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96화 (194/301)

196화

지금 빈우의 앞에서는 전열함 한 척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빈우는 전함이 만들어지는 광경을 몇 번 본 적 있다. 영상으로든 직접으로든.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지금의 상황과는 비슷하지 않았다.

-이게 뭡니까.

위르겐이 넋 나간 표정으로 빈우의 옆에 섰다.

-거대한 물질 생성기… 같은데.

따라온 아룹의 말도 약간 어이없다는 투였다. 지금 독 안에선 전열함이 나타나고 있었다. 허공에 희미한 부품이 보여지더니 차츰 또렷해져서 물체를 이루고 있다.

연방도 대부분의 제품을 물질생성기로 만든다. 과거에 있었던 입체 프린터의 다음 세대랄 수 있는 이 기기는 다종다양한 입자를 분사한 다음에 그 구조를 변형, 결합해 음식이나 사무용품, 기계들을 생성한다. 다만 내구성이 필요하거나 정밀도가 필요한 것들은 직접 제작을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는 다 재료와 작동을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허나 눈앞의 샤다이 전열함은 허공에서 그냥 생성되고 있었다. 장갑복의 센서로 보니 에너지도 질량도 없는 곳에서 부품들이 저절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가? 대체 뭐야 이건?

허탈한 빈우의 넋두리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빈우에게 급히 통신이 들어왔다. 잠시 통신을 하던 빈우가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전단 사령부도 난리가 났네. 이거 들고 간다.

-네에?

놀란 두 사람에게 빈우는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왜 놀래? 블랙 랜스로 독 주변을 포격으로 갈아서 지반과 분리한 다음에 견인빔으로 들어 올리라고 하지. 안되면 지원 부르란다. 그전에 일단 자료부터 빼자.

장갑보병들은 즉시 이동했다. 리퍼함이나 전열함 등 샤다이 구조물에 침입했던 적이 있는 태스크포스 373 대원들은 즉시 목표물로 추정되는 곳을 찾았다.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건물인데 거기선 독의 진행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목표물 주변에 스팸은 없어 보입니다.

위르겐이 원거리에서 저출력 레이저를 광범위로 훑었다. 여기저기서 먼지들이 불타 사라질 뿐 모습을 감춘 스팸은 없었다.

-건물 내부에 샤다이는 일곱, 전원 맨몸이다. 무장은… 시즐러와 클레이모어.

샤다이의 눈이 전파나 자기장을 볼수 있다는 것을 안 빈우는 능동센서 대신에 반향음으로 건물 안의 샤다이 숫자를 추정했다.

-위르겐 지정된 위치에서 엄호. 부팀장은 문으로, 나는 창문으로.

위르겐은 주변에 동작 감지로 설정된 지뢰들을 뿌리며 자리를 잡았고, 아룹은 벽을 따라 몸을 숨긴 채 문 쪽으로, 빈우는 모습을 드러내며 창문 바깥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건물 안에 빼내야 할 자료가 있는 이상 강력한 공격은 되도록 삼가야 한다.

그때 창문 바깥으로 시즐러가 불쑥 나왔다.

“다로!”

그리고 샤다이 하나가 바깥으로 시즐러를 갈겼다. 전차포에 필적하는 플라스마 포격이 날아오지만 빈우는 미리 스핑크스 방패를 들고 대비하고 있었다. 플라스마는 자기장 방어막에 튕겨 나갔고, 그사이 아룹이 안으로 들어갔다. 굉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빈우도 즉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진압은 순식간에 끝났다. 스팸을 입지 않은 샤다이는 매우 연약해서, 건물 안은 순식간에 푸른 안개로 물들었다. 다만 중요 인물이 있을지도 몰라 다 죽이지는 않았다.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바닥에 쓰려져 있을 뿐이다.

-부팀장, 자료 회수하세요.

-네.

팀원들 전원은 모니카로부터 샤다이 기기에 접속하는 방법을 배웠다. 아룹은 즉시 샤다이 컴퓨터에 다가가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하고 자료를 빼내기 시작했다.

그때 빈우의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아까 창밖으로 시즐러를 쐈던 샤다이가 다시 무기를 들려고 하는 것이다. 빈우는 걸어가서 놈의 팔을 걷어찼다. 허리 위만 남아 바닥에서 헐떡이는 놈의 손에서 시즐러가 날아갔다. 빈우는 놈의 배를 밟고 머리에 코일건을 겨눴다. 딱히 다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이놈은 저항을 하는 데다 계급도 높아 보이지 않으니 살려둘 필요는 없다. 인간으로 치면 십 대쯤 되어 보이는 푸른 얼굴의 샤다이는 몽롱해진 눈으로 자신을 겨누는 코일건을 보았다.

빈우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방해가 들어왔다. 서 있는 빈우가 겨누는 코일건의 총구와 누워있는 샤다이의 머리 사이에 다른 샤다이의 손이 끼어든 것이다. 죽어가는 소년 샤다이의 옆에는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여성 샤다이가 다리가 꺾인 채 기어와 자신의 손으로 총구를 막고 있었다. 얼핏 보면 이 둘은 엄마와 아들 같아 보였다.

빈우는 관심이 없다는 듯 총신으로 그녀의 손을 쳐내고 다시 총구를 겨눴다. 짧은 비명과 함께 밀려났던 중년의 샤다이는 악착같이 기어와 다시 총구를 막았다. 다시 쳐내도 마찬가지로 총을 막는다. 어차피 방아쇠를 당기면 저 연약한 손 따위는 막는 의미 없이 지키려는 자와 함께 박살이 난다. 하지만 빈우는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코일건을 거두고 질문했다.

-두빈욤 요히나?

빈우의 말에 여성 샤다이는 흠칫 놀랬다. 떨고 있는 그녀의 눈에선 금빛 실타래가 일렁이며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두빈 나르 요히나.

재차 떨어진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자기가 이 죽어가는 소년의 어머니임을 긍정했다.

-두젠카.

컨커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헬멧의 움직임이 어쩐지 흥겹다.

-베로 두젠카 난.

연방의 장갑복이 고개를 돌려 구석으로 도망쳐 옹기종기 모인 부상자 샤다이들을 보았다. 방금 빈우가 한 말로 인해 그들의 얼굴에 실낱같은 희망이 보인다.

빈우는 허리를 숙여 사경을 헤매는 아들 샤다이를 잡아 올린 다음 그것으로 어미 샤다이를 패 죽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푸른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날렸고, 공포가 희망을 잡아먹으며 절망이 되었다.

-좆 까.

차가운 욕설과 함께 어미와 아들이 들러붙은 시체 뭉치가 구석으로 날아갔다. 비명과 함께 샤다이들이 울부짖는다.

-닥쳐, 씹쌔끼들아.

빈우가 달려가서 구석 벽을 거세게 걷어차자, 굉음이 비명을 덮었고, 정적이 찾아왔다.

잔혹하다면 잔혹한 광경이지만, 그걸 보는 태스크 포스 373들이나 42 전단의 어느 누구에게도 측은함이나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현재 샤다이와 인류는 양립이 불가능한 존재인 것이다. 애초부터 교섭이 불가능할 정도로 공격해 온 쪽이 샤다이였고, 그 내막이 밝혀진 다음은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빈우가 뒤돌아 한걸음 내디뎠을 때 오르 함장의 통신이 들려왔다.

-팀장님, 주변 도시의 샤다이들이 이쪽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태스크 포스 373은 이곳 공장이 있는 도시를 목표로 삼은 다음 공장 외의 주거지는 궤도 포격이나 롱소드의 폭격으로 쓸어버렸다. 그러자 멀리 떨어져 있는 샤다이 도시에서 증원병력이 온다고 한다. 리퍼 몇 기가 날아오고 있고, 샤다이의 소형 전투기들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서둘러야겠군요. 함장님, 여기 독만 잘라내어 들어 올릴 수 있겠습니까?

-네, 가능합니다. 다만 분리작업을 서두르려면 롱소드와 팀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오르 함장이 보내준 견인 계획을 보니 독 부근까지는 블랙 랜스의 포격으로 잘라낼 순 있지만, 그 안의 세부적인 곳은 롱소드와 빈우의 입자빔포가 필요하다고 한다.

-즉시 작업하지요.

통신을 닫은 빈우는 위르겐을 돌아보았다.

-너 핵탄두 몇 기 남았냐.

-2기 그대로 있습니다.

샤다이의 방어막은 플라스마와 레이저 등 열에너지 병기에 상당한 방어력을 가져서 핵탄두의 직격조차 무의미할 정도다. 그러나 진공의 우주 공간이 아닌 이런 대기권 내에선 폭압으로 날려버리면 된다.

-우지, 내가 지시한 좌표에 포격해, 지상팀은 날 따라와. 공장 지반 밑에 탄두를 심는다.

-저건 어떻게 할까요?

위르겐이 가리킨 곳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샤다이 부상자 무리가 있었다. 애초에 빈우는 이들 중 기술자가 있을 가능성 때문에 생포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태스크 포스 373이 강하한 도시 주변으로 리퍼들이 날아오고 있는 것이다.

-접착액 뿌려서 묶어.

어벤져와 그라인더가 응급처치용 접착액을 분사해 샤다이들을 벽에 붙여놓았다. 말이 접착액이지 장갑복의 보수나 장비의 응급 수리에 쓰이는 놈이라 제법 강도와 탄성이 높다. 강화 군인의 근력으로도 벗어나려면 힘들기에 맨몸의 샤다이라면 풀 수 없다.

다시 공장 쪽을 보니 전열함의 생산은 정지되어 있었다. 만들다 만 전열함은 희한한 모습으로 독에 묶여있다. 아마 이 건물의 샤다이들이 제작자들인 듯싶었다.

포로를 억류한 태스크 포스 373은 분리작업을 서둘렀다.

상공의 롱소드가 미사일을 쏴서 암반을 깎아내고, 입자빔포를 쏴서 공장의 지지대를 잘라낸다. 지상팀도 지정된 위치에 핵탄두를 매설해 지반을 무너뜨리고, 입자빔포를 쏴서 공장의 지지대와 컨커러가 함께 날아간다.

-…죽겠다.

빈우가 바닥에서 벌벌 떨면서 일어났다. 본체의 동력이 달려서 어벤져와 전력을 연결해서 쐈는데 또 포구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위르겐, 넌 괜찮냐?

-저야 괜찮습니다만 팀장님은요? 이게 몇 번쨉니까?

파트리샤가 대기권에서 절대 입자포 안 쓴다고 노래를 부른 이유가 있었다. 빈우의 장비가 컨커러와 스핑크스가 아니었다면 예전에 이 계급 특진했을 정도다.

-몰라 시발, 다음, 다음 가자.

-스팸입니다.

빈우가 다음 지점으로 이동하려 할 때 아룹이 스팸을 발견하고 경고했다. 놈들에게 별다른 전술 지식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스팸들은 대형이나 팀을 이루지 않고 개개인이 따로 떨어져 지상팀을 공격해 왔다. 그 덕분에 각개 격파할 수 있어서 정말 고마웠다.

-이런 개활지에서 축차 투입해주다니 친절하기도 하지.

위르겐이 살벌한 미소를 띠며 중형 코일건을 쏘자, 스팸이 방어막 섬광과 함께 뒤로 자빠진다. 이어서 아룹의 코일건이 맞은 자리를 그대로 저격해 장갑을 깎고, 빈우가 난사해서 바닥에 푸른 얼룩으로 만들어준다.

-빨리 처리하고 뜨자. 주변 도시뿐만이 아니라 이안에서도 우리 쪽으로 몰려온다.

빈우는 틈날 때마다 수류탄을 지뢰로 설정해 곳곳에 뿌렸고, 그게 폭발하는 타이밍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역시나 건물도 튼튼하네요.

아룹이 부러진 진동나이프를 던졌다. 샤다이의 건축물은 실로 어마어마한 내구도를 갖추고 있었다. 아무리 장갑 보병용에다 지반 저 아래쪽에서 터졌다 해도, 두 발의 핵폭발에 지진만 일어났을 뿐, 건물에는 별다른 붕괴가 없었다. 그만큼 태스크 포스 373은 개고생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궤도 포격의 시간은 계속 다가오고, 도시 주변으로 리퍼들도 날아서 다가온다. 상공에선 블랙 랜스가 강하해 견인 준비와 함께 궤도 포격을 해서 리퍼들을 요격한다. 그 주변으론 42전단의 순양함 두 척이 지원차 와있다.

-이게 마지막이다! 타이밍 맞춰서 쏴!

지상팀이 마지막 지지대를 파괴했고, 롱소드도 동시에 반대편의 지지대를 쏴서 부쉈다. 기우뚱하던 공장이 상공에서 블랙랜스가 쏜 견인빔에 잡혀 멈칫했다. 그리고 서서히 위로 떠 오르기 시작한다.

-됐다!

위르겐이 환호성을 질렀다. 임시 땜빵으로 진행했던 작전이 예상보다 훨씬 큰 성과를 이루며 대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빈우는 이어서 명령을 내렸다.

-부팀장, 건물에 있는 포로를 감시하세요. 위르겐과 나는 한 번 더 공장 내부를 수색하겠습니다. 아니지, 42전단 뱅가드에게 지원 요청합시다.

-기다리고 있었어.

통신에 데이먼 전대장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뱅가드 대원들을 태운 그라디우스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정말 수고했어, 나머지는 우리가 맡지.

공장 상공을 지나가는 그라디우스에서 어벤져 무리가 쏟아져 내렸고, 이들이 밟게 된 밑으로는 순양함의 함포 사격이 쏟아져 내려갔다. 마침내 42전단의 궤도포격이 시작된 것이다.

-쩐다.

한숨 돌리던 위르겐이 그 위력에 놀라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는 궤도공격을 쏘는 입장에도 있어 봤고, 맞는 입장에도 있어 봤다. 그러나 그 사이에 있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지 공격용 미사일과 폭격용 고화력 폭탄, 코일건, 그리고 신형 입자빔포들이 죽음의 비가 되어 시에라 1의 대지를 적셨다. 행성 곳곳에 흩어져 살던 샤다이들이 죽음의 홍수에 익사한다. 이들이 타야 할 방주는 이미 태스크 포스 373이 부수고 훔쳤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길은 죽음 뿐이다. 설령 이번 공격에 살아남는다 해도 황폐화된 대지에서 살아남을 길은 없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