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태스크 포스 373의 지상팀이 귀환한 다음, 블랙 랜스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42전단 쪽은 제법 피해를 입긴 했어도 대승을 거둔 덕분에 왁자하니 달아올랐지만, 태스크 포스 373은 보안국으로 추정되는 아군 비밀부대와의 전투에 이어 팀장인 빈우의 워프 비스트화 때문에 축 가라앉아 있었다.
-으음, 작전중에 김 팀장이 부상을 당했다고? 놈들의 새로운 공격을 막았다 싶었는데 지상에선 그런 일이 있었나. 고생이 많았군.
화면 속 스베틀라냐 전단장의 미간이 침울하게 일그러졌다. 현재 팀장 대리를 맡고 있는 아룹은 누벨 노르망디에 있었던 작전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그녀에게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라인더를 입은 적이라거나 빈우의 워프 비스트화 같은 것들 등이다.
스베틀라냐 전단장으로서도 아룹의 보고내용 중에 미심쩍은 곳이 몇 군데 있긴 했지만, 굳이 파고들려고는 하지 않았다.
태스크 포스 373은 42전단과 합동작전을 하는 부대지, 하위부대가 아니다. 그리고 지열발전 연구소에서 있었던 작전은 42전단의 지원 없이 태스크 포스 373만으로 진행되었던 작전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자세한 보고를 할 곳은 상위부서인 특수전 사령부뿐이다.
-김 팀장의 부상 치료에 대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게. 얼마든지 지원하지.
태스크 포스 373은 지금도 충분히 42전단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었다. 태스크 포스 373이 징발해서 사용했던 매스 드라이버에 의한 행성 피해는 42전단이 나서서 해결하고 있다. 373의 지상팀이 도심지에서 일으킨 건물 파괴건 뒤처리 또한 이들이 담당해 주고 있다. 물론 42전단도 지상공격을 하긴 했지만, 태스크 포스 373의 지상팀 단 4명이서 일으킨 작전의 여파가 뱅가드 1개 중대와 순양함의 궤도폭격을 동원한 42전단보다 더광범위하고 심각했다.
또한 지상담당 부대인 뱅가드는 전원이 강하해 혹시 지상에 남아있을지 모를 샤다이를 수색함과 동시에 아룹의 요청에 따라 일부 병력을 지열발전 연구소로 파견했다. 그들은 지열발전 연구소를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해 특수전 사령부의 후속처리팀이 올 때까지 지켜준다고 했다.
즉, 42전단은 태스크 포스 373과 빈우를 상당히 고평가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염치 불고하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뭔가, 말해보게.
“군사정보국에 지원팀을 요청했습니다. 점프게이트를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군사정보국에? 특수전 사령부 말고도? 뭐, 알겠네. 게이트를 지원해 주지.
스베틀라냐 전단장이 선선히 수락했다. 태스크 포스 373의 작전은 꽤 민감한 성격을 띤다. 그래서 팀장인 빈우도 군사정보국에서 뽑아 데려왔다. 그러니 특수전 사령부 말고도 군사정보국으로부터 뭔가의 파이프 라인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게이트가 열려있긴 하지만 그것은 주로 42전단의 보급용도였고 태스크 포스 373은 통신이나 가능할 정도였다. 허나 지금 군사정보국 쪽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어 달라고 해도 딱히 부담이 되지도 않으니 정규게이트가 복구될 때까지 요청에 따라 게이트를 지원해 줘도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럼 김 팀장에게 안부 전해주게. 아니지, 깨어나면 연락하라고 말해주게. 그리고 누벨 노르망디에서 일어난 플라스마 공격에 대해서도 반드시 조사해 달라고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통신을 끊은 다음 아룹은 자신이 전달받은 42전단의 상황들을 보았다. 리퍼 함대와의 전투에서 입었던 피해, 그리고 지열발전소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플라스마에 의한 피해. 42전단도 나름 피해를 입었지만 이만한 병력의 샤다이나 리퍼를 상대로는 대승이었다. 그리고 그 손실 또한 후방에 있던 예비부대로부터 즉시 충원이 되고 있다.
다음은 특수전 사령부에 보고할 차례다. 이번엔 자세히 보고해야 한다. 때문에 아룹으로서도 꽤나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단검뿔 토끼라고….
화면 너머에서 조지 레드우드 사령관의 미간이 좁혀진 것은 분노 때문이다. 단검뿔 토끼라면 레드우드 사령관의 직속부대라 해도 될 정도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단검뿔 토끼에서 훈련을 받고 그라인더를 입은 외부 부대가 자신의 부대인 태스크 포스 373을 공격했다고 하니 지금 폭발하지 않고 참는 것이 용할 지경이다.
“이미 이 건에 관해선 군사정보국에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그쪽에선 뭐라고 하던가?
군사정보국은 빈우의 원래 출신지이기도 하고, 정보전과 비밀작전 전문부서이며, 지금의 원흉으로 추정되는 보안국을 엿 먹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부서이기도 하다.
“잠시 후 마커스 타이 차장께서 직접 오신답니다.”
-타이 차장은 김 팀장과 사관학교 동기이자 친구라고 했었지. 일단은 아군인 셈인데, 이런 것들은 자네 생각인가, 아니면 김 팀장이 귀띔해 준 건가?
“물론 팀장님이죠.”
이어서 아룹은 지열발전 연구소로 강하하기 직전, 스카이 후크에서 빈우와 나눴던 대화를 레드우드 사령관에게도 들려주었다. 당시 빈우는 아룹에게 지열발전소에 있는 적이 연방군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서부터 시작해서,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사후처리를 할지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놓았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군사정보국 차장인 마커스 타이 소령에게 연락하라고도 덧붙였다.
-새끼, 빈틈없기는. 근데 아룹.
“네, 사령관님.”
-이 새끼 원래 자네한테 이렇게 세세하게 설명하던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략적인 라인은 미리 잡아 두지만, 군사정보국까지 관련해서 지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레드우드 사령관이 앓는 소리를 내며 의자 뒤로 기대어 앉았다. 빈우는 이번 작전에 대해서 꽤 여러 방면으로 각오를 다지고 들어간 듯싶다. 골똘히 생각하는 레드우드 사령관에게 아룹이 질문했다.
“헌데 후방지원팀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그거.
원래 태스크 포스 373은 빈우를 위시한 지상팀 말고도 특수전 사령부나 블랙랜스에서 이들을 백업해 줄 팀이 따로 있었다. 이 후방지원팀은 지금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경우 사후 문제 해결과 뒷처리 및 타부서와의 조율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맡을 피에르 라캉 중령이 전사하자 팀을 꾸리기 힘들어졌고, 대신해서 감독해야 할 레드우드 중장마저 당시 부사령관에서 사령관이 되는 바람에 여러 가지 인수인계 문제로 인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부정 탔어. 나가리야.
이어지는 레드우드 사령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을 보좌해 특수전 사령부를 이끌어나갈 참모진을 꾸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태스크 포스 373을 백업할 팀을 찾자니 깨끗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좀 똘똘하다 싶으면 보안국 쪽에 라인이 있고, 깡다구 있다 싶으면 의회 쪽으로 연줄이 있었다.
-뭐, 김 팀장과도 이런 일 때문에 후방지원팀 없이 가자고는 말하긴 했었어.
“그러기에 평상시에 인적 자원 관리 좀 잘하시지 그랬습니까.”
중장에다 특수전 사령관씩이나 되는 사람이 팀 맡길 믿을 만한 참모가 없어서 낑낑대는 꼴이라니 슬프다. 그때 아룹에게 알림이 하나 왔다.
“이런, 군사정보국에서 타이 차장이 왔습니다.”
-빠르군. 그쪽도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 모양이지.
“적어도 우리보단 잘 알겠죠.”
-그렇겠지. 아룹, 부탁함세. 나도 나름대로 그 보안국 부대에 대해서 조사해 보지.
통신이 끊긴 다음 아룹은 격납고로 달렸다. 군사정보국의 그라디우스가 게이트를 통과해 블랙 랜스로 오고 있었다.
* * *
“만나서 반갑습니다. 군사정보국에서 차장을 맡고 있는 마커스 타이라고 합니다.”
마커스는 블랙 랜스에 승함해서 오르 함장과 간단한 인사를 한 다음, 바로 아룹을 만났다.
“현재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 대리인 아룹 라마누잔 원사입니다. 이쪽은 팀원들입니다.”
이어서 아룹은 팀원들을 그에게 소개했다. 마커스는 여러모로 팀원들의 시선을 끌었다. 먼저 인상. 빈우나 마커스나 가만히 보면 제법 미남들이다. 허나 칼밥 총알밥 깨나 먹은 팀원들이 보고 느끼기에 빈우의 내면이 상처투성이에 굶주린 호랑이라면, 마커스는 윤기와 부티가 좔좔 흐르는 사자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닮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또 달리 보면 전혀 닮지 않은 것처럼도 보인다. 다음으로는 마커스 뒤에 있는 안드로이드다. 척 봐도 아나스타샤와 같은 쿠델카 모델이지만 얼굴상이 아나스타샤와는 조금 다르다. 크산티페란 이름의 이 안드로이드는 군복을 입고 마커스 뒤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저거 무슨 튠한거니?
파트리샤가 위르겐에게 살짝 개인 통신을 넣었다.
-아뇨, 성격이 다르니까 얼굴 생김새도 다르죠. 쿠델카 모델들은 감정을 주입받지 않고 자신의 주인으로부터 학습합니다. 마치 어린이처럼요. 그래서 처음에는 무표정하고 차가운 안드로이드지만, 주인에 따라 잘만 개화하면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성격을 가져요. 그래서 쿠델카 모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행동은 물론이고 생김새에도 차이가 생기고, 거기서 그 모델들이 지내온 집의 분위기를 알 수 있지요.
-오호, 그래서? 팀장님 집안 분위긴 어때 보여?
-꽤 행복한 가족 분위기로 보이네요.
두 사람이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사이 아룹이 마커스를 안내했다.
“부팀장께선 이런 일을 상위부대인 특수전 사령부가 아니라 군사정보국 소속인 저에게 먼저 연락하셨더군요.”
마커스가 자신을 안내하는 아룹에게 말했다. 아룹이 워프 비스트화 되어가는 빈우를 블랙 랜스로 옮긴 다음 가장 먼저 한 것은 마커스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물론 워프 비스트에 대해선 빼고서 단지 부상 당했다고만 알렸다. 그리고 그때 사용한 단어와 문장들은 빈우가 미리 사전에 일러둔 대로 골라 말했었다.
“네, 작전 직전에 팀장님이 당부하셨습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적이 보안국 끄나풀일지도 모른다는 점. 그리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반드시 타이 차장님께 가장 먼저 연락하라고 말입니다.”
“그래요…. 혹시 그 끄나풀들이 울토르 클론일 거란 말은 없었습니까?”
앞서 걷던 아룹의 발걸음에서 잠시나마 리듬이 엇갈렸다.
“…하셨습니다.”
울토르 클론이라면 정보사령본부에서 만든 빈우의 클론 부대다. 마카로니의 사건 이후 잠시 동결하고 있다고 했지만, 보안국은 아직도 몰래 쓰고 있다고 했다.
“과연, 허면 아룹 부팀장. 그 시신들은 확인해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아직은 일체의 조사 없이 엄중히 보관만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요. 잘하셨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마커스가 다시 질문했다.
“김 팀장의 현재 상태는 어떻습니까?”
“부상 정도가 심해서 아직 치료 중입니다. 깨어나실 때까지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군사정보국의 차장을 불러놓고선, 팀장은 부상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그동안 차 마시면서 시간을 때우자는 것은 조금, 아니, 상당히 어색하다. 빈우라면 다른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었겠지만 아룹은 이런 일에는 별로 경험이 없었다.
“네, 그러지요.”
하지만 마커스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별말 없이 아룹을 따라 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다른 팀원들은 모두 물린 다음 식당에는 마커스와 아룹만이 들어갔다.
“커피, 어떠십니까?”
“네, 블랙으로 주십시오.”
“다른 것은 필요 없으십니까? 다과는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그냥 빵이면 됩니다.”
이어 블랙 커피와 빵 한 조각이 마커스 앞에 놓였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아룹에게 말했다.
“이제 말씀하실 것이 있으시면 먼저 하시죠.”
그러나 아룹은 선뜻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빈우가 사전에 일러둔 문답이란 게 여기서 꺼내기엔 상당히 민망했던 것이다. 허나 373의 부팀장은 침을 꿀꺽 삼킨 다음 입을 열었다.
“…어흠, 그렇다면 한 가지 먼저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