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좋아, 아주 좋아.”
이그젝틀리의 전투지휘실에서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궤도상에서의 함대전은 아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이는 샤다이에게 먹히는 신병기, 입자빔포 덕이다. 아직 방어력 측면에 있어선 열세지만, 적에게 통하는 무기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전투는 수월하게, 예상보다 훨씬 수월하게 흘러갔다.
이어지는 태스크 포스 373의 활약 또한 눈부셨다. 팀장인 김 빈우 소령은 42전단이 시에라 1에 궤도 포격을 하기 전의 짧은 시간만이라도 괜찮으니 자신의 팀이 강하해 작전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물론 그녀는 흔쾌히 허락했고, 시간을 더 줄 생각도 있었다. 어차피 던져보는 그물이니 선심을 쓴 것이다.
그러나 생각 없이 던진 그물에 너무나도 월척이 걸렸다. 샤다이의 함선 생산방식은 이쪽의 상식을 초월하고 있었다. 놈들은 배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고 있었다. 이 기술을 모두 소화하기엔 힘들겠지만, 그 도중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만 해도 인류 연방에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하다.
“공장은 태스크 포스 373이 가져가는 겁니까?”
이그젝틀리의 몬타나 리술 함장이 질문했다. 그의 시선은 지금 블랙 랜스와 순양함들이 견인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저 안에는 샤다이의 공장과 자료, 장비, 기술자들이 있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전과인 것이다.
“그야 당연하지. 애초에 김 팀장이 발안한 작전이고, 또 이런 일은 그쪽 전문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 일에 전념하면 되는 거지.”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심드렁한 대답에 리술 함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베틀라나 스크로도프스카는 예전부터 이런 사람이었다.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그어놓고 집중해서 일하는 반면, 그 밖의 일은 해당 전문가에게 전적으로 일임하는 스타일이었다. 좋게 말하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전문가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신의 일 외엔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위치에 알맞은 인재를 꽂아 넣는 용인술이나 사람 보는 눈 또한 뛰어난 편이라 딱히 이 단점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
“행성 바깥으로 통신이 흘러나간 것은 없겠지?”
42전단의 목적은 기습적으로 점프해서 목표가 도주하거나 연락할 틈을 주지 않고 말살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샤다이가 주로 썼던 전술을 그대로 돌려주는 셈이다.
“통신은 물론 차단했고, 점프로 도망간 놈도 없습니다. 다만….”
리술 함장은 끝을 흐린 대답 덕에 전단장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우리 기술력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통신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함장의 나머지 대답에 전단장의 시선은 다시 앞으로 되돌아갔다.
“알 수 없는 것에 신경 써봐야 뭐하나. 그리고 샤다이의 통신기술은 우리보다 처진다고 하지 않았나.”
“통신의 전술적 사용에 서툴다는 겁니다. 게이트도 없이 점프하는 놈들의 통신체계가 허술할 리가 없지요.”
인류연방은 장거리 통신에 점프 게이트를 이용한다. 물건을 보내듯 전파를 점프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42전단은 다른 연방 구역과 통신이 두절된 상태다. 통신을 재개하려면 순양함끼리 연동해서 게이트를 열어야 한다.
반면 게이트를 쓰지 않는 샤다이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통신체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류가 샤다이의 점프에 대해 탐지나 파악이 불가능한 만큼, 놈들의 통신도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증원이 오기 전에 일 마치고 돌아가야지.”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불타는 시에라 1을 보았다. 몇몇 곳에선 탈출하려는 비행체들이 지표를 날아오르고 있었으나 빠짐없이 격추되었고, 군데군데 생겨났던 방어막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압도적인 화력에 지상은 속절없이 유린당하고 있다.
* * *
“아아아….”
나지막한 탄성이 히토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시에라 1이 궤도 포격을 받고 황폐화되는 과정을 본 감상이다. 서른 척에 달하는 연방의 순양함들이 지상을 향해 공격을 퍼부어 모든 것을 파괴하고 녹이고 있다.
“부담스러우시면 보지 않으셔도 돼요.”
아나스타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만류하지만, 히토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저들은 지금 자신이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받는 거니까.”
히토미는 아버지인 이케가미 소이치로처럼 극단적인 호전파나 주전론자는 아니었다. 비교적 온건 노선이긴 해도 받은 만큼은 돌려둬야 한다는 정도의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런 사상이나 주의를 떠나서 ‘정말 인간이 행성에 이런 짓을 해도 되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파괴였다. 함대의 포격과 폭격에 바다가 끓어오르고, 땅이 녹는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체들이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연방의 상원의원은 문득 든 생각에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샤다이들은… 훨씬 빠르게 했다면서?”
“네, 전열함 세 척이면 표준형 행성은 30분 내로 황폐화됩니다.”
징조 없이 갑자기 점프해서 나타난 샤다이 전투함은 압도적인 성능으로 연방의 방어함대를 무력화시키고 게이트를 파괴한다. 행성의 방어포대도 놈들에겐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운이 좋아 게이트가 파괴되기 전에 증원함대가 점프해 온다면 모를까, 모든 방어 수단이 무력화된 행성에는 샤다이의 궤도 포격이 쏟아진다.
샤다이의 플라스마 포는 강력하면서도 끝없이 뿜어져 나온다.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플라스마의 격류는 행성을 감싸고 모든 생명을 불사른 다음 지표마저 녹여버린다. 구조신호를 받은 함대가 근처의 게이트로 점프해서 서둘러 통상항해로 간다 해도 이미 늦었다. 그들이 도착해서 보게 되는 것은 거대한 암석 구슬이다. 서두른다면 아직 녹아서 붉게 일렁이는 용암이고, 늦었다면 식어서 자전 속도에 따라 물결무늬가 생긴 대지가 구조대를 반긴다.
“30분이라….”
표준형 행성이라면 보통 둘레가 4~5만km이고, 표면적은 5억㎢ 이상이다. 그것을 단 세 척이서 30분 만에 녹여버린다니, 연방과는 차원이 다른 화력이다.
“우리도 그렇게 하는 거야?”
히토미의 질문에 아나스타샤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현재 42전단에 함선이 열 배 넘게 있다고 해도 그건 무리예요. 또 그럴 시간도 없고요. 그저 포격으로 행성 표면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할 뿐입니다.”
그때 전단장으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오다 의원님, 전단장 스베틀라나 스크로도프스카입니다. 작전 중에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하지만 이런 작전을 몇 번 따라 다녀봐서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그것 참 다행입니다. 본 전단은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이후 시에라 1을 황폐화시킨 다음, 지정된 좌표로 점프할 예정입니다.
현재 42전단은 연방과 통신이 물리적으로 두절된 상황이라, 점프를 해서 연방의 영역권 안으로 가야 통신이 가능하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단장님. 42전단의 분투는 잘 보았습니다. 덕분에 연방의 모든 이들이 안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점프한 다음의 예정은 어떤지 알 수 있을까요?”
-본래는 전단의 보급과 재정비 후 대기할 계획이었습니다만, 이번 전투가 너무 손쉽게 끝난 데다가 태스크 포스 373의 작전이 뜻밖의 대성공을 이루는 바람에 사령부와 얘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원래 42전단은 시에라 1의 전투 후 지정된 위치로 점프해서 보급과 수리, 그리고 손실한 전력을 보충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샤다이의 반격에 대비해 출동 상태로 대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42전단의 첫 전투는 단 하나의 손실도 없는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 덕분에 재정비 시간은 짧게 끝날 것이다. 다만 태스크포스 373이 샤다이의 공장을 통째로 뜯어오는 전과가 있어서 이에 대한 처리도 필요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차후에 진행되는 사항이 있으면 알려드리겠습니다.
통신이 꺼진 다음 히토미는 기지개를 켰다. 그녀가 태스크 포스 373을 대할 때와 42전단을 대할 때는 다르다. 태스크 포스 373은 조사를 목적으로 왔기에 이것저것 시시콜콜 캐물을 수 있었다. 또 서로 속내를 드러내고 협력하기로 한 다음에는 서로 정보 교환도 있었다. 그러나 42전단은 그저 저쪽에서 선의로 보내주는 정보에 만족해야 한다.
-아나스타샤, 의원님은 어떠셔.
그때 마침 빈우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개방형 통신이라 아나스타샤와 히토미 둘 다 볼 수 있었다.
“…보다시피 잘 계세요.”
아나스타샤가 화면을 돌리자 히토미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금방 사라졌다. 화면 속 빈우의 모습이 영 말이 아닌 것이다. 아나스타샤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을 때 눈치 챘어야 했다.
“팀장님, 그 상처는 어찌 된 건가요?”
-작전 중에 입은 겁니다. 큰 상처는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빈우는 지금 그라디우스에 타고 있는데 치료를 위해서 컨커러를 벗은 상태다. 어지간한 부상은 장갑복 안에서 응급처치한 다음 귀환해서 치료하는데, 그라디우스 안에서 치료를 하고 있다면 꽤 중상이다. 그걸 다 떠나서 눈으로 봐도 상처가 심해 보였다. 군데군데 피부가 떨어져 나가고 근육이 눌어붙은 화상들이 있다.
“도른베르거 상사나 라마누잔 부팀장은요?”
히토미가 화면 너머를 봐도 빈우 주변에는 다른 지상팀원은 없고 혼자서 자신을 치료하는 중이었다.
-화물실에 있는 샤다이 포로를 감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빈우는 그렇게 말한 다음 왼쪽 어깨의 상처에 봉합기를 들이밀고 상처를 조였다. 드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인공 근육이 접합되며 재생 시 보이는 거품이 마구 일어났다. 치료보다는 숫제 수리에 가깝다.
-의원님?
의아해하는 빈우의 목소리에 히토미가 화들짝 놀랐다.
“예, 예. 무슨 일인가요?”
-…의원님의 신체 개조를 봐서 이런 응급 시술은 시험해 보셨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흉한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히토미는 태스크포스 373에서 생활하기 위해 몇 군데 신체 강화를 했다. 이런 강화를 하고 나면 해당 부위에 관련된 적응훈련을 하는데, 히토미는 그런 것들을 다 건너뛴 상태였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손사래를 치는 히토미의 모습에 빈우는 힐끔힐끔 눈치를 보면서 다시 치료용 무언가를 들어 올렸다. 그것은 의료기기라기보다는 작업 공구에 가까웠다.
-제가 이렇게 급하게 연락을 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라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에 관해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섭니다.
“전단장이요? 방금 통신을 했는데요?”
그 말에 공구를 박아넣던 빈우의 눈빛이 잠시 반짝였다.
-그랬습니까? 혹시 우리 팀이 회수하는 샤다이 공장에 대해서 별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으음, 먼저 제 안부를 물었고, 방금 끝난 작전에 대한 보고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셨어요. 엄청 단순하지만요. 공장에 관한 얘기는 없었어요. 그런데 그건 왜죠?”
-별것 아닙니다. 그저… 부대 간의 파워게임이랄까요.
은근슬쩍 말을 돌리는 빈우였지만 히토미는 그 속내를 파악했다.
“42전단은 예의 그 비밀 결사와는 관계가 없을 겁니다. 아니,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또 전단장의 사람 됨됨이도 믿을 만하고요. 조지 레드우드 사령관 같은 전형적인 무인이니까 팀장님은 그런 것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의원님은 못 속이겠군요.
자신의 속내를 파악 당한 빈우가 화면 너머에서 쓴웃음을 짓는다.
“쓸데없는 걱정 말고 어서 돌아오세요. 그리고 아나스타샤한테 마저 치료받으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귀환해서 뵙지요.
통신이 꺼진 다음 히토미는 아나스타샤를 돌아보았다.
“이제 작전도 끝났으니까 난 괜찮아. 어서 네 주인에게 가봐. 방금 다친 거 봤지? 잘 치료해드려.”
“알겠습니다, 의원님.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나스타샤는 꾸벅 인사를 한 다음 방을 나섰다. 하지만 발걸음을 서두르는 그녀는 약간 불안했다. 방금 빈우는 처음 통신 외에는 그녀에게 달리 시선을 주거나 말하지 않았다. 간단한 인사도 없었다. 그런 모습들이 안드로이드의 칩에서 스멀스멀 기시감이 떠오르게 한다. 요즘 빈우가 보이는 언행이 과거 그녀를 차갑게 대했던 때와 점점 닮아가는 것이다.
‘아냐, 아냐, 아냐. 그럴 리 없어.’
안드로이드 메이드는 자신을 달래며 주인에게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