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자, 슬슬 강하 준비.
스카이 후크에 타서 이동과 가속을 한 373팀은 다시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여기서 어영부영하다간 스카이 후크에 탄 채 다시 대기권을 돌파해버린다.
-오늘 강하 몇 번 하는 거야. 다들 추진제 여분 있어요?
파트리샤의 말에 팀원들 저마다 제트팩의 추진제 연료를 체크했다. 지상에서 작전을 한다면 모를까, 방금의 비행에 지금의 강하까지 더하면 나중에 탈출할 때는 제트팩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 이번 강하에선 연료를 조금 적게 쓸 거야.
그러면서 빈우는 팀이 지열발전 연구소로 강하할 경로를 보여주었다. 바로 강하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소를 중앙에 두고 주변으로 큰 원을 그리며 비스듬히 낙하하게 되어있었다. 팀원들 모두 강하를 한두 번 해본 사람이 아니라 이 궤도가 주로 어떨 때 쓰이는 궤도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팀장님, 진심이세요?
이번 강하에 무엇이 함께하는지 아는 파트리샤가 확인차 질문했다.
-물론.
어디를 가도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라고 자신할 수 있는 파트리샤였지만, 빈우에게는 언제나 한 수 뒤처지는 느낌이다.
-거기 누가 있는지 어떻게 알고요?
-일단 연구원이나 직원, 일반 시민들이 없는 것은 확실해. 책임은 내가 진다.
-42전단에는 뭐라고 하실 건데요? 거기서 OK 할까요?
-거기 바쁜데 왜. 블랙 랜스에 요청할 거야.
블랙 랜스는 태스크 포스 373의 모함이라서 빈우의 명령하에 있다. 즉 요청이고 뭐고 할 거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별수 없이 입맛 다시며 뒤로 물러서는 파트리샤에게 위르겐의 개인 통신이 들어왔다.
-누님, 왜 그리 심각해요? 아까는 지하층에 핵탄두까지 떨어트렸는데.
-글쎄다. 요즘 팀장님 분위기가 좀 수상해서 말이지.
-수상해요?
-그래, 아나스타샤하고 분위기가 뒤숭숭하단 말이야. 눈치 못 챘어?
파트리샤의 말에 위르겐은 빈우와 아나스타샤 간의 분위기를 조금 떠올려 보았다.
-으음, 그러고 보니 조금 차가운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물론 빈우가 아타스타샤를 딱히 매몰차게 대하는 기색은 없었지만 워낙에 살갑게 지내던 주인과 메이드 사이였다 보니 요즘엔 더욱 그렇게 보였다.
-이번 작전 끝나고 레드우드 사령관님한테 한 소리 해야겠는데.
팀장의 이상 징후는 팀으로 바로 이어진다. 그런 걱정을 하는 파트리샤에게 빈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옆에 있는 아룹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둘만의 개인 통신인지 파트리샤와 위르겐은 들을 수 없었지만, 몸짓이나 제스쳐를 보면 대화하는 게 확실했다.
‘둘만의 비밀 대화라….’
부팀장에게만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아룹 개인에게만 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파트라샤와 위르겐이 알아선 안 되거나 알 필요가 없는 일일 것이다. 호기심 많은 파트리샤는 그쯤에서 신경을 껐다.
-더 이상 상승궤도에 들어가면 안 돼. 이제 강하한다.
빈우의 말에 팀원들이 바닥 가장자리로 갔다. 태스크 포스 373의 지상팀을 태운 스카이 후크는 완만하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 구간이 강하하기엔 거리나 고도가 적당한 지점이다.
팀원들은 전부 강하 준비를 마쳤다. 목표지점의 최종 확인 후 맨 먼저 빈우가 뛰었고, 다음이 파트리샤, 위르겐의 순서, 마지막으로 부팀장인 아룹이 점프했다.
-거리 유지해, 대공 사격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지상팀이 완만한 원형 궤도로 하강하는 데에는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목적도 있다. 그러나 지열발전 연구소에선 딱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4기의 장갑보병들은 목적지를 향해 점차 고도를 낮춰갔다.
-함장님.
-알겠습니다.
사전에 연락해놓은 것인지 빈우의 통신 한 번에 오르 함장이 블랙 랜스에서 포격을 가했다. 373 지상팀이 강하하는 지열발전 연구소에 블랙 랜스의 코일건들이 내리꽂히고 있는 것이다.
-유후!
옆으로 지나가는 코일건의 폭풍에 위르겐이 탄성을 지른다. 착탄지점에서 섬광과 함께 폭발이 일어난다. 이어서 폭풍과 파편이 위로 솟구친다.
-돌입!
강하하던 373 지상팀은 먼지와 파편 속으로 들어갔다. 장갑복 곳곳에서 충돌음이 들린다. 아까 빌딩에 포격을 가해서 무너지는 건물 파편으로 감속한 것과 같은 방법이다. 그것 말고도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적의 고개를 꺾어버리고 시야를 가린다는 노림수도 있다. 마지막에야 제트팩을 써서 착지한 팀원들은 즉시 대형을 바로 잡았다. 빈우와 파트리샤가 앞섰고, 위르겐과 아룹이 후열에서 엄호하며 따라온다.
-작살났구먼.
원래는 연구소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아룹이 말했다.
-아직 적은 없습니다.
파트리샤의 센서에 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착지하자마자 땅바닥을 뱀처럼 기어가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위르겐.
-레이저포를 광역 조사했는데, 먼지만 탑니다. 샤다이는 없습니다.
-지상에는 없겠지.
빈우는 무너진 잔해 사이에 위치한 거대한 구멍으로 다가갔다. 지름 10m, 깊이 75km에 달하는 구멍이다. 연구소 자리에는 이런 구멍이 몇 군데나 있었다.
-발전용, 심층부 탐사용….
빈 구멍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용하고 있었다. 발전기가 달린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측정용 기기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그때 뒤에 있던 아룹이 갑자기 코일건을 쐈다. 그 사격은 빈우 3시 방향에 있던 거대한 파이프를 찢어발겼고, 빈우는 즉시 스핑크스를 방패 모드로 해서 그쪽을 향하며 뒤로 물러섰다.
파이프에 숨어있던 적은 아룹의 공격을 맞고 바깥으로 튕겨져 나왔지만, 그 와중에도 빈우에게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스핑크스는 아무것도 막지 못했다. 플라스마를 묶기 위한 자기장은 고속의 텅스텐 탄자를 막지는 못했고, 그 다음에 위치한 컨커러의 방어막이 이를 튕겨냈다.
사격을 가한 그라인더는 재빨리 파이프 아래로 들어가 내려갔고, 빈우는 그 위로 아까 감속할 때 썼던 포방패를 던졌다. 안에서 올라오는 코일건 사격에 방패가 하늘로 솟구친다. 그다음 빈우는 스핑크스를 파이프 안으로 넣고 플라스마를 쐈다.
-적은 그라인더다!
-네? 그, 그라인더라면?
빈우의 말에 위르겐이 허둥댄다. 하지만 같은 그라인더를 사격한 아룹은 태연했고, 파트리샤는 그런 아룹의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이 아까 했던 대화를 짐작할 수 있었다. 팀장인 빈우는 이런 사태를 예측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 그라인더. 단검뿔 토끼가 쓰는 연방 최고의 장갑복이잖아.
그렇게 말한 빈우가 공터에 수류탄을 하나 던졌다. 그리고 폭발의 반향음과 진동으로 주변을 스캔해 보았다. 지상에 매복은 없어 보인다. 달리 말하면 이 정도에 발각될 매복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아군이란 말입니까? 방금 우리가 아군을 쏜 겁니까?
위르겐은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특수부대라고 해도 녀석이 속한 뱅가드는 꽤 깨끗한 싸움을 한다. 자기들 말로는 개싸움이라고 하지만, 다른 팀원들이 보기엔 충분이 정정당당하고 떳떳한 싸움이다.
-아군? 글쎄다, 부팀장?
빈우의 질문에 아룹이 어깨를 으쓱한다.
-어차피 이 바닥에서 아군 아니면 적이죠. 하지만 팀장님 머리에 총구 겨눈 이상 아군 같아 보이진 않네요.
-어, 그래도….
위르겐의 머릿속엔 방금 궤도폭격을 한 블랙 랜스가 떠올랐다. 그래서 혹시 373에게 공격받은 그라인더들이 그것 때문에 자신들을 적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닿았다.
-잘 들어 위르겐. 방금 그라인더의 모습을 한 게 모습을 흉내 낸 적성 종족이든, 진짜 연방군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지금 같은 수상한 상황에선 아군이라고 밝히지 않는 이상 적이다. 어벤져의 피아 식별에 그라인더가 어떻게 잡혔어?
빈우의 그 말에 위르겐이 움찔했다. 방금 그라인더는 철저하게 모습을 감추고 있었고, 파이프 바깥으로 나온 다음에도 위르겐의 센서에는 노란색, 즉 정체불명기로 잡히고 있었다. 아군기라면 아군의 신호가 있어야 하는데 저 그라인더에는 그게 없었다.
-그리고 우리 공격을 받았다면 즉시 아군이 있다고 밝혔어야지. 쏘지 말라고.
-어머, 우리 숫총각이 이런데도 경험이 없었구나? 딱 보면 알겠네. 얘들은 정체를 감추고 비밀작전을 하는 부대야. 주로 바깥으로 알려져선 안 되는 더러운 일을 하지. 그래서 이런 놈들은 입막음을 위해 목격자를 제거하기도 해. 그게 같은 아군이라도.
파트리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열심히 파편 사이를 기어 다니며 적을 찾고 있었다.
-위르겐, 내가 쏜 것은 저놈이 먼저 팀장님을 조준했기 때문이다.
아룹의 말에 위르겐은 정신을 다잡고 총을 고쳐 잡았다. 이제 정체불명 그라인더가 모습을 드러내면 바로 갈아버릴 결심이 든 것이다.
-부팀장, 이놈들 역시 그놈들 같아 보이죠?
-네, 보안국 쪽 놈들 같습니다.
물어보는 빈우와 대답하는 아룹은 꽤 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비밀부대라 해도 이들이 정말 단검뿔 토끼일 리는 없다. 만약 그랬다면 특수전 사령부 직속인 태스크 포스 373에게 반드시 정보가 갔을 것이고, 설령 비밀부대라면 같은 단검뿔 토끼 소속인 아룹에게 이 자리를 피하라고 어떤 방법으로든 경고를 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들어맞는 부대는 하나밖에 없다. 바로 보안국이 비밀리에 운용하는 작전팀이다. 아룹이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이들은 단검뿔 토끼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했으며, 그렇다면 그라인더를 입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리고 보안국인 태스크 포스 373과 애매모호한 악연이 지긋지긋하게 이어지고 있다.
-팀장님이 군사정보국이나 정보사령본부 쪽으로 연락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안될 거 알잖습니까. 이놈들 리퍼 편이 확실합니다.
놈들이 태스크 포스 373의 공격을 받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373 지상팀에게 아무런 통신도 없이 적대행위를 한 게 문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이런 부대는 은밀하고, 끈질기다.
-으음, 리퍼에게 공격받는 연방직할령에 있는 보안국 팀이라면 어떤 말 못 할 이유가 있을까요? 협조나 내통? 아니면 샤다이 뒤통수치기 위해서 밑밥 깔고 준비 중? 그럼 우리가 판 엎은 건가?
파트리샤가 하는 말은 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맞지 않는다.
-샤다이와 은밀히 접촉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냐. 종종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군사정보국 관할이고, 그렇다면 원래 그쪽 소속인 내가 못 알아볼 리 없어. 어쨌든 실력은 단검뿔 토끼급이다. 다들 긴장해.
빈우가 그 말을 하기도 전에 팀원들은 이미 다들 긴장하고 있었다. 단검뿔 토끼라면 연방 최고의 대원들이고 그들이 입는 그라인더 역시 최강의 장갑복이다. 한 명 한 명이 전함에 필적하는 위험성을 가진 놈들인 것이다. 이런 놈들과 싸우느니 차라리 아까 리퍼들과 싸우는 게 좋을 뻔했다.
-폭발이다! 지하야.
파트리샤가 경고했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주변의 소리와 진동을 수집하던 그녀는 지하 깊은 곳에서 들리는 폭발을 들은 것이다.
-제길. 땅을!
빈우가 혀를 차며 제트팩을 써서 뒤로 뛰었다. 태스크 포스 373이 선 땅이 갈라지고 있었다. 놈들은 파이프와 파이프 사이의 지반을 터트려 일부러 땅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때 정확한 코일건의 저격이 빈우를 공격했다. 공중에 뜬 컨커러는 공격을 막았지만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위로 무너지는 지반이 덮쳤다.
-팀장님! 저 새끼가!
위르겐이 즉각 저격지점을 향해 대응 사격을 날렸다. 저격한 놈이 숨어있을 법한 위치 주변을 중포로 쓸어버릴 때 뒤에서 위르겐에게 저격이 날아왔다. 중포병 사양의 어벤져는 몇 발 얻어맞다가 엄폐했지만 이미 레이저포의 방열판이 박살 났다.
-안 맞네. 썅것.
파트리샤도 코일건을 쐈지만, 이놈들은 마치 두더지 잡기처럼 들락날락하며 이쪽의 혼을 빼놓고 있었다.
-대응하지 마, 뒤로 빠져.
아룹의 말에 파트리샤는 즉시 뒤로 빠졌다. 그러자 그녀의 왼쪽 편으로 돌아오려는 그라인더들이 다시 파편 더미로 몸을 숨겼다. 곧이어 위르겐의 미사일이 그쪽 파편 더미를 날려버렸지만 이미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아군으로 있을 땐 믿음직한데-
어느새 빈우가 일어나 파트리샤 뒤로 다가가 그녀와 합류해 사격하고 있었다.
-적으로 만나면 이만한 개호로잡놈이 없지요.
스스로 개호로잡놈이라 커밍아웃한 아룹이 위르겐 쪽으로 가려다가 저지당했다. 좌우의 사격이 겹쳐서 몸을 뺄 수 없었다.
-위르겐 고개 내밀지 마, 이 사격은 미끼다. 고출력으로 한 놈이 저격한다.
단검뿔 토끼의 방법을 훤히 꿰뚫고 있던 아룹 덕분에 장갑 믿고 나서려던 위르겐의 머리는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벤져가 엄폐하고 있던 파편은 코일건에 깎여 점점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