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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23화 (221/301)

223화

“분명히 저쪽 계단이 부서졌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주인님이 변한 거죠? 혹시 그 계단이란 것이 다시 생긴 건가요?”

아나스타샤의 물음에 알탄훼아나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쪽 계단은 이미 부서졌고, 다시 생긴 기미는 없어. 이건….”

알탄훼아나는 막 치료를 마친 다음 지친 듯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묶여있는 빈우를 보았다. 워프 비스트로 변하던 도중에 멈춘 그의 육체는 여러 가지 장치로 구속되어 있었다.

“그는 스스로 변하는 것을 선택했어. 그렇기에 아마도… 이건 과거에 변화하다 멈췄던 것이 다시 시작된 것일 거야. 아니, 분명해. 이건 재발이야.”

그때 눈을 감고 있던 빈우의 눈꺼풀이 열렸고, 알탄훼아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눈을 뜬 것은 아니다. 알탄훼아나가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연 것이다.

인간의 눈과 샤다이의 눈이 마주친다. 아니, 인간의 눈이 아니라 워프 비스트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알탄훼아나는 그 눈을 통해 빈우의 안쪽을 보고 있었다. 선조들이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는 지옥을. 잠시 후 빈우의 눈이 다시 감겼고, 알탄훼아나는 자리에 앉았다.

“그는 이미 예전에 워프 비스트로 변하려던 적이 있었어.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그게 멈췄었고, 이번에 다시 발현한 거지. 그 자신의 의지에 의해.”

아나스타샤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자신을 탓했다. 함부로 움직이다 주인을 이 모양으로 만든 자신을, 과거 주인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어리석은 자신을.

“어쨌든 김 팀장님을 통해 이쪽의 정보가 새 나갈 염려는 없는 거죠?”

크산티페가 식사를 준비하며 알탄훼아나에게 물었다. 그녀는 주인인 마커스가 돌아간 다음에도 블랙 랜스에 남았다.

“그래, 지금은 변이 중인 인간이야. 선조는 아직 그의 몸을 차지하지 못했어. 그리고, 못 할 거야. 절대.”

알탄훼아나는 반쯤은 자신에게 말하며 크산티페가 준 식사를 받았다.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샤다이에게 가장 잘 맞도록 만들어진 식사다.

“자, 아나스타샤도. 아무리 인간 흉내를 낸다고 해도 연료공급까진 거르지는 마.”

“고마워, 크산티페.”

안드로이드 메이드가 동형모델 자매기에게 안드로이드용 식사를 건네준다.

“그런데 크산티페. 넌 돌아가지 않아도 돼?”

식사를 뜯던 아나스타샤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현재 태스크포스 373은 42전단으로부터 이탈해 특수전 사령부로 돌아와 있으며 빈우와 아나스타샤, 알탄훼아나, 크산티페는 귀환 후 블랙 랜스 안에서 나가지 않고 있었다. 팀장인 빈우의 상황이 영 좋지 않은 것이다.

“주인님께서 내린 명령이 있으니까.”

크산티페는 방긋 웃으며 젤형 식사를 한술 떠서 꿀꺽 삼켰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크산티페에게 정보를 넘겨줄 때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다. 크산티페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 말고도 개인적인 기록이나 잡다한 정보까지 원했던 것이다. 당시엔 믿을 수 있는 아군이 달라고 했기에 줬지만, 차츰 생각할수록 크산티페로부터 불길한 무언가가 짐작되었다. 그래서 결국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 명령이란 게… 크산티페, 너 혹시 나를 대신하기 위해서 온 거니?”

아나스타샤가 물어본 ‘대신’하다는 의미는 업무를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아나스타샤를 대신해 빈우를 모시라는 것도 아니다. 질문을 받은 안드로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만약 누군가가 너를 체포하러 온다면 내가 너로 위장해서 대신 잡혀가기로 했어.”

“왜?”

약간 높아진 아나스타샤의 목소리. 그러나 대답하는 크산티페는 평온하다.

“주인님의 명령이니까.”

즉 마커스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자신의 비서인 크산티페를 친구의 가족인 아나스타샤의 대역으로 쓰려는 것이다. 군사정보국의 조사가 어떤 것인지 이미 겪어봐서 아는 아나스타샤는 고통스러웠다.

“난 그 반대로 할 자신 없는데.”

갑자기 끼어든 빈우의 말에 깜짝 놀란 셋의 시선이 모인다.

“하여간 마커스 이 새끼. 쓸데없이 일을 벌여요.”

“주인님, 괜찮으신가요?”

투덜대는 빈우에게 아나스타샤가 달려가 흉하게 변한 그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그럭저럭. 레드우드 사령관으로부터 다른 연락은 없고?”

“사령관님께선 주인님을 대단히 걱정하고 계세요. 깨어나면 연락하라고 하셨는데….”

“연결해.”

지금 이들이 있는 곳은 블랙 랜스의 격리구역이다. 외부와의 통신은 물론 탐지조차 안 되는 곳이라 몇 겹으로 보안된 폐쇄 회선을 쓴다.

“저,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현재 주인의 모습을 보고 머뭇거렸다. 빈우는 아직까진 인간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겉으론 워프 비스트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이를 남에게 보여주긴 조금 저어되는 것이다.

“연결해.”

이어지는 재촉에 아나스타샤는 어쩔 수 없이 레드우드 사령관과의 회선을 연결했다.

-…아유, 이 새끼.

화면에 나타난 레드우드 사령관이 한숨부터 쉬었다. 아룹으로부터 대략적인 보고를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게 되니 또 다르다.

“보자마자 욕입니까. 사령관님은 번지르르한 겉모습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알아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따랐는데 말입니다.”

-주둥아리 놀리는 거 보니 니 내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겠다. 좀 어때?

“전 괜찮다고는 생각하는데, 어디까지나 이건 제 생각이죠.”

현재 빈우는 워프 비스트와 인간의 중간 형태라 할 수 있고, 이것은 연방에서 제1호 케이스다. 공식적으로는.

-그럼,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겠나?

레드우드가 알탄훼아나를 보면서 물었다.

“확답은 못 하겠지만, 가능성은 높다.”

알탄훼아나가 일단 가능성은 높다고는 하는데, 하는 사람이나 하는 방법이나 다들 처음 해보는 것이라 영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그래도 레드우드로선 지금 그녀와 빈우를 믿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근데 이런 꼬라지의 저를 낼름 썰어버리거나 다른 부서에 넘기지 않고 살려두다니 조금 의욉니다?”

빈우의 말에 레드우드가 발끈한다. 빈우나 레드우드나 둘 다 외계인 처잡는 것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다.

-새끼가, 내가 부하 버리는 놈으로 보이더냐?

킬킬거리는 빈우를 보며 레드우드는 날카롭게 질문했다

-말 돌리지 말고. 왜 그 그라인더들을 그냥 가져가게 놔둔 거야?

레드우드가 말한 그라인더들은 누벨 노르망디에서 태스크 포스 373과 싸웠던 놈들을 말한다. 놈들은 리퍼들과 협력하는 게 분명했고, 같은 연방군을 공격했었다. 몇몇 더러운 작전에선 이런 경우가 있긴 하지만, 원래 이런 종류의 비밀작전은 특수전 사령부 소관이다. 그러므로 레드우드가 모르는 그라인더는 있을 수가 없다. 아마도 연방에 잠입한 샤다이의 손길에 닿은 놈일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정보사령본부인데, 이들은 이와 비슷한 비밀 부대를 거느리고 있다. 그라인더에 단검뿔 토끼의 실력을 가진 자라면 그 잔해와 시신이 특수전 사령부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낱낱이 조사당해 바로 배후가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커스가 그 중요한 단서를 들고 가게 놔뒀으니 레드우드로선 상당히 아쉬운 것이다.

빈우는 대답 대신 크산티페를 보았고, 안드로이드는 공손히 대답했다.

“주인님께서 연락 주시길, 군사정보국 쪽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적어도 군사정보국 차장이 말했다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보안국 소속이죠. 만약 그 시체와 장갑복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보안국과 또 시빗거리가 생깁니다. 이럴 땐 차라리 군사정보국 쪽에 넘기는 게 편해요.”

빈우의 말은 일리에 맞지만 그래도 레드우드는 아쉬웠다.

-우리가 역으로 공격할 수도 있었잖느냐.

언제나 보안국이 시비 거는 것을 보고만 있었는데, 역공 기회가 날아가 버렸으니 아쉬울 수밖에.

“누가요?”

하지만 빈우의 말에 레드우드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보니 이쪽엔 이런 뒷공작을 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빈우는 지금 워프 비스트에 발을 반쯤 걸치고 있고, 마커스는 군사정보국을 떠나기 위해 한창 준비 중이다.

-그래, 그럼 이건 깔끔하게 포기하자. 하지만 언제까지 처맞고 있을 순 없다.

“마커스가 국방부에서 자리 잡길 기다리세요. 그러면 녀석이 시슬 대장에게 연락을 넣을 겁니다.”

그 말에 레드우드는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캐서린 시슬, 특수전 사령부의 전임 사령관이자 현재는 합동참모본부에 있는 레드우드의 전우다.

-하긴, 국방부과 합동참모본부는 꽤 가깝지.

이 두 부서는 연방군의 장기적 전략을 짜는 부서기 때문에 협업하는 경우가 잦다. 그리고 이들이 힘을 합친다면 정보사령본부는 손쉽게 으깨버릴 수 있다.

-알았다. 그럼 일단은 좋은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참, 그리고 오다 의원님도 상원으로 가셨다. 이번 일로 그쪽도 많이 바쁜 모양이야.

42전단은 첫 출전부터 막대한 전과를 올렸다. 전투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시에라 1과 7은 그렇다고 쳐도, 리퍼들의 대규모 침공과 과전의 태양화는 대사건이다. 그래서 42전단과 함께 행동했던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은 이 보고를 위해 잠시 태스크포스 373을 떠난 상태다.

“마커스도 없고, 오다 의원님도 없고. 이럴 때 본진 털리면 좆 되는데.”

특수전 사령부는 적이 어디서 덤비든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아군이 딴지를 거는 것엔 영 익숙지 못하다. 그걸 의미하는 빈우의 말에 레드우드 사령관이 쌍심지를 켰다.

-해볼 테면 해보라 그래라!

그 말인즉슨 시비 걸면 바로 털어버리겠단 의미다. 자신의 취임사도 그런 뉘앙스였던 양반이니 실제로 갈아버리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러던 레드우드 사령관의 얼굴이 갑자기 소태를 씹은 것마냥 일그러졌다.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말이다. 오다 의원이 떠나기 전에 당부한 것이 있다. 되도록 마찰은 피하라고 하시더라.

오다 히토미는 명색이 연방의 상원의원이다. 부서 간의 정치적 알력 다툼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다. 게다가 태스크 포스 373에 와서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의 공작을 직접 겪었던 그녀다. 그런 그녀가 마찰을 피하라고 했다면 상대방이 패는 대로 맞고 있으란 뜻이다.

“그쪽 파벌이 뭔가 크게 꾸미는 모양입니다. 뒤로 당겼던 손이 더 아프게 때리지요.”

히토미가 속한 파벌은 연방 내에 잠입한 샤다이를 색출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래서 빈우와 협력 중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기들 쪽에서 확실한 증거나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되도록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겉으로 보기엔 같은 연방의 조직이니까.

어떻게 보면 변이 중인 빈우는 그들에게 있어 훌륭한 샘플이다. 어쩌면 빈우를 실험체 삼아 인간으로 위장한 샤다이를 잡아낼 방법을 찾아내려 할지도 모른다.

-믿을 만하냐?

레드우드 사령관의 말에 빈우는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해주었다.

“아직 우리 쪽에 이용 가치가 있으니 그동안은 아껴주겠죠.”

이외에도 그동안의 작전과 경과보고를 한 다음 통신은 꺼졌다.

“피곤하네.”

묶인 채로 있던 빈우가 푸념했다.

“주인님, 시장하진 않으세요? 뭔가 드시고 싶은 것 없나요?”

아나스타샤가 바로 빈우의 옆에 달라붙었다.

“배가 고프진 않아. 영양 보충을 할 필요가 없는 건지, 아니면 허기를 못 느끼는 건지.”

정확히는 빈우는 현재 자신의 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두뇌칩 역시 작동하지만, 이게 변이된 육체에 대해선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었다.

“일단 팀장님의 육체에 영양 패치는 붙여놨습니다. 군용으로요.”

크산티페의 말대로 빈우의 몸 몇 군데에는 식사용 패치가 붙어있다. 피부로 흡수되는 이 영양 패치는 유사시에 식사 대용을 위한 영양 공급책이다.

“고마워, 크산티페.”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크산티페는 쿠델카 모델이라 아나스타샤와 같은 외모를 하고 있다. 물론 살아온 방식에 따라 성격이 다르고, 그로 인해 표정이나 몸짓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아나스타샤와 똑같은 빅토리안 메이드 복을 입고 헤어스타일이나 악세사리까지 똑같이 하고 있어서 겉모습만으론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크산티페.”

“네, 팀장님.”

“아나스타샤처럼 행동해 봐.”

빈우의 그 말이 떨어지자 크산티페의 표정이 바뀌었다. 몸짓 또한 다르다. 그리고 입을 열자 아나스타샤의 목소리와 말투가 나온다.

“아 진짜. 벼라별 걸 다 시켜요. 에휴, 하란다고 하는 나도 참.”

게다가 인식칩까지 위조해 안드로이드의 이름마저 아나스타샤로 확인된다.

“이런 패치론 식사가 안 되죠? 으음, 제가 몸에도 좋고 마음에도 좋은 블랙커피와 빵을 준비할게요. 그걸 드시고 제 젖꼭지를 탐구하시던 시절로 돌아가 보시던가.”

“훌륭해. 이 정도면 어지간한 놈들은 속겠어.”

“에헷, 감사합니다, 주인님.”

자신이 있던 자리, 자신이 하던 행동. 그것을 자신의 자매가 주인의 앞에서 하고 있다.

빈우와 크산티페를 보고 있던 아나스타샤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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