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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13화 (211/301)

213화

-저 자식들 빠진다. 우지, 밀어붙여! 지상팀은 견제만 해. 따라붙지 마.

제아무리 날고기는 단검뿔 토끼라고 해도 고속 고화력의 전투기 아래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롱소드가 오자마자 적들은 바로 후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놈들을 생포하진 못했어도 시신과 파괴된 그라인더는 수거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증거품으로서 충분하다. 그래서 빈우는 여기서는 더 이상 추적하지 않고 이것으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공중지원이 롱소드 한 기 뿐이라면 저쪽 그라인더들과 리퍼의 연계에 자칫 격추당할 수 있다. 어차피 놈들의 작전은 막은 것 같고, 저쪽이 먼저 물러날 기미가 보이니 이쪽도 슬슬 빠지면 된다.

-어, 어라아? 저 새끼들 안 빠지는데요?

그런데 파트리샤의 말대로 그라인더와 리퍼들은 어느 정도 물러서다가 대형을 짜고 대응 사격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기미는 없어 보였다.

-좀 이상한데. 버티기 하려면 오히려 우리에게 찰싹 붙어서 우지가 공격하지 못 하게 해야 할 텐데 말이야.

빈우 역시 상대방의 낌새가 이상했다. 저렇게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롱소드의 공격 한방에 싸그리 갈려 나간다.

-우지, 근방에 적기가 없는지 주의해.

행여 신형 샤다이 전투기가 온다면 지금 상황에선 지상팀까지 위험하다.

-알겠습니다.

롱소드는 바로 사격코스로 들어오지 않고 주변을 선회하며 정찰했다.

-위르겐, 레이저포 광역조사.

저렇게 모인 다음에 리퍼들이 은신하고 기습해올지도 모르기에 빈우는 그에 대비하려 했다.

-안 됩니다. 아까 방열판이 부서졌습니다. 마지막 한 방 쏘고 나서 이젠 못 쏩니다.

-저출력으로도?

-아예 나갔습니다.

위르겐은 작동하지 않는 레이저포를 아예 벗어놓고 있었다.

-할 수 없지. 모두 수류탄 얼마 남았어?

빈우는 팀원들의 수류탄 잔량을 체크 했다. 공중 살포에 지뢰로까지 기능하는 이 다목적 폭탄은 치열한 격전 탓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침투경로 예측해서 산탄 사격해. 연막을 만들어.

373 팀원들은 모여 있는 적들과 사격을 주고받으면서도 틈틈이 적이 오겠다 싶은 곳으로 사격해 먼지를 휘날렸다. 아무리 모습을 감추고 있는 샤다이라 해도 발자국이나 먼지의 흐름까지는 감출 수 없다.

-와우, 팀장님. 지하에 뭔가 열원이 있습니다. 너무 커요.

파트리샤의 말에 빈우는 퍼뜩 자기 센서를 살폈다. 그러나 온도의 변화는 없다.

-나 왜 변화가 없지? 센서가 갔나? 위르겐?

-어어, 네. 지하에서 갑자기 온도가 올라갑니다.

-우지!

다급한 빈우의 부름에 우지가 즉시 대답한다.

-네, 연구소 주변 반경 30km의-

-아니, 인마! 저 새끼들 날리라고!

롱소드가 재빨리 하강하자 리퍼 둘이 나서서 방패를 들고 막으려 했다. 그러나 롱소드의 입자빔포는 샤다이 방어막을 무시한다. 포구 폭발이 일어났지만 롱소드는 그런 것은 방어막과 관성제어장치로 무시하며 날아와 리퍼 무리를 꿰뚫었다. 덩달아 뒤쪽의 그라인더들도 박살이 난다.

-야야야야, 온도가 너무 올라가는데에에-

이젠 파트리샤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지경이다. 땅이 흔들리고 곳곳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열기에 대기가 일렁이고 장갑복 안에서도 미미한 온기가 느껴진다.

-저 썅것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빈우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행여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 태스크 포스 373은 블랙 랜스의 궤도 포격으로 지열발전 연구소를 날려버렸고, 지상팀이 직접 강하해 전투까지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이렇게 되고 있다는 것은 이런 사고를 치는 놈들이 따로 있거나, 태스크 포스 373이 강하하기 전에 이미 일이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는 의미다.

-빠져, 모두 빠져! 산개해서 후퇴한 다음에 지정한 자리에서 집결이다.

이미 열기가 심상찮은 수준으로 올라갔다. 태스크 포스 373 지상팀원들은 챙길 것은 최대한 챙긴 다음 제트팩으로 날아 뒤로 후퇴했다. 그러나 지진이 점차 심해진다. 땅이 갈라지고 엄청난 압력에 파이프들이 솟구친다. 지하에서부터 밀려 올라온 거대한 파이프들이 구겨지고 갈라지는 광경을 상공에서 본 우지가 허탈하게 말했다.

-…마그마다.

지하에서 마그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열발전 연구소에서 지하 75km까지 파놓은 구멍에서 마그마가 솟구쳐 올라오는 것이다.

-우주 엘프 이 새끼들!

빈우는 세게 이를 악물었다. 이게 단순한 사고일 리는 없다. 철저한 점검 하에 가동되는 지열발전 연구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외부에 의한 조작임이 분명하다. 리퍼 놈들이 강하한 것은 십중팔구 이게 목적이었을 것이다.

-팀장님,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부팀장 아룹이 질문한다. 태스크 포스 373 앞에선 마그마가 계속 솟구치고 있다. 그러나 그 형태가 조금 남달랐다. 지저의 압력에 의해 밀고 올라오는 것 치곤 여파가 적다.

-그게 말이죠…. 우지, 근처 상황 보고해.

그러자 상공의 롱소드가 대형 센서로 상황을 측정해서 보고한다.

-네, 지금 지열발전소 밑에서 마그마가 올라오고 있습니다만, 이게 밀려 올라오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치, 그 뭐냐, 마치 빨려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빈우는 우지의 측정 데이터를 보고선 현 상황을 대강 이해했다. 이미 존재하는 화산지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그마라면 지표 가까이에 있는 것이 흘러나오는 것이라 진동이 적겠지만, 지금처럼 맨틀 깊이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이라면 이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만약에 지금 솟구치는 마그마가 지하의 압력에 의해 분출되는 거라면 이 근방은 대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생성되어야 한다.

-부팀장, 적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빈우는 컨커러의 센서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적들을 잘 파악할 수가 없었다.

-파이프 타고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그라인더와 리퍼 둘 다 함께 말입니다.

즉 마그마를 헤엄쳐 아래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샤다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그라인더 장갑복이라도 그런 열과 압력을 견딜 수는 없다. 확실히 한패다.

-일단 후퇴합시다. 그리고 지상의 뱅가드와 42전단에도 알립시다. 근처의 시민들을 대피시켜야 합니다.

샤다이가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화산이라면 기존의 것과 확연히 다를 것이다. 행성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일 테니 그 파괴력은 엄청날 게 분명하다. 어쩌면 이 지역이나 대륙뿐만이 아니라 누벨 노르망디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다.

-주인님!

그러나 그때 빈우에게 들려오는 통신이 있었다.

-주인님, 들리세요? 주인님!

두뇌 통신과 확연히 다른 음성통신. 바로 아나스타샤였다.

-아나스타샤, 무슨 일이야.

빈우는 갑자기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아나스타샤가 갑자기 자신에게 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블랙 랜스의 일이라면 오르 함장이 말할 것이다. 혹시 오다 의원에게 무슨 변고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통신이 들려온 위치가 이상하다. 궤도상의 블랙 랜스가 아니라 대기권 안쪽, 즉 상공이다.

-주인님, 제가 알탄훼아나 씨를 데리고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지금 안드로이드 메이드인 아나스타샤가 샤다이 포로인 알탄훼아나와 함께 그라디우스를 타고 누벨 노르망디의 지열발전 연구소로 온다고 한다. 사전에 주인인 빈우에게 아무런 연락이나 언급도 없이 갑자기 말이다.

-…설명해.

그러나 빈우는 당황하거나 화내는 대신에 차갑게 질문했다. 안드로이드가 이런 뜬금없는 짓을 하는 것은 그 인공지능이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한다는 확신과 판단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주인이자 팀장인 빈우의 안전에 상당히 심각하게 연관된 일임이 분명하다.

-알탄훼아나 씨가 누벨 노르망디가 위험하다고 했어요. 행성 자체가 위험하다고요. 또 주인님이 계신 작전 구역이 그 사건의 시작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동족이 저지른 일, 업보이기 때문에 호민관인 자신이 책임지고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방금 아나스타샤는 되돌린다고 말했다. 그 말인즉슨 알탄훼아나가 이 지진과 마그마 분출을 되돌릴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게 네가 포로를 데리고 무단으로 내려올 만한 일인가?

아나스타샤는 적어도 알탄훼아나로부터 협박이나 강제를 당한 기색은 없어 보이긴 하지만, 지금 빈우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히 맨틀 부분에서부터 마그마가 솟구쳐 올라오는 화산 폭발은 위험한 일이다. 허나 그렇다 해도 빈우는 다른 탈출 수단으로 이곳을 벗어나면 된다. 이렇게 아나스타샤가 샤다이 포로를 무단으로 빼내고, 거기다 원래 호위 대상인 상원의원을 내버려 두고 올 만한 일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하다. 그것도 검증된 의견이나 명령이 아니라 샤다이 포로의 말에 의한 것이라면 더더욱.

-빈우? 빈우인가?

이번에 들려오는 것은 알탄훼아나의 목소리였다.

-그래, 무슨 일이지?

-그대의 가족에게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다. 그녀가 워낙 완고했던 탓에 설득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요점만 말해.

날카롭게 자르는 빈우의 말에 알탄훼아나는 움찔하더니 다시 말했다.

-일단 그 자리에서 피해라. 곧 별심장의 불길이 생겨날 것이다. 어서 피해.

샤다이가 별심장의 불길이라고 칭하는 것은 플라스마다. 그렇다면 곧 리퍼의 플라스마 공격이 있을 예정이란 의미다.

-리퍼 전투함의 궤도 포격인가?

지금 자리를 피해야 할 정도로 위협적인 플라스마 공격이라면 리퍼 전투함의 궤도 포격이다. 현재 궤도상의 리퍼 전투함은 거의 전멸상태지만 이곳의 작전 상황을 보고 발악적으로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

-아니, 그게 아냐. 지금 네 옆의 땅 안에 녹은 돌들이 있지 않나?

-마그마? 녹은 암석이라면 설마 마그마를 말하는 것인가?

-마그마라고? 아, 고마워 아나스타샤. 그래, 마그마가 다시 타올라 별심장의 불길이 된다. 어서 피해. 그리고 궤도상의 네 전함들에게도 서둘러 대피하라고 일러라.

빈우는 자신의 눈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그마 줄기들을 보았다.

‘저게 플라스마가 된다고?’

전자에 고열을 가해 원자로부터 분리하면 플라스마가 되기 때문에 이론상 어떤 물질도, 즉 마그마도 플라스마화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엄청난 압력과 열이 필요하다. 뜬금없이 마그마가 플라스마로 변할 일은 없다. 하지만 빈우는 먼저 행동했다. 샤다이들은 플라스마를 만들 수 있다. 정확히는 불러오는 것이긴 하지만 일단 협력 관계에 있는 그녀의 말을 믿어봄직했다.

-전단장님, 지금 제 좌표 위쪽으로 전투함들을 대피시키십시오. 리퍼의 공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빈우의 통신을 받은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가타부타 말할 것도 없이 즉시 행동에 옮겼다. 닉스 레벨 3의 의견은 그만한 신용과 가치가 있었다.

-어어? 김 빈우, 서둘러, 어서 피해. 아니지. 내가 간다.

알탄훼아나는 무엇에 놀랐는지 서두르고 있었다. 샤다이는 플라스마를 다루는 게 특기다. 그러니 자신이 와서 사건을 수습한다고 해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녀는 지구 제국의 고문을 받은 다음 큰 정신적 충격을 받고 샤다이로서의 몇 가지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빈우는 그녀가 갑작스레 그런 능력을 쓸 수 있을까 싶었다.

-응?

빈우는 뭔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 플라스마 줄기의 기세가 이상하다.

-잠깐, 저거 왜 저렇지?

붉은색으로 달아오른 마그마가 꿈틀거리다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변했다.

-이런 쌰앙! 빠져! 뒤로! 내열방패 생성해!

빈우는 숫제 비명을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알탄훼아나의 말대로 마그마가 플라스마로 변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전이다. 누벨 노르망디 지하에 있던 마그마들이 갑자기 코로나로 변해 대기권을 돌파, 궤도로 올라가고 있다. 얼추 수십만 도는 넘는 거대한 플라스마가 마치 폭포처럼 솟구쳐 42전단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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