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25화 (223/301)

225화

“엄마, 저거 뭐예요. 아빠가. 아빠가!”

아들이 울면서 소리친다.

“엄마, 아빠를 구해요. 아빠를!”

딸이 울면서 매달린다. 그러나 엄마는 둘을 잡고 달렸다. 마침내 집의 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까 부드럽게 돌아갔던 문고리가 지금은 꼼짝달싹도 않았다. 아빠가 왜 함정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이 집을 구성하는 계단의 마지막 부분 자체가 이 가족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집주인의 발소리다. 아빠를 다 먹은 그가 나머지 사냥꾼들을 거꾸로 사냥하기 위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어서 따라와!”

엄마는 둘을 안고 계단으로 뛰었다. 이 집에 있으면 있을수록 집주인의 기억이 스며들어 온다. 그녀의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집주인의 슬픔과 고통이 흡수되어 올라온다.

“억!”

엄마가 짧은 비명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이 그녀를 휘감았다.

“엄마, 엄마!”

아들이 엄마를 안고 운다. 딸이 울면서 엄마를 일으킨다. 집주인의 비웃음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온다.

“도망쳐!”

엄마가 아이들을 밀면서 외쳤다. 울면서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복도 끝의 방으로 가! 그 방으로 들어가. 절대 나오지 마. 절대 나와선 안 돼! 어서 가!”

간신히 알아낸 기억이다. 집주인이 마주보기 싫어했던 터부, 유년기의 어두운 기억이 만들어진 방이라면 집주인도 바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당분간은.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그 당분간의 시간만이라도 주고 싶었다.

“어서 달려!”

우는 동생을 잡고 뛰는 누나도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는 힘겹게 일어났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집주인을 마주 봤다. 잠시라도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벌려는 것이다.

“다로! 유에네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은 방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엄마가 말한 방이다. 문이 닫히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바깥의 소리가, 방금까지 울려 퍼지던 엄마의 비명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곳이 정상적인 공간이 아니란 의미다. 집주인의 정보로 구현된 정보 공간. 그리고 이 방은 유년기의 큰 상처가 모인 곳이라 외부로부터 단절된 곳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집주인이라도 들어오기 힘든 곳이다.

“엄마, 엄마아.”

아이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동생은 울음을 그칠 줄 몰랐고, 누나 역시 울고는 있지만 어떻게든 주변을 살펴보려 했다.

“샤다이를 무찌르자! 화성을 지키자!”

갑작스러운 소리에 남매가 화들짝 놀랐다. 소리 난 곳을 보니 침대 머리맡에서 작은 인형이 웃으면서 소리치고 있다. 그러나 그 인형은 소름 끼치는 눈동자로 남매를 노려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저쪽 화면에선 집주인의 종족으로 보이는 여성이 헐떡이며 몸부림치는 영상이 나오고 있다. 아마도 생식행위로 보이는 그 장면은 집주인의 심상이 반영된 탓인지 구역질 나도록 일렁이고 있었다.

“빈우야! 스위치를 꺼!”

갑자기 방의 가운데에서 비명이 들렸다. 거기엔 길다란 막대기에 사람이 휘말려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붉은색의 액체, 아마도 피로 보이는 액체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침대 위에는 검은색의 투명한 천 조각이 있고, 그 옆에선 갓난아기가 캑캑대며 토하고 있었다.

“누나, 무서워어….”

동생이 겁에 질려 누나에게 매달렸다. 집주인의 상처가 집결된 곳이니 아직 어린 남매에게는 버거운 곳이다.

“겁먹지 마. 이제 우리가 여기서 살아야 해.”

누나가 말했다. 원래는 부모가 해야 할 일이지만 이젠 이 두 남매가 해야 할 일이 된 것이다. 어떻게든 고향으로 돌아와 살기 위해서. 남매는 서로 꼭 부둥켜안았다. 이곳의 공포로부터 이겨내기 위해서다. 아직 어린 둘에겐 버거운 곳이다.

“얘들아.”

그때 밖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뭔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누! 누구야!”

누나가 공포에 못 이겨 빽 하고 소리쳤다.

“엄마야.”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에 아들이 화들짝 일어났다.

“엄마다! 엄마아아!”

달려가려는 동생을 누나가 붙잡았다.

“가지마아! 엄마 목소리가 아니야.”

그 말에 동생이 덜컥 겁을 먹고 뒷걸음을 쳤다. 그때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아니야, 엄마 맞아. 아까 집주인과 싸우다가 목을 다쳐서 그렇단다. 엄마가 집주인을 물리쳤어. 이제 나와도 돼.”

아무리 들어도 남자 같은 굵은 목소리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을 엄마라고 하는 존재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예요? 진짜 엄마예요?”

딸이 울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래, 엄마야. 엄마 맞아. 문이 잠겨서 못 들어가잖니. 어서 문을 열어줘.”

목소리는 자신이 엄마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문 너머의 존재가 엄마인지 집주인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딸은 어떻게든 엄마를 확인할 방법을 찾았다. 가족만이 아는 사실, 혹은 엄마와 딸만의 비밀을 물어서 답이 맞는다면 엄마다.

“손을 보여줄까?”

그 때 문 너머에서 작은 목소리가 물어봤다. 손. 집주인의 피부는 노란색이다. 엄마의 피부는 파란색이다. 문틈으로 손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시만요.”

딸이 벌벌 떨면서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손잡이를 잡고 살짝만 문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무 문이 열리며 손이 보였다. 파란색의 피부, 그리고 익숙한 모양의 손. 엄마의 손이다.

“엄마다!”

아들이 기뻐서 달려 나갔다. 울고 있던 얼굴에는 어느새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아들이 문을 활짝 열었을 때 엄마의 손이 떨어졌다. 잘린 푸른 손이 바닥에 부딪힐 때, 그것을 잡고 있던 노란 손이 아들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동생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에 누나가 놀라서 달려 나갔다.

“안돼!”

누나는 집주인의 팔을 잡고 매달렸다.

“놔! 동생을 놔줘. 놔아아!”

다행히 동생의 옷이 찢어지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 대신 누나가 잡혔다.

“아악! 엄마! 아빠아!”

머리채를 잡힌 누나가 고통과 공포에 비명을 질렀다. 누나는 집주인에게 잡혀 문 바깥에 있었고, 떨어진 동생은 문 안쪽에 있었다. 집주인은 차가운 눈으로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누나를 구해야지.”

엄마의 말대로 그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문밖에서 누나를 들고만 있을 뿐이다.

“무, 무무….”

누나가 더듬거리며 뭐라고 말하려고 했다. 겁에 질려 좀처럼 나오지 않던 말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터져 나왔다.

“문 닫아!”

멍하니 얼어있던 동생이 화들짝 놀라서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세차게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자 바깥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문이 닫히기 전에 동생은 보고 들었다. 누나가 집주인에게 찢겨 죽는 모습을, 산산조각 나며 지르던 비명을.

문이 닫힌 다음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나왔다.

“나와.”

집주인의 목소리에선 숨길 필요도 없는 적의가 넘실댄다. 그 목소리에 아들이 겁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 떤다.

“여긴 내 집이야.”

그는 문을 세차게 두들기고 있었다. 동생이 그 광경에 놀라 뒤로 물러선다.

“문 열어. 이 새끼야.”

문고리가 철컥거리고, 경첩이 삐걱거린다. 침대까지 뒷걸음 친 동생이 자신을 껴안다가 찢어진 옷자락을 만졌다. 누나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힘썼던 증거다. 그리고 그 대가로 누나가 대신 죽었다.

“좋아, 꼬마야. 하나 물어보자꾸나.”

이제 집주인의 목소리는 다시 차분해졌다.

“왜 난 너희들을 소화할 수 없을까?”

문 너머에서 집주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너희들은 나에게 정보를 새겼지. 그리고 내 상처를 헤집고선 그것을 발판삼아 내 안으로 들어왔고. 이제 이 집에서 살기만 하면 내 몸은 너희들의 것이 되었을 거다. 그런데 말이다. 왜 나는 너희들의 정보를 내 것으로 할 수가 없을까? 응? 내가 너희들을 이렇게나 많이 잡아먹었는데 말이다.”

그저 부모를 따라다니기만 했을 뿐인 아이에겐 이해가 가지 않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집주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딱히 너한테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어. 절반은 이 문을 열어주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서서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아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어디로든 도망칠 곳은 없었다. 창문들은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다. 숨기 위해 벽장을 열려고 해도 손가락이 자꾸 미끄러진다.

“고마워, 알탄훼아나.”

다시 마주하게 된 집주인은 인사를 했다. 그러나 아들은 그것이 살아남은 자신에게 한 인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집주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방안으로 천천히, 그리고 힘겹게 한 걸음씩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그는 조심스럽게 방을 둘러보았는데, 꽤 꺼리는 시선이었다. 꺼릴 뿐만 아니라 얕게나마 공포심마저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그 시선이 아들과 마주쳤을 때는 다시 이글거리는 적개심이 타올랐다.

* * *

“허억!”

알탄훼아나는 밭은 숨을 내쉬면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치료도 중지되었다.

“뭐지? 왜 치료를 멈춘 거지?”

묶여있던 빈우가 질문했다. 조금만 있으면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 침입자들을 모조리 씹어 먹었을 것이다.

“설마 선조가 죽는 모습을 못 보겠단 건가?”

빈우는 알탄훼아나의 도움 덕분에 자신 몸 안에 들어온 샤다이를 공격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빈우가 느꼈던 몸속 샤다이들의 징조가 그저 막연한 느낌에 불과했었다면, 이제는 알탄훼아나가 선조들의 정보를 중간에서 빈우가 이해할 수 있는 관념으로 바꿔준 덕분에 인물으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인물들을 육체의 주인인 빈우가 자신의 인식하에서 죽일 수 있었다.

“아니, 그대의 모습을 봐라.”

헐떡이는 알탄훼아나의 푸념에 빈우는 워프 비스트로 변해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곳곳에서 플라스마 줄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흐음.”

그것을 보고 빈우는 알탄훼아나가 치료를 멈춘 이유를 알았다. 변이한 육체가 플라스마에 증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와 비슷한 치료를 웨이블에서 고아에게 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이의 몸속에 존재하는 계단을 부수기 위해서 신체 신경계에 플라스마 가닥을 집어넣었었다. 그전에는 발 가르단 하스가 이케가미 소이치로에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공통점으로는 둘 다 고온의 플라스마에 증발해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워프 비스트의 육체가 된 빈우는 알탄훼아나의 플라스마에 접촉해서도 피해를 입지 않았고 그 덕에 이런 과감한 치료를 할 수 있었다. 빈우의 육체가 워프 비스트의 육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빈우의 육체는 플라스마에 피해를 입었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내가 인간으로 돌아오고 있단 증거인가?”

빈우는 증발한 자신의 신체 부위를 만져보았다. 고온으로 뜨겁게 녹아 눌어붙어있다.

“그래, 겉모습은 아직 변이한 상태지만, 그대의 본질은 다시 유에-인간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 상태에서 치료는 계속할 수 있겠나?”

“아니, 이 이상은 그대의 육체에 위험부담이 크다.”

하긴 아무리 강화 육체라 해도 고온의 플라스마에 버텨낼 방법은 없다. 그런 것이 빈우의 몸속을 헤집으면 빈우는 티모시 1078과 같은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알탄훼아나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들어 보였다.

“대신 이것으로 공명하는 방법을 써보자.”

엘리자베트 같은 아이들에게 썼던 치료 방법이다. 플라스마 감각기관을 통해 내부의 계단을 부수는 방법이다.

“그러면 그들을 직접 죽이는 것은 아니고?”

무심코 던진 빈우의 말에 알탄훼아나의 얼굴에 충격의 파문이 일었다.

“아아아, 나는, 나는 더 이상 그런 것을 볼 자신이 없다.”

그녀가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빈우의 안에 들어온 샤다이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죽지 않는다. 칼로 찔러도, 총으로 쏴도 정보로 존재하는 그들은 죽기 힘들다. 그렇다면 더더욱 고통을 주고 공포를 주어야 한다. 자신에게 닥친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못 이겨 스스로 붕괴하도록 고문해야 하는 것이다.

“으으으- 아아. 그만둬.”

하지만 알탄훼아나는 지구 제국에 사로잡혔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워하고 있었다. 제국의 군인들은 그녀의 눈앞에서 동료들을 무참하게 도륙했고, 빈우 역시 그녀의 눈앞에서 선조를 잔인하게 고문해 죽이고 있다. 그러니 그녀가 당시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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