 차장인 마커스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을 보면, 쿠사키나 보안국장와 이노우에 군사정보국장 간에 모종의 짝짜꿍이 꽤 진하다는 의미다.
-너 지금 나한테 욕한 거냐?
“아니, 이노우에 고토한테. 하지만 이걸 끊으면 클론을 추적할 단서가 줄어든다고.”
-그러냐? 우리 영감님 오래 살겠네. 뭐, 어쩔 수 없어. 네 꼬리를 잡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아니면 주파수를 알려줘. 내가 더미 회선을 만들어서 그쪽으로 넘길게.
빈우는 마커스의 권유대로 클론과의 두뇌동기화를 끊었다. 그러자 뉴 소노라에서 느꼈던 상실감이 또다시 느껴졌다. 클론 또한 이것을 감지했을 것이다. 마커스는 회선을 새로이 만들어 그쪽으로 클론의 전파가 들어오도록 한 다음 말을 이었다.
-일단 하나는 되었고…. 그런데 프리마의 사건은 한두 가지가 아냐. 거기 있던 탈주 클론이 지휘관 회선으로 접속해 클론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자기들끼리 싸우는 대형사고가 터졌어. 탈주 클론은 그 틈을 타 도망쳤고 말이지.
“가능해? 그게?”
클론이 지휘관 회선에 접속이라니. 물론 울토르 클론은 서로 두뇌 통신을 해서 누구나 분대장이나 소대장, 중대장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클론에게 허용된 회선이고, 인간이 가지는 최고명령권 회선에는 접속하지 못한다. 두뇌칩에서 아예 기능을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가능이고 나발이고 이미 벌어졌는데 뭘 어째.
이걸로 보아 이 클론은 상당히 특제품인듯하다. 받은 교육이나 머리에 든 칩. 전부 보통이 아니다.
-빈우야.
앞뒤 없이 이름만 부르는 친구의 말이지만 빈우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안다.
“이런 것을 만들 사람은 나밖에 없어.”
케트쿤의 클론 제조시설은 대량이지만 보안국과 과학기술국이 직접 관리한다. 군사정보국이 끼어들 건덕지는 없었다. 반면 솔리드 베타에 있는 클론 제조시설은, 작지만 현장 지휘관인 빈우의 직속이었다. 그런 클론을 만들고 교육할만한 사람은 지금 빈우밖에 없는 것이다.
“내 트리니티 패턴을 뒤져보면 답이 나오겠지.”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팬티 주인이라면 어떨까?
믿지 말라는 메시지가 적힌 팬티의 주인이라면, 솔리드 베타의 눈을 속이고 돌아다닌 그 안드로이드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아직 그쪽 단서 없냐?”
-없어. 철저하게 없어. 오히려 팬티가 함정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야.
군사정보국의 차장이 못 찾았다고 한다면 이건 정말로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인마, 그럼 말은 왜 꺼내는데.”
-밖으로 돌아다니는 너한텐 혹시 다른 단서가 없나 싶어서 말이지.
“나도 없어. 난 내 앞가림하기도 바쁘다.”
-하긴.
마커스는 뉴 소노라의 일로 거하게 쥐어짜인 빈우를 직접 보았다. 그땐 자신이 쥐어짜는 입장에 서서 탈탈 털리며 발악하는 녀석을 본 것이다.
“근데 마커스, 이번 건으로 이노우에 국장이 너에게 다른 말은 없었냐?”
빈우의 질문에 마커스가 쓴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했다.
-기본적인 것뿐이야. 달리 중요한 사항은 없었어. 나하고 너의 관계를 아니까 클론 수사에선 서서히 제외시키는 분위기야. 아니지, 지금은 숫제 본인이 직접 맡고 있어.
빈우와 마커스는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자료 교류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빈우는 자신이 알게 된 정보들을 마커스에게만큼은 그대로 바로바로 넘겨주었고, 그것은 마커스도 마찬가지였다.
빈우는 마커스가 보내주는 자료 중에서 프리마의 지도를 꾹 눌렀다. 기본적인 정보론 아주 열악한 변경 식민지다.
“우연일까, 아니면 보안국들이 알고 프리마를 간 걸까.”
-글쎄, 일단 국장님은 보안국의 최초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조사하라고는 했어. 너와 클론이 보안국의 목적이었는지 알아보려는 거겠지. 그리고.
마커스가 내부 명령서를 들어 보였다.
-본론이다. 두 괴물이 회의를 한 다음 나온 결과인데, 대충 내용은 빈우 널 피자 타이거로 명명해서 우리 군사정보국이 조사한다, 이어서 탈주한 클론을 스파게티 드래곤이라고 명명, 보안국이 추적한다, 그런 거다. 너 좆됐어 인마.
“하아아.”
빈우가 의자 뒤로 푹 파묻혀 마른세수를 했다. 지금 그는 보안국과 군사정보국 둘 다 상대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 그게 아주 확실하게 되어버렸다.
‘일이 더럽게 꼬이네.’
빈우는 눈앞에 놓인 사건을 해결하려고 발버둥을 쳐봤지만, 사건은 마치 모래지옥과 같아서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그를 바닥없는 밑으로 끌고 내려가고 있다.
‘잠시 정리해보자.’
일단 빈우 자신은 잠수에서 돌아온 후 본인이 결백하다고 하지만, 정황상 주변의 미심쩍은 눈초리를 받고 있다. 또 그의 두뇌칩에 감쳐진 정보는 대단히 위험함과 동시에 중요하며 날이 갈수록 이 두 가지 요소의 가치는 더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현재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빈우가 잠수한 것에는, 그리고 그의 머릿속의 트리니티 패턴에는 샤다이의 집정관인 체메트디오프가 관련되어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놈은 인류와 동족을 가지고 온갖 음모를 꾸미는 존재이며 그 위험도는 상당히 높다. 뉴 소노라에서 터트린 계락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또 군사정보국은 빈우가 부상한 직후에는 그를 뜨거운 감자 취급하며 처음에는 바깥으로 돌렸다가, 뒤늦게야 그 가치를 알아보고 서서히 입맛을 다시는 중이다. 보안국은 피에르 라캉 중령이 가진 워프 비스트의 자료를 통해 빈우와 엮이기 시작했고, 그 배후에는 샤다이와의 연결점이 매우 의심된다. 물론 정보부서가 적대 종족과 거래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행동으로 연방의 이익이 되도록 활동하는 부서다.
문제는 보안국이 고대 샤다이에게 넘어갔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특히 체메트디오프에게. 아마 그런 이유로 당시의 빈우는 이중 삼중의 술수를 쓰며 잠수했던 것이다.
이것 때문에 빈우는 자신이 속했던 부서에게, 그리고 그 부서들은 부하인 빈우에게, 서로서로 눈치를 보며 수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서로 신용할 수 없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차라리 마커스가 군사정보국장이거나, 이노우에 고토의 신용도가 마커스의 절반만 되었더라도 사건은 초기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탈주 클론은? 놈은 누가 만들었을까? 워프 비스트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은 그놈을.’
역시나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빈우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 클론은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만든 놈이 분명하다.
시선을 화면으로 돌리니 마커스가 쓰게 웃고 있었다.
-어쩔래? 차라리 군사정보국으로 다시 돌아올래?
마커스의 제안은 나름 일리가 있다. 군사정보국이 빈우를 노리는 마당에 제발로 놈들의 아가리로 들어간다는 것은 자살행위로 보이겠지만, 어차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
“지금 호랑이 아가리로 들어가기엔 내가 가진 무기가 아직 부족해.”
현재 빈우는 태스크포스 373의 팀장으로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덕분에 현재 연방의 고위부서들이 빈우를 주목하고 있고, 태스크포스 373은 특수전 사령부의 자랑거리가 되어있다. 그래서 저 두 정보부서들이 빈우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격하기엔 아직 무기가 너무 적다. 보안국이 샤다이와 연관이 있다는 것만 제대로 밝혀도 대세는 순식간에 역전될 것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 건드린다면 보안국에 줄을 놓고 있는 샤다이들이 눈치채고 꼬리를 감출 수 있다. 이러면 다시 제자리다.
그래서 빈우는 기다리는 중이다. 알탄훼아나가 샤다이를 판별할 정도로만 회복된다면 그것을 무기로 삼아 철저한 반격이 가능하다.
-그러면 더 가져야지. 너 다음 수사 루트가 케트쿤과 프리마지?
“그래.”
-지금 가면 두 국장들이 의심할 거다. 당장은 가지 마.
“일단은 나보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라고 했잖아.”
-나도 알아. 하지만 록산느를 간 것에도 눈에 불을 켜던데, 클론을 어떻게 추적했냐고.
빈우가 록산느의 단서를 얻게 된 것은, 다른 수사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솔트 파이크에서 클론의 기억에 접속하면서부터다. 만약 추적하고 있는 클론과 빈우 간의 동기화가 드러나면 그의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진다.
-게다가 지금 케트쿤과 프리마는 위험해. 지금은 좋은 시기가 아니야. 증거라면 내가 수집해 놓을 테니 너는 때를 기다리며 참아.
그렇게 말한 마커스는 극비자료를 하나 꺼냈다. 그러나 지금 빈우는 볼 수 없는 상태다. 그가 볼 수 없다고 하면 상당한 기밀자료다.
“이거 내 필터로 안 보이는데? 무슨 엄한 자료냐.”
-어? 아직 결재가 안 나서 그렇군. 시각 필터 바꿔. 태스크포스 373에서 42전단으로.
그러자 마커스가 보여주는 자료가 빈우에게 인식이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42전단의 작전계획표였다.
“야야, 너 인마, 이거 어디서 났어.”
-내 책상 위에.
하긴 샤다이를 조지는 드림팀 42전단의 작전이라면 대 외계인 전담부서인 군사정보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러니 수립단계에서부터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빈우는 42전단이 앞으로 이동할 성계들과 세부 작전, 무장 등에 대해서 살펴봤다.
“…드디어 조지기 시작하는 건가.”
42전단에 순양함이 많은 것은 순양함의 점프엔진을 연동해 게이트를 만드는 신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42전단은 점프 게이트의 위치에 영향을 적게 받으며 장거리 성계간 이동이 가능해졌다. 그런 이유로 전단 내엔 보급함이나 공작함의 수가 적었다. 한 번 때린 다음에는 전진기지로 돌아와 보급하고 다시 떠나는 식의 작전들이었다.
-그래, 늦은 감이 있어. 하지만 네가 가져온 신병기가 샤다이에게 특화된 병기다 보니 안 달 수도 없었지. 조율 끝나는 대로 작전 시작할 거다.
자료를 차근차근 살펴본 빈우는 마커스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42전단에 뼈를 묻으란 거냐?”
-그럴 필요까진 없지. 어차피 태스크포스 373은 샤다이의 기술과 병기를 회수하기 위한 부대야. 그 때문에 대 샤다이 전담 함대인 42전단에 내가 가겠다고 했을 때도 주변에선 다들 납득했고 말이야. 네가 거기서 네 할 일만 하고 있으면 널 건드릴 놈은 없다. 클론이 가진 정보가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42전단에서 얌전히 샤다이나 잡고 있어. 오다 의원이 경고했던 그 비밀결사도 42전단은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으니 안전하기도 할 거야.
즉 한 번 웅크린 다음에 뛰어오르란 뜻이다.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이 합심해서 빈우의 뒤를 밟겠다고 한 판국이니 안전한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알았어. 당분간은 조용히 살생이나 하련다. 그동안 바깥일 좀 부탁할게. 참, 바깥일 하니까 생각났다. 프리마의 곰팡이에 대해서 조사해서 보내줘. 알탄훼아나와 쿠사키나 보안국장의 말이 달라. 누가 맞는지 알아봐야겠다.”
-흠…. 그래, 네 보고서엔 프리마의 곰팡이가 협력을 위한 것이었다고 했지? 그게 샤다이의 감염 방법이라는 보안국의 말과는 좀 다르군. 라캉 중령의 건을 보면 보안국도 제대로 조사해봐야겠어. 왜 그가 보안국으로부터 도망쳐야 했을까, 말이야.
이어서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자세한 조율을 한 다음 통신이 끝났다. 빈우는 문득 아나스타샤를 보았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빈우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라리 마커스에게 보낼까.’
그렇다면 앞으로 더 이상 아나스타샤가 상처 입을 일은 없을 것이다. 빈우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그리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렇게 잠시 있던 빈우는 아나스타샤로부터 떨어져 의자에 앉았다.
“수동 및 침묵 모드 해제.”
빈우의 명령에 아나스타샤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주인님, 볼일은 잘 보셨나요?”
“그래, 내 일은 조금 남았어. 커피.”
“네, 주인님.”
아나스타샤는 요즘 주인인 빈우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자신의 주인에게 커피를 가져다주는 게 제일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