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언제나 하던 거네요. 시간제한 있는 곳에 내려가서 목표물 들고튀기.”
모니카는 롱소드에서 내리는 빈우에게 컨커러를 가져왔다. 예전 같았으면 거치대에 실린 채로 몰고 왔을 건데, 지금은 부머의 손에 장갑복 목덜미를 잡고 대롱대롱 들고 온다.
‘그러고 보니 얘도 많이 바뀌었구나.’
빈우는 처음에 만났을 때의 모니카가 납치되듯 끌려와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은 나름대로 태스크 포스 373에 적응한 모습이다.
“그래, 하지만 이번 시간제한은 아군 것이다.”
지금 태스크 포스 373이 강하하는 곳은 샤다이가 사는 행성이고, 궤도상의 적을 정리한 42전단은 궤도 포격으로 지상의 샤다이와 건축물을 제거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런 대파괴 전에 중요한 물건을 먼저 빼돌릴 수만 있다면야 좋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임무다. 샤다이들이 도망치거나 아군의 궤도포격에 반격하기 전에 작전을 마쳐 황폐화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저도 내려가나요?”
모니카의 질문에 빈우는 잠시 생각했다. 현재 샤다이 기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모니카다. 그러나 이번 작전은 제대로 된 사전 정보 없이 궤도상에서 정찰하고 바로 투입되는 위험한 임무다. 다른 지상팀이라면 익숙하겠지만 모니카는 어떨지 걱정되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파트리샤도 알탄훼아나를 감시하느라 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기다려봐, 파트리샤.”
빈우는 병실에 있는 파트리샤를 호출했다.
-네, 팀장님.
“알탄훼아나의 현재 상태는?”
-조용합니다. 별다른 이상 없이 자고 있어요.
지금은 샤다이의 행성을 공격하는 중이다. 샤다이 호민관인 그녀에게 들킨다면 좋은 꼴 못 볼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이번 작전은 철저히 비밀로 했고, 행여 다른 방법으로 눈치채게 되면 알려달라고 말해둔 상황이다. 그리고 알탄훼아나의 정신 케어를 담당한 아나스타샤는 지금 오다 상원의원을 경호하고 있다.
결국 빈우와 아룹, 위르겐, 모니카 세 명이 지상에 내려가야 하는데, 이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브리가도에서 빈우에게 코일건을 쏜 다음부터 직접적인 전투 행동에는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상담해서 치료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모니카, 넌 이번엔 대기다. 우리가 선물꾸러미 가득 들고 올라올 테니까 나중에 조사 부탁한다.”
“그런가요. 헤헤, 그럼 어쩔 수 없지요.”
모니카는 순순히 수긍하며 컨커러를 바닥에 내렸다.
“참, 컨커러의 입자포를 손봤으니 출격 전에 확인해주세요.”
빈우는 그녀의 말을 듣고 등 뒤에 달린 입자포를 흘깃 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감상을 말했다.
“…썅년이.”
빈우의 욕을 들은 모니카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며 배시시 웃는다.
“야이 썅년아.”
빈우가 모니카를 돌아보며 한 번 더 높은 톤으로 욕하자 그녀의 얼굴에 핀 미소가 소리에 맞춰 더욱 짙어진다.
“씨발 개썅년아아아!”
모니카의 가증스러운 미소를 본 빈우는 분기탱천해서 욕을 뱉었고, 그에 답하듯 홍조를 띤 기술 대위는 방긋 웃어 보였다.
“뭡니까, 팀장님. 무슨 일입니까.”
저기서 빈우의 고성에 놀란 지상 팀원들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자기들끼리 팀장에게 욕먹으면 ‘어이쿠, 저 등신 오래 살겄네.’라면서 실실거리겠지만, 비전투원인 모니카에겐 특별취급이었다. 그러나 달려온 팀원들은 어리둥절했다. 정작 욕먹은 모니카는 웃고 있고, 욕을 한 빈우가 지금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팀원들은 두 사람을 둘러싸고 상황을 살폈다.
“어? 이거?”
위르겐은 이상한 것을 보았다. 컨커러의 등 뒤에 달린 입자가속포가 예전 것과는 달리 조금 이상하게 생긴 것이다.
“이거 이번에 온 신형 아닙니까?”
지금 컨커러의 등에 접혀서 장착된 것은 이번에 새로이 얻게 된 입자가속빔포였다. 모니카는 그것을 얻고 기뻐하며 롱소드에 달았고, 열심히 자료를 뽑았으며, 블랙 랜스에는 달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했었다. 그 신병기가 제대로 테스트도 안 된 채 지금 당장 출격할 컨커러에 업혀있으니 욕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빈우는 문득 지난번 회의에서 레드우드 사령관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사령관이 모니카의 안부를 묻길래 빈우는 그냥 잘 적응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때 레드우드 사령관은 경고를 했었다. 태스크포스 373에서 빈우가 감당하지 못할 애는 모니카라고. 유일하게 비전투원이었던 그녀였기에 빈우도 대충 그것 때문이라 어림짐작하고 잘 신경 쓰겠습니다, 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감당 못한다’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징조는 있었지.’
빈우는 모니카의 기록을 떠올렸다.
태스크 포스 373의 인원들은 역전의 용사인 조지 레드우드가 선별해서 뽑아온 엘리트들임과 동시에 저마다 자기 본가에서 사고를 친 경력이 있다. 부팀장 아룹이나 파트리샤, 위르겐들은 상부의 부조리에 반해 각자가 나름 확고한 의사 표현을 한 다음 찍혀버렸고, 그것이 마음에 든 레드우드는 이들을 눈여겨봤다가 팀 창설 때 뽑아온 것이다.
그래서 대원들의 인사기록을 살펴봤던 빈우는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몸 사리며 최대한 예의 바르게 팀원들을 대접했었다. 헌데 모니카의 경우는 애매했다. 사고는 있지만 대부분 실험사고였다. 정확히는 실적은 좋지만, 그것에 비례해 실험사고가 많은 편이었다. 게다가 팀에 합류한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없어서 빈우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년이 숨기고 있었구나.’
그녀는 태스크 포스 373에 어울릴 똘끼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것이 처음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레드우드가 경고를 했지만 빈우는 비전투원인 그녀를 그저 보호 대상으로만 보고 설렁설렁 넘어갔기에 이런 사달이 터진 것이다.
“에이, 팀장님 왜 이러세요. 약한 모습. 이 입자가속빔포는 42전단이나 롱소드에서 충분히 실사격을 거친 물건이에요. 즉, 충분히 데이터를 모아 안정성이 검증되었다고요.”
“접어서 장갑복에 다는 것은 처음이지.”
입자가속포를 컨커러에 달겠다고 한 사람은 빈우 본인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험에서의 이야기고, 검증 안 되고 실전에 들어가는 것은 빈우도 질색하는 일이다. 처음 컨커러를 보급받았을 때도 싫어한 것은 팀장인 빈우였다.
“히힛, 그럼 이전 것으로 다시 달아드릴까요?”
모니카는 이런 사태를 미리 예상했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예전에 쓰던 입자가속포를 들고 왔다.
“아오, 이 미친년이 이거 모듈화했네.”
그것을 본 빈우는 어이가 없어서 또 한 소리 했다. 제식무기도 아닌 창고에서 만든 급조무기 주제에 바로바로 탈착과 교환이 가능하도록 접합부에 개선이 이뤄진 것이다. 두 가지 입자무기를 눈앞에 둔 빈우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바로 선택을 하기엔 방금 보았던 광경이 아직 빈우의 뇌리에 선명한 것이다. 그 좆같은 샤다이 방어막을 무시하고 들어가 놈들의 장갑을 박살 내는 꿈같은 광경이. 포기하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무기였다.
“…그냥 신형 들고 나갈게.”
“역시, 그러실 줄 알았어요.”
웃고 있는 모니카와 반대로 울상을 한 빈우는 주섬주섬 장갑복을 입었다. 그리고 아룹과 위르겐은 그 모습을 측은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시에라 1의 궤도상으로 들어갑니다.
오르 함장의 말에 지상팀원들의 체온은 다시금 식었다. 빈우와 아룹, 위르겐은 말없이 두뇌통신을 연결하며 그라디우스에 탑승했다.
-정찰 내용입니다.
지상팀의 회선으로 블랙 랜스가 촬영한 지상 영상과 여러 스펙트럼의 조사자료들이 들어온다.
-대부분 황무지군요.
위르겐은 식생 온도 지표를 분리해 샤다이의 거주 구역을 추정하고 있었다. 알탄훼아나와 지내보면서 알게 된 것인데, 샤다이는 인류가 먹는 음식물을 그대로 먹을 수 있었다. 아니, 그 대역대가 훨씬 넓어 이들은 조리한 동식물뿐만이 아니라 광물도 섭취할 수 있는 치아와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샤다이는 인류와 비슷한 식습관을 선호했다. 곡물류를 재배하고, 기타 가축을 길러 그것을 요리해 먹는 것이다.
-이쪽이군.
빈우는 샤다이 주거지역을 분리했다. 행성 표면에 크게 드러난 곳만 해도 17곳이다. 빈우는 그중에서 규모가 크면서도 다른 곳과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을 골랐다.
-부팀장, 여긴 어떻습니까?
-흠. 이건 공장이나 생산 시설로 보이는군요. 특히 여기를 보십시오.
아룹이 가리킨 곳은 거대한 지상용 선거, 독 같은 곳이었다. 어째서 그것을 알 수 있냐면 거기에 만들어지고 있는 전열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걸 지상에서 만든다고? 대단한 새끼들이네.
미완성된 전열함을 본 위르겐이 감탄 반, 탄식 반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방은 거대한 우주 전투함을 궤도나 무중력 공간에서 만든다. 그게 제작이 편리하기도 하고, 완성된 다음 우주로 쏘아 보낼 때의 과정도 만만찮게 힘들기 때문이다.
-대궤도 공격 시설은 딱히 없어 보입니다.
빈우가 살펴본 정찰 영상에는 대형 함포류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저 여기저기 흩어지는 샤다이들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는 것이 샤다이가 쓰는 개인화기 시즐러는 연방 전차포를 아슬아슬하게 능가한다. 바꿔 말하면 저 밑에는 유사시에 궤도를 타격할 수 있는 전차포들이 우글거린다는 의미다. 다만 명중률이 엉망이라 궤도상에서 고속으로 이동하는 블랙 랜스를 맞출 확률은 없다.
-먼저 블랙 랜스로 궤도 포격후 지상팀은 그라디우스로 강하한다. 롱소드는 이를 엄호. 목표 상공에 돌입한 다음 그라디우스와 롱소드는 근처의 고위험 목표를 제거한다. 이후 지상팀은 그라디우스로 목표 지점에 착륙, 롱소드는 상공에서 대기하며 엄호한다. 지상팀은 고가치 목표를 확보하고 이탈, 블랙 랜스에 착함한 다음 궤도에서 벗어난다. 다만 42전단의 궤도 포격이 시에라 1을 황폐화할 예정이니 작전은 최대한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 이상이다. 질문?
이번 작전의 대략적인 설명과 함께 자세한 작전도가 팀원들의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그 와중에 빈우는 방금 수집한 정보와 작전 내용에 대해서도 42전단에 알렸다.
-이번에도 시간이 빠듯하군요.
덤덤한 아룹의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샤다이 본거지에 쳐들어가 번갯불로 콩 볶아먹는 일이지만 이걸 하기 위해 만든 게 태스크 포스 373이다.
-태양 두 개에 끼이는 것보단 낫지 말입니다.
그걸 또 위르겐이 넉살 좋게 받았다.
-섬세하게 할 필요 없어. 내려간 다음엔 우리 빼고 다 죽여. 그리고 좀 있어 보인다 싶은 거면 일단 쓸어 담아. 부수는 건 나중에 전문가들이 할 거다.
빈우의 말에 팀원들이 킬킬대며 웃었다. 어차피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임시 작전이다. 뭐라도 들고 오면 그게 작전 성공인 셈이다.
-강하 궤도로 진입합니다.
블랙 랜스가 대기권으로 진입한다. 그럼에도 지상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어서 목표 지점 주변에 블랙 랜스가 궤도 포격을 시작했다. 역시나 지상의 공장에선 방어막 반응이 있었다. 섬광과 함께 텅스텐 탄자들이 폭발하며 튕겨져 나온다. 그러자 블랙 랜스가 서서히 함수를 아래로 기울였다. 함축 코일건을 쏠 생각인 것이다.
-지상팀과 롱소드는 출격해 주십시오.
그러자 지상팀을 태운 그라디우스와 우지의 롱소드가 격납고에서 사출되었다. 이어 블랙 랜스가 함축 코일건을 연사했다. 대기권과 마찰해 붉게 타오르는 텅스텐 탄자들이 아래로 쏘아져 방어막을 깎아냈다. 샤다이의 방어막은 재생을 하곤 있지만, 이쪽의 연사 속도가 그 재생 속도를 앞질렀다. 마침내 방어막이 부서졌고, 고속 고중량의 탄자들이 지상과 건축물에 부딪혀 섬광과 함께 폭발한다.
그사이 그라디우스와 롱소드가 진입 각도를 잡았다. 선두에 나선 롱소드가 신형 입자빔포를 난사해 수상쩍다 싶은 곳은 모조리 쓸어버렸다. 방어막을 무시하고 날아간 아광속의 입자들 중 운 나쁜 몇몇은 대기권의 입자들과 반응해 번개를 일으켰고, 목표에 명중한 포격들은 철저한 파괴를 행했다.
-강하!
빈우의 짧은 호령과 함께 태스크 포스 373의 지상팀원들이 그라디우스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각자의 제트팩으로 자세를 잡으며 빠르게 낙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