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24화 (222/301)

224화

“아나스타샤?”

크산티페가 자매의 이변을 알아채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아나스타샤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주저앉았다.

“…세요.”

그리고 그녀의 가린 손 사이에서 무언가에 억눌린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무슨 일이야, 아나스타샤. 왜 그래?”

크산티페는 갑작스러운 아나스타샤의 이상행동에 그녀를 진정시켜 보려 했지만, 아나스타샤는 고개를 들며 울음을 터트렸다.

“제발 절 버리지 마세요!”

그녀는 오열하고 있었다.

“왜, 왜 그때 날 그렇게 대했는지 알겠어요. 왜 날 무시했는지, 왜 나에게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는지. 난 내가 뭔가 잘못한 줄 알았어요. 나에게 싫증이 난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아나스타샤는 울면서 빈우를 올려다 보았다. 무표정한 빈우와 흐느끼는 아나스타샤는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안드로이드는 변한 자신의 주인의 눈빛이 기억났다. 흉측하게 변한 주인의 외모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저 빈우의 저 눈빛이, 과거에도 저렇게 보았던 눈빛이 무서웠다. 마치 자신을 떼어내려는 듯한 눈빛이 말이다.

“날, 날 보내려고 한 거야. 날 주인님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한 거야.”

마커스는 크산티페를 아나스타샤의 대역으로 세우려고 했다. 이후에 올 조사가 아나스타샤에게 심각한 위험이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빈우는? 마커스는 빈우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군사정보국을 떠나 국방부로 간다고 말했을 뿐이다. 오히려 빈우가 마커스에게 사과를 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왜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빈우가 그런 말을 했을까.

아나스타샤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빈우가 과거에 자신에게 왜 그랬는지를. 군사정보국에서 요원으로 살아가던 주인이 울토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괴로워했을 때 왜 자신과 거리를 두려고 했는지 알게 되었다.

자신의 주인은 이미 끝을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육체적 죽음이든, 정신적인 파멸이든, 사회적 매장이든 빈우는 자신에게 마지막이 다가옴을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아나스타샤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한 것이다.

자기가 더 이상 그녀를 지키지 못할 때를 대비해 아나스타샤를 자신과 무관계하고 무해한 안드로이드로 남겨 놓으려고 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기 스스로가 위험한 것이 되었을 때 그 위험으로부터 떨어트려 놓으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위험하니까, 날 거기서 멀어지게 하려고 한 것… 맞죠?”

울면서 타이르는 누나에게 비밀이 들킨 개구쟁이 동생이 사실을 말했다.

“…그래, 나중에 내가 돌아갈 곳이라도 있어야지.”

“거짓말! 거짓말이야. 제발 나한테 거짓말하지 마세요.”

아나스타샤가 소리치며 세차게 도리질했다. 눈물방울이 사방으로 흩날린다. 그녀는 허겁지겁 달려가 빈우에게 매달렸다.

“난 주인님하고 같이 있을 거예요. 안 떨어져요. 주인님을 혼자 내버려 둘 순 없어요.”

빈우의 입이 서서히 열릴 때, 아나스타샤가 서둘러 두 손으로 주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입에서 자신의 귀에 들릴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제발, 제발제발제바알. 부탁이니까. 말씀하지 마세요. 저한테 명령하지 마세요. 제가 뭐든 할 테니까 주인님 곁에 있게 해주세요. 부탁할게요. 제발요.”

마침내 빈우의 눈이 천천히 내려가 감겼다. 그리고 아나스타샤의 손도 서서히 떨어졌다.

“…알았어. 계속 내 곁에 있어 줘. 아샤.”

빈우의 약속이 떨어지자 마침내 아나스타샤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단순히 주인과 안드로이드의 관계는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형태의 가족 관계가 이 둘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크산티페.”

빈우의 조용한 부름에 크산티페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다가왔다.

“네, 김 팀장님.”

“아샤를 좀 쉬게 해줘.”

“알겠습니다.”

크산티페는 넋이 나간 아나스타샤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어린 도련님을 찾아서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문이 닫히자 알탄훼아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인공지능은 참으로 대단하군. 어딜 봐도 진짜 사람처럼 행동해.”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어차피 우리도 유전자에 프로그램된 대로 행동하는 존재야. 번식욕에 따라 상대를 덮치고, 물욕에 따라 걸리적거리는 놈을 죽이지. 그리고 그것을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고.”

거기까지 말한 빈우는 알탄훼아나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러면 조금 유에네스 같나?”

유에네스, 샤다이 어로 종결자라는 의미다. 그러나 보통의 의미로 쓰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무언가 다른, 보다 큰 의미로 쓰이는 분위기지만 당사자인 알탄훼아나는 이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어서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글쎄….”

알탄훼아나는 말을 흐리며 식사를 계속했다. 아무래도 숨기고 싶은 모양이다. 빈우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밥 다 먹으면 다시 치료를 계속하지. 그런데 치료는 잘 되고 있나?”

“너의 가족 덕분에 증상은 상당히 호전되었지만, 아직 완벽한 것은 아냐.”

빈우는 알탄훼아나의 치료를 되새겨 보았다. 그녀 말대로 효과는 실제로 있어 보였다.

“호전이라…. 이제 인간 안에 숨어든 샤다이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가?”

“너 같은 상태나, 그대가 말하는 워프 비스트처럼 뒤틀려 내려온 자라면 알아본다. 하지만 제대로 내려온 자라면 아직은 힘들 것 같아.”

“얌마, 그러면 의미가 없잖아. 그 정도는 우리도 알아본다고.”

빈우의 핀잔에 알탄훼아나는 투덜거리며 식사를 계속했다. 이래저래 부대끼다 보니 신경이 굵어진 모양이다. 빈우는 눈을 감고 그녀가 식사를 마치길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 치료를 기다렸다.

* * *

“와, 저게 뭐예요?”

네 가족이 푸른 들판을 걷고 있다. 아들의 물음에 아빠가 고개를 갸웃한다.

“글쎄다. 뭔가 식용 식물 같은데?”

그러자 엄마가 다가가 그 식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게. 곡식 같구나. 이 열매 부분을 거둬서 껍질을 까서 먹는 것처럼 보여.”

“먹을 수 있나요?”

딸이 엄마 곁으로 다가와 물어본다.

“으음, 잘 모르겠네. 아마 수확해서 가공을 해야 할 거야. 날로 먹으면 배탈 날지도 모르니 조심해. 엄마 말 들었지?”

엄마의 말에 풀줄기를 뜯던 아들이 뜨끔해서 손을 내려놓았다.

“야, 엄마가 조심하랬지.”

딸이 뽀르르 달려가 아들을 타박한다.

“그래서 손 놨잖아.”

아들 역시 질세라 대꾸했다. 키 차이를 보니 딸 쪽이 누나, 아들 쪽이 동생으로 보였다.

“저기 봐, 저기에 집 같은 게 있어.”

뭔가를 발견한 아빠가 소리치며 가족을 부른다.

“정말이네. 정말 주거 공간 같아.”

가족들이 아빠 주변에 모였다. 엄마도 아빠가 발견한 것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가자.”

아빠의 말에 엄마가 흠칫 놀랬다.

“…그래, 가야지.”

그녀는 지금 뭔가 떨떠름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은 듯한 표정이다. 그렇게 네 명의 가족은 꺼슬꺼슬한 털 난 열매가 달린 푸른 풀밭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엄마, 엄마.”

“왜 그러니?”

아들의 부름에 엄마가 내려다보았다.

“우리 말이에요. 왜 다시 돌아왔어요?”

아들의 천진난만한 질문은 엄마의 얼굴에 작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보이지 않지만 앞서가는 아빠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사한 곳이 살기 불편해서 돌아왔단다.”

“그러면 왜 처음에 이사를 갔어요?”

이어지는 아들의 질문에 아빠가 뒤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 모습을 본 엄마가 황급히 만류한다.

“잠깐, 아직 애야. 잘 모르잖아. 너무 화내지 마.”

엄마를 지나친 아빠는 아들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슬픈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미안하구나.”

아빠의 사과에 가족들이 조용해졌다.

“아빠는 여기가 위험해서 떠나자고 했어. 하지만 이사한 곳도 그리 좋은 곳은 아니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온 거야. 여기도 위험하긴 하지만, 아직 아빠의 친척들이 살고 있으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자. 알겠지?”

그러자 아들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빠.”

“좋아. 그럼 가자.”

아빠는 아들의 머리를 세차게 쓰다듬으면서 일어나 길을 앞장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은 처음 보는 집에 도착했다.

“안에 주인이 있겠지?”

아빠는 문 앞에서 저어하고 있다. 그때 엄마가 뒤에서 나섰다.

“그래도 들어가야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에는 처음 보는 가구들이 있었지만, 다들 쓸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앉을 수 있는 의자에 쓸 수 있는 탁자들이다.

“와아. 맛있는 냄새.”

아들이 코를 벌름벌름하더니 냄새를 따라갔다.

“야, 함부로 먼저 가지 마.”

누나가 달려가 동생의 팔을 잡았다.

“그래, 여기 집주인이 있을지도 몰라. 조심해야지.”

아빠가 부드럽게 타이르며 다시 앞섰다. 그리고 뒤로 딸과 아들을, 마지막엔 엄마가 서서 아이들을 지켰다.

“여기였네.”

누나가 탄성을 질렀다. 냄새를 따라간 곳은 식당이나 부엌처럼 보였다. 여러 가지 꽃과 과일로 화려하게 꾸며진 식탁 위에는 맛있어 보이는 스프가 있었다. 마침 의자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식사를… 하던 중이었나?”

아빠가 중얼거리며 여기저기를 살폈다. 어딘가에 있을 집주인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주인은 없나? 아니. 있겠지. 다른 곳에.”

엄마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이 부엌은 보통 공간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 이거 먹어도 돼요?”

아들은 벌써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눈앞의 스프를 보며 군침을 꼴깍 삼켰다.

“가만히. 기다려 봐. 아빠가 먼저 먹어볼게.”

아빠가 아들을 말리며 스프 그릇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긋이 살펴보더니 서서히 입으로 가져갔다.

“조심해.”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본다. 저 스프를 먹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저것을 먹고 이 집에 살면서 서서히 돌아와야 한다. 이제 귀향을 할 때다.

아빠는 스프 그릇을 입에 대고 서서히 마셨다. 걸쭉한 죽이라 마시긴 힘들었고, 조금씩 손가락으로 밀어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잠시 맛을 음미한 다음 목구멍으로 삼켰다.

그러자 점차 맛이 느껴진다. 집주인의 기억이 느껴진다. 이 집 주인의 고통과 아픈 기억이 아빠의 안에서 되살아난다.

-맥각 중독. 막내 여동생. 이유식. 자신이 직접 키운 보리. 맥각균. 막내 여동생 구토. 엄마가 없어. 엄마는 뒷 공터에 누워서 자. 아나스타샤 어딨어. 누나 어딨어. 소리가 아파. 소리가 열나. 소리가 아파. 소리가 죽었어.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어. 내가 막냇동생을 죽였어.

단편적인 기억이 아빠의 머릿속을 휩쓴다. 집주인의 상처다. 이것이 계단의 재료가 되어 마지막 부분이 된 것이다. 이제 그의 약점을, 마음의 상처를 빼앗을 시간이다. 이자의 고통이 만들어낸 이 공간을 장악하고 빼앗는다. 그렇다면-

“억!”

아빠가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며 수프 그릇을 놓쳤다. 가족이 뭐라고 부르면서 달려오지만, 그에겐 들리지 않는다. 청각 정보가 수집될 틈이 없었다. 그보다 엄청난 것들이 아빠의 정보를 덮어쓰고 있었다.

-죽음. 고통. 파괴. 학살. 고문. 피. 울음. 쾌락. 실망. 절망. 공포.

온갖 마음의 상처가 파도가 되어 아빠의 몸 안에서 소용돌이친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곳의 것이 아닌 기억들이다. 집주인의 컸을 때의 기억이다.

‘이곳은 그의 유년기 시절일 텐데, 왜?’

아빠는 식탁을 잡고 간신히 서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스프 그릇을 보았다. 그 안의 보리죽. 아기를 위해 곱게 갈았지만, 맥각균이 들어간 죽. 원래라면 있을 수 없지만, 자신이 정성껏 키우다 감염된 보리로 만든 이유식이다. 자신이 직접 보리를 키우고 수확하고, 만들어 돌도 안된 여동생을 죽인 이유식이다.

‘그런데 왜, 어째서 여기에 성인 때의 고통이?’

아빠는 자신의 물음에서 스스로 해답을 구해냈다. 그리고 그 답에서 공포를 느꼈다.

“도망쳐! 여긴-.”

아빠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가 날아오른 게 아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그의 뒷덜미를 잡고 집어 올린 것이다.

“커억!”

아빠의 배에서 커다란 칼날이 솟구쳐 나온다. 푸른 피가 사방으로 튄다.

“아빠!”

가족의 비명 소리가 식당을 울린다. 어느새 아빠의 뒤에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나타나 있었다. 노란 피부, 검은색 머리카락. 이 집의 주인이 분명했다. 그는 손에 든 날붙이를 휘둘러 아빠의 배를 등 뒤에서부터 갈랐다. 두 동강이 난 아빠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 함정….”

아빠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집주인이 그의 머리를 잡아 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입을 벌려 아빠의 머리를 씹어 먹기 시작했다. 우둑거리는 소리가 난다. 뼈가 으깨지는 소리, 살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아빠의 색이 변해간다. 푸른 피가 땅에 떨어질 때는 붉은 색이 되어있다. 아빠의 푸른 살점이 집주인의 입에서 씹힐 땐 붉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사냥꾼이 사냥당하는 장면에서 엄마는 정신을 차렸다.

“도망쳐!”

엄마가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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