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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09화 (207/301)

209화

지금 위르겐과 빈우는 건물에 숨어서 리퍼 무리를 살피고 있고, 아룹과 파트리샤는 지하로 들어가 수도관에서 폭발물 설치 작업을 하는 중이다. 그리고 리퍼들은 숨어버린 태스크 포스 373을 찾아 혈안이 되었다.

-지하팀 진척도는 어떻습니까?

빈우는 리퍼들의 수와 위치를 파악하며 통신으로 질문했다. 전자기파를 볼 수 있는 샤다이들이라 도시에서 다른 전파들도 발신하며 그 사이사이 숨긴 통신이다.

-거의 다 설치했습니다.

아룹이 대답했다. 빈우가 있는 건물은 중앙대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밑에는 아룹조가 폭탄을 설치하고 있는 중이다.

-좋아, 설치 끝나면 이쪽 중앙대로로 유인합시다.

-어떻게 말입니까? 오라고 손 흔들까요?

빈우의 옆에서 위르겐의 어벤져가 살랑살랑 손을 흔든다. 스치면 모가지가 날아가는 살랑살랑이다.

-순진하구나, 위르겐. 여기서 저격하면 신나서 총질하면서 달려올 거다. 아니지, 파트리샤가 방탄 부위를 까면 헬렐레하면서 올 테니까 그게 낫지 않을까?

-우웩, 식겁하고 도망갈 거 같은데요.

-니들 죽는다.

지하에서 끓어오르는 나직한 노성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말이 조금 빗나가긴 했지만, 리퍼는 장거리 저격보다는 중거리 난타를 선호한다. 원거리 저격을 할 깜냥은 안 되고, 근거리에 붙으면 373에게 곤욕을 치르니 가장 자신 있는 거리를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설치 완료했습니다.

침묵을 깬 것은 아룹이었다.

-알겠습니다.

그의 보고에 빈우는 등 뒤의 입자빔포를 다시 조립했다. 그리고는 바로 쏠 준비를 했다. 그걸 본 위르겐이 기겁한다.

-팀장님! 방어막이랑 스핑크스는요?

원래 빈우는 입자빔포를 쏠 때 스핑크스를 방패 모드로 해서 쓴다. 그러면 설령 포구 폭발이 일어나도 상당 부분을 상쇄할 수 있다. 그러나 난전 중에선 여유 동력을 끌어모으지 못해 바로 입자빔포를 갈겼었고, 그러다가 피폭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매복을 하느라 동력의 여유가 있음에도 빈우는 스핑크스를 안 쓰는 것이다

-어차피 시선이 끌리긴 할 건데 그래도 첫 방은 맞춰야지. 여기서 스핑크스 쓰면 동력 여유분 떨어져서 충전해야 되고, 그 시간에 놈들이 자기장 감지해서 대비할 거란 말이야.

위르겐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빈우가 입자빔포를 쐈다. 다행히 이번에는 제대로 발사되어 저쪽에 있던 리퍼가 폭발한다. 그리고 놈들은 후다닥 피하는 것 같더니 이쪽을 향해 공격하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온다. 지하팀, 준비.

빈우는 급조해서 만든 인간형 더미를 만들어 놓고 뒤로 빠졌다.

-위르겐, 넌 아래로 가면서 계속 공격해. 오래 칠 필요 없어. 최대한 시선을 끌어.

그러면서 빈우는 위층으로 날아올랐다. 리퍼들의 공격이 방금 빈우가 있던 곳을 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둘은 이미 다른 층으로 이동한 상태다. 계속해서 공격을 하자 리퍼들도 플라스마를 쏘면서 번갈아 다가왔다.

-어쭈, 저놈들 보게?

리퍼들이 하는 꼬라지를 본 위르겐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한쪽 놈들이 빈우팀이 있는 건물에 사격을 하면, 그때 다른 놈들이 달린다. 그것을 번갈아 가며 하고 있다. 지금 놈들은 엉성하게나마 엄호조와 진격조로 나뉘어서 약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처럼 방어막을 믿고 밀어붙이거나 혼자서 막아가며 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저건 좀 머리 아픈데. 배울 거 못 배울 게 따로 있지.

리퍼가 집단 전술을 배우고 그것을 동료들에게 가르쳐 준다면 머리 아픈 것으로 끝날 게 아니라 아픈 머리가 사라질 수준이다.

-최고의 선생에게서 수강료로 목숨을 지불하고 배우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아룹의 농담이 굉장히 설득력 있다. 태스크 포스 373은 연방의 최고 정예 대원들이고 그들과 싸워 살아남았다면 뭐든 배워도 배울 것이다.

-그럼 강의를 성의껏 해야겠죠. 부팀장, 지하팀은 언제 도착합니까?

-곧.

폭발물 설치를 완료한 지하팀은 지상 위로 빠져나와 미리 지정된 위치로 가서 사격했다. 지금 373이 하고 있는 사격은 일종의 요란 사격이다. 리퍼를 맞추기보다는 주변으로 탄을 흩뿌리고 있었다. 날아간 초음속의 탄환들이 도로 바닥을 부수고 그 밑의 흙까지 하늘로 뒤집어 올렸다. 만약 지금 사격받는 게 다른 종족이라면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샤다이 상대로는 통하지 않았다. 조심히 다가오던 리퍼들은 373의 공격이그다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고선 클레이모어와 방패를 들고 서서히 다가왔다. 하지만 빈우는 바로 이것을 노리고 있었다

-폭파한다.

빈우는 지하팀이 설치해놓은 폭탄들을 터트렸다. 수도관과 배수로 등에 설치된 폭탄들이 터지며 지하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위쪽 지상은 373팀이 요란사격을 하며 대로의 포장을 산산조각 내놓은 상태다. 즉 흙바닥이란 말이다.

이어서 빈우는 아직 살아있는 도로 분할용 레일들을 가동시켰다. 레일들이 쉬지 않고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자 점차 진동이 커졌다. 그리고 진동은 멈추지 않고 마치 작은 지진처럼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자 리퍼들이 서 있던 흙바닥이 밑으로부터 순식간에 물이 차올라 진흙이 되었다. 아까부터 계속 견제를 한 덕분에 날지 않고 걸어오던 놈들은 순식간에 발목, 무릎까지 진흙에 빠지며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저런.

아룹이 쾌재를 부르면서도 혀를 찼다. 리퍼들이 어벤져를 능가하는 장갑복을 입고도 고작 뻘에 빠져 바둥대는 모습이 기가 찬 것이다. 그런데 그의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놈들은 시즐러나 클레이모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저걸 왜 들지? 설마 물에 젖으면 안 되는···? 헛!’

그 모습을 본 아룹의 머릿속으로 치명적인 생각이 한 가지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를 팀장에게 전해주려 했을 때, 이미 빈우는 다음 행동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아룹은 빈우가 자신이 눈치챈 사실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이번 작전을 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해!

빈우의 짧은 한마디는 지상의 아룹과 파트리샤를 향한 것이다. 이어서 빈우의 스핑크스에서 고온의 플라스마가 뿜어져 나와 샤다이가 묶인 늪에, 물 바닥에 명중했다.

그 결과 거대한 수증기폭발이 일어났다. 액체가 순간적으로 기체로 되는 상전이 과정 속에서 일어난 급작스러운 부피 변화다. 또한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에너지 변화도 있었다. 샤다이의 방어막과 장갑은 열에너지에 대해선 엄청난 방어력을 지니지만, 운동에너지에 대해선 그저 뛰어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

-씨바랄! 말 좀 하고 쏘라고.

-말했잖아.

파트리샤는 구시렁대면서도 만신창이가 된 샤다이들에게 사격을 퍼부어 마무리를 지었다. 이미 방어막이 날아가고 너덜너덜한 장갑에 코일건과 미사일이 날아들자 자욱한 증기를 뚫고 푸른 팝콘이 튀겨진다. 바닥에 처박힌 리퍼 하나가 어떻게든 일어나려 하지만 빈우는 놈의 뒤통수에 탄환을 명중시켜 다시 끓어오르는 진흙탕에 영원히 눕혀줬다.

-잠깐, 지금 나 말고 도시 관리자 터미널에 접속한 사람?

사격을 하다 말고 빈우가 갑작스레 질문했다.

-전 안 했습니다만.

아룹은 권한을 받았지만 지금 쓰진 않았다. 리퍼들을 찾기 위해 조명이나 스프링클러들을 썼다고 한다.

-저도 안 했습니다. 이 새끼가 막아?

위르겐은 지금 쏘느라고 바쁘다.

-어라아? 권한 줬었어요?

파트리샤 역시 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두 안 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우는 방금 도시 관리자로부터 이상 징후를 하나 포착했다. 시 외곽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연구용 지열 발전소로부터 작동 신호가 잡힌 것이다. 쉘터에 대피한 시민들에게선 별다른 소식이 없다. 새로이 들어간 사람도 없고, 나온 사람도 없다.

‘혹시 지금이라도 대피한 사람들일까?’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헤매던 시민들이 지하의 발전소로 들어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시설은 일반 민간구역과는 격리되어 있어서 일반 시민들이 마음대로 출입하긴 힘들다. 그리고 시설과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다고 나온다. 게다가 작동 신호는 잠시 켜졌다가 다시 꺼졌다.

‘조금 수상하긴 한데….’

빈우는 혹시나 싶어 지열 발전연구소의 보안 카메라 쪽으로 접속해 보았다. 그런데 회선이 끊겨있다. 이쪽의 작동 명령에도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 권한이 아예 그쪽으로 넘어갔거나, 물리적으로 끊겼을 가능성도 있다. 경비 로봇이나 청소 로봇들을 가동시켜 봤지만, 이 역시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연구소 소속이 아닌 시 소속의 소방용 로봇들을 연구소 안으로 집어넣었다. 현재 샤다이가 쳐들어온 상황이라, 실제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어도 소방용 로봇들의 권한이 연구소의 보안보다 우선시되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흐음.”

소방로봇들의 신호가 하나씩 끊긴다. 이 정도면 파괴되었다고 봐야 한다. 공격은 치밀해서 로봇들의 카메라 밖에서 이뤄졌다. 빈우는 소방용 로봇들의 온도센서를 보았다. 그리고 연구소 내부의 온도계도 동시에 점검했다. 온도변화는 없다, 즉 고열의 플라스마 병기가 사용된 흔적은 없다는 것이다. 이게 더 골치 아프다.

‘파괴한 범인이 샤다이가 아니라면 과연 누굴까. 물론 이놈들이 플라스마 무기 안 쓰고 파괴했을 수도 있지만….’

-팀장님?

빈우의 침묵이 조금 길었는지, 아룹이 말을 걸어온다.

-아, 미안합니다. 부팀장, 현재 시에 침입한 리퍼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확실히 파악한 것만 스물여덟입니다.

왠지 익숙한 숫자다.

-…정말로요?

-뭐 어쩌겠습니까.

죽자고 드잡이질해서 죽이고 죽였는데, 처음에 봤었던 숫자가 다시 나왔다. 그만큼 샤다이들이 많이 숨어 있었다는 얘기다.

-여기는 뱅가드에 맡기고 이동합시다.

-이동입니까? 어디로요?

빈우는 팀원들 회선으로 목표지점을 보여주었다.

-시 외곽에 있는 지열발전 연구소다. 지각 심층부까지 파이프를 꽂아 스털링 기관으로 발전하는 곳이지. 현재 이곳의 통제권이 정체불명의 세력으로 넘어간 모양이다.

리퍼들이 우글우글하는 마당에 정체불명이라면 누굴까 싶지만, 빈우가 이곳을 버리고 이동한다면 어지간히 위험한 놈들일 것이다.

-어, 음. 누벨 노르망디 지열발전 연구소라면 좀 유명한데 말입니다.

위르겐이 의견을 냈다. 저놈이 저래 봬도 연방 국립대학교 출신의 엘리트다.

-지열발전 연구소지만 실제로는 심층지각 연구소이기도 합니다. 발전용으로 집어넣은 파이프가 한 75km 된다던데요.

-헤엑, 75km? 그러면 거의 맨틀까지잖니.

그리고 파트리샤도 중위다. 나름 장교란 뜻이고, 그녀 역시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네, 행성 채굴에 관한 여러 가지 방법을 개발한 곳이기도 합니다.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같은 층에 핵탄두 집어넣어 폭파시킨 다음 상부 지각을 미끄러지게 해 스카이 후크 같은 것으로 퍼 올리거나, 융용된 맨틀을 직접 빨아올리는 식이죠.

위르겐이 설명할수록 정체불명의 세력이 침투한 지열발전 연구소가 점차 위험하게 보인다. 지각 깊숙한 곳에서 뭔가 음모를 꾸민다면 지상 위에 끼칠 피해는 심각하다.

-알겠지? 현 상황에서 침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리퍼지만, 내부 상황을 보면 플라스마 병기가 쓰인 흔적은 없어 보인다. 샤다이가 아닌 제3세력이 이 혼란을 틈타 움직였을 수도 있고, 샤다이 협력자의 소행일 수도 있다.

샤다이 협력자란 단어에 373팀이 떠올린 것은 워프 비스트다. 인간에 자신의 정보를 뒤집어씌우고 몸을 빼앗은 고대 샤다이들. 놈들이 리퍼와 연계해서 지열발전 연구소를 차지하려 했다면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자, 내가 신호 보내고 뱅가드가 강하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는 빠진다.

373팀은 대충 사격을 가하며 이동 준비를 했다. 전차포에 버금가는 플라스마가 날아와 건물을 휩쓴다. 팀원들은 녹아 흘러내리는 구조물을 피하며 응사했고, 리퍼들은 그것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다가온다.

-신났네, 개새끼들.

위르겐은 녹아내린 포방패를 집어던지며 히죽 웃었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매복과 함정에 빠져 죽은 동료들 때문인지 놈들은 악에 받쳐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방사선 경보가 울렸다. 순간 입자빔포의 폭발이 떠오른 위르겐이 놀라서 소리쳤다.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나 아냐.

멀쩡한 팀장의 대답에 위르겐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네요.

-다행은 니미, 좆됐다.

순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던 위르겐은 장갑복의 센서 반응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챘다. 그리고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씨이벌.

상공에서 점프 반응과 함께 리퍼 장갑복들이 점프해 나타나고 있었다. 발 가르단 하스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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