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90화 (188/301)

190화

“장관이군요.”

블랙 랜스의 식당, 히토미가 거대한 전망창 밖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다.

“정말 그렇네요.”

옆에선 넋 나간 표정의 우지가 맞장구를 치며 자신도 눈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다.

지금 태스크포스 373 팀원들의 앞에는 42전단의 모든 함선들이 마치 관함식처럼 모여 있다. 히토미와 우지는 이 정도 규모의 함대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감탄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팀원들의 표정은 조금 심각했다.

“함선 편성 꼬라지 하고는. 이거 좆 돼봐라 하고 찔렀는데 안 되면 우리가 좆 되는 거잖습니까?”

이런 말을 하는 위르겐의 표정은 웃음 반 황당함 반이다.

“그렇겠지?”

대답하는 파트리샤도 질린 듯한 표정이다. 42전단은 함대의 구성이 꽤나 기형적이라, 눈썰미 좋은 자라면 그 구성을 보는 순간 대번에 전단의 작전 목적이나 전투 방식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다.

우선 함대의 결전병기랄 수 있는 전함은 단 한 척뿐이다. 그것도 뱅가드 연대의 기함인 원더풀 뷰티풀인데, 이놈은 화력보다는 장갑을 믿고 적진을 돌파해 장갑보병을 투사하는 놈이라 원래부터 거대한 상륙정 취급을 한다.

이어서 함대의 핵심 공격력을 담당하게 될 구축함은 고작 8척에 불과하다. 그것도 함축 코일건 대신에 중력충각을 장비하고 무장들도 방어적이라 숫제 호위 구축함인 셈이다.

또 항모도 정규항모라기보다는 고속의 호위항모 2척에, 함대를 먹여 살리고 뒷바라지할 군수지원함은 4척에 불과하다. 군수지원함 4척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42전단의 주력이랄 수 있는 순양함은 무려 38척이다. 보급한계를 넘어서는 편성이다.

그러니까 42전단은 처음부터 보급은 신경도 안 쓰고, 아예 순양함을 주축으로 해서 신기술인 연동 점프게이트 생성으로 장거리 침투, 이어지는 집중 타격으로 적을 소멸시키거나 목표 행성 자체를 날려버린다는 작전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즉 위르겐의 말대로 적진까지 깊숙이 침투해서 적의 중심을 한 번에 날려버리면 좋은데, 그게 안 되면 오히려 이쪽이 위험해지는 구성인 것이다. 그러나 그걸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그저 거대한 함선들로 눈호강하는 것이다.

“순양함은 정말 크구나.”

히토미는 눈앞에 있는 순양함들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그 거대한 크기에 비하면 지금까지 꽤 크다 싶었던 블랙 랜스가 꼬마처럼 보일 지경이다. 순양함들은 어찌나 큰지 그들이 타고 있던 탄호이저급 구축함이 조금 가까이 다가가자 함 전체가 시야에 다 안 들어올 지경이다.

“그야 저쪽은 정규 순양함이니까요.”

“아핫! 훗!”

바닥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오르 함장의 등장에 히토미가 괴상한 기합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지냈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등장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 그녀였다. 녹색의 헬레나 겔은 사람의 형체를 갖추고는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실례했습니다. 제가 무례했군요. 앞으로는 조금 더 거리를 띄우고 의체를 만들겠습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함장님.”

히토미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

“저기, 함장님. 순양함들은 원래 이 정도 크기인가요?”

그녀의 의도를 파악한 오르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화면을 띄웠다.

“네, 장거리 항해를 위한 주력 함선들이니 현재의 기술로는 이게 최적의 크기입니다. 단순히 전장만 따져도 본 함의 세 배가 넘습니다.”

오르가 띄운 화면에는 중앙의 블랙 랜스를 기준으로 해서 그 주위에 연방의 각종 함선들이 나열되고 있었다. 이렇게 비교를 해보니 지금 타고 있는 블랙 랜스가 전투함 중에선 비교적 작은 편이란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어머, 이렇게 차이가 큰가요.”

영상을 본 히토미가 탄성을 터트렸다. 블랙 랜스의 영상 옆에 있는 것이 바로 42전단의 기함 이그젝틀리인데 길이만 봐도 벌써 세 배 차이다.

블랙 랜스는 구형 탄호이저급을 전면 개수한 함선으로서, 그 와중에 선체가 제법 커졌지만 함체 자체가 구형이라 크기가 작다. 전장 916m면 현용 구축함 중에서도 비교적 경량급인 호위구축함급이다. 반면 눈앞에 있는 순양함들은 전부 연방의 주력 순양함들로서 전장 3km는 우습게 넘는 헤비급들이다.

“덕분에 적들과 싸울 때 함대의 척추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다만 이 순양함급은 샤다이 함선과 비교하면 크기는 조금 컸지만 화력과 방어 면에선 상당히 열세였지요. 그래서 아군은 대 샤다이 전에 한해선 고속의 구축함을 주력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김 팀장님이 지구제국과 거래를 해 신병기를 얻어옴으로써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지요.”

그 얘기는 히토미도 잘 안다. 빈우가 몇 마디 정보를 건네준 대가로 지구제국은 지금 연방에게 꼭 필요할 만한 선물을 내주었다. 샤다이의 방어막을 무시하는 이 선물, 입자 빔포는 연방함대 지휘관들의 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빈우는 선물 타이밍이 좀 수상하다고 찜찜해 했지만 샤다이 거점을 공격할 42전단에는 필수적인 무기라 서둘러 장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무장변경작업 덕분에 42전단의 출동은 조금 늦춰져 그 시기는 오늘이 되었다.

“그런데 블랙 랜스에는 그 입자 빔포를 달지 않나요?”

히토미가 오르에게 물어봤다. 이 무기는 샤다이를 잡기 위한 특효약인데 대 샤다이 전문부대인 태스크포스 373의 모함 블랙 랜스에는 장착하지 않은 것이다. 이 질문에 오르 함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본 함의 특징 때문입니다. 다른 함들은 포를 장착하고 화기제어시스템을 변경한 다음 포격담당 인원에게 교육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본 함 블랙 랜스는 함체가 저의 신경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무장의 변경은 담당자의 조율 하에 이뤄져야 합니다.”

블랙 랜스와 함장 지마 오르 소령을 연결하는 신경계 작업은 응우옌 티 빈 중령이 했고, 그녀는 지금 행방불명이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히토미가 시선을 다시 창밖으로 돌렸다. 이어지는 거대한 무기의 모습들은 언제 봐도 사람을 몽롱하게 만든다. 그녀 옆에 오르 함장이 조심스레 다가갔다.

“의원님, 이 정도로 놀라시기엔 이릅니다. 전함들은 더 크지요.”

“아참 그, 그랬지요.”

방금 오르 함장이 보여준 자료에서 전함들은 보통 5,000m 내외였다. 이들이 타고 있는 블랙 랜스보다 다섯 배, 눈앞 순양함의 두 배나 큰 것이다. 그리고 크기를 따져보던 중에 히토미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거함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리폰은 굉장히 크던데요. 그게 순양함? 이었죠? 사람들도 많이 타겠네요.”

그녀가 언급한 것은 지구제국의 순양함, 비홀더 전대의 그리폰이었다. 뉴 소노라에선 그녀를 태운 블랙 랜스가 도망치기에 바빴던 바람에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마지막에 봤을 때는 정말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며 다가왔었다.

“그것은 지구제국 시절의 함선이라 분류법이 연방과는 다릅니다. 크기라면 그리폰은 전장만 17,000m에 달합니다. 어지간한 도시보다 큽니다만, 대부분 전투 구역이라 탑승 인원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17킬로미터! 정말 엄청난 크기군요. 그런데 그게 왜 순양함이죠?”

“정확히는 돌격순양함입니다. 크기나 무장보다는 장거리 항해 임무를 맡았기에 순양함 분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지 크기만 따진다면, 뉴 소노라에서 처음 보였던 카이사르급 전함들은 25km 정도였습니다. 비록 그리폰과의 전투에선 졌지만 말입니다.”

당시 뉴 소노라의 궤도에선 비홀더 전대끼리의 싸움이 벌어졌었고, 지구 귀환파는 신형 전함인 카이사르급을 몰고 왔으나 이들은 순양함과의 전투에서 지고 말았다. 나중에 분석한 빈우의 말로는 귀환파의 함선들은 어딘가 미완성이라고 했었다.

“이제까지 전투함들은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실제로 보게 되니 정말 놀라워요. 전투력도 어마어마하겠죠?”

“물론입니다. 42전단의 기함 이그젝틀리만 해도 표준형 행성은 단독으로 황폐화 가능합니다.”

처음 듣는 단어에 히토미의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황폐화요?”

“행성에 존재하는 건축물 및 거주민들을 완전히 말소하는 것을 말합니다.”

약간 질린 듯한 상원의원의 표정을 본 오르 함장이 웃으면서 덧붙였다.

“실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선의 화력을 측정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일 뿐이죠. 아, 참고로 우리 태스크포스 373 대원들의 작전 수행능력은 개개인 한 사람이 순양함 한 척과 맞먹습니다.”

“어머, 그게 사실인가요?”

의외의 사실에 히토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갑보병 개인이 저런 무지막지한 화력을 지닌 전투함과 같은 취급이라니 놀라울 수밖에.

“네, 물론 단순히 화력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작전을 수행하는 능력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라 이런 비교가 나오지요. 실제 통합작전 사령부에선 특수전 사령부 소속 정예 요원들의 위험도를 그 정도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닉스 레벨 3의 팀장님은 특히 더하죠.”

히토미가 고개를 돌려 파트리샤를 보았다. 당사자가 있으니 물어보려는 것이다.

“저, 피아프 중위.”

“엥, 파트리샤라고 부르라니깐요. 말씀하세요.”

실실 웃는 파트리샤와는 달리 히토미는 약간 주저하듯 질문을 했다.

“팀원들의 그, 전투력이라고 하나요? 그게 실제론 어느 정도인가요?”

“에에? 글쎄요오. 솔직히 전투력만 따진다면야 부팀장님이나 저는 섬세한 편이라 그리 높진 않아요. 저흰 정밀 타격이 주 임무라….”

거기까지 말한 파트리샤는 뒤에서 ‘섬세한 방탄찌찌’ 어쩌구 하던 위르겐의 턱을 걷어찬 다음 바닥에 나뒹구는 녀석을 신나게 짓밟았다.

“개놈이! 오히려 행성 박살 내는 건 여기 이 위르겐 전문이죠.”

히토미는 짓밟히는 위르겐을 말릴까 말까, 걱정하듯 보다가 방금 파트리샤의 말에 시선이 바뀌었다.

“도른베르거 상사… 가요? 행성 박살 전문이라고요?”

“어어! 내가 뭘요. 장갑복 딸랑 하나로 제가 뭘 어쩝니까.”

위르겐이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상원의원의 눈에 담긴 걱정이 겁먹음으로 바뀌는 것을 본 것이다.

“얘가, 니들 생화학 무장하고 들어가면 표준형 행성 하나 순식간에 작살내잖아.”

“예? 어, 표준형 행성이면 인구 40억이잖습니까. 제타 장비로 들어가도 2주에서 한 달은 걸려요, 뭐가 순식간이에요. 행성 공격이면 팀장님이 나 같은 놈보다 더할걸요?”

뭔가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듣던 히토미가 불쑥 끼어들었다.

“저, 그 팀장님이 혹시 우리 김 팀장님인가요?”

히토미의 질문에 파트리샤의 눈이 장난스레 휘어졌다.

“어머, 의원님이 궁금하셨구나? 여보세요, 팀장니임.”

파트리샤는 바로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인 빈우를 호출했다. 놀란 주변 사람들이 말릴 새도 없이.

-왜 인마.

퉁명스러운 빈우의 말이 들려온다. 뭔가 작업 중인지 영상은 없이 음성만 연결되었다.

“에잇, 쌀쌀하시긴. 바빠요?”

-바쁘다.

“그럼 저랑 농담 따먹기 해요.”

-썅년이.

“팀장님, 표준형 행성 얼마 만에 작살 낼 수 있어요?”

-…인구수 40억에 복합 정치체계 가진 곳? 분류는 자치령이냐, 직할령이냐.

바쁘다더니 저런 뻘질문에도 꼬박꼬박 대답해주는 친절한 빈우다.

“자치령요, 그래서 팀장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흐음, 표준행성이라면 개척화 끝나서 환경 테러해도 큰 의미 없고…. 일단 신분 위장하고 좀 강력한 국가의 대통령이 된 다음 내전을 일으켜야지. 사회 전반에 인간불신 팍팍 심고 핵이나 생화학전으로 몰아가는 게 좋지 싶은데. 추종 세력 만들고 대통령 되려면 년 단위는 잡아야 하겠네. 야야, 근데 그런 대량학살은 나보단 위르겐 그 새끼 전문 아니냐? 뱅가드에 제타 장비 아직 폐기 안 한 거 있던데, 그거 쓰면 일주일에 십억씩 팍팍 녹아날걸?

졸지에 일주일에 십억 명을 죽이는 사나이가 된 위르겐이 상원의원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저기, 위르겐 상사. 아까도 그랬는데 제타 장비가 뭐예요.”

-오 씨발 깜짝이야. 의원님이 왜 거기 있어요.

빈우는 회선 너머에 히토미가 있는 것을 알고 기겁한 목소리를 터트렸다. 저 어깨너머로 아룹의 목소리로 ‘파트리샤 그년이 또 장난질 부렸겠죠.’ 하는 푸념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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