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10화 (208/301)

210화

-씨바랄! 이것들 왜 지금 이 타이밍에 오는 거죠? 궤도는 우리가 먹었는데!

파트리샤가 욕지거리를 하며 대공사격을 했다. 태스크 포스 373이 리퍼와 싸우던 도시의 상공으로 리퍼와 스팸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궤도상의 전투가 아군의 우세로 확실히 넘어간 지금으로선 리퍼들의 점프 기습은 자살 행동이나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리퍼라 해봤자 고작 장갑보병, 궤도 포격에 노출되면 순식간에 지워진다.

-답 나왔네. 여기 있던 놈들이나, 지금 점프해온 놈들이나 전부 우리 발을 묶기 위해 싸우고 있다.

빈우의 입자빔포 공격에 낙하하던 리퍼와 스팸이 동시에 관통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우선 발단은 누벨 노르망디의 궤도상에서 함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에 지상으로 강하한 리퍼들이었다. 빈우는 처음엔 그저 매스 드라이버 공격으로 놈들을 공격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상한 타이밍에 지상으로 내려간 놈들의 의중이 궁금해서 지상팀을 이끌고 강하했다. 그리고 때마침 놈들은 이 도시 쪽으로 이동했다.

‘매스 드라이버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을까, 이 도시를 공격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우리를 유인하는 게 목적이었을지도, 혹시 처음부터 지열발전 연구소로 가는 도중이었나?’

그러나 빈우는 이것 말고도 생각할 게 많았다. 시가전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리퍼들 중에 현장 지휘관이나 VIP는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빈우는 생포해야 할 목표물이나 적의 목적을 특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충 싸우다가 귀환할 생각이었고, 의미 없는 싸움에 뱅가드를 굳이 호출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바로 이상 징후가 발생한 지열발전 연구소다.

‘어떻게든 빠져 나가야 하는데.’

리퍼들을 쓸어버리려면 궤도폭격이 제격이지만, 지금은 그걸 할 수 없다. 이 도시 지하의 쉘터에는 시민들이 대피해 있고, 그 위로는 태스크포스 373이 있기 때문이다.

‘뱅가드를 어디로 부르는 게 좋을까.’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뱅가드를 시가지로 강하시켜 샤다이와 싸우게 하고 태스크 포스 373이 지열발전소로 향하는 방법, 그리고 다음은 그 반대인 방법이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시가지 전투는 정면에서의 힘 싸움이고, 지열발전소의 작전은 꽤 더러운 일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즉, 리퍼 말고도 워프 비스트나 인간 협력자가 있을 수도 있다.

-데이먼 전대장님.

결심을 내린 빈우는 42전단의 장갑보병 전대장인 데이먼 중령을 호출했다.

-이제야 불러주는군. 잊어버린 줄 알았어.

데이먼 전대장 뒤로는 장갑 보병 일개 중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라이노에 입자빔포는 달았습니까.

-무장 교체하고 대기 중이야.

-알겠습니다. 신호 위치로 강하해 주십시오. 중대 하나면 됩니다.

아군 함대가 궤도를 거의 장악한 지금은 뱅가드가 강하해도 샤다이들이 요격하기 힘들다.

-좋았어. 부전대장인 요한 비트겐슈타인 소령 편으로 보내겠네. 강하 후엔 자네가 지휘하게.

-아닙니다. 실은 373팀은 지열발전소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응?

373팀이 빠져버리면 도시에 리퍼만 남게 된다. 즉 뱅가드는 강하해서 남은 리퍼들을 처리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373팀의 뒤처리다.

-이걸 보십시오.

빈우가 보내준 지열발전 연구소의 상황을 본 데이먼 전대장의 안색이 굳어졌다.

-으음, 발전용 파이프가 맨틀까지 뚫고 내려갔군. 여기에 샤다이가 무슨 수작이라도 부린다면···.

-엄청난 지진이 올지도 모르죠.

-알겠네, 시가전이야 우리 전문이지.

데이먼 전대장의 말대로 연방의 시가지에서 외계 종족과 싸우는 시가전은 뱅가드의 장기다. 오히려 지열발전소에서 일어날 민감한 작전들은 전문이 아니다. 이런 것은 단검뿔 토끼나 실리콘 나이트가 나설만한 일이다.

“강하다. 이 새끼들아.”

뱅가드의 전대장이 뒤돌아서며 소리치자 그에 호응해서 뱅가드 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어벤져를 잔뜩 실은 그라디우스와 강하포드가 동시에 사출된다. 탑승하기 전 그들이 본 것은 모함인 원더풀뷰티풀의 격납고다. 이제 지상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고 그들이 보게 될 것은 지옥일 것이다. 만약 지옥이 아니라면 지옥으로 만들기 위해서 강하하는 놈들이 바로 이 뱅가드 들이다.

-대단하군.

비트겐슈타인 소령의 혼잣말이다.

-그렇죠, 저 새끼들 악착같이 덤비는데요.

옆의 대원이 거든다. 궤도상의 리퍼들은 42전단과 주둔함대에 밀리면서도 끈질기게 저항했다. 형편없이 빗나가긴 했지만, 이쪽의 강하하는 뱅가드 방향으로도 포격이 날아온다.

-응? 그게 아냐. 지상의 373팀 얘기다.

임시로 중대 지휘를 맡게 된 비트겐슈타인 부전대장에겐 방금 빈우로부터 지상의 정보가 들어와 있었다. 여기선 373팀이 고작 장갑보병 4명으로 그 열 배에 달하는 리퍼들과 치열하게 싸웠던 과정이 보인다. 쉽게 말하자면 맨몸의 인간 4명이 전차 40대를 상대로 시가전을 한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373팀은 도시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리퍼들을 철저하게 농락했다. 시가전의 달인이랄 수 있는 뱅가드조차 상상할 수 없는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을 총동원해서 말이다. 덧붙여 강하한 뱅가드가 쉽게 싸울 수 있도록 꾸며놓은 장치에 대한 것들도 넘겨주었다.

-373팀의 정보다. 모두 숙지해.

중대 회선으로 이 정보를 공개하자 다들 탄성을 터트리며 감탄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못했다. 이제 곧 지옥문이 열릴 시간인 것이다.

* * *

-온다!

위르겐이 자신의 본가인 뱅가드의 강하 포드를 보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뱅가드의 강하포드는 조금 과격하게 강하한다. 착지 직전 몇 단계 감속하는 다른 부대들과 다르게 뱅가드의 포드는 그냥 낙하 속도 그대로 쌩으로 땅에 ‘착지’한다. 그렇게 포드 자체가 일종의 궤도 포격이 되어 주변을 쑥밭으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대원들은 포드의 명중 전에 바깥으로 나가 스스로 감속해서 안전하게 마무리 강하를 한다. 허나 나가는 게 너무 느리면 탈출을 못 한 채 자신도 땅에 명중해 버리고, 너무 일찍 나가면 ‘쿠션’을 받을 수 없다.

-착지착지착지

위르겐의 통신회선으로 뱅가드의 공용 통신이 들린다. 근처에 강하 포드가 착지하니까 빨리 피하란 경고다. 물론 위르겐은 그게 거짓말이란 것을 잘 안다. 아무리 자신이 뱅가드 출신이라도 해도 차마 그것을 착지라곤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곧이어 뱅가드의 강하 포드가 땅에 ‘착지’해서 그 운동 에너지로 주변을 대폭파한다. 그리고 그 하늘로 솟구치는 파편들을 쿠션 삼아 뱅가드의 어벤져들이 강하한다. 감속용 부스터들이 펑펑 폭발하며 속도를 늦추고, 크고 작은 파편들을 방패로 받으며 어벤져들이 내려온다. 그리고 마지막 착지와 동시에 사방으로 충격흡수젤이 터져 나온다.

-욕봐라 새끼들아.

위르겐은 리퍼들 방향으로 날아가는 자신의 전 직장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지하철 입구로 내려갔다. 이제 373팀은 이 지하철을 타고 시 외곽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런데 지하철 역사에서 먼저 내려간 팀원들이 도로 우르르 올라오고 있었다.

-왜요? 뭡니까.

-차 끊겼어. 올라가.

빈우의 손짓에 위르겐이 방향을 돌렸다.

-운행 안 한답니까?

-아니, 튜브가 작살났다. 이래선 제 속도 못내.

이 지하철은 진공 튜브를 사용하는 방식이라 공기의 마찰을 신경 안 쓰고 고속을 낼 수 있다. 빈우는 이 지하철을 징발해서 초속 5~6km 정도로 가속해 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막상 타려고 보니 튜브의 외부로 드러난 구간이 리퍼의 엄한 공격으로 끊긴 것이다. 물론 이래도 지하철의 운행은 가능하지만, 진공을 유지 못 하면 공기 저항을 그대로 받아야 하고, 목표 속도를 낼 수 없다.

-그럼 이제 어쩝니까.

-엘리베이터 타자. 저 건물.

위르겐의 질문에 빈우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구름을 뚫고 올라간 고층 빌딩이 있는데 아직 건축 중이다.

-화물 운송용 자기 엘리베이터가 있다.

그러면서 373팀원들은 정차된 버스를 지나 건물로 우르르 달려갔다. 지하철을 나와 버스를 지나 다시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는 광경이 위르겐으로 하여금 문득 학창 시절을 연상케 했다. 잠시 아련한 감성이 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손을 내밀고 있는 팀장 빈우의 모습이었다.

-위르겐.

그의 부름에 위르겐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빈우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두뇌 통신으로 넘어온 것은 싸한 반응이었다.

-뭐해 등신아. 핵탄두.

-…예? 아예.

주섬주섬 핵탄두를 꺼내던 위르겐이 한 가지 물어보았다.

-촉촉한 거요, 바삭한 거요?

-당연히 바삭한 거지 미친놈아, 여길 코발트로 절일 셈이냐.

빈우의 핀잔에 위르겐은 머쓱하며 탄두에 씌우는 방사능 오염용 탭-뱅가드 속칭으로 코발트 콘돔을 도로 백팩에 집어넣었다.

-오케이, 다들 타. 위로 올라가자.

빈우는 핵탄두를 원격 세팅해서 지하층 아래로 던졌고, 373팀원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자기레일의 힘으로 위로 올라가다가 목표층에서 멈췄다.

-자, 다들 가속에 대비해라. 핵탄두의 폭발로 엘리베이터를 사출해서 스카이 후크 탈 거다.

팀장의 설명에 엘리베이터 안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다.

-……씨바랄.

그 정적을 깬 것은 파트리샤였지만, 아무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잠깐만요, 여기 근처에 쉘터 없어요? 핵 터트려도 됩니까?

멋모르고 코발트 탭을 씌우려 했던 위르겐은 이젠 오히려 자기가 허둥대며 항의했다. 하지만 빈우는 이미 다 확인했다는 조사 결과를 띄워주었다. 건설 중인 이 건물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좋아, 방화벽 닫는다.

-아니, 잠깐만요!

빈우는 파트리샤의 항의를 들은 체 만 체 엘리베이터 통로의 격벽을 닫았다. 통로 층층마다 화재를 대비한 방화벽들이 쳐지고, 373팀이 탄 엘리베이터 위로도 방화벽이 닫혔다. 이어서 빈우는 엘리베이터의 관리 프로그램에 디버그 모드로 들어가 최고출력으로 상승함과 동시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자기 레일은 엘리베이터를 고속으로 쏴 올리려 했지만 브레이크와 격벽이 그것을 막고 있었다.

-다들 내가 보내준 작전 이해했지?

-팀장님, 이런 건 사전에 조금, 하아···.

오죽했으면 너그러운 아룹마저 쓴소리를 할 정도다.

-죄송합니다. 상황이 급해서요. 지금 안 하면 못 탑니다. 격발.

그리고 빈우는 핵탄두를 터트렸다. 지하에서 폭발한 핵탄두는 엘리베이터 통로를 통해 핵폭풍을 밀어 올렸다. 이 폭풍은 방화벽들을 부수며 나름대로 감소되었지만, 그래도 마치 화약식 총기의 가스처럼 태스크 포스 373이란 총알을 위로 발사하려 했다. 동시에 엘리베이터 위의 방화벽과 옆의 브레이크가 풀리며 아래쪽의 폭풍까지 받은 총알은 위로 급가속해서 올라간다.

-건물 붕괴한다.

빈우는 엘리베이터 탄환이 꼭대기에 부딪히기 전에 건물 상부를 자가 붕괴시켰다. 그리고 갑자기 생긴 총구로 373팀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발사되었다.

-정신 차려, 스카이 후크에 탄다.

엘리베이터에서 나갈 필요는 없었다. 엘리베이터 자체가 가속도를 못 이기고 붕괴했기 때문이다. 빈우의 말대로 저 멀리 모니카가 만들어서 늘어트린 스카이 후크가 있었다. 그것은 지금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행성 저궤도에서 회전하는 스카이 후크는 현재 누벨 노르망디의 공전, 자전 속도에 맞춰 회전하고 있기에 지금 회전 방향이 일치한 이 순간만큼은 잠시 멈춘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빈우가 이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서둘렀었다.

-날아! 이동해.

순식간에 고고도까지 날아오른 태스크 포스 373은 각자 제트팩을 써서 스카이 후크까지 날아갔다. 얼기설기 임시로 엮어놓은 발판에 373팀원이 간신히 올라타자 스카이 후크의 회전방향과 누벨 노르망디의 자전방향이 바뀌며 둘 사이의 거리가 급격히 멀어진다. 파트리샤는 자신이 발사된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찮아. 미리 말해놨어.

빈우는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지만 파트리샤는 소름이 돋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쉴 틈 없다. 다들 강하 준비해. 목적지는 지열발전 연구소다.

빈우의 말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이번에 정적을 깬 것은 부팀장인 아룹 라마누잔 원사였다.

-제가 나름 군 생활 좀 했다고는 자부합니다만, 팀장님 같은 십새끼는 처음 봅니다.

-하루 이틀 같이 산 것도 아닌데 섭섭한 말씀을.

-그 십새가 하루하루 다르게 일취월장한다는 말이죠.

어쨌거나 태스크 포스 373은 졸지에 저궤도 비행을 해서 목적지인 지열발전 연구소까지 순식간에 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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