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팀장님, 제타 장비가 도대체 뭔가요?”
이제 히토미의 질문은 빈우를 향하고 있었다. 서서히 날 서는 질문에 대답이 멈칫거린다.
-그 뭐시냐. 연방에서 폐기한 생화학 무기입니다. 좀 연식이 된 겁니다. 이제 안 만들어요.
“폐기했다면서 그걸 왜 아직 가지고 있지요?”
-동맹종족인 스퀵테르에게 준겁니다. 그러니까 연방에는 없는 물건이죠.
“그런데 아직 뱅가드에는 있다면서요?”
-스퀵테르에게서 빌려온 겁니다. 그러니까 연방 물건은 아니고 동맹군 물자를 보관하고 있는 겁니다. 무료로요.
내막을 들은 히토미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 빈우가 서둘러 변명 같은 해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의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이 안건은 상원에서 내려온 거라서 뱅가드 연대에선 하라는 대로 한 것뿐입니다.
그 말에 눈 감고 있던 히토미의 눈이 버럭 떠졌다. 목소리도 함께.
“그런 협잡질을 한 사람이 대체 누굽니까?”
약간 노기마저 서려 있는 히토미의 말에 빈우가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다. 빈우와 지금까지 지내와 그에 대해서 좀 알게 된 히토미는 빈우가 왜 말을 못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 예상 답안 중 하나를 자기가 직접 꺼냈다.
“…설마 이케가미 전 상원의장인가요?”
-그러게 왜 그걸 또 굳이 꺼내셔가지고선….
졸지에 죽은 아버지에게 피폭당한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이 더 큰 한숨과 함께 의자에 주저앉았다.
* * *
“이제 난 몰라 씨발.”
시끌거리기 시작하는 회선을 끊은 빈우가 다시 아룹 앞에 앉았다.
“팀원들이 심심한 모양이군요.”
아룹은 이 촌극을 들으며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안 심심하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제가 좀 바빠서 말이죠. 부팀장님은 어떻습니까?”
한숨 섞인 대답을 한 빈우는 요 근래 앞뒤, 위아래로 치이느라 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팀장 부재 시에 그 업무 대리를 해야 할 부팀장 아룹 또한 빈우가 부탁한 모종의 임무로 제법 바빴었다.
“말씀하신 그 인원들 말입니다.”
아룹이 말한 그 인원들이란, 예전 오브리가도의 특수전 사령부에서 태스크포스 373이 훈련하는 것을 훔쳐본 놈들을 말한다. 당시 아룹은 그들의 흔적을 보고 같은 단검뿔 토끼의 대원일 것이라 추측했었다.
“42전단의 주임원사가 제 동기라서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아룹과 파트리샤는 다른 팀원들보다 먼저 42전단에 가서 태스크포스 373이 그동안 샤다이와 싸웠던 전훈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빈우는 두 사람에게 거기 가서 실리콘 나이트나 단검뿔 토끼 출신 대원이 있으면 정보를 좀 수집해보라고 넌지시 일렀는데, 아룹은 그 보고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제가 속았습니다. 당시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우리 팀 훈련을 살펴봤던 놈들은 단검뿔 토끼가 아니라 보안국 소속 특수작전팀이었다고 합니다.”
“그거 골치 아프네요.”
빈우는 자신의 오판을 자책했다. 보안국도 명색이 정보사령본부 산하기관이라 비밀작전을 위한 부대쯤은 당연히 있다. 다만 단검뿔 토끼 소속의 아룹 원사가 자기 팀 같아 보인다길래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었고, 당시 특수전 사령관인 캐서린 시슬 대장의 입김이 제대로 닿지 않는 단검뿔 토끼는 상원의장 경호대와 연방 국세청 징세부대에 파견되는 놈들뿐이라 이 두 부대를 중점적으로 살폈었다. 그런데 영 엉뚱한 곳으로 타겟이 잡히니 골치가 아플 수밖에.
‘그런데 어찌 보면 나을 수도 있다. 보안국이 적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것이니까.’
생각을 정리하는 빈우의 앞에서 아룹이 그 보안국 부대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했다.
“당시 쿠사키나 국장의 강한 건의로 보안국 특수팀 중 몇몇을 선발해 단검뿔 토끼의 훈련과정을 이수시켰다 합니다. 그 결과 정규팀원에 비해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는군요.”
단검뿔 토끼는 명실공히 연방 최강의 특수부대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놈들이 적이라면 상대하기 상당히 까다롭다.
“으음, 규모는 어떻답니까?”
“확실히 밝혀진 것만 네 명입니다.”
단검뿔 토끼 일개 분대면 어지간한 파괴 공작은 손쉽게 벌인다.
“그런데 부팀장, 그날 놈들은 왜 일부러 흔적을 남겼을까요?”
단검뿔 토끼나 실리콘 나이트 정도 되면 왔다 간 흔적은 마음먹은 대로 지울 수 있으며, 조작할 수도 있다.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우리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보안국 소속의 팀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아룹은 자기 본가에서 태스크포스 373에게 무언가 위험을 알리기 위해 그런 흔적을 남겼으리라 생각했다. 빈우는 비슷하지만 달랐다.
“경고일 수도 있죠. 내용은 협박이겠지만.”
즉, 우리가 근처에 있으니 함부로 까불지 말라는 경고란 의미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헌데 팀장님, 그 샤다이 호민관은 어쩌실 겁니까?”
“알탄훼아나 말이군요.”
그녀는 모종의 이유로 태스크 포스 373에 협조하고 있으며, 그녀가 가진 정보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연방이 현재 처한 위기 중 몇 가지는 대번에 해결된다.
“네, 42전단이 가는 곳은 샤다이 본거지들입니다. 그런 곳을 가는데 샤다이를 같이 데리고 간다니 괜찮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으로선 딱히 그녀를 두고 올 곳이 없지요.”
알탄훼아나는 고대 샤다이들의 귀환 반대파임과 동시에 그들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때문에 연방에 잠입한 샤다이들에게는 어떻게든 제거해야 할 위험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빈우의 본가인 군사정보국은 애초에 탐탁지 않은 곳인 데다가 보안국과 수상한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믿을 수 있는 특수전 사령부는 예전에 알탄훼아나가 사고를 친 적이 있어서-정확히는 그녀의 아버지인 체메트디오프지만-맡기기 껄끄럽다.
“일단은 우리가 데리고 다니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다만 42전단에는 되도록 비밀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다음으로 빈우는 마커스의 권유를 떠올렸다. 녀석의 말에 따르면 현재 케트쿤과 프리마는 가기 곤란한 상황이다. 지금의 빈우로선 적과 싸울 무기를 늘릴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팀의 향후 행방에 관해서인데, 타이 차장의 권유도 있고 하니, 사건 수사는 당분간 미룹시다.”
“그러면 이제 어쩌실 겁니까?”
“당장은 42전단과 함께 움직여야겠습니다.”
원래 태스크포스 373은 적대 세력의 방해를 피해 42전단으로 잠시 피한 상황이다. 따라서 명목상 같이 행동할 뿐 실제론 전혀 상관없는 독립작전을 하고 있었다. 지금 빈우의 말은 앞으로 42전단의 작전에 합류하겠다는 의미다.
“흐음, 우리는 소규모 팀인데 제대로 도움이 되겠습니까?”
태스크포스 373은 구축함 한 척, 전투기 한 대, 장갑보병 4명에 기술장교 한 명이다. 수십 척의 군함을 거느린 42전단에 비하면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지상 병력을 조금 달라고 해볼까요? 장갑 보병 쪽 지휘관인 데이먼 중령하곤 조금 알긴 아는데 말입니다.”
데이먼 중령은 뱅가드 연대에서 온 사람으로, 현재 42전단 장갑보병 전대의 전대장을 맡고 있다.
“허, 그 양반하고요?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위은쓸납학에서 같이 작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룹이 고개를 갸웃하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위은쓸납학에서 빈우가 활약할만한 전장이 어딘지 알아보는 것이다.
“혹시 그놈들 보육원에 쉬바 터트린 것 말입니까?”
“어라? 아시네요.”
“그야 저도 이것저것 주워들었으니까요.”
아룹의 군경력은 빈우의 세 배가 넘는다. 게다가 단검뿔 토끼로 살아왔으니 별별 이야기도 들어봤다. 그때,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 팀장, 잠시 시간 되나?”
* * *
“역시 대단해.”
이그젝틀리의 전단장실에서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감탄 섞인 탄식을 토해낸다. 그녀는 지금 태스크 포스 373의 지상 전투기록을 보고 있었다. 처음엔 우주전에만 관심이 있었던 그녀여서 태스크포스 373의 전투는 블랙 랜스와 롱소드의 우주전만 주로 보았고, 지상전은 문서로만 대강 훑어보았었다. 그러다가 출진을 하루 앞둔 오늘 심심해서 이 기록을 보았다가 자신의 애꿎은 무릎만 치게 되었다.
“아깝군.”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다시금 탄식과 함께 팔짱을 끼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드시나요? 분명 그날 제대로 판단 못 한 것 때문이겠죠.”
부관인 발렌티나가 핀잔 섞인 웃음과 함께 홍차와 과일잼 몇 가지를 내왔다. 인공지능 홀로그램인 그녀지만 이 정도는 할 로봇이 있다.
“그래. 또 부끄럽기도 하고 말야.”
잼을 한 스푼 입에 넣은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찻잔을 들었다.
“뭐가요? 취향이 유부녀보단 이혼녀라고 한 것 때문에요?”
부관의 말은 잼와 차를 음미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전단장은 입안의 것을 냉큼 마신 다음 대답했다.
“크흠, 아니 아니, 내 눈이 옥석은 가린다고 한 것 말이야.”
저번에 빈우와 만났을 때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그렇게 평가하며 말했었다. 그녀가 보기에 빈우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희생할 각오가 된 자였다. 또 지금까지 보기 싫어도 숱하게 봐왔던 눈을 하고 있었다. 아군의 퇴각 시간을 벌기 위해 후미를 자처한 동료들의 눈, 승기를 잡기 위해 사지로 달려간 부하들의 눈, 연방의 평화를 위해 사절로 파견된 딸의 눈이 그랬었다.
물론 스크로도스프카 전단장은 그런 평가를 거둘 생각은 없었다. 다만 빈우가 주로 지상 화력팀을 맡았기에 함대를 다루는 그녀의 입장으로서는 그 실력을 평가절하했던 것이다.
처음에 그녀가 눈독을 들인 것은 블랙 랜스와 우지였다. 저 구축함과 전투기가 보였던 혁혁한 전공은 스베틀라냐의 눈을 번뜩이게 하는데 충분했다. 구형함을 개조하는 롱훅 프로젝트는 함대를 지휘하는 그녀에게 기쁜 소식이었지만, 아쉽게도 블랙 랜스는 실험용 프로토 타입에다 태스크 포스 373의 모함이라 그녀의 손 밖에 있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우지 쪽으로 눈을 돌렸건만 이쪽도 딱히 여의치 않았다. 그와 맞바꿀만한 인재가 이쪽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손을 놓고 있었는데 태스크 포스 373의 다른 기록, 그중에서도 라출노그에서의 기록을 보던 중 전단장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빈우가 롱소드를 몰고 나가 전투하는 것을 봤던 것이다. 싸우기도 제법 잘 싸운다. 하긴 닉스 레벨 3이면 연방의 무기는 다 다룰 줄 안다.
그렇게 빈우의 실력에 흥미가 생긴 그녀는 그가 행했던 전투 기록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결과뿐만이 아니라 자세한 진행 상황을. 그리고 지금 이렇게 감탄과 후회를 하고 있다.
“이걸 봐, 김 팀장의 지상 작전이야.”
화면에는 장갑보병 4기가 각각 2기로 나뉜 상태로 적과 교전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망치와 모루네요. 그런데 아주 능숙하신데요.”
망치와 모루는 인류가 고대에서부터 써오던 우회포위 전술이며, 현대에서도 여러 방면에서 쓰인다. 장갑보병의 지상전은 물론이고, 우주에서의 함대전에서조차도.
“그래, 김 팀장은 이걸 신들린 듯이 쓰는군.”
뉴 소노라의 시가지에서 그라인더와 중무장 어벤져가 워프 비스트 무리와 교전을 하고 있는 사이에, 컨커러와 인필트레이터가 적의 측면으로 돌아가 빈약한 옆구리를 찌르고 있다. 다음 영상에선 컨커러 팀이 적에게 공격을 시도했다가 거센 반격을 받는 게 보였다. 정확히는 모습을 드러내고 유인하는 것에 가까웠다. 컨커러 팀은 달려드는 워프 비스트의 기세에 미처 전진하지 못하는 척 서서히 뒤로 빠졌고, 그걸 본 괴물들은 진형을 무너트리고 돌격한다. 그리고 괴물들이 추적하느라 대형이 조금 늘어지자, 그 사이로 원래 대치하고 있던 그라인더와 어벤져가 제트팩으로 돌입해서 적 진형을 분산했다.
“와아….”
이어지는 장면에서 인공지능 발렌티나가 감탄했다. 그라인더 팀은 적 무리를 반으로 갈라버렸고, 반전한 컨커러 팀과 함께 나뉜 적들을 각개격파했다. 한 번 교전한 다음 그라인더 팀은 즉시 후퇴했고, 그쪽을 따라가려던 워프 비스트들은 빈틈을 채우는 컨커러 팀의 사격에 흠씬 두들겨 맞았다.
“타이밍을 잘 잡아. 타이밍을.”
빈우가 주로 쓰는 것은 망치와 모루였다. 그것도 고작 네 명으로도 잘만 쓴다. 게다가 쓰는 게 마술 같다. 처음 보면 왼손엔 모루, 오른손엔 망치를 들었다 싶었는데, 어느새 보면 바뀌어 있다. 또 적들이 거세게 달려들면 두 개조 모두 모루가 되어 지연전을 펼치고, 조금 약해졌다 싶으면 둘 다 망치가 되어 신나게 다지기 시작한다.
“대단한 실력이네요.”
부관 발렌티나가 맞장구를 친다.
같은 장갑복에 같은 훈련을 한다 해도 저렇게까지 할 만한 사람은 드물다. 발 가르단 하스의 기록에서는 상대적으로 무장이나 병력 면에서 열세인 상황이었지만, 반드시 이쪽이 우세인 상황을 만들어 교전했고, 불리해지기 시작하면 그전에 미리 눈치를 채고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