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고작 네 명으로, 장갑보병 일개 분대만으로 저 정도 규모의 샤다이에 맞서 유리하게 싸우다니, 놀라워요. 제가 알고 있는 장갑보병 지휘관들과 비교해 상당한 차이가 있네요. 아, 물론 그분들을 폄하할 의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발렌티나의 감탄에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맞장구를 친다.
“그래, 똑같은 계란으로 오믈렛으로 만든다 해도 나 같은 년하고 전문 주방장은 엄청난 차이가 있지. 그런 거야.”
“역시 닉스 3레벨이란… 참 대단하군요.”
“물론이지. 연방 최고의 지휘관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니까. 그들은.”
스크로도스프가 전단장은 거기까지 말한 다음, ‘이렇게 현장에서 구르는 게 아냐.’란 뒤의 말을 잼을 먹어 삼켰다. 하지만 부관인 인공지능에겐 감출 수 없었다.
“어지간히도 탐이 나시나 봐요?”
발렌티나는 42전단을 꾸리기 위해 인재란 인재는 다 긁어모은 스베틀라냐를 옆에서 봐왔다. 지금 전단장은 인재를 빼앗아올 때 했던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빈우의 지상전 지휘 실력은 검증되었고, 전투기 조종 실력 또한 뛰어나다. 다음은 함선 지휘인데, 닉스 3레벨인 이상 당연히 잘 해낼 것이다.
“전단장님, 혹시나 함장 자리 하나 물색하는 것은 아니길 바라요. 함장이 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잘 아시죠?”
“그게 하루아침에 뚝딱 되는 자리는 아니잖아. 그래서 지상군을 맡겨볼까 하는데. 어때?”
부관의 잔소리에도 느긋하게 차를 마신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의견을 말했다. 역시나 빈우에게 러브콜을 날릴 셈이다.
“뱅가드 연대를요? 데이먼 중령님은 어쩌시라고요.”
뱅가드 연대의 제1 대대장인 브릭스 데이먼 중령은, 전우인 스베틀라냐 스크로도프스카의 부름을 듣고선 뱅가드 상부에 사정사정해서 기함인 원더풀 뷰티풀까지 끌고 왔다. 그런 그에게 병력을 바로 빼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전부 다 맡긴다는 게 아냐, 지상팀 하나를 맡겨보자는 거지.”
“김 소령님은 지금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이세요. 그런 분이 단순한 지상전을 맡으시려 할까요?”
태스크포스 373은 그 능력을 인정받아 42전단에 와있으며 현재 모종의 암살사건 수사를 맡고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42전단과는 독립적인 부대다. 거기까지 사고가 닿은 발렌티나는 빈우가 담당하고 있는 사건의 진짜 내막, 그리고 그와 예전에 했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알려져선 안 되는 연방의 기밀, 그리고 인류를 지키기 위해 빈우가 짊어지고 있는 의무들이다. 하지만 표정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말은 해볼 수 있잖아.”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끈질겼다.
“그렇죠, 해볼 순 있죠.”
피식 웃은 부관 발렌티나는 태스크 포스 373과의 회선을 열 준비를 했다.
“제가 연락할까요? 아니면 전단장님이 직접 하실 건가요?”
빈우는 계급은 낮아도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이다. 굳이 지휘체계를 따진다면 특수전 사령부의 독립팀으로서 42전단의 전단장인 스크로도스프가 중장과 비슷한 선에 놓인다.
“역시 내가 하는 게 낫겠지.”
회선이 열리자 스크로도스프가 전단장은 싱긋 웃으며 말을 꺼냈다.
“김 팀장, 잠시 시간 되나?”
-말씀하십시오.
이쪽으로 돌아보며 대답하는 빈우의 뒤로 부팀장인 아룹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그도 42전단의 주임원사와 동기라고 했었다.
“자네, 우리 전단에서 지상팀을 맡아볼 생각은 없나?”
의외로 대답은 바로 나왔다.
-그거라면 제 쪽에서 미리 말씀을 드릴 참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기미가 보이자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 그랬나? 마음이 맞아 다행이군.”
-네, 어차피 제 팀은 샤다이의 기술과 장비를 탈취하는 팀이고, 현재의 임무인 암살사건 수사는 잠시 답보 상태입니다. 멍하니 밥만 축내느니 앞으로 42전단에서 민감한 작전이 필요하다면 저희 팀이 맡겠습니다.
“하하, 비싼 밥값이구만. 실은 자네 팀 말고도 더 병력을 더 맡겨볼까 해. 아, 물론 신설팀의 작전권은 자네에게 주고 말이야.”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는 특수전 부대라 해도 야전에 뿌려지면 일반 장갑보병과 다를 바 없다. 까놓고 말해서 아룹의 그라인더나 여타 어벤져나 전선에서 싸우면 포격 한 방에 날아가는 일개 장갑보병에 불과하다. 이들이 제 실력을 발휘할만한 곳은 그에 걸맞은 작전이 있는 곳이다.
-저야 감사합니다만, 작전 시작을 하루 앞두고 괜찮으시겠습니까?
내일 샤다이를 조지러 떠나는 마당에 지상팀 재편성은 무리가 있다.
“당장 이번 작전부터가 아니야. 일단 말이나 꺼내 본 거지. 차차 진행할 일이야.
-그러면야 좋습니다만, 데이먼 전대장과는 얘기가 되었습니까?
기함까지 끌고 온 뱅가드의 전대장에게 자신의 부하를 다른 팀으로 보내자고 하는 것은 조금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그에 관해선 내가 전대장과 얘기를 해보지.”
-실은 저도 그분과 안면이 조금 있습니다. 괜찮다면 여기서 같이 얘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말인가? 그거 다행이군.”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즉시 데이먼 전대장을 회선에 추가했다.
-부르셨습니까, 전단장님.
탄탄한 체구의 뱅가드 대원이 화면에 나타났다.
“데이먼 전대장, 이쪽은 태스크포스 373의 김 빈우 소령이야. 구면이지?”
전단장의 소개에 빈우가 먼저 경례를 한다.
-오랜만입니다. 중령님.
그런데 마주 보는 데이먼 전대장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 오랜만이야, 소령.
그리고 아주 절도있게 답례하는 그의 모습을 본 스크로도스프카 전단장은 둘 사이에서 묘한 거리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데이먼 전대장이나 김 팀장이나 서로 알고 있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만나지 않은 것을 보면 뭔가 사연이 있는 듯싶다.
‘이거 애매한데….’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일이 잘 풀리나 싶다가 뜻밖의 곳에서 암초에 부딪히자 마음속으로 침을 삼켰다.
전단장은 전단의 최고지휘관이다. 그러나 장갑보병전대의 지휘관은 어디까지나 전대장인 데이먼 중령이기에, 장갑보병의 일에 전단장이 직접 관여할 수는 없다. 작전 지휘라면 모를까 이런 장갑보병간 병력의 이동이나 편제 같은 것은 전대장 고유의 일이라, 설령 전단장이라 할지라도 회의를 거쳐야 한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어떻게 운을 떼면 좋을까 하고 단어를 고르고 있을 때, 데이먼 전대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자네는 요즘도 그런 비인간적인 작전을 하는가.
그가 말을 거는 대상은 화면 너머의 빈우였다. 막 나가기로 연방 둘째가라면 서러울 뱅가드에게 비인간적이란 단어를 들을 정도면 보통 행실로는 안 된다.
-인간이 아닌 적들에게 인간이 아닌 방법을 쓰는 것뿐입니다. 정당한 목적에 알맞은 수단을 고르는 거죠.
김 빈우는 원래 외계종족을 상대하는 군사정보국 소속이었고, 동시에 닉스 레벨 3과정을 수료했다. 스베틀라냐는 빈우의 과거가 어땠는지 대강 짐작이 갔다.
-그렇게 싸우면 싸우는 쪽도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을 알고 있어야지.
-적어도 지켜야 하는 쪽이 인간으로는 남아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빈우와 데이먼 전대장이 하고 있는 대화는 연방군의 오랜 딜레마다. 적대적인 외계종족에게 어디까지 복수해야 하는가, 복수하기 위해 드는 무기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어차피 연방이 싸우는 적들은 삼진 아웃을 맞은 놈들이라 봐주는 것 없이 갈아버린다.
하지만 그러기엔 어릴 적부터 배워온 교육, 우주에서 마주한 종족들은 모두 미래의 친구란 연방의 슬로건이 전장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병사들에게 적잖은 부담을 준다. 정확하게는 당길 때는 마음껏 당기지만, 돌아와서는 과거 자신이 했던 일의 그림자에 서서히 휘감기는 것이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두 사람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보니 조금 묘하다. 데이먼 전대장은 김 팀장을 꺼리기도 하지만, 더불어 걱정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어흠, 내가 말 좀 해도 될까?”
대충 분위기를 파악한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나서자 두 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이쪽을 보았다.
-실례했습니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데이먼 중령을 잘 안다. 전투가 벌어지면 가장 먼저 출동하는 것은 뱅가드 연대고, 거기서 수습이 안 되면 중앙함대가 출동한다. 그래서 중앙함대 출신인 그녀는 데이먼 중령과 함께 싸워본 적이 제법 있다. 그의 전투 방식은 정석적이고 교과서적이어서, 기교나 잔수작은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야기는 본론부터 꺼내는 것을 좋아했다.
“출동을 하루 앞둔 지금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조금 그렇긴 한데, 내가 또 참을성이 없어서 말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데이먼 전대장, 자네 휘하 대원 중 몇 명을 김 팀장 쪽으로 보내 별동대를 꾸릴 수 있도록 도와 있겠나? 물론 태스크포스 373 소속이 아니야, 김 팀장이 42전단으로 와서 지상팀을 맡아주기로 했어.”
-그런 일이라면 저도 좋습니다.
“어…? 그런가?”
예상과 다른 시원한 대답에 오히려 말을 꺼낸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머뭇거렸다. 이어서 데이먼 전대장이 편성표까지 작성한다.
-규모는… 흠, 별동대라면 차라리 독립중대 하나 편성해서 맡기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42전단에 있는 뱅가드 대원들은 2개 대대 규모를 재편성해 1개 전대를 구성하고 있으며, 1 대대장이었던 데이먼 중령이 전대장을 맡고 있다. 자기 자식이나 다를 바 없는 부하들을 척척 넘기는 것을 보면 빈우의 실력에 대해선 확실한 믿음이 있어 보였다.
-단, 당장은 조금 무리고 이번 작전이 끝나고 편성을 하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그야 물론이지. 일단 대략적인 구상만 잡아보잔 것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빨리 진행되다니 오히려 말을 꺼낸 내가 당황스럽군.”
-독립중대라면 규모가 어떻게 됩니까? 병력이 너무 많거나 작으면 큰 의미가 없지 싶습니다만.
일이 잘 풀리나 싶더니 이번에는 빈우가 태클을 걸어왔다.
-그거야 자네가 원하는 만큼 꾸려주지. 지휘체계는 내 밑이 아니라 전단장님 밑으로 될 테니까 혼선은 걱정하지 말고.
이렇게 같은 병과에 두 가지 지휘체계를 둔다는 것은 이 둘을 쓸 방법이 아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이먼 중령의 뱅가드 전대는 정석적인 강하작전을 위주로 하고, 빈우가 맡을 규모 미정의 부대는 비정규전을 담당할 모양이다. 당장 빈우에게 떠오르는 것만 해도 순양함대의 점프 전에 미리 파견되어 정찰을 하거나, 위험 목표를 미리 타격하거나, 요인을 암살하는 것 등등 무궁무진하다.
-보아하니 제가 맡을 부대는 특수작전팀이겠군요.
“그렇지.”
빈우의 말에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42전단이 신속타격팀이라 해도 이런 부대는 있으면 좋다. 전함이 갈 수 없는 곳에는 전함보다 더한 씹새끼를 보낸다는 게 연방의 특수작전이다.
-그러면 독립중대라고 해봐야 서른 명 정도 되는 팀이 되겠습니다만….
말을 하는 빈우의 시선은 스크로도프스카 전당장에서 데이먼 전대장쪽으로 서서히 옮겨갔다.
-실례지만 지금 42전단의 뱅가드에 그런 일을 할 만한 인재가 있을까요?
빈우의 질문에 전단장의 가슴이 철렁한다. 하겠다고 해놓고서 어깃장을 놓으니, 부하들을 내줄 데이먼 중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겁난 것이다. 하지만 데이먼 전대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야 이제부터 자네가 뽑아가서 훈련해야지.
단검뿔 토끼나 실리콘 나이트의 인원들은 대부분 뱅가드에서 지원한다. 그렇기에 뱅가드에선 저 부대들로 대원들이 넘어가는 것에 큰 부담감이 없다.
-훈련을 한다 해도 시간이 꽤 걸릴 텐데요. 단순한 별동타격대인 줄 알았더니 일이 꽤 커졌잖습니까.
-그런 부대라면 애초에 대원들 줄 생각도 안 했어. 빡시게 굴려서 돌려줘. 아 잠깐, 그전에.
시원시원하게 부하들을 떠넘길 기세의 데이먼 전대장이 잠시 제동을 걸었다.
-훈련을 시킨다 해도 위은쓸납학에서처럼은 안 돼.
빈우의 눈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데이먼 전대장의 시선은 단호함을 담고 있었다.
-그야 물론이죠. 풋내나는 애송이의 토사물을 닦아줄 마음은 없습니다.
토사물이란 단어에 데이먼 전대장의 눈썹이 잠깐 꿈틀했지만, 다행히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갔다. 적어도 두 장갑 보병 사이에선.
“응? 위은쓸납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당시에 있었던 함대전 기록은 빠짐없이 샅샅이 훑어봤지만, 지상전 임무는 대충 결과만 보고 넘겼었다. 그런데 지금 두 사람의 말을 보면 이 둘은 위은쓸납학에서 인연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질문한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대답을 기다렸고, 빈우는 선임인 데이먼 전대장에게 기회를 넘겼으며, 데이먼 전대장은 그날의 주역이었던 빈우가 말하길 기다렸다.
“응? 무슨 일이냐니까?”
일견 순진무구해 보이는 스베틀라냐 스크로도프스카 중장의 시선이 두 장갑보병을 번갈아 훑자, 이 두 사람은 꽤 곤란해졌다.
-김 소령, 자네가 말하게.
-니미, 오늘도 접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