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우리가 할 건 없었네.
심드렁한 빈우의 말이 통신회선을 타고 들어온다. 태스크 포스 373은 이제 42전단으로 다시 합류하고 있었다.
-하긴 이런 함대전에선 우리 같은 소규모 부대가 할 수 있는 건 없죠.
오르 함장이 대답했다. 이번 전투에서 태스크 포스 373의 블랙 랜스와 롱소드 2기는 42전단의 함대와 함께 전투했다. 시에라 1에서처럼 단독 작전은 없었다.
-어쨌거나 대승입니다. 전단의 통신회선은 축제 분위기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우지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압승이라고 해도 피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군 함선 중에서 격침된 것은 없었지만, 세 척이 대파되어 후방에서 응급 경기 수리 중이다. 승조원들 중엔 사상자가 있을 것이다. 또 롱소드와 할버드 중에선 돌아오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회선에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우지는 이런 모습에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정말 축제 분위기군요.”
그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우지에게 있어 같은 전장에서 싸웠던 전우가 전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42전단은 비록 한솥밥은커녕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나눠본 사이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방금까지 함께 싸웠던 이들의 죽음이었기에 우지의 마음은 심란했다.
-당연히 신났지. 이 정도 샤다이를 상대로 이렇게 대승을 거두긴 힘들어. 리퍼함이 다른 놈들을 이끌려던 눈치가 약간 보이던데, 만약 놈들이 제대로 싸웠으면 우리 쪽 피해가 꽤 컸을 거다.
빈우의 말대로 리퍼들이 제대로 대응해서 지휘했다면 42전단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리퍼를 최우선으로 공격하는 대신 놈에게 소방수 역할을 강요시켰다. 그래서 시에라 7의 샤다이 중 가장 위험도가 높았던 리퍼들은 아군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바람에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이쪽의 전술에 끌려 다니다가 피해가 누적되어 격침되고 말았다.
-우지.
“네, 팀장님.”
우지는 행여 자신의 풀죽은 목소리를 팀장이 타이르나 싶어 바짝 긴장했다.
-아군이 죽는 걸 보는 건 처음이냐?
조금 부드러운 어투지만 내용은 무거웠다.
“사람이 죽는 것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다만 뭐, 같이 싸웠던 이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것?
정곡을 찌른 빈우의 말에 우지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의 작전에서도 팀원들이 얼마든지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의 첫 출격인 발 가르단 하스에서 지상팀은 고전을 면치 못했고, 팀장인 빈우는 행방불명 상태에서 귀환했다. 오스카 스테이션에서 피에르 라캉 중령이 죽었을 때는 정신이 없었고, 생면부지의 모르는 사람이라 그리 큰 충격을 받지 않았던 것과는 경우가 달랐다.
-이건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뭐라고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것은 너다. 우리는 의무를 위해 군에 지원한 거지만 넌 다르지. 힘들면 말해라.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마.
“아뇨,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서둘러 대답한 우지는 저도 모르게 커진 목소리에 오히려 자기가 놀랐다. 그리고 통신 너머로 들려오는 작은 웃음소리에 얼굴이 빨개졌다.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어. 힘들면 네 머릿속에 있는 두뇌칩이 도와줄 테니까. 이런 가벼운 충격은 금방 잊혀진다.
우지는 팀장의 그 말에 문득 자신의 옛날 일이 떠올랐다. 부팀장 아룹에게 잡혀 개조 시술을 받았던 날이다.
“저, 팀장님. 그, 두뇌칩이 말입니다. 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우지에게 대번에 빈우의 핀잔이 날아왔다.
-이 새끼 이거 이런 배짱으로 어떻게 나한테 덤빈 거야.
“네네, 또 그 얘기 하시네요. 아마 평생 놀리실 게 확실합니다.”
퉁명스러운 우지의 말 다음으로 빈우의 웃음기 섞인 설명이 들려온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네 머릿속에 박힌 두뇌칩은 니네 할아버지한테 달린 것하고 달라. 외계인 죽였다고 오르가즘 느끼는 구식은 아니니까 안심해라. 그저 네가 입을 정신적인 충격이나 과다한 신경 물질 전달만 막을 뿐이야. 그냥 돕는 거지. 극복하는 것은 네 몫이다. 그리고··· 좆됐네.
설명을 하던 빈우의 목소리가 외마디 욕설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아마 전단 통신으로 뭔가를 들은 것 같다. 이런 경우엔 상당히 질 나쁜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습득한 우지는 긴장했다.
-우지, 서둘러 착함한다. 샤다이의 파상공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연방이 공격받고 있다. 42전단은 점프로 귀환할 거다.
“네? 샤다이가요? 어디를 공격하는 겁니까?”
-최소 일곱 곳.
우지는 기체를 꺾어 블랙 랜스의 유도 신호를 무시하고 수동으로 긴급 착함했다. 빈우도 마찬가지다. 격납고로 밀고 들어온 롱소드 두 대는 각자의 관성제어장치를 믿고 격납고 바닥에 억지로 매달렸다. 닫히는 격납고 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시에라 7로 향하던 함대들이 방향을 돌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순양함들은 함포사격과 어뢰, 미사일 등을 최대한 퍼부으면서 뱃머리를 돌렸다.
“팀장님.”
현재 상황을 물어보려던 우지는 조종석에서 뛰쳐나오는 빈우의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전단 회선으로 이야기하며 달려가고 있었다.
* * *
“일곱 곳이라···.”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전황보고를 보며 혀를 찼다. 보통 샤다이는 자기들끼리 연계가 전혀 안 되어 중구난방으로 움직인다. 한마디로 전투의 초보란 얘기다. 징조도 없이 점프하는 놈들이 예상치 못한 초보의 작전으로 갑자기 쳐들어오니 연방으로선 골치였다. 그랬던 놈들이 이렇게 동시에 일곱 곳을 공격한 것을 보면 이번 침공은 시에라 1의 공격에 대한 보복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들이 오합지졸이란 겁니다.”
발렌티나가 화면을 일곱 군데 띄웠다. 샤다이들이 쳐들어온 연방의 행성들이다. 어떤 것은 현재 진행형이고, 어떤 것은 이미 상황이 종료된 것도 있다.
“오합지졸이란 말이지….”
데이먼 전대장이 혼잣말을 했다. 샤다이들이 비록 싸움을 모르는 바보라 해도 놈들이 다루는 무기는 치명적이라 결코 허투루 볼 순 없다. 하지만 그는 발렌티나가 왜 굳이 오합지졸이란 말을 붙였는지 알 것 같았다.
영상 속에 샤다이 모니터함 한 척이 점프해서 나타나자 행성의 방어함대에는 비상이 걸렸고, 즉각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단 한 척의 모니터함은 방어함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행성으로 돌진한다. 그리고 거포를 쏴 행성 지표를 직접 공격했다. 날아간 거대한 플라스마는 몇 겹의 행성 방어막을 일격에 날려버리며 바다에 명중해 거대한 증기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대가로 방어함대의 집중 공격을 받아 격침되었다.
다음은 전열함 두 척과 한 척이 각기 다른 곳에 점프한 개척 행성 궤도다. 문제는 이놈들이 연방의 행성은 공격하지 않고 쭈뼛거리고 있다가 갑자기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전열함 두 척 쪽에서 먼저 공격이 시작되었고, 한 척 쪽도 반격을 시작했다. 놈들은 서로에게 피해를 줄 수 없는 강력한 공격을 주고받다가 급파된 방어함대의 공격에 각개격파 되었다.
“김 팀장, 혹시 놈들이 이렇게 행동한 이유를 아나?”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질문에 홀로그램 속의 빈우가 한심하단 표정으로 샤다이들을 보며 대답한다.
-귀환 찬성파와 반대파입니다. 요근래 갑자기 사이가 나빠진 것은 아는데, 그게 꽤 심한 모양이군요. 연방을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싸우다니 말입니다.
이어지는 전황을 발렌티나가 정리했다.
“시간 차이는 있지만, 지금까지 모두 일곱 곳이 공격당했습니다. 먼저 보신 라 마야와 우엘바의 두 곳은 보시다시피 큰 피해 없이 정리되었고, 다른 두 곳인 블루 사하라와 에어푸르트도 점프게이트가 파괴당한 뒤 행성에 약간의 피해를 입고 교전중입니다만, 기동 방어함대가 연동 게이트로 지원을 가서 아군이 유리합니다. 문제는 이곳들입니다.”
일곱 중에서 셋의 화면이 커졌다. 척 봐도 샤다이 함선 상당수가 와 있다.
“누벨 노르망디와 뉴 시어도어, 과전입니다. 세 곳 다 대규모 샤다이 함선들이 공격 중이며 주둔하고 있던 방어함대와 기동 방어 함대가 긴급 출동했습니다. 이중 뉴 시어도어는 아직 게이트가 살아있고, 아퀼라 게이트에서 옥토퍼스 게이트를 경유해 갈 수 있습니다.”
점프 게이트는 만능이 아니다. 각기 연결된 게이트가 있어, 물리적 거리가 가깝다 해도 직통 게이트가 없으면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42전단의 연동 게이트는 임시 게이트인 탓에 점프 거리가 짧은 편이다.
“다음은 누벨 노르망디와 과전입니다. 이 두 행성은 가장 늦게 공격받은 탓에 앞선 다섯 곳에 방어함대들이 출동하느라 여력이 없어 지원 함대가 적었습니다. 그 결과 두 곳 역시 현재 게이트가 파괴된 상황입니다.”
게이트가 파괴되었다면 이제 두 행성은 외부와 단절되었다는 뜻이다. 주둔 함대와 지원 함대의 전멸도 시간문제다.
“일반적인 증원은 힘들군.”
페레로 참모장이 침음성을 흘렸다. 이제 누벨 노르망디와 과전에 가려면 닫힌 게이트에 점프 포인트를 다시 설치하거나, 연동 게이트로 뚫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현재 시간 내에 지원을 갈 수 있는 것은 기동 방어 함대와 42전단 뿐이며, 기동방어 함대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 아직 남은 함대가 있긴 하지만 중요도가 높은 곳을 지켜야 해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이제 우리 42전단은 누벨 노르망디와 과전 중 한 곳에 지원 가야 한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간부진을 둘러보았다. 누벨 노르망디는 연방 직할령 중에서도 상당히 발전된 곳이라 인구도 많고 다수의 군수공장이 있다. 반면 과전은 전형적인 농업 행성이라 거주민이 적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작물들의 생산량은 무시할 게 못 된다.
-당연히 누벨 노르망디 아닙니까. 신형 입자빔포 공장이 그곳에 있습니다.
보따지 부전단장의 말은 당연한 듯 들리지만, 아무도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발렌티나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전의 작물 생산량 대부분은 보리이며, 이는 물질생성기의 식품 원료가 됩니다. 과전이 샤다이의 공격에 황폐화될 경우엔 인근 행성의 식품 공급에 꽤 차질이 있을 겁니다.”
고심하는 간부진들 사이로 단호한 의견이 들어왔다.
-과전은 버립니다.
바로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인 빈우였다.
“으음, 왜지?”
구원 순서를 뒤로하는 게 아니라 아예 버린다고 하니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누벨 노르망디와 과전에 온 것은 모두 리퍼인 데다 숫자도 보통이 아닙니다. 누벨 노르망디에 스물세 척, 과전에 열아홉 척입니다. 이는 우리 42전단으로도 버거운 숫자입니다. 한곳을 치고 나면 다른 쪽으로 지원 가긴 힘듭니다. 둘 중 하나에만 가야 한다면, 당연히 누벨 노르망디입니다. 입자빔포 공장이 당한다면 앞으로의 작전에 심각한 차질이 생깁니다.
두 번의 전투로 입자빔포의 위력을 절절히 느낀 이들에겐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그리고 과전을 잃는다 해도 식량의 긴급 생산이 가능한 프로젝트들이 있습니다. 비록 음식의 질이 조금 떨어지겠지만, 굶는 일은 없습니다.
간부들의 의견이 빈우의 제안으로 서서히 기울어질 무렵, 갑자기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안 돼요! 주인님, 그러지 마세요.
빈우의 뒤에서 갑자기 여성형 안드로이드가 끼어든 것이다. 빈우의 비서인 모양이다. 빅토리아풍 메이드 복을 입은 안드로이드는 경악한 표정으로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인간들은 갑작스러운 안드로이드의 행동에 의아해했지만, 같은 AI인 발렌티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안드로이드가 저렇게 행동할 리는 없다. 이렇게 인간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중에 AI는 결코 끼어든다는 판단을 할 수가 없다. 그게 가능한 경우는 단 하나. 방금의 이야기가 그녀의 주인인 빈우에게 심각한 해가 되는 경우이다.
-아나스타샤, 조용히 해.
나직하고 험악하게 타이르는 주인의 말에 안드로이드가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한다. 비록 입을 열지 못하지만, 공포에 질린 얼굴로 도리질을 하는 것이 발렌티나의 예상이 맞은 듯싶다. 하지만 발렌티나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말할 수 없었다. 그녀 또한 그녀 나름대로의 행동강령에 따라 움직이는 인공지능인 것이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자신의 부관 인공지능을 흘깃 본 다음 그 시선을 다시 빈우에게로 향했다.
“김 팀장.”
-네, 전단장님.
“저 과전이란 곳은 혹시 자네의···.”
끝을 맺지 못하는 전단장의 질문에 빈우가 대답했다.
-예, 과전은 제 고향입니다. 때문에 이것이, 샤다이들이 저를 노리고 판 함정이란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