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현재 42전단은 누벨 노르망디를 공격하는 리퍼와 전투 중이었다. 놈들은 일반 샤다이와는 다른 전투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상당히 위험했다.
“역시 리퍼들은 포격이 상당히 정확하군.”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혀를 찼다. 한두 척이 아닌 스무 척이 넘는 리퍼들의 체계적인 포격은 상당히 위험했다. 때문에 리퍼에 맞선 42전단은 방어와 회피를 번갈아 하며 조심스레 원거리 포격으로 상대하고 있었다. 이는 놈들 뒤에 누벨 노르망디가 있어 직접 포격을 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전면적으로 공세를 퍼붓기보다는 지속적으로 견제를 해 누벨 노르망디의 주둔 함대가 재정비할 시간을 주려는 것이다. 그녀는 주둔 함대의 잔존 병력이 전열을 가다듬으면 그때 한꺼번에 몰아칠 계획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 있었던 신형 샤다이 전투기와 아군 롱소드 간의 전투는 롱소드의 압승이었다. 해서 그 기세를 몰아 전투기와 폭격기를 리퍼들 진형 사이로 밀어붙여 놈들의 시선을 조금 돌려보려고 했는데, 이 리퍼 전투함들의 대공 사격은 너무나 위협적이었다. 그래서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일단 전투기들을 뒤로 빼 누벨 노르망디의 수평선 너머로 돌렸다.
그런 와중에 태스크 포스 373은 영 엉뚱한 중궤도 엘리베이터로 날아가더니 그곳을 점거했다. 이어서 궤도 엘리베이터를 마치 매스 드라이버처럼 사용해 금속이 가득 든 화물 컨테이너를 궤도상의 리퍼 함대 쪽으로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런 느린 공격으로 뭘 하나 싶었는데, 주 목표물은 리퍼 함대가 아니라 행성 표면에 강하한 리퍼 지상 병력들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이들을 강하시킨 본대, 리퍼 전투함들이 있다.
빈우는 각도를 조절해 화물들을 포물선로 쏴 올렸고, 리퍼 함대를 향해 발사된 고속의 금속 화물들은 함대에 맞으면 좋고 안 맞으면 땅에 떨어지면 되지, 란 식으로 지상으로 낙하했다. 그리고 운동에너지의 대폭발과 함께 리퍼 지상 병력을 지표와 함께 까뒤집고 있었다.
“당하는 입장에선 짜증 나겠는데.”
태스크 포스 373의 작전을 본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소감이었다. 솔직히 매스 드라이버로부터 끊임없이 나오는 화물 포탄은 위협적이라기보단 성가신 공격이다. 그러나 그 성가신 공격이 지상으로 내려가면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때문에 리퍼들로서는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 한다. 허나 지금 화물을 날려 보내는 궤도 엘리베이터는 리퍼 함대 쪽에서 보자면 수평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다. 태스크 포스 373 쪽에서 쏘는 화물 포탄은 곡사로 날아오지만 리퍼의 플라스마는 직사다. 이런 애매한 각도에다 발포 장갑으로 방비까지 해놨으니 미사일 같은 병기가 없는 리퍼들로선 공격하기 힘들다.
“김 팀장.”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빈우를 호출했다.
-네, 전단장님.
-멋진 작전이야. 견제가 제대로 되는데.
-감사합니다.
리퍼 전투함과 연방군 함대의 화력을 비교하자면 리퍼 쪽의 압승이다. 대신 연방군 쪽은 숫자가 많다. 그래서 42전단은 단순히 화력전을 하려는 것보다는 진형을 꾸려 어떻게든 유리한 위치, 유리한 시간을 점하려고 했다. 이런 공간을 점유하는 싸움은 자칫 은엄폐가 안되는 우주 공간에선 각개격파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누벨 노르망디의 잔존 함대가 빠져나와 다시 모이고, 태스크 포스 373이 절묘한 위치에 견제를 해주니 리퍼 함대는 정면의 42전단, 오른쪽의 누벨 노르망디 잔존 함대, 왼쪽의 태스크 포스 373을 사방으로 상대하느라 화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잘 듣게 김 팀장. 돌입했던 롱소드 편대를 빼내 누벨 노르망디 뒷편으로 대피시켰어. 이 편대를 373이 쏘고 있는 매스 드라이버 뒤쪽으로 돌려보내지. 그사이 자네는 화물들을 대량으로 사출해 화망을 형성해 주게. 그걸 방패 삼아 롱소드를 돌격시키겠어. 타이밍을 맞춰줄 수 있겠지?
태스크 포스 373이 올라탄 중궤도 엘리베이터는 적도에 있고, 누벨 노르망디의 적도 지름은 얼추 4만km다. 물론 이 롱소드들이 적도 궤도가 아니라 리퍼의 사각인 수평선 너머로 경유해서 오겠지만 사각 바깥으로 경유해 궤도 엘리베이터 뒤편으로 날아오려면 최고 속도로 죽도록 날아야 한다.
-타이밍이라 하시면 시간 여유가 얼마 정도 됩니까?
-195초.
빈우는 만난 적도 없는 42전단의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남몰래 애도를 표했다. 3분 남짓한 시간에 그 거리를 둘러오려면 롱소드가 최고 속도로 날아도 빠듯하다. 이에 대한 빈우의 소감은 롱소드에 탄 우지가 대신 말해주었다.
-잠깐만요, 지금 195초라고요? 저 아줌마가 누굴 갈아 마시려 하나?
373 팀원 통신으로 녀석이 계속 궁시렁댄다.
-이거 시간 맞추려면 한계 속도 넘어서 날아야 합니다. 추진기는 그렇다 치고, 관성제어장치에 들어갈 동력도 빠듯할 텐데요?
우지의 불평에 빈우는 롱소드 편대의 예상 경로를 펴보았다. 군데군데 저궤도 엘리베이터들이 있다.
-아마 이런데다 중력닻 박고 회전하지 싶은데, 그리고 무선으로 전력 받거나 배터리팩 보급받겠지.
나름 보급을 받는다 쳐도 그건 기체의 경우고, 파일럿은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최고속도로 날아오다가 궤도 엘리베이터를 잡고 선회할 때는 기체에 걸리는 중력가속도가 어마어마하다. 관성제어장치는 만능이 아니고, 파일럿의 신체 개조에도 한계는 있다.
-아마 1, 2할은 탈락하거나 제시간에 못 맞출 거다.
빈우의 예상에 우지가 침을 꿀꺽 삼켰다. 탈락율이 꽤 높다. 하지만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그것을 감안하고 내린 명령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촉박한 명령을 내린 것을 보면 롱소드가 투입될 때쯤이 반격을 시작할 때일 가능성이 높다. 주둔 함대의 재정비도 거의 끝나간다.
-김 팀장, 롱소드가 오거든 이쪽의 명령을 기다리지 말고 타이밍 맞춰서 매스 드라이버를 풀가동하게. 그때 42전단은 리퍼들에게 전면 공격을 가할 거야. 주둔 함대 쪽과는 이미 얘기가 되었어.
빈우의 예상은 전단장이 확인시켜 주었다.
-태스크 포스 373은 이번에 달리 기발한 작전 계획이라도 있나?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질문에는 기대감이 엿보인다. 지금까지 단 세 번의 전투이지만 태스크 포스 373은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이다. 시에라 1에선 샤다이 공장을 통째로 뜯어왔고, 이곳 누벨 노르망디에선 샤다이에게 쏠린 판을 멋지게 뒤흔들었다.
-지상으로 강하하겠습니다.
-음? 지상으로? 뭣 때문에?
빈우의 대답에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의아하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현재 리퍼들이 강하한 누벨 노르망디의 지표에는 별다른 중요시설이나 구조해야 할 요인도 없다. 지상의 리퍼 병력은 궤도상의 리퍼 함대를 몰아낸 다음, 함대의 궤도포격이나 롱소드의 공중폭격으로 처리하면 손쉽게 끝난다.
-놈들이 굳이 강하한 이유가 궁금해서 말입니다.
-호오.
보통 샤다이는 행성 방어함대를 전멸시킨 다음 행성 자체를 플라스마로 뒤덮어 녹여버리지, 지상으로 직접 강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있다면 놈들에게 다른 목적이 있는 경우다. 예를 들어 마카로니처럼 현지에 협력자가 있거나.
즉 누벨 노르망디의 리퍼들이 전투가 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굳이 강하한 것은 배후에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빈우는 그것을 알아내려고 자신의 팀을 이끌고 내려가겠다고 한다.
-지원이 필요한가?
태스크 포스 373은 일당백의 정예 대원이지만 숫자가 적다. 그래서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빈우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지원을 퍼부어줄 생각이었다.
-적의 규모에 따라 뱅가드를 요청하겠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그야 물론이지.
-그러면 작전 개시 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흔쾌히 승낙했다. 궤도상의 리퍼에게 뱅가드를 밀어 넣을 일도 없고, 행성에 강하시켜야 한다면 태스크 포스 373이 먼저 내려간 다음 후발대로 가는 것도 좋다. 그렇게 리퍼들을 견제하며 작전의 세부 조정을 하고 있자 마침내 반격 개시의 시간이 다가왔다. 롱소드들이 돌아서 매스드라이버의 뒤쪽까지 날아온 것이다.
-워어, 독한 놈들.
단 한기의 탈락도 없는 42전단의 롱소드 편대를 보며 빈우는 혀를 내둘렀다. 하긴 42전단은 연방군 내에서 최고 중의 최고만 뽑아 편성한 부대다. 이정도 작전은 탈락자 없이 해내는 실력자들인 것이다. 빈우는 잠시 저들이 그런 고된 비행을 하고도 바로 전투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편대장 쪽에서 알아서 체크해야 한다.
-공격 개시!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명령과 함께 42전단이 본격적으로 포문을 열었다. 포격이 집중된 곳은 롱소드들이 진입할 위치다. 타이밍에 맞춰 태스크 포스 373이 미리 발사해 놨던 화물들의 세례와 발포 장갑들의 무리가 파도처럼 밀려들며 도착했고, 그 뒤로 롱소드들이 다가오고 있다. 이에 맞춰 반대편에 있던 주둔 함대에서도 공격을 개시했다.
삼면에서 공격을 받은 리퍼 함대는 주둔 함대와 42전단에 주로 반격했고, 화물 무더기에는 대충 포격만 몇 번 날렸다. 그러나 느리게 날아오는 화물 뒤로 고속의 롱소드들이 나타나 리퍼 함대 사이로 파고들었다. 롱소드들은 무리 지어 입자빔포를 쏴 리퍼 전투함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고, 공격을 한 다음엔 주변에 떠도는 화물에 중력닻을 걸어 예측할 수 없는 회피기동으로 리퍼의 대공사격을 피했다.
-주둔 함대가 빠지네요.
이번 공세에 참가하지 않은 우지가 말했다. 그는 곧 있을 태스크 포스 373의 강하 작전에 엄호로 나설 예정이다.
-피해가 심하잖아. 지금 괜히 나섰다가 두들겨 맞으면 포위망 풀리니까, 수평선 너머에서 어뢰나 미사일로 견제하겠지.
빈우의 예상대로 공격을 개시한 잔존 주둔 함대는 리퍼의 반격을 받자 어뢰를 쏘며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42전단이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격 위치를 왼쪽으로 옮겼다. 아군 롱소드에 맞을 위험도 있고, 리퍼가 후퇴하는 누벨 노르망디 방어 함대에 반격을 못 하도록 막는 것이다.
-제일 좋은 것은 이렇게 뚫고 나가서 우리가 적도 궤도를 먹고 리퍼를 극지방 쪽으로 양분하는 건데 말이야.
-그러면 적도 궤도쪽 자전 발전시설에서 보급을 받을 수 있지요.
아룹이 팀장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궤도 엘리베이터는 높은 것들은 대부분 적도 쪽에 포진해 있어서 적도를 먹으면 자전력 발전기로부터 전력을 받을 수 있다. 방어함대가 악착같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구축함들이 외부 전력을 공급받아 중력쐐기를 계속 뿜어내 리퍼들의 플라스마 포격을 튕겨낸 덕분이다.
-자, 이제 우리 차례다. 373 강하준비.
빈우의 뒤로 팀원들이 따라나선다. 이번 지상 강하에는 아룹과 파트리샤, 위르겐이 간다. 장갑 붙이랴, 궤도 엘리베이터 계기 확인하랴 이래저래 열심히 뛰었던 모니카는 이제야 휴식 시간을 받고 바닥에 퍼졌다.
-모니카.
-네헤엑!
갑자기 부른 팀장의 말에 모니카가 기겁해서 일어서려 버둥댄다.
-그냥 누워서 들어. 혹시 모르니까 이 궤도 엘리베이터 자재로 스카이 후크 하나 만들어놔.
-네? 왜요?
스카이 후크는 궤도 엘리베이터의 사촌뻘인 건축물로 행성의 위성 궤도상에서 돌아가는 막대기라고 보면 된다. 막대기치고는 길이가 100km는 족히 넘지만. 이 긴 막대기는 궤도상에서 빙글빙글 돌며 지상의 물건을 우주로 들어 올리고, 반대로 우주의 물건을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그런데 스카이 후크는 이렇듯 회전을 하는 물건이기에 대기가 있는 행성에서는 효율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반면 건축은 궤도 엘리베이터에 비할 바 없이 단순하기 때문에 자원 채취용 행성에서 자주 쓰이는 물건이다.
-후퇴 루트가 많으면 좋은 거지.
빈우의 말에 모니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마따나 태스크 포스 373은 후퇴할 때 꼭 문제가 생겼다. 처음 작전을 시작했던 발 가르단 하스부터 시작해서 저번의 시에라 1까지 언제나 빠질 때쯤엔 트러블이 발생해 지상팀원들은 개고생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뱅가드도 내려간다. 길을 크게 닦아놔야지.
팀장의 말을 흘려들으며 모니카가 대충 설계와 계산을 했다.
-어- 음, 궤도 엘리베이터에 앵커 케이블 여분이 있는데, 그거 쓰면 될 거예요. 무게추는 여기 금속 화물들을 쓰면 되고, 동력은… 로켓 들고 올까요?
-블랙랜스에 그라디우스하고 롱소드 예비기 있다. 그거 써.
빈우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모니카는 작업용 로봇들을 부르면서 즉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