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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00화 (198/301)

200화

“모니터함의 공격은 포격대형을 순식간에 지워버리죠.”

현재 전황을 본 발렌티나의 말이다. 샤다이의 플라스마 함포는 모두 치명적이긴 해도 연방의 기술로 한두 번은 방어가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모니터함의 공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저 거대한 플라스마의 줄기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다. 오직 샤다이의 엉망인 사격 실력을 믿고 회피기동을 해 피하는 게 최선이다.

“일단은 낚였군.”

전단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이는 샤다이의 반응을 본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말이다.

42전단의 우익은 먼저 전열함과 리퍼들을 건드려 그 공격을 자신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전단 좌익의 항모들은 자신을 미끼로 삼아 돌격해 모니터 함의 시선을 끌어 놈들의 거포가 우익으로 향하지 못하게 했다. 원래 함대를 이렇게 산개를 하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 방법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적을 포위하기 전에 방어막의 연계를 하지 못한 함들이 각개 격파를 당할 수 있다.

하지만 리퍼들은 후방의 예비대를 의식했는지 아니면 아군을 지키려는지 더 이상 거리를 좁히지 않았고 함대의 방패 역할을 하면서 원거리 포격으로 반격하고 있었다. 샤다이의 방어막은 연방과는 달리 연계를 하지 못해서 모인다 해도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하지만, 상당한 정확도를 가진 리퍼의 포격은 위협적이었다.

“함재기들이 모두 출격했습니다. 2분 후에 적 함대에 도착 예정입니다.”

발렌티나의 보고에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좋아, 우익은 어뢰를 발사한 다음 거리를 유지하며 순환포격 대형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아군기들이 공격 범위에 들어갈 때쯤 포격을 멈춘다.”

이전 같았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전법이다. 입자 빔포가 없었다면 구축함들이 코일건을 쑤셔 박기 위해 가까이 돌격했을 것이고, 순양함들은 후방에서 어뢰와 미사일, 부포인 입자가속포만 쐈을 것이다. 그리고 피해는 꽤 컸을 게 확실하다.

우익의 순양함들은 서로 전후좌우로 8자를 그리며 이동하며 포격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후열로 들어간 순양함들은 잠시 포격을 쉬면서 그 동력으로 방어막을 충전했고, 전열로 나선 함들은 방어막을 적진으로만 집중한 채 공격에만 전념했다. 이러면 화력의 집중도는 떨어지지만 지속력은 훨씬 올라간다.

어느새 샤다이 전열함 두 척이 더 격침되었다. 하지만 이쪽도 피해가 만만치 않다. 아무리 순환 포격을 한다 해도 압도적인 화력 탓에 피해는 점차 누적되었고, 마침내 좌현이 녹아내린 순양함 한 척이 후방으로 빠졌다.

“올버니가 빠지는군.”

전투 지속이 불가능하면 바로 빠지라고 했었기에 피해가 심각한 순양함 올버니가 바로 대형 바깥으로 나온다. 예비대와 함께 후방에 있던 이그젝틀리에서 그 모습을 본 전단장이 혀를 찼다.

“발레아레스와 교대시켜. 올버니의 동력로와 점프엔진은 무사한가?”

발렌티나가 즉시 중파된 순양함의 피해를 점검한다.

“네, 좌현의 장갑과 무장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항해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좋아, 예비대로 돌려. 게이트 생성은 가능하겠지.”

그사이 암석 지대를 돌파한 롱소드와 할버드들이 샤다이 함대에 도착했다. 모니터함의 거포 공격은 항모를 노렸지만 먼 거리와 암석군, 블랙 랜스의 방어 드론과 회피기동의 조화 탓에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이 강력하지만 느린 포격은 작은 전투기들을 상대로는 맞지 않았다. 마침내 모니터함이 공격을 연방의 순양함 진형으로 돌리려 할 때쯤, 연방의 전투기들이 공격해 왔다.

-전편대 사이클론 발사

전대장 나빌 마수드 대령의 명령에 42전단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어뢰를 발사했다. 이전이었다면 사이클론 어뢰를 발사하지 않은 채 로켓만 점화하고, 그 추진력과 기체의 추진력을 더해 함께 날아가 어뢰를 꽂아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자체 방어시스템을 갖춘 어뢰들이 편대들의 앞으로 날아가 샤다이의 포격으로부터 미끼와 방패가 되어주었다.

-공격 개시.

전대장의 명령에 각 전투기들이 입자빔포를 쐈다. 아군 함선 포격에 샤다이의 방어막이 속절없이 뚫리는 것은 봤지만 정작 자신이 직접 방아쇠를 당기자 몇몇 파일럿은 긴장했다.

-…먹힌다! 먹혀!

롱소드에 달린 입자빔포가 방어막을 관통해 모니터함에 명중하자 파일럿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빈우 역시 편대에 합류해 모니터함 주변을 돌며 입자빔포를 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편대원과는 달리 조금 묘한 감상을 느꼈다. 지상에서 목숨 걸고 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안전하게-샤다이의 대공포를 피해가며-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이렇게나 쉬운 놈들이었다니.

우지는 허탈해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블랙 랜스와 자신의 롱소드로 샤다이 함대와 싸웠을 때는 그야말로 악전고투였다. 어뢰와 미사일, 코일건 등의 무기를 총동원해 방어막을 갉아내고 장갑을 뚫어내면, 샤다이의 공격으로 이쪽도 너덜너덜해졌다. 그러나 지금 코일건 대신 달린 입자빔포는 샤다이를 문자 그대로 바보로 만들고 있었다.

-또 하나 접수.

통신으로 감탄사가 내달린다. 롱소드와 할버드의 집중 공격에 모니터함 하나가 격침당한 것이다. 거포가 달린 모니터 함은 별다른 무장이 없어서 롱소드 무리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스팸 몇몇이 시즐러를 들고 바깥으로 나와 대응 사격을 해봤지만, 거기에 맞을 롱소드는 없다. 오히려 나오는 족족 입자빔포의 일격에 소멸되는 중이다.

-조심해, 리퍼가 온다.

마수드 전대장이 경고대로 보다 못한 리퍼 전투함 한 척이 이쪽으로 이동해오고 있었다. 놈이 쏘는 대공포는 정확도가 대단해서 상당히 위험했다.

-산개해. 모니터 함의 뒤로 숨는다.

전대장의 명령에 롱소드들은 전투를 멈추고 리퍼의 플라스마 포격을 피했다. 하지만 마치 칼처럼 휘두르는 플라스마 공격에 선회하던 롱소드 두 기가 순식간에 녹아 증발했다. 거기다 다른 몇몇 기도 스쳤지만, 전투 불능이 되어 아군기의 견인을 받아 전장에서 이탈한다.

-아군 어뢰가 온다. 이탈해라. 어뢰를 끼고 반전한다.

롱소드들과 모니터함이 전투할 동안 우익의 순양함들이 쐈던 사이클론 어뢰들이 날아왔다. 속도가 느린 할버드들은 어뢰들을 발사한 뒤 모함으로 귀환했고, 롱소드들은 계속 대함 전투를 하다가 타이밍에 맞춰 날아온 아군의 어뢰쪽으로 마주 날아갔다.

-각자 목표 잡아.

뒤쫓는 플라스마 다발을 피해 롱소드들이 사이클론 어뢰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어뢰의 방어막 뒤로 숨음과 동시에 각자 목표로 잡은 어뢰에 견인빔을 걸고 반전했다. 엄청난 반동과 급격한 중력가속도에 기체가 비명을 지르고 파일럿들이 이를 악문다. 롱소드의 관성제어장치가 최대한도로 작동해 기체의 분해를 막고, 파일럿들의 겔화된 혈액이 주인의 몸에 영양과 산소를 공급한다.

“죽--겠!”

빈우는 두뇌칩의 경고를 받으며 조종간을 당겼다. 파일런 전용이 아닌 일반 강화를 한 그에겐 이런 급기동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도망치던 롱소드들은 어뢰를 잡고 방향을 급격히 틀었다. 뒤쫓던 리퍼의 플라스마는 사이클론 어뢰들이 막아주었다. 폭발광 사이로 롱소드들이 다시 쳐들어가 이번에는 리퍼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미사일이 날아들고 입자빔포가 쏟아진다.

역시 리퍼들은 싸울 줄 알았다. 조밀한 대공포화는 롱소드들에게 치명적이었고, 놈은 포위를 피하기 위해, 그리고 아군을 지키기 위해 모니터함 곁에서 대공 사격을 했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리퍼 전투함이 모니터함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좁힌 것은 좋았지만, 문제는 모니터 함에게는 대공 전투능력이 전무한 탓이었다. 롱소드들은 오히려 모니터함에 견인빔을 쏴 기체를 묶어놓고 이 거포가 달린 샤다이 함을 방패 삼아 리퍼를 공격했다.

-또 온다, 이번엔 전열함이다.

후방으로 빠졌던 할버드들에서 경고가 날아왔다. 작지만 위력적인 공격을 하는 전투기들을 위협적으로 느꼈는지 이번엔 전열함 두 척이 대형을 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골치 아픈데, 아군 포격은 언제지?

마수드 전대장이 혀를 찼다. 전열함의 대공포는 명중률이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두 척이나 대형을 짜 화망을 형성하면 전투기에 불과한 롱소드들에겐 치명적이다.

이런 마수드 전대장의 마음을 읽었는지 갑자기 각 전투기들에게 경고창이 뜬다. 아군 함대가 포격을 이쪽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이어서 조종석의 HUD와 헬멧의 HMD에 포격 예상 궤도와 시간이 나온다. 포격 날아오기 전에 시간 끌고 빠지란 뜻이다.

-순양함의 포격이 시작된다. 아군기는 사선에서 벗어나라.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목소리가 전투기 파일럿들의 회선에 울려 퍼진다.

-이분 타이밍 잘 잡네.

명령을 들은 빈우가 감탄했다. 그녀는 이쪽과 별다른 통신 없이 전투 상황만 보고서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낸 것이다. 우익의 포격으로 전열함을, 좌익의 전투기로 모니터함을 공격하다가 리퍼함과 전열함이 모니터함 쪽으로 증원을 오자 쐐기를 박을 속셈인 듯싶다.

아니나 다를까 롱소드들이 후퇴하자 순양함들이 일제 포격을 가했다. 리퍼함과 전열함이 이동한다고 포격이 잠시 약해진 틈을 타 대형을 바꾸고 집중 포격을 날린 것이다. 순식간에 모니터함과 전열함, 리퍼함이 격침되고 대파된다. 그리고 이 타이밍에 롱소드들이 다시 물고 늘어졌다.

-모니터함만 노려. 저놈들 숨통만 끊고 바로 빠진다.

마수드 전대장의 명령은 일견 이해하기 어렵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전열함과 리퍼함은 대공사격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기 편대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모니터함을 우선적으로 공격하라는 것은 지금이 공격의 전환점이란 의미다.

다 죽어가는 거체에 자그마한 날벌레들이 달라붙어 끈질기게 독침을 쏜다. 주변에 전열혐과 리퍼함이 다가와 대공사격으로 쫓아내려 해도 롱소드 편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후방의 할버드들도 가세해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그렇게 한 척, 또 한 척의 모니터함이 폭발한다. 함포사격에 너덜너덜해진 모니터함에 롱소드들이 쐐기를 꽂는 것이다. 마침내 여덟 척이었던 모니터함이 모두 격침되었다.

-급가속! 각기 가속해서 바로 빠져라!

마지막 한 척의 모니터함이 두 동강이 나는 것과 동시에 마수드 전대장의 명령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명령의 마지막 말이 들리기도 전에 모든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최고 속력으로 도망쳤다.

“전단 전진. 숨통을 끊는다.”

그와 동시에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도 명령을 내렸다. 모든 모니터함이 사라진 지금, 전단에 치명적 위험이 될 존재는 없다. 원거리에서 포격만 하던 순양함들이 서로 방어막을 연동하고 진형을 짜 전진하기 시작했다. 붙으면서 포격해 마무리를 지으려는 것이다.

“전투기 전단은 어떻게 할까요?”

부관인 발렌티나의 물음에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전술 정보 화면을 지긋이 훑었다.

“항모를 가까이 보내서 착함시켜. 호위로는 원더풀 뷰티풀을 붙인다.”

치열한 전투 끝에 롱소드와 할버드의 상당수가 너덜너덜해졌다. 다시 불러들여 재정비할 타이밍이긴 하다. 하지만 이를 후방이 아니라 전단의 움직임에 맞춰 전진하며 하려는 것을 보면, 게다가 뱅가드의 전함을 앞으로 내세운 것을 보면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아직 공격의 고삐를 늦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모니터함이 사라진 다음, 순양함들의 공격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세 척씩 대형을 이루고 대각선으로 회전하는 리볼버 대형이다. 아까 했던 순환 포격대형의 소규모 이동 버전으로 공방과 기동의 밸런스가 적절하다. 하지만 만약에 아직까지 모니터함이 있었더라면 한 방에 세 척이 증발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순양함들은 점차 접근하며 상하좌우로 펼쳐졌고, 거대한 깔때기 형태가 되어 샤다이 함선들을 안에 가두려 했다. 상하좌우로 쏟아지는 입체적 교차사격에 샤다이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다 격침되었다. 그나마 리퍼들은 침착하게 대응하는 편이었지만, 이미 수적 열세에 처한 데다가 연방에는 놈들의 방어막을 무시하는 입자빔포가 있었다.

결국 마지막 리퍼 전투함이 격침되며 시에라 7에서의 전투도 연방의 압승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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