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02화 (200/301)

202화

-아니, 과전이 자네 고향이었단 말이야?

브릭스 전대장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방금 빈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고향을 버린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비서 안드로이드의 돌출행동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당사자인 빈우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중요한 것은 과전을 버려도 되는, 어흠,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입니다. 우선 제 고향 과전은 농업 행성이라 인구수가 적을뿐더러, 옛날부터 저와 아나스타샤가 자체적인 긴급대피 프로그램을 짜두었습니다. 때문에 샤다이의 공격 당시 거주민들 대부분은 탈출했을 겁니다. 아나스타샤.

빈우의 부름에 뒤에 있던 안드로이드가 서둘러 과전의 탈출 진행 과정을 보였다.

-긴급대피용 탈출정은 모두 발사되었습니다만 인원 파악은 되지 않았습니다. 게이트가 파괴된 다음에 과전과의 모든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화면 속으론 과전에서 발사된 탈출정들의 궤도가 보인다. 샤다이의 함대가 점프해 온 다음 과전의 무인 방어함대가 대응했고, 그 짧은 시간 동안 과전의 사람들은 탈출정으로 이동했다. 오천도 되지 않는 작은 인구지만 상당히 빠른 시간에 탈출했다.

헌데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이 일련의 과정들이 군용 긴급대응책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샤다이의 존재를 눈치채자마자 요소요소에 배치 있던 간이 장갑복들이 긴급 발사되어 인간들을 찾아 장착되었고, 미리 지정된 장소로 강제 이동했다. 탈출정들도 미리 설정된 궤도를 따라 발사되어 점프하는 시민들을 회수해 대기권을 이탈했다. 문제는 게이트가 이미 파괴되었기에 더 이상의 탈출 경로도 없고, 이후의 상황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샤다이는 대부분의 경우 행성을 녹여버리지 굳이 탈출한 사람을 추적해서까지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엔 탈출정들은 샤다이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도록 되어있습니다. 아마 시민들은 안전할 겁니다. 아군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충분히 버틸 겁니다.

설명하는 빈우의 표정은 태연자약했다. 자신의 고향이, 가족이 공격받고 있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뒤쪽에 있는 안드로이드가 위태위태해 보인다. 민감한 주제라 간부들이 뭐라 말을 꺼내기 껄끄러워할 때 전단장이 질문했다.

“함정이라고? 샤다이가 자네 고향을 공격하는 게 함정이란 말인가?”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다른 것을 다 제쳐두고 함정이란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앞으로 공격해야 할 곳에 함정이 있다면 당연히 파악을 해둬야 한다.

-네, 병력의 질이 너무 틀립니다. 이를 보십시오. 리퍼 전투함이 있는 곳은 누벨 노르망디, 뉴 시어도어, 과전, 블루 사하라입니다.

빈우가 다시금 리퍼함들의 분포도를 설명한다.

-그중에서도 과전과 누벨 노르망디의 전투함들은 모두 리퍼입니다. 게다가 결정적인 차이는 이 문양입니다.

“문양?”

스크로프스카 전단장은 빈우가 확대한 리퍼 전투함의 문양을 보았다.

-이는 샤다이 집정관의 문양입니다. 놈들 최고 사령관의 직속부대인 셈이지요. 즉 과전과 누벨 노르망디의 리퍼들은 샤다이 중에서도 최정예인 셈입니다.

빈우의 말은, 샤다이 최고 전력이 입자빔포가 있는 누벨 노르망디와 보리를 생산하는 빈우의 고향을 동시에 공격했다는 이야기다. 속내가 뻔히 보이는 움직임이다.

-게다가 투입된 시점도 심상치 않습니다. 순차적으로 기습공격을 해 아군의 반응을 살피다가, 마지막에 정예병력을 보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의 설명에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일곱 차례의 공격에 대해 다시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소수를 보내 간보기, 다음은 투입하는 숫자를 늘려가며 이쪽이 내는 병력의 규모를 서서히 파악한다. 그리고 연방군이 더 이상 꺼낼 카드가 없을 때, 마지막 결정적인 수를 낸다.

“이리도 초보적인 술수에 당하다니.”

전단장이 이를 갈았다. 너무도 간단한 속임수에 연방이 넘어간 것이다.

-어쩔 수 없습니다. 우선 샤다이는 지금까지 이런 방식의 전술을 쓴 적이 없고, 단 한 척의 샤다이 함선이라 해도 아군에겐 비상이니까 말입니다.

빈우의 말대로 점프 게이트를 쓰지 않고 이런 광범위하고 산발적인 기습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샤다이 뿐이다. 오히려 왜 지금까지 이런 방법을 쓰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조합해 볼 때 샤다이가 우리 쪽 정보를 상당히 알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방법을 쓸 리 없죠.

빈우는 방금 자신이 본 정보들로 샤다이가 연방의 어디까지 들어왔는지 추적하고 있었다. 놈들이 알고 있는 것은 누벨 노르망디에 입자빔포 군수공장이 있다는 것과 과전이 빈우의 고향이라는 것. 모르는 것은 42전단과 기동방어 함대의 구체적인 규모다. 이런 정보들로 놈들의 세력권을 특정 지을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김 팀장 자네 말은 샤다이가 아군 병력을 차츰 끌어내다가 마지막에 42전단과 자네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만들어 놓고, 거기서 선택지를 두 개 주었단 말이지?”

참모장 페레로 중령의 말이다. 그가 행성 지도 두 곳을 짚었다.

“여기 입자빔포가 있는 군수공장과 자네의 고향, 이 두 가지를 선택하도록. 즉 자네로 하여금 우릴 과전으로 가도록 유도하거나, 안되면 최소한 병력이라도 분산하도록 한 다음, 최종적으론 누벨 노르망디를 노린다는 얘긴가?”

-물론 너무 노골적인 계획인 만큼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가 낼 수를 미리 예측하고 거꾸로 놨을 수도 있죠.

“결국 이건 외통수다. 어찌 되었건 하나는 선택해야 해.”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나섰다. 선택은 빨리 해야 한다.

현재 샤다이가 침공한 곳 중 라 마야와 우엘바는 샤다이의 수가 적어 이미 주둔 함대가 격퇴했다. 블루 사하라와 에어푸르트는 교전 중이지만 대기 중이었던 기동 방어함대가 급파되어 전황은 아군이 유리하다.

문제가 되는 곳은 뉴 시어도어, 누벨 노르망디, 과전이다. 이 세 곳은 대규모 샤다이 함대가 와서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뉴 시어도어는 아직 게이트가 살아있어 지원군이 도착 가능하지만, 누벨 노르망디와 과전은 게이트가 파괴되어 연동 게이트로 지원 가야 한다.

아직 완편되지 않은 기동방어 함대는 더 이상 여력이 없어 42 전단은 둘 중 하나를 정해야 하는데 빈우는 지금 자신의 고향인 과전을 버리자고 하는 것이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오천 명 정도의 과전 시민들은 탈출했습니다. 남은 것은 고작 보리밭뿐입니다. 반면 누벨 노르망디의 인구는 25억인 데다 다수의 군수 공장도 있습니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다시 한번 태스크 포스 373 팀장의 얼굴을 보았다. 고향을 ‘고작 보리밭’이라고 부르며 버리자는 사람의 얼굴은 태연했다. 과전을 구해달라는 말은 뻥끗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익히 들었던 대로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뒤에서 간신히 울음을 참는 안드로이드가 더 인간 같아 보인다.

“42전단은 누벨 노르망디로 간다.”

스베틀라냐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대략적인 세부 명령을 내리고 회의를 마쳤다. 그리고 그녀는 빈우를 불렀다.

“김 팀장.”

-말씀하십시오.

대답하는 빈우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그러나 과전에 그의 가족이 있다는 사실은 안드로이드 메이드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말 괜찮겠나?”

-네.

짧은 빈우의 대답.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차마 태스크 포스 373은 단독행동이 가능하니 과전으로 가도 된다, 라고 말할 순 없었다. 수많은 리퍼 전투함을 상대로 구축함 한 척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누벨 노르망디에서도 활약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통신이 끝난 다음, 전단장은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 * *

“아나스타샤. 방금 그게 무슨 짓이야.”

빈우는 세부 계획을 살피며 아나스타샤를 질책했다. 시선은 주지도 않는다.

“주인님!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아나스타샤는 흐느끼면서 항의했다.

“고향이, 나리 아가씨가, 주인님의 집이…!”

결국 안드로이드가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한다. 반면 인간은 화면을 보며 골똘히 생각 중이다. 마치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뒤바뀐 듯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뭐지? 오천 명도 안 되는 고향 시민을 살리기 위해 25억이 넘는 사람들을 죽이란 거냐?”

차가운 빈우의 말에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들며 울부짖었다.

“저는, 저는 주인님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거예요! 주인님도 약속하셨잖아요. 저랑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물론 빈우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고, 그런 마음을 품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 또한 안다.

“나리 아가씨는 어떻게 해요. 농장은요. 샤다이들이 모두 태워버릴 거예요.”

아나스타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빈우는 대충 작업을 마무리 짓고 울고 있는 그녀를 향해 돌아앉았다.

“탈출정들은 모두 발사되었어. 장갑복들도 모두 작동했고. 과전의 사람들은 다 탈출했을 거야. 우리 가족들도 다.”

빈우의 고향 과전에 설치된 탈출 시스템은 그가 군사정보국과 거래해서 얻어낸 물건들이다. 빈우는 울토르 프로젝트에 지원할 때 고향의 안전을 담보로 내걸었고, 이노우에 국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 물건인 만큼 성능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인원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조금 잦아들었지만, 아직 아나스타샤는 울고 있었다.

모든 정보가 넘어오기 전에 게이트가 파괴되는 바람에 더 이상 과전의 정보에 대해선 알 방법이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장갑복들이 모두 작동했고, 탈출정들 또한 모두 작동했다는 것 뿐. 과전 시민 모두가 장착하고 탈출한 것까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래, 파악되지 않았지. 하지만 한 가지 물어보자. 그 탈출 과정에서 인간이 도망칠 수 있을 거라도 생각해? 그 장갑복으로부터?”

탈출 과정에 쓰이는 장갑복은 생존을 위한 가벼운 물건이며, 근력 보조 기능이 있는 우주복 정도다. 이것들은 주변의 두뇌칩 반응을 찾아 사람에게 장착되어 착용자를 강제로 탈출 지점까지 배송한다. 그리고 명색이 장갑복이라, 이 힘과 속도에서 일반인은 도망칠 수 없다.

“···아뇨.”

아나스타샤가 훌쩍이며 대답했다. 그녀는 소매로 눈가를 훔친 다음 다시 말했다.

“하지만 고향은요? 농장은요? 집은요? 모두 불타요. 주인님이 태어나신 집과, 주인님이 놀았던 공원들이 모두 사라진다고요.”

안드로이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는 끈질겼다. 그녀는 스스로 정한 행동강령에 묶여 집착하고 있다. 허나 오히려 이런 모습이 인공지능답지 않고, 인간처럼 보였다.

“아샤.”

오래간만에 들린 애칭에 아나스타샤가 움찔하고 반응했다.

“아무리 불타고 파괴되어도 과전은 내 고향이다. 고향은 아직 거기 있어. 다시 돌아가서 밭을 일구면 돼. 보험도 들어 있잖아? 용암이 식으면 바위를 깨고 다시 개척하자. 바위를 갈아 흙을 만들고, 구름을 모아 비를 내리게 하자.”

아나스타샤는 빈우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샤다이에 의해 황폐화된 행성을 되살리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그러나 빈우는 그걸 하자는 것이다.

“힘들 거야. 시간도 오래 걸릴 거고. 하지만 아샤, 넌 나와 함께 해줄 거지?”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안드로이드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네, 주인님. 할게요. 제가 주인님과 함께할게요. 주인님을 도와드릴 거예요.”

울다가 웃게 된 아나스타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빈우는 피식 웃었다.

“그래, 웃어. 겨우 이런 일로 울지 마. 이젠 괜찮아?”

“네, 괜찮아요.”

일어선 아나스타샤는 눈물을 닦으며 옷매무시를 바로 했다.

“그럼 오다 의원님께 가봐. 이제 곧 우린 42전단과 점프할 거다. 의원님께 상황설명 잘해드리고. 알겠지?”

“네, 주인님.”

당차게 대답을 하고 문밖으로 나간 아나스타샤는 순간 멈칫했다. 이전이라면 주인은 울고 있는 자신을 한 번쯤은 포옹해줬을 것이다. 또 일어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방금의 빈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었다. 그저 앉아서 말만 했을 뿐이다.

‘주인님은 바쁘셔. 바빠서 그러셨던 거야. 내가 주인님을 도와야 해.’

인공지능은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