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연방군 정보사령본부는 문자 그대로 연방군 내에서 정보와 기술, 첩보를 다루는 곳이며, 하위부서로 네 곳을 두고 있다. 적대 외계 종족을 상대로 첩보전과 정보전, 비밀작전을 하는 군사정보국. 연방군 내부의 보안 기강을 다지고 외계 종족으로부터의 방첩 활동을 하는 보안국. 구 지구제국이나 외계종족의 기술을 수집해서 해석, 분석하는 과학기술국. 수집한 정보들을 분석하고 소화하는 정보분석국이 그것들이다.
지금 이 방에는 정보사령본부의 사령관을 위시해 네 곳의 국장들이 모두 모여 있다. 언제나 보이지 않게 치열한 전투를 하던 사람들이지만, 현재는 샤다이를 상대로 한 전면전과 연방 내의 뻐꾸기 작전이 발동 중이라 분위기가 한층 더 치열했다. 하나의 안건이 마무리되자 이노우에 고토가 식은 녹차를 툴툴대며 마셨다.
“좀 좋은 일로 만났으면 좋겠는데.”
웃으면서 말을 꺼냈지만 상대 쪽은 그렇지 못했다.
“좋은 일을 가져오고 그런 말을 하는 게 어떨까.”
쿠사키나 국장의 날 선 목소리지만 피곤함에 그 날도 무뎌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뎌진 날이라도 한 번 더 휘둘렀다.
“그리고 자네 쪽 차장 한 명이 국방부로 간다면서?”
보안국장의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군사정보국장 쪽으로 모였다.
“으잉? 소식도 빠르지. 누구한테 들었나? 아, 뭐 의미 없나.”
차를 마저 마신 이노우에 국장이 그 인물의 홀로그램을 띄우며 자세한 설명을 시작하려 했다.
“마커스 타이 소령일세. 3차장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내 뒤를 이을 유능한 인재로 봤는데. 이렇게 보내게 되어 정말 유감이양.”
군사정보국은 차장이 좀 많다. 부서 자체가 흑과 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곳이라 내부에서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 별도의 라인들이 존재한다. 만약 하나의 라인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다른 라인들이 협력해 경고하거나, 좀 더 ‘강한 경고’를 위해 타부서-특히 보안국과 들러붙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3차장인 마커스 타이 소령은 젊은 나이에 소령이란 계급으로 차장까지 올라간 엘리트다. 중령 진급도 이미 예정된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방부에서 러브콜이 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자문 역활을 해왔던 인물인데 이 기회에 아예 데려갈 모양이다.
‘국방부 차관이라.’
다샤 쿠사키나 보안국장이 마음속으로 곰곰이 계산해보았다. 타이 차장은 이노우에 국장의 직속 파벌이었다. 그를 군사정보국에서 떼어낸다는 것은 이노우에의 왼팔 하나를 떼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장은. 하지만 타이 소령이 국방부 차관으로 가게 된다면 그 후폭풍은 어마어마하다. 잘려진 왼팔이 로켓펀치가 되어 날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사람 부친이 제이크 타이 차관이지.”
정보사령본부의 사령관인 뱌체슬라프 투하쳅스키 중장이 심기가 불편한 듯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가 사령관으로 있는 동안 정보사령본부는 국방부와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의 두 전임 국장이 저지른 사건 때문에 관리 소홀을 이유로 문책성 견제를 받은 적이 있는 데다, 투하쳅스키 사령관 그 자체의 행보도 국방부와는 안 맞는 경우가 많았다.
“타이 차장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던데.”
투하쳅스키 사령관의 말에 이노우에 국장이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이를 말입니까. 이전 국방부는 우리 정보사령본부의 작전들이 너무나도 비인도적이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지껄여댔지요. 흥, 우리 쪽의 요원들이 얼마나 분골쇄신을 하는지 알아주지도 않고선. 하지만 타이 차장이 가면 다를 겁니다. 그는 엘리트라 해도 밑바닥에서 차근차근 올라온 사람이기 때문에 이 바닥의 생리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지요.”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이노우에 국장을 보며 정보분석국의 산드라 더글러스 국장은 기가 찼다. 정작 부하 요원들의 뼈를 빻고, 살을 찢는 당사자가 저딴 말을 지껄여대니 표정 관리를 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애초에 정보사령본부가 도매금으로 욕을 얻어먹는 것은 군사정보국의 흉악한 작전 덕분이다. 곁눈질로 살펴보니 과학기술국의 율리오 아킴바 국장 또한 역겹다는 표정으로 아예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군사정보국과 가장 자주 마주치는 보안국의 다샤 쿠사키나 국장은 하도 시달렸는지 이젠 질렸다는 표정이다.
“아아- 그런가. 그래.”
투하쳅스키 사령관도 영 떨떠름한 표정이다. 이어지는 회의 내용은 마커스가 국방부로 가느냐 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마커스는 군사정보국 소속이지만 동시에 정보사령본부의 인물이다. 그냥 그만둔다 하면 군사정보국에서만 이런저런 손을 쓰겠지만, 국방부로 간다고 하니 형식상이나마 하는 회의다.
“마커스 타이 소령의 기록은 어디까지 손볼 건가?”
쿠사키나 국장이 질문했다. 군사정보국 차장인 마커스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일반인이나 하원은 물론이고, 다른 부서들에게 알려져선 안 되는 기밀들이 수두룩하다.
“당장은 손보지 않을 거야.”
이노우에 국장의 대답에 다른 국장들의 시선이 말없이 겹쳐진다. 군사정보국의 요원들은 일반적으로 기억을 하지 못한다. 오직 두뇌칩에 영상과 음성기록만 가능할 뿐이다. 이는 아주 치명적이고 음험한 기록들이기 때문에 군사정보국을 떠나는 요원들은 안팎으로 세탁을 하거나, 위험한 기록들을 골라 삭제한다. 그러나 마커스의 경우에는 손본다고 하지 않으니 이상할 수밖에.
“왜들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타이 차장은 현재의 정보와 지식을 그대로 가지고 국방부 차관으로 가야 해. 그래야 가치가 있는 인물이지, 허옇게 표백된 뇌로 가봐야 뭘 어쩌겠단 거야. 물론 이번 작전과 사건이 마무리되거나 아예 그가 국방부를 나가면 그때 점차 기록을 손볼 테니 너무 걱정들 마시라.”
이어지는 주제는 울토르 중대에 관련된 것이다. 빈우의 클론으로 만들어진 장갑보병 부대들. 개개인의 능력은 뱅가드 연대에 필적하지만, 클론 특유의 두뇌통신 덕에 보다 긴밀한 연계작전이 가능해 전투력이 상당하다. 다만 포말하우트의 기습 이후, 정보사령본부 외에도 다른 부서로 파견 나갔다가 모종의 오류로 인해 마카로니에서 민간인 학살을 벌이는 바람에 당분간은 동결시켜놓은 상태다.
“쿠사키나 국장이 솔리드 베타를 가져간 것은… 결과가 좋았군.”
산드라 국장의 말에 쿠사키나 국장이 히죽 웃었다. 보안국은 자신의 영역 밖의 일이었지만 무리를 해서 솔리드 베타를 끌고 나갔고, 결국 곰팡이를 이용해 개척지에 침투하려는 샤다이의 침공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 자세한 내막은 쿠사키나와 이노우에 두 사람만 안다. 게다가 거기에 있었던 빈우-인지 클론인지 모를 인물에 대해서는 보고하지 않았었다.
“그러면 이번 기회에 울토르 중대를 우리 보안국 소속으로 보내주십시오. 뻐꾸기 작전이 발동 중인 현재, 연방 내부로 침투한 샤다이를 색출하는 데 있어 가장 뛰어난 곳은 바로 우리 보안국 아니겠습니까. 저희가 나서서 연방 전역의 샤다이를 잡아내겠습니다.”
원래 보안국은 방첩임무를 주로 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일에 도가 텄다. 투하쳅스키 사령관은 쿠사키나 국장이 보여주는 서류를 보며 골똘히 생각했다.
“흐음, 하지만 군사 지역이 아닌 민간 지역까지라….”
“이러면 연방중앙정보국이 또 한 소리 할 텐데요.”
사령관에 이어 과학기술국의 아킴바 국장마저 난색을 표한다. 원래 민간지역에서의 이런 임무는 연방중앙정보국이나 해당 행성의 경찰 관할이다.
“하지만 지금은 샤다이와 전면전이라고 봐야 해. 이 같은 경우에는 해당 종족에 한해서지만 보안국에도 조사 권한이 오지.”
쿠사키나 국장의 말마따나 전쟁 중인 종족에 한해서는 보안국의 방첩 임무 영역이 연방 전역으로 확대된다. 문제는 우선권이 연방중앙정보국이냐, 보안국이냐다.
“일단 보안국에게 울토르 중대를 보내 뻐꾸기 작전에 합류토록 하지. 연방 중앙정보국과는 내가 얘기해보겠어.”
투하쳅스키 사령관의 말에 보안국장이 감사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이노우에 국장이 끼어들었다.
“보안국장, 그렇다면 앞으로 피자 타이거와 스파게티 드래곤을 활용하면 어떨까? 물류 시설이나 유통망은 빵빵하니까, 울토르 중대가 연방 내의 샤다이를 색출하기 위해 작전할 때 보급 거점으로 활용하는 거지.”
군사정보국장이 두 음식 체인점 얘기를 꺼냈다. 실제로 대규모 군사시설이 없는 자치행성이라 해도 피자 타이거와 스파게티 드래곤이 입점한 곳은 꽤 많다. 이곳들은 처음에는 군납 식료품점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영역을 넓혀 민간까지 진출한 식품 회사들이며, 동시에 이노우에 고토와 다샤 쿠사키나의 전임자들이 거하게 삽질을 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들은 원래 단순 접선 장소나 정보수집 구역으로 잘 써왔잖아. 굳이 이번 작전에 적극적으로 합류시킬 필요가 있을까? 지금까지 잘 은폐해 왔는데 이번 일로 드러내면 위장회사에 대한 경각심이 커질 우려가 있어.”
더글러스 국장은 마뜩잖은 표정이다. 피자 타이거와 스파게티 드래곤은 정보분석국에서도 요긴하게 빌려 썼던 위장회사기 때문이다. 그녀 말마따나 뻐꾸기 작전에 적극적으로 나서다 행여 정체라도 드러나면 지금까지 심어서 길러온 뿌리들이 송두리째 뽑히게 된다.
“걱정 마시라. 애초에 피자 타이거와 스파게티 드래곤은 군납회사로 출발했으니 해당 행성을 경유하는 부대에 보급한다 해도 그리 큰 의심을 받지 않아.”
싱글벙글 웃는 이노우에 국장에게 쿠사키나 국장이 질문한다.
“피자 타이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질문하는 그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이 지점들의 피자 타이거에선 별다른 소식이 없었나?”
쿠사키나 국장이 물어보는 지점들은 이번 리퍼의 공격을 받은 행성들의 지점이다. 지금 그녀는 군사정보국의 위장회사인 피자 타이거가 사전에 특별한 정보를 구하지 못했나 물어보는 것이다. 좋은 의미로는 정보수집이고, 나쁜 의미로는 꼬투리를 잡는 것이다.
“으음, 알다시피 피자 타이거는 스파게티 드래곤과는 달리 직접 조사 기관이 아냐. 군과 민간의 정보를 동시에 수집하고 활동하는 요원들을 백업하는 곳인데, 그래도 어디 보자.”
이노우에 국장이 피자 타이거 각 지점들의 자료를 살펴봤다. 그리고 이런 자료들은 보안국의 쿠사키나 국장 말고도 정보분석국 쪽에게도 전해진다. 군사정보국과 보안국 사이에 오고 가는 자료들은 워낙 사고를 친 전적이 많아 제삼자인 정보분석국에도 감시 겸 백업용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음?”
이노우에 국장이 뭔가를 발견한 듯하자 다른 국장들도 덩달아 긴장한다.
“누벨 노르망디 지점에서 도우가 상했다는데? 피자 타이거는 물질생성기가 아니라 실제 요리하는 프리미엄 메뉴도 있는데, 거기에 쓰는 피자 반죽이 상했다는구먼.”
영 엉뚱한 내용에 모였던 관심들이 팍 식는다.
“그딴 것 말고.”
쿠사키나 국장이 간신히 화를 참는 게 보인다. 그러자 이노우에 국장은 억울하다는 듯이 자료를 펼쳐 보였다.
“아니, 보존고에 있는 도우가 상했다니까? 이거 혹시 샤다이 곰팡이와 관계되진 않았을까?”
“곰팡이 자료는 줬잖아. 그쪽이 직접 조사해봐.”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은 오늘도 아웅다웅한다. 중요한 안건들이 다 끝나자마자 바로 이런 꼴이다. 두 국장이 누벨 노르망디의 피자도우 변질 건으로 잡담이나 하던 중에 이노우에 국장이 반격했다.
“그러면 그쪽은? 스파게티 드래곤 쪽은 별 이상 없는가?”
역으로 꼬투리 잡아보겠다는 심보다. 그러자 쿠사키나 국장이 예상했다는 듯 보란 듯이 자료를 펼쳐 보였다.
“우리는 언제나 정보수집에 만전을 기하고 있어. 상황이 상황이니 만치 보안국의 위장 요원뿐만이 아니라 일반 직원들에게도 거동이 수상한 자에 대해선 요주의하라고 공문을 내려놨지.”
“그래서, 수상한 사람이 잡혔나?”
“일단 체에는 많이 걸리지. 그리고 거기서 걸러지기도 하고. 자치행성 지점의 잡범들을 발견해 현지 경찰에도 신고하고 있어. 흐흥, 이러느라고 사람이 모자란대, 어때? 군사정보국에서 사람을 좀 보내주려나?”
“정식요청이 있다면야 얼마든지.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은 영혼의 듀오잖아?”
농으로 던진 쿠사키나 국장의 말에 이노우에 국장이 진심처럼 대답한다.
“자자, 이쯤 하지.”
보다 못한 투하쳅스키 사령관이 파장을 알렸다. 각 국장들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군사정보국장과 보안국장도 깔끔하게 털고 일어섰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둘은 방금 피자 타이거와 스파게티 드래곤에 대해 상당히 많은 정보를 교환했기 때문에 만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