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12화 (210/301)

212화

-좆됐네.

파트리샤가 한숨을 쉬었다. 놈들은 인필트레이터가 숨거나 튀어나올 법한 곳을 미리 저출력 산탄으로 갈아대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맞아도 가렵지도 않을 공격이지만, 변형중이라면 꽤 아플 것이다.

-좆됐지.

아룹이 맞장구친다. 몇 발 쏴보니 바로 감이 잡혔다. 저놈들은 실제로 단검뿔 토끼급의 실력들이다. 비슷한 실력에 비슷한 장비, 그러나 숫자는 저쪽이 많다. 대략 일개 소대 이상. 더욱이 놈들 역시 이쪽의 실력과 작전을 대강 파악하고 있는지 마구 들어오기보다는 철저히 견제를 하며 갉아먹기로 나왔다. 게다가 전자전 장비도 있어서 이쪽의 통신회선을 자꾸 방해하려 한다.

-좆또.

위르겐이 이를 갈며 수류탄을 던졌다. 공격용이라기보다는 조준과 탐지를 방해하는 전파 산란용 수류탄이 터지자 근처에 노이즈가 가득 찼다. 그리고 그사이 위르겐은 제트팩으로 날아 빈우 쪽으로 합류했다. 어차피 이런 건물의 파편들은 코일건에 대해 별다른 방호력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시야를 가려도 잠깐이다. 그래서 위르겐은 몇 방은 더 맞더라고 합류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팀장님?

빈우는 무너진 땅 아래에 숨어서 총구만 빼꼼히 내밀어 응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르겐이 거기에 도착했을 땐 빈우는 없었다. 바위 더미 사이로 입자포 견착용 로봇암이 혼자서 코일건을 잡고 사격하고 있었다. 빈우는 아마 저 악마의 똥구멍으로 보면서 원격 사격 중일 것이다.

그때 팀원들의 두뇌 통신으로 하나의 사선이 느껴졌다. 이쪽으로 사격이 가해질 테니까 피하란 경고다. 동시에 땅 밑에서 플라스마 포격이 올라왔다. 땅 밑으로 숨어 들어간 빈우가 스핑크스로 긁은 것이다. 동급의 방어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화력이 지하에서 솟구쳐 올라 적 진형을 무너트렸다. 자욱한 열기 사이로 하반신이 녹아버린 그라인더가 동료의 부축을 받아 뒤로 물러선다. 부축하는 놈도 좌반신이 불타 비틀거리고 있다.

-위르겐, 지정한 곳부터 갈겨!

빈우의 명령에 흙더미를 걷어차고 일어난 위르겐이 포신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그라인더를 무시하고 중코일건을 돌려 대형으로 성형된 탄두를 최대출력으로 쐈다. 멀리서 저격 위치에 있던 그라인더가 방패째 꿰뚫려 어깨를 맞고 날아간다. 위르겐을 노리던 그라인더는 파트리샤의 코일건 견제에 도로 물러섰고, 그 자리에 정확한 아룹의 공격이 날아든다. 장갑에 피해가 쌓인 녀석은 할 수 없이 제트팩을 써서 아예 멀찍이 뒤로 날아갔다.

-어쩔까요? 뱅가드에서 지원이라도 부릅니까? 큿!

그렇게 말하던 위르겐은 또 다른 코일건 공격을 방패로 막으며 아룹에게 합류했다. 그를 엄호하던 아룹은 측면에서의 공격에 사격을 멈추고 위르겐과 함께 뒤로 물러섰다. 그때 우회한 파트리샤가 경질화된 왼팔을 방패 삼아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코일건을 튕겨내며 달려 나가 아룹 쪽을 쏘던 그라인더와 근접전을 시작했다. 파트리샤의 공격을 쳐낸 그라인더가 반격하려 했지만, 놈의 다리에 빈우의 코일건이 명중했고, 휘청이던 그놈 뒤에서 다른 그라인더가 등장하자 이번엔 파트리샤가 망설임 없이 바로 뒤로 빠졌다. 그 자리에 빈우의 플라스마 포격이 작렬했고, 두 그라인더는 증발한 발포방패를 버리며 빈우에게 대응사격을 날렸다.

-뱅가드 지원이라…. 다행히 뱅가드 쪽 시가전은 잘 되어가는군.

빈우의 말대로 태스크 포스 373을 이어받아 리퍼와 시가전을 벌인 뱅가드는 전임자처럼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다. 주로 라이노의 입자빔포 공격으로 견제를 하면서 거리를 벌렸고, 어느 정도 거리를 확보함과 동시에 목표지점에 쉘터와 피난시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선 바로 궤도포격으로 쓸어버렸다. 궤도상이 아군의 것이 되면서 가능한 일이다.

-그건 그렇고. 저 그라인더들, 보안국 소속이라면서요. 얘기해 보면 안 되겠습니까? 투항하라고 해봅시다.

위르겐의 질문에 세 사람은 쓴웃음을 지었다.

-위르겐, 저놈들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놈들이다. 내가 보안국이라고 해서 저놈들이 보안국이 되는 게 아냐. 상부에선 철저하게 부정할 거다.

-그게 말이 됩니까, 아무리 정체를 숨겼다 해도 아군 아닙니까. 같은 인간끼리 싸워서 무슨 말이-

위르겐은 말을 끝내지 못하고 나동그라졌다. 아룹이 거세게 걷어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쪽으로 플라스마가 날아왔다.

-리퍼다.

아룹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플라스마 사격을 플라스마 도끼의 자기장 날 부분으로 막으며 위르겐을 보호했다. 그리고 재빨리 사격이 날아온 쪽으로 반격을 했다. 위르겐을 쏜 리퍼 역시 방패를 들고 방어막 너머로 아룹을 노려보았다.

-아오, 썅!

빈우는 그라인더 근처를 노리고 스핑크스를 쐈다. 그런데 이미 그쪽에도 리퍼가 있었다. 놈은 컨커러가 쏜 플라스마를 가볍게 튕겨내곤 반격으로 플라스마를 쐈다. 사격모드에서 방패모드로 전환할 시간이 없었던 빈우는 그 공격을 컨커러의 방어막으로 막아 냈다. 그리고 방어막이 소진된 사이로 그라인더의 사격이 쏟아진다.

-독하다.

빈우는 할 수 없이 건물 모퉁이를 돌아 숨었지만, 엄폐물은 순식간에 박살 났다. 더구나 새로이 나타난 리퍼들은 그라인더와 연계해 태스크 포스 373을 압박해오고 있었다.

-팀장님, 지원요청 정말 안 할 거예요?

파트리샤의 질문에는 서서히 다급함이 올라왔다. 애초에 이번 작전은 지열발전 연구소에 잠입한 적들을 잡아내기 위해 강하한 것이었다. 태스크 포스 373만으로 할 수 없다면 다른 지원 병력을 부르는 게 옳다. 궤도상을 장악한 지금이라면 더 이상 위험할 일도 없으니까 방금 시가전에서처럼 뱅가드 장갑보병을 부르면 될 일이다.

-예에? 아저씨들. 대답 좀 해봐요.

그러나 빈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룹의 태도 역시 조금 이상했다. 원래 이럴 때 의견을 내는 것은 부팀장의 몫인데 그마저 조용한 것이 이상하다. 파트리샤는 불현듯 강하 전에 빈우와 아룹이 모종의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을 떠올렸다. 잠시 틈을 두고 나온 빈우의 말은 조금 뜻밖의 내용이었다.

-…파트리샤, 이번 작전은 태스크 포스 373 단독으로 하는 게 좋을 거다.

빈우의 말에 파트리샤가 조용해진 반면 위르겐은 대번에 시끄러워졌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그라인더들이 리퍼와 짝짜꿍 붙은 게 안 보이십니까? 말씀하신 대로 저거 샤다이 내통자나 워프 비스트일 가능성이 있다면 더더욱 지원군을 불러야지요.

더구나 사사건건 태스크 포스 373을 방해했던 보안국이 이번 일의 배후라면, 놈들을 싸그리 솎아낼 기회인 셈이다.

-그래, 만약 뱅가드가 강하한다고 하자. 우리처럼 소규모 팀이라면 모를까, 뱅가드가 온다면 저놈들 확실히 눈치챈다. 그리고 도망칠 거다.

빈우의 말에 위르겐은 아차 싶었다. 저놈들의 부대 성격상 불리하거나 확실한 증거가 잡힐 상황이 되면 바로 후퇴할 것이고, 그러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지금까지 있었던 전투 기록을 제출해봤자 보안국에서 발뺌하려면 할 수 있다. 그래서 빈우는 지금 놈들에게 허점을 보여 가며 확고부동한 증거를 잡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에 42전단이 연루되면 곤란해. 42전단은 샤다이를 무찌를 창이다. 이런 얼룩이 묻으면 흠이 생기고, 흠이 생기면 뒷말이 생긴다.

42전단은 샤다이를 공격하기 위해 연방 각지에서 긁어모은 드림팀이며 엄연히 정규군이다. 만약 정보사령본부의 어두운 작전들과 엮이게 되면 설령 잘못을 저쪽이 저질렀다 하더라도 필히 꼬투리가 생긴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꼬투리라 해도 연방 내부에서 암약해온 워프 비스트들이 그것을 놓칠 리는 없다.

하지만 태스크 포스 373은 애초에 샤다이를 상대로 더러운 전투를 하기 위해 생긴 비밀작전팀이고, 선조치 후보고 형태로 진행되는 것을 감안하고 팀을 꾸렸기 때문에 작전 중 타부서와의 마찰이 있을 경우 쌍방간 적절하게 합의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빈우는 되도록 태스크 포스 373만으로 이번 작전을 완료하고 싶었던 것이다.

-근데에~ 증거를 잡기 전에 이쪽이 뒈지겠는데요?

파트리샤의 말대로 그라인더와 리퍼들은 철저하게 협력해서 덤비고 있었다. 둘 중 하나라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데, 일이 이렇게 되면 제아무리 태스크 포스 373이라 해도 위험하다.

-역시 그렇겠지. 할 때까지 해보다가 안 되면 도망치자.

할 때까지 해보는 것은 빈우 쪽이다. 연이은 전투로 인해 축적된 부상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고, 지열발전 연구소에서의 전투에선 집중 공격을 받고 있었다.

-부팀장, 뒤로 빠져요. 파트리샤, 내 뒤로 붙어.

하마터면 왼쪽으로 둘러 온 우회조에 포위당할 뻔한 아룹과 위르겐이 뒤로 빠지고, 빈우와 파트리샤가 전진해서 포위하러 온 적의 우회조에 반격했다. 그런데 빈우가 대응하자마자 이동하던 그라인더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방패를 내리고 맹렬하게 저항했고, 적의 주공으로 맞서던 조가 제트팩틀 써서 가속, 아룹 쪽을 지나치고 빈우 쪽을 덮쳐왔다.

-썅! 저 새끼들이.

아룹과 위르겐은 요란사격을 하며 뒤로 빠지다가 위로 날아가는 그라인더를 보고 혀를 찼다. 우회조를 치려던 빈우 쪽이 오히려 쌈 싸 먹힐 지경인 것이다. 그러나 빈우는 재빨리 제트팩을 사용해 날아올라 그라인더 둘과 엉겨붙었다. 그리고 서로 진동나이프로 칼질하다가 땅에 떨어졌고, 컨커러와 그라인더 두 기가 근접전을 하고 있는 곳으로 위르겐이 레이저 포를 갈겼다.

엄청난 광량에 노출된 장갑복 셋이 하얗게 빛나며 달아올랐다. 그라인더들은 도망치려 했지만 컨커러가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그 결과 샤다이제 방어막을 가지고 있던 빈우는 무사했지만, 그라인더 둘은 심각한 피해를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

-팀장님!

레이저포를 쏜 위르겐이 소리쳤다. 레이저를 막고 잠시 방어막이 다운된 사이, 코일건의 사격이 빈우의 컨커러를 휩쓴 것이다. 치밀하고 집요한 사격은 장갑 취약부위를 노렸고 이런 경우엔 아무리 장갑복이라 해도 치명상이 된다. 허나 다행히 컨커러는 근접전용으로 만들어져 관절부를 보강했고, 설계 사상이 기존의 연방계열 장갑복과는 틀렸다. 즉 취약부위가 기존의 장갑복들과는 다르다. 거기에 덧붙여 약점만을 노린 그라인더들의 정확한 사격 덕분에 빈우는 심각한 부상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컨커러의 손상은 심각했고, 빈우는 바닥에 쓰러졌다.

빈우를 구하기 위해 나서려던 아룹과 위르겐은 리퍼들이 덤비느라 움직일 수 없었다. 그사이 그라인더들이 쓰러진 빈우 쪽을 향했다. 마무리를 지을 셈이다. 파트리샤는 몸을 변형시켜 반격을 위해 숨어있다가 예측 사격을 맞고 고꾸라졌다.

-씨바랄.

파트리샤는 욕 한 번 세게 뱉은 다음에 인필트레이터의 장갑을 경화시켰다. 그리고 대응 사격을 하려 할 때, 그라인더들이 날아와 근접전에 들어갔다.

-파트리샤, 빠져.

맞서려던 파트리샤는 빈우의 말에 즉시 뒤로 빠졌다. 그리고 그 자리로 차원이 다른 화력의 공격이 쏟아졌다. 상공으로부터 우지의 롱소드가 내려와 지원 공격을 한 것이다. 그라인더 둘이 순식간에 산산 조각이 나 바닥에 뒹굴었다. 이어서 초음속 비행에 따른 충격파가 지상을 휩쓸었다.

-손안에 에이스 포 카드 있고, 호주머니에 한 장 숨겨놓고 있으면 한번 걸어볼 만하지.

빈우의 말에 팀원들이 한숨 돌렸다.

-왜 이제야 우지를 부른 거예요.

파트리샤의 타박에 빈우는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궤도가 안정화 되고, 블랙 랜스 호위도 해야 되고, 결정적으로-.

빈우는 자기가 탐색한 적들의 수와 위치를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저쪽에선 더 이상 낼 패가 없어 보이네.

그라인더에 리퍼. 적들이 꺼낼 수 있는 패는 이제 다 꺼낸 것 같다. 아무리 수가 많다 해도 장갑보병은 보병, 땅개다. 공중에서 날아오는 전투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으왓! 썅!

갑작스러운 우지의 비명에 팀원들이 위를 보자, 리퍼의 플라스마 공격이 롱소드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보였다.

-썅놈이.

그러나 바로 입자빔포의 반격에 대공 사격했던 리퍼가 사라졌다.

-우지! 너무 내려오지 마, 리퍼들의 대공 사격을 조심해.

빈우가 주의를 줬다. 샤다이가 무서운 것은 장갑복 주제에 화력이 전차급이란 점이다. 그리고 조준을 못 하는 스팸이라면 모를까, 리퍼들이라면 롱소드라 할지라도 아차 하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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