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누벨 노르망디에 리퍼가 스물세 척이라….”
부팀장 아룹이 혀를 찼다. 리퍼의 장갑복이나 함선의 성능은 기존의 스팸, 전열함과 큰 차이는 없다. 문제는 다루는 놈들이 제대로 싸울 줄 안다는 것이 성가신 점이다. 그 예로 발 가르단 하스에서 리퍼의 기습을 받은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전멸 직전까지 갔었다.
“게다가 이 문양. 그 체체뭔가 하는 놈의 부하들이죠?”
“체메트디오프, 샤다이의 집정관이지.”
빈우가 파트리샤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그때 이 섬이 뜯어온 놈의 머리를 확인하긴 했는데, 알탄훼아나의 말대로라면 놈은 동족의 몸에서 부활하는 놈이라고 하니, 이번 작전도 놈의 계획일 가능성이 높다.”
“으음, 근데요오.”
파트리샤가 히죽히죽 눈치를 보며 말꼬리를 늘이고 있다. 그녀가 이럴 땐 꼭 무슨 꿍꿍이가 있다.
“말해.”
퉁명스런 빈우의 말에 파트리샤가 바싹 다가앉았다.
“아나스타샤 분위기가 영 이상하던데, 과전이 팀장님 고향이죠?”
“아직 몰랐냐? 내 신상정보는 니들 보안 레벨로도 조회될 건데?”
태평한 빈우의 대답에 위르겐이 씹던 마카롱을 잘못 삼켜 콜록거린다.
“어? 컥컥. 진짜요?”
그때 사레들린 위르겐의 등을 스패너로 후려쳐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모니카였다. 그녀는 스패너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빈우를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그런 얘기 한 번도 안 하셨잖아요.”
조심스럽지만 힐난의 기운도 있는 모니카의 눈빛에 빈우는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뭐, 따지고 보면 나도 가족하고 연락 안 한 지 꽤 됐어. 아나스타샤는 가끔씩 연락하는 모양이지만.”
“거 사람 인성하고는. 괜찮습니까? 고향을 그렇게 해도?”
이번엔 간신히 마카롱을 삼킨 위르겐이 나섰다.
“그럼 뭘 어째. 누가 봐도 체메트디오프 이 새끼가 수작 부린 거 확실한데. 나를 자극해서 병력을 분산시키려는 속셈일걸. 그곳 시민들은 다 대피했으니까 신경 꺼.”
“흠, 헌데 놈이 그런 얕은수를 쓸까요?”
아룹은 부팀장답게 놈이 내건 술수에 신경을 썼다. 이번의 배후로 추정되는 샤다이 집정관 체메트디오프는 뉴 소노라에서 동족과 인류를 상대로 이중 삼중의 술수를 썼다. 당시 상황을 보면 여러 가지 책략이 동시에 진행이 되고 있었고,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도록 설계해놨었다.
“그에 대해선 전단장님이랑 얘기했습니다. 외통수니까 택일하고 밀어붙여야 한다고. 그래서 더더욱 누벨 노르망디를 버릴 순 없다고 결론 났습니다.”
하긴 누벨 노르망디와 과전은 인구수에서도, 행성 생산물의 중요도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비록 과전을 잃을 경우 많은 양의 보리를 잃게 되겠지만, 합성식품들로 대체가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누벨 노르망디의 입자빔포 생산 공장은 현시점에선 절대 잃을 수 없는 것이다.
그때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으로부터 빈우에게 개인 통신이 들어왔다. 공용 회선이 아니란 것은 개인적인 용건이란 뜻이다.
-팀장님, 지금 얘기할 수 있을까요?
회선 너머의 목소리는 긴장하고 있었다. 빈우는 그녀가 질문할 내용이 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작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짧게 해주십시오.
-과전은… 아니, 팀장님은 괜찮은가요?
빈우는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대답했다.
-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이런 일에 대해선 미리 대비해두기도 했고요. 이제 곧 점프를 하고 바로 전투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의원님께선 몸조심하십시오. 옆에 아나스타샤가 있으니 유사시엔 의지하시고요.
-…알겠어요.
단호한 빈우의 말에 히토미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하고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이 그라디우스로 탑승해서 정비를 마치고 있을 때 오르 함장의 방송이 들려왔다.
-본함 블랙 랜스는 지금부터 누벨 노르망디로 점프합니다.
방송을 들은 파트리샤가 허탈하게 한숨을 쉬었다.
“후아, 벌써 몇 번째 점프야.”
그녀 말마따나 42전단과 태스크 포스 373은 시에라 1, 7에 이어 이번엔 누벨 노르망디까지 연이어 투입되고 있었다. 시에라 1과 7 사이엔 그나마 휴식 시간이라도 있었지만, 이번엔 적의 반격에 대비해 급박하게 투입되는 것이다. 오랜만에 치러보는 격전이다.
-점프.
점프한 다음, 팀원들에게 보이는 것은 개판 오 분 전의 누벨 노르망디 궤도상 함대전이었다. 스무 척이 넘는 리퍼 함대는 막강한 화력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고, 누벨 노르망디의 방어부대는 필사적으로 반격하고 있었다.
“상황 안 좋게 돌아가는데.”
빈우는 함대전보다는 누벨 노르망디의 상황을 보았다. 정규궤도 엘리베이터는 둘 다 중간에 끊겼고, 점프 포인터는 자폭한 지 오래다. 방어함대에는 기존의 무장뿐이어서 전형적인 대 샤다이 전술로 대응하고 있지만, 상대가 리퍼라서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리고 또 안 좋은 점 하나.
“샤다이 새끼들, 지상에 강하했다.”
빈우가 가리킨 곳에는 리퍼의 상륙함으로 보이는 소형 비행선 다수가 누벨 노르망디의 지표면에 강하해 있었다.
-뭐가 목적일까요? 저긴 허허벌판인데 말입니다.
모니카가 해당 부분을 확대했다. 그곳은 궤도엘리베이터 터미널도 아니고 공장이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퍼들은 해당 지역에 강하해서 지상 병력을 전개하고 있었다.
“별거 있냐, 다른 곳은 방어함대가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으니 빈 곳으로 내려간 거지.”
빈우의 말대로 지상의 리퍼들은 궤도상의 전투함을 우산 삼아 강하한 상황이다. 아무리 강력한 지상 병력이라고 해도 제공권을 빼앗기면 그날로 요단강 익스프레스를 타는 해군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이런 상황하에서는 해당 지역의 제공권을 확보하거나, 머리 위에서 엄호하는 함대와 연계해서 지상 병력 강하가 진행된다.
물론 누벨 노르망디의 방어함대는 리퍼 지상 병력을 몰아내려고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그러기 위해선 그 머리 위, 해당 궤도상에 버티고 있는 리퍼 전투함을 먼저 격퇴해야 한다.
지상과 궤도의 영역은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돌아가기에 제우권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지상의 구역은 차츰 침공당해 빼앗기게 되고, 그 침공이 주요 발전시설로까지 이어지면 지상의 대공방어시설이 무력화된다. 그러면 역으로 지상의 영향이 우주로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아하, 그래서 지상과 궤도상의 병력이 상호연계 하에 움직이네요.
이런 전술적인 측면에 대해서 무지했던 모니카는 빈우가 병력의 이동에 대해서 설명하자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 팀은 왜 그런 연계를 안 하고 강하해요?
모니카가 기억하기로 태스크 포스 373의 팀원들은 이런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강하하던 팀이었다.
“그야 우리들은 그러라고 만든 팀이거든.”
빈우의 대답에 단검뿔 토끼와 실리콘 나이트의 두 대원이 낄낄 웃는다. 저들은 정규작전보다는 잠입, 침투를 주로 하는 부대원들이고 태스크 포스 373 역시 그런 종류의 부대다.
-팀장님. 우리 팀은 어떻게 움직일까요?
잡담하는 팀원들 사이로 오르 함장의 말이 들려왔다. 현재 42전단은 점프해서 도착한 다음 빠른 속도로 대형을 정비해 리퍼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누벨 노르망디-리퍼-42전단의 샌드위치 형태가 완성되자 리퍼들은 앞뒤로 공격받게 되었다.
“일단 42전단의 움직임을 보고 정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포격 실력이 대단하네요.”
42전단의 입자빔포는 절묘한 각도로 발사되고 있었다. 42전단이 쏜 입자빔포와 공격은 리퍼를 향하고 있지만, 만약 빗나갈 경우엔 이 공격은 누벨 노르망디를 향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공격들은 사선으로 쏘고 있었다. 이러면 빗나가도 건너편의 아군이 맞을 일은 없는 것이다.
-네, 일종의 교차 포격을 응용한 진형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기 위해선 서로간의 신뢰가 상당히 깊어야 합니다. 자신은 바로 앞의 적을 동료에게 맡기고선 다른 적을 치는 것이니까요.
오르 함장의 말대로 42전단의 순양함들은 자신의 정면 방향이 아니라 사선에 있는 리퍼를 쏘고 있었다. 그리고 정면의 리퍼는 왼쪽 저편에 있는 아군이 공격하고 있다. 이 얼기설기 엮인 화선의 모습들이 마치 길다란 수저로 맞은편의 동료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 같다.
“으음, 전단장께 여쭤보니 우리는 알아서 취약지점을 치라는군요. 함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차피 태스크 포스 373은 42전단과 상하가 아닌 상호협력 관계에 있는 부대다. 하지만 아군 한 척이 아쉬운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 373팀의 자율행동을 허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을 믿어준다는 뜻이다. 아마 시에라 1에서의 성과가 상당히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이런 집단전에서 우리 팀은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드니, 말씀대로 별동대로 활약하는 게 낫겠습니다. 그러면 어디부터 칠까요?
오르 함장이 보여준 화면에는 누벨 노르망디의 전체 전황이 나타나 있었다. 이번의 42전단은 연동 게이트를 위한 예비대는 따로 두지 않고 전력을 다해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곳이 연방의 영역이니 당연한 선택이다. 그리고 리퍼는 리퍼대로 배후에서 갑자기 나타난 함대가-자신들의 방어막을 뚫는 공격을 하는 42전단이-더 위험하다 여기고 반전해서 반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틈을 타 누벨 노르망디의 방어함대는 재정비에 들어갔다.
세 진형의 움직임을 살피던 빈우의 손가락이 마침내 한곳을 가리켰다.
“저쪽, 중궤도 엘리베이터를 점거합시다.”
빈우가 점찍은 곳은 누벨 노르망디 적도에 위치한 높이 500km의 궤도 엘리베이터다. 마침 그쪽 방향은 리퍼 전투함의 사거리 바깥이기도 했다.
-이곳에 달리 중요한 점이 있습니까?
아룹의 질문은 다른 팀원들의 의문을 대변하고 있었다. 궤도 엘리베이터는 중요한 시설이긴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선 딱히 메리트가 없었다. 지상 병력을 대규모로 전개해야 할 뱅가드라면 모를까 태스크 포스 373으로선 그다지 필요 없는 시설이다.
“에너지 전투입니다. 에너지 전투. 아시다시피 궤도 엘리베이터 터미널은 행성의 자전력으로 발전합니다. 블랙 랜스에다 연결해서 역장 방어막과 코일건 쪽에 전력 공급 두둑이 합시다. 그리고 중궤도면 투석기로 쓰기에 알맞은 높이죠. 마침 이쪽 터미널은 해저 금속 제련공장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있는 재고들 끌어 올려서 궤도상이나 지상으로 뿌려버립시다.”
-그거 솔깃하군요.
빈우의 계획대로 할 경우 태스크 포스 373의 화력은 제법 늘어난다. 다른 전투함이라면 굳이 이럴 필요는 없지만 구축함인 블랙 랜스에겐 이거라도 아쉽다.
그래서 블랙 랜스는 42전단의 대형에서 벗어나 목표지점으로 향했다. 물론 리퍼 쪽도 구축함 한 척이 대형에서 이탈해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을 보았지만, 위협 사격만 몇 번 했을 뿐 굳이 추적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지금 새로 나타난 42전단이 너무나도 위험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을 썼다.
-리퍼 전투함에서 소형정이 나옵니다. 모두 4기, 신형입니다. 롱소드와 유사한 우주 전투기로 추정됩니다.
오르 함장이 새로이 나타난 리퍼의 신형 함선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함선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다. 거꾸로 떨어지는 물방울 같은 이 신형들은 롱소드보다 약간 작은 크기라 오르 함장의 말대로 전투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전투기치고는 별다른 대형을 짜지 않고 막무가내로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함장님, 주의하십시오. 샤다이의 기본무장은 플라스마입니다.”
샤다이는 함포나 개인화기나 전부 플라스마를 쓴다. 만약 저 전투기들이 롱소드를 벤치마킹했다면 탑재한 무장은 전열함 주포급의 위력을 가질 것이다. 즉 연방군 전함의 주포를 능가하는 화력을 가진 전투기인 셈이다.
-일단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우지의 롱소드가 기수를 꺾어 샤다이 전투기 쪽으로 향했다. 지금 그의 롱소드에는 신형 입자빔포가 달려있어서 샤다이 잡기에는 최적화되어있는 데다가 우지의 조종실력은 연방 최고 수준이다.
롱소드가 방향을 전환한 것과 동시에 블랙 랜스에서도 샤다이 전투기를 향해 사이클론 어뢰를 발사했다. 공격보다는 플라스마 공격 대비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