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198화 (196/301)

198화

“전단 내 모든 함선의 보급이 완료되었습니다.”

발렌티나의 보고에 스크로도스프카 전단장은 함대를 둘러보았다. 42전단은 이곳 아퀼라 게이트에서 보급을 받고 있었다. 허나 시에라 1의 전투에서 전투함 한 척, 전투기 한 기의 손실도 없었던 덕에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것도 예상보다 하루 이상이나.

모든 무장을 점검하고 탄약과 연료, 기타 소모품을 보급받은 42전단은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다.

“자, 그럼 어쩔까.”

전단장이 전투지휘실에서 참모와 전단 간부진들을 둘러보았다. 몇몇은 직접 와있고, 몇몇은 홀로그램 영상으로 와있다.

“요는 작전대로 대기하느냐, 아니면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느냐, 군요. 참 성질머리하고는.”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부전단장인 지노 보따지 준장이다. 그는 예비대를 이끌고 이곳 아퀼라 게이트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 예비대는 귀환한 본대에 전력을 보충하는 것도 있지만, 유사시에 본대에 지원을 가거나, 샤다이의 반격에 대비해 출동하도록 되어있었다.

“아직 샤다이의 반응이 나오지 않았는데 너무 성급한 게 아닐까요? 또 사령부로부터 이번 보고에 대한 지시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전단 주임원사 오드리 게이츠의 말에 이어 간부들도 저마다 각자의 의견을 내었다. 주된 요지는 하루 이상 남은 시간에 다시 출격을 하느냐, 대기하느냐다.

"그래, 반응이 없지. 사령부나 샤다이 둘 다. 내 생각엔 적이 제대로 된 대처를 하기 전에 한 번은 더 기습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에라 1의 전투 이후 샤다이의 대처는 반격 공세로 나오던가, 병력을 모아 방어하는 수세로 들어가던가, 둘 중 하나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생각은 그러기 전에 지금 당장 다음 목표를 치자는 것이다.

42전단은 샤다이를 공격하는 창이다. 그것도 연방 중앙 함대에서 최정예만을 뽑아 구성한 최강의 창이다. 그 대가로 전단 편성 후에 중앙 함대들에는 전력의 공백이 생겼다.

때문에 42전단은 동시에 샤다이를 막는 방패이기도 하다. 연방은 중앙 함대의 빈틈에 대비해서 유사시에 연방 곳곳으로 출동할 수 있는 방어용 신규 함대를 편성해 놓았다. 모두 장거리 항행이 가능한 순양함들로 이뤄진 기동함대이고, 신기술인 연동게이트를 쓸 수 있어서 설령 목적지에 게이트가 없다 해도 빠른 증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방어 함대들은 아직 완전히 편성되지 않아서, 이번 작전으로 인한 샤다이의 보복이 있을 경우, 그리고 그 정도가 심할 경우엔 42전단이 가세하도록 되어있었다.

“자칫 샤다이가 대규모 공세로 나올 경우, 우리 전단은 기동 방어에만 끌려다닐 수도 있어. 그전에 적을 하나라도 더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전단장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란 입장이다. 애초에 기동전의 달인이었으니 당연한 의견이다.

“일단 찔러봤으니 반응을 보고 대처하는 것도 늦지 않습니다. 다른 적이라면 모를까, 우리 상대는 샤다이입니다. 무턱대고 들이밀어 좋을 건 없습니다.”

부전단장인 보따지 준장은 맷돌이란 별명에 걸맞게 방어전에 일가견이 있다. 또한 전단장의 보좌겸 브레이크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중이다.

“하긴, 시에라 1에서의 기습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전단장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어요.”

참모장인 디에고 페레로 대령은 귀환한 본대로부터 전투 상황을 건네받고선 그 흥분을 아직까지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간부진의 의견은 재공격 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42전단은 보급을 하고 이곳 아퀼라 게이트에서 대기해야겠지만, 방금 있었던 시에라 1의 전투가 너무나도 손쉽게 끝나는 바람에 아군의 손실이 전무한 데다 승조원들의 사기마저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는 것이다. 또 42전단은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함대의 특성상 상당한 자율성이 보장되어 있는 탓에 이렇게 독단적인 작전을 펼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김 팀장.”

전단장이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을 불렀다. 비록 다른 팀이긴 해도 대 샤다이전을 전문으로 한 팀인 데다, 팀장인 김 빈우 소령은 닉스 레벨 3이다.

-죄송합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홀로그램 속의 빈우는 회의에 한발 물러선 채 간부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런 그가 딴생각을 했다면 정말로 뻘짓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일을 다른 각도로 보고 있단 뜻이다.

“말해보게.”

-실은 방금의 전투로 인해 아군의 전투 교리가 송두리째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 전단의 출동 시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에선 너무나 먼 이야기 같아 보였지만, 여기 있는 어느 누구도 빈우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그만큼 전단의 모든 이들에게 방금 전투에서의 충격은 아직 메아리치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떻게?”

-으음, 제가 주제넘게 말을 꺼내도 될는지요.

“닉스 레벨 3의 말이 주제넘다면 우린 전부 모가지야.”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말에 간부들이 씨익 웃는다. 이들 모두가 닉스 레벨 3의 전략적 가치와 위험도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지금까지 아군의 대 샤다이 전투 교리는 ‘사자 사냥은 늑대가, 늑대 사냥은 사자가.’였습니다.

빈우의 말은 고급스러운 표현이지만, 결국엔 일종의 비대칭 전력으로 대응하자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연방의 함대 주전력이었던 전함들은 샤다이를 상대로는 무용지물이었다. 전함의 플라스마 포격은 샤다이 함선의 방어막에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했고, 이쪽이 열 발을 쏘면 저쪽에서 여든 발이 날아온다. 물론 명중률이 처참하지만 그게 끊이지 않고 날아오면 결국엔 참혹한 꼴이 벌어진다.

그래서 연방은 잃어도 비교적 손해가 적은 구축함에 샤다이에게 통용되는 무기인 사이클론 어뢰와 코일건 등을 무장시켜 집단 전술도 대응했다. 구축함끼리 사격제원을 교류해 TOT공격을 해서 샤다이의 방어막이 재생되기 전에 깎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입자빔포가 있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요.

빈우가 띄운 것은 연방이 주로 쓰는 기동포격전 대형이다. 함대들이 수만 킬로 떨어진 포격거리를 두고, 적의 취약지점을 찾아 이동하며 아광속의 주포를 쏴 적을 갉아먹는 게 목적이다. 수많은 적들을 상대로 그 효과를 입증했지만 아쉽게도 샤다이를 상대로는 이빨이 안 들어가 사장된 전술이다. 전함이란 사자의 이로 샤다이를 갉아먹기엔 무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늑대를 풀어서 가까이 붙여 물고 늘어지는 게 오늘날 대 샤다이 전술이다.

“과연, 입자빔포가 있으면 예전처럼 거리를 둘 수 있지.”

속도가 느린 어뢰와 미사일은 그래도 사거리가 길었지만, 코일건은 그렇지 못했다. 묵직한 펀치력에 비해 속도와 사거리가 엉망이라 이를 쓰기 위해 연방의 함선은 적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거리를 두면 필연적으로 공간 확보를 위한 싸움이 일어나고, 전술적으로 우세인 아군의 장점을 살릴 수 있습니다.”

참모장 페레로 대령의 말대로 거리를 두게 되면, 그리고 적과 나 사이에 3차원이란 공간이 생기게 되면 이쪽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무궁무진하다. 지금까지 쓸 수 없었던 카드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방어력이 열세인 터라 예전 것 그대로 바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빈우의 말대로 과거의 이 함대 전술들은 전함과 순양함이 원거리에서 주포로 적을 도륙낸 다음, 구축함들이 돌입해 마무리를 짓는 게 주요 골자다. 이때 후방의 포격진은 사격의 밀도를 높이고 역장방어막의 공유를 위해 밀집 대형을 취했었지만, 요즘도 이랬다간 샤다이의 포격에 줄초상이 난다. 또 구축함은 과거엔 산개해서 돌입했지만 샤다이 상대로는 조밀한 플라스마를 막기 위해 한 쪽은 중력충각, 다른 한 쪽은 코일건으로 무장해서 진형을 짜연계한다.

“으음, 새로운 것과 옛 것, 두 가지 전법의 융합인가.”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머릿속이 맹렬히 회전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의견이다. 적이 바뀌면 전법이 바뀌고, 무기가 바뀌어도 전법은 바뀐다.

-그리고 예비대를 후방에 둘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번에 빈우는 예비대의 순양함들을 화면에 띄웠다.

-순양함의 점프엔진을 연동한 게이트 생성이 가능하니 함께 움직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본대가 적을 상대하는 동안 예비대는 전투에는 가담하지 않고 후방에서 게이트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화면에는 전방의 본대가 기동전으로 상대를 유린할 동안, 후방의 예비대는 구축함의 호위 하에서 게이트를 만드는 시뮬레이션이 나오고 있었다. 그때 보따지 부전단장이 나섰다.

“순양함 다섯 척이면 분함대 하나야. 그것을 전장에 그대로 둔다고? 투입하지도 않고?”

전함에 비해 한 수 쳐진다지만 순양함의 화력은 어마어마하다. 구축함 따윈 비비지도 못한다. 그런 분함대를 뒤로 돌릴 예비대도 아니고 아예 게이트를 위해 놀린다니 이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게이트의 전략적 가치는 분함대와 비교할 수 없지요.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연방에게 있어 점프 게이트는 최우선 전략자원이다. 아직까지 성계를 넘어서는 항해는 연방에게 있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거리다.

“하지만 게이트 생성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게이츠 원사 말마따나 게이트 하나를 생성하기 위해선 순양함들이 모여 서로 보유한 동력의 절반 가량을 소비해야 한다. 차라리 그것을 전투로 돌린다면 엄청난 화력이 된다.

-과학 기술국의 모니카 보르자 기술대위의 말에 의하면, 연동 게이트는 계속해서 개량되어 생성 시간과 소비 에너지가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42전단에게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화력보다는 기동성입니다. 적이 예상치 못한 곳을 가장 먼저 찌르고, 아군이 위험에 빠지면 가장 먼저 가는 거지요. 그게 설령 작전 중이어도 말입니다.

“마치 샤다이같군.”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소감에 화면 너머의 빈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점프로 돌입, 행성 소각, 점프로 후퇴.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마주 본다고 했던가.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샤다이를 상대로 싸우다가 샤다이가 되는 걸까, 하고 상상해 봤지만, 상관없었다. 그녀에겐 샤다이를 죽일 수만 있다면 그 어떠한 방법이라도 상관없었다.

“자네가 제시한 전술은 상당히 매력적이군.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연방이 써온, 그리고 타 종족을 상대로는 아직까지 쓰고 있는 전술의 재사용이야.”

전단장의 말에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군은 신기술을 반기면서도 동시에 꺼리는 보수적인 집단이다. 폭력을 막기 위해 폭력을 쓰는 모순을 안고 있는 이상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무기를 원하면서도 막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일단 꺼린다. 실패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정식으로 채택하게 된다.

그래서 빈우가 말한 꺼낸 전술의 재활용은, 오랜 기간 써왔기에 위험부담이 적으면서도 사용자들의 뇌리에 직관적으로 박혀있는 터라 부담이 적었다.

“일단은 조금 더 다듬고 검증을 해봐야겠어.”

전단장의 미소가 참모장을 향하자 페레로 대령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그의 지시 아래 전단 참모들이 갈려 가며 새로운 전술을 짤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 있습니까? 다 뇌에 굳은살 박이도록 굴려본 작전 아닙니까?

빈우의 말에 간부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인다. 그 말을 한발 앞서 이해한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질문했다.

“실전에 바로 써보자는 건가?”

-적당한 곳이 있지요.

빈우가 화면에 띄운 곳은 전단의 작전 목표 중 시에라 7이라 명명된 곳이다.

“갑자기 시에라 7을?”

보따지 부전단장의 말은 다른 간부들의 놀람을 대변하고 있었다. 정보에 의하면 시에라 7은 꽤 높은 수준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갓 첫걸음을 뗀 42전단에겐 조금 버거운 목표다.

-네, 시에라 7에는 제법 많은 수의 샤다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놈들이 어떤 상태인지조차도 모르지요.

시에라 1을 공격한 사실이 놈들에게 전해졌을까, 전해졌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시에라 1으로 구원을 갈까, 자신들의 방어를 굳힐까, 그것도 아니면 연방에게 보복을 할까.

간부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공격 전에 정찰은 필수다.

그러나 전단장은 단순한 대답을 내었다.

“일단 때려보면 알겠지.”

황당해하는 간부들과 달리 빈우는 다음 자료를 보여주었다.

-네, 말씀대로 일단 쳐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치면 되지요. 또 시에라 7은 케트쿤 게이트와 가깝습니다. 덕분에 연동 게이트를 생성할 때 소비되는 시간과 에너지도 적지요. 전황이 불리하면 바로 후퇴할 수 있습니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빈우의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브레이크 역할을 맡은 보따지 부전단장마저 자신의 예비대를 어디서 어떻게 배치해야 게이트를 잘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 마당이니, 이미 42전단의 재출진은 기정가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