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빈우는 지금 자기 방의 문 앞에 서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고향, 과전의 방이다. 유년기의 추억이 태양에 녹았다고 생각하니 섭섭하지만 뭐 어찌할 건가, 살 사람은 살아야지.
“참기름도 없고, 도끼도 없고….”
그는 시큰둥하게 중얼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구석에는 울면서 벌벌 떨고 있는 샤다이 소년이 보인다.
“으아아아아-!”
빈우를 본 샤다이가 허둥대며 비명을 질렀다. 앉은 자세 그대로 뒤로 물러나려고 하지만 더 이상 갈 곳은 없다.
“살 궁리라도 생각해 봤냐?”
다가오는 빈우를 보던 샤다이 소년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일어서서 달렸다. 하지만 얼마 달리지도 못하고 집주인의 발에 걸려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리고 발에 짓밟혀 캑캑대는 숨소리만 낼 뿐이다. 빈우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침입자의 가슴팍을 쥐었다.
“아아악!”
늑골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샤다이가 비명을 질렀다. 빈우는 부러진 갈비뼈를 내려다보았다. 푸른색의 피가 손안에서 점점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다. 빈우가 침입자를 침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빨리 끝내자.”
빈우는 갈비뼈를 들어 샤다이의 머리에 내리찍었다. 늑골이 두개골을 파고들고 침입자가 펄떡댄다.
“아악! 엄마아! 엄마아아아!”
샤다이가 엄마를 찾아 허둥댄다. 이리저리 휘젓는 놈의 손에 무언가가 걸렸다. 빈우 엄마의 시신을 감고 돌아가는 샤프트다.
“아아아아아아!!!”
아들은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손에 잡힌 것을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그리고 집주인 어미의 시신으로 집주인을 두들겼다. 노린 것도 아니고 닥치는 대로 휘두른 것에 집주인이 맞았다.
“넌 그나마 강하구나.”
빈우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자신의 몸에 들어온 샤다이 가족 중에서 엄마도, 아빠도, 딸도 빈우의 고문에 그다지 버티지 못하고 소멸하고 말았다. 이런 정신적인 죽음은 실제 죽음보다 더해서 아예 소멸한다고 알탄훼아나가 설명했었다.
비웃음을 짓는 빈우의 얼굴에 어머니의 시신이 부딪혀 온다. 바닥에서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샤다이가 빈우의 트라우마를 무기 삼아 휘두르는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빈우는 제대로 맞서지 못했을 어두운 기억이다. 그러나 지금은 뭔가가 다르다. 빈우는 어머니의 시신으로 맞아도 그냥 그렇다고 느꼈을 뿐 태연했다. 지금까지 그에게 달라붙었던 족쇄는 그대로 있지만, 족쇄를 대하는 관점이 바뀐 것 같았다.
“그래그래, 너는 어디까지 버틸까.”
빈우는 발버둥치는 샤다이를 반으로 뜯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잘근잘근 씹어먹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육체가 아니라 정신체이지만 샤다이는 먹혀가면서도 맹렬하게 저항했다.
한 입, 또 한 입. 샤다이의 정신체는 산 채로 먹히면서도 발버둥쳤지만 결국 조금씩 빈우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이빨에 씹히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도 색을 유지하려 발악한다. 그러나 그게 오래가진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샤다이가 소화되는 게 느껴졌다. 고통과 공포 때문에 망가진 샤다이가 소멸하는 것이다.
“응?”
집주인이 피투성이가 된 방에 홀로 서 있었다. 샤다이의 푸른 피와 살점은 없다. 마치 인간의 것처럼 보이는 붉은 피와 살 조각들이 빈우의 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빈우야! 스위치를 꺼!”
바닥에 넘어진 샤프트에서 어머니가 비명을 지른다. 빈우는 혼란해져 오는 시선을 돌려 방안을 둘러보았다. 이 붉은 것들이 어머니의 피일까. 샤다이의 피일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피일까. 어지럽고 몽롱하다. 빈우는 붉은 피로 범벅이 된 손으로 샤프트를 잡으려 했다. 과거 자신이 끄지 못했던 스위치다. 결국 울면서 오줌을 싸는 병신 새끼는 엄마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못 했었다. 그저 아나스타샤가 와서 안아줄 때까지 깩깩 소리나 질러댔을 뿐이었다.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누나들과 아나스타샤의 위로 덕분에 자기합리화로 묻어둘 수 있었다.
‘빈우야, 네 잘못이 아냐.’
‘죄송해요, 도련님. 제가 너무 늦었습니다.’
‘빈우야, 네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울지마.’
어머니의 죽음을 방관한 등신은 정말로 그 말을 믿었다. 아니, 믿기로 했다. 정말 자신에게 잘못이 없었고, 잘못한 것은 아나스타샤라고 믿었다. 그리고 엄마를 찾아 울던 여동생을 시끄럽다고 어두운 곳에 가두고, 거지 같은 이유식을 만들어 막냇동생을 죽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친누나 같은 아나스타샤에게 몹쓸 짓을 하려 했었다. 대가리가 굵어진 애새끼는 결국 쿠델카 모델이 나오는 포르노 영상물을 몰래 구입했었고, 거기서 나왔던 검은색 속옷 또한 샀다. 결국엔 아나스타샤를 안고 침대에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저 안고 싶었던 것도 있고, 다른 속셈도 있었다. 마침 그때 여동생의 장난감이, 피스메이커가 빈우의 눈앞에 떨어지지 않았었다면 과연 어찌 되었을까.
“후후후.”
아나스타샤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빈우의 위에서 웃고 있었다. 자신에게 잘 자라고 입맞춤을 해주던 입술이 질척하게 벌어진다. 그 번들거리는 입술 안에서 빈우의 입가에 조금 남았던 음식물을 날름 주워 먹던 귀여운 혀가 꿈틀거린다.
“사관학교, 가려고?”
아나스타샤의 끈적이는 목소리가 빈우의 귀에 들려온다.
“…이건 언제 적 기억이지?”
빈우는 누운 채로 손을 들어 아나스타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비릿한 웃음이다. 성인 영상에서도 이런 표정은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 방은 빈우의 어둡고 터부시되는 기억들이 모인 곳이다. 고통과 공포는 물론이고 자신이 마주 볼 수 없는 기억들이다. 그런 곳에 빈우가 처음 보는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잊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건 군사정보국의 보안용으로도 본 적이 없는데.”
빈우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 정도 악력이면 쿠델카 모델은 비명을 지르고도 남는다. 그러나 아나스타샤는 아직 웃고 있었다.
“윽, 아아- 김 팀장님!”
빈우의 손안에서 쿠델카 모델이 소리치고 있다.
“크산티페….”
워프 비스트의 손이 풀리자 그녀의 고통스러운 표정도 풀렸다.
“김 팀장님, 알탄훼아나 씨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크산티페의 말대로 알탄훼아나는 두 눈을 꼭 감고 벌벌 떨고 있었다. 빈우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신경계는 다시 불타있었고, 더 이상의 변이는 없었지만,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 부분도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빈우의 질문에 크산티페가 방금 전의 기록을 보여주었다.
“모르겠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영상 속에선 알탄훼아나의 몸에서 플라스마 가닥들이 가늘게 뽑아져 나와 빈우의 몸으로 향한다. 군용 강화한 신체가 버터 녹듯이 증발한다. 그녀는 그렇게 빈우의 안에 접속했다.
“여깁니다.”
크산티페가 말한 부분부터 알탄훼아나의 상태가 이상했다. 눈에서 나오는 금빛이 일렁이다가 깜빡인다. 그리고 그녀의 심상을 반영하듯 플라스마 가닥들이 휘청거리다가 꺼져간다. 마침내 알탄훼아나가 플라스마를 거두고 눈을 감았다.
-아아아아아!
그녀는 얼굴을 감싼 채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치 무언가 경악스러운 장면을 보고선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아마 빈우가 아이를 잡아먹는 장면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빈우는 고개를 돌려 알탄훼아나를 보았다.
“알탄훼아나.”
그러나 그녀는 오들오들 떨기만 할 뿐, 대답은 없었다.
“알탄훼아나!”
조금 큰 빈우의 목소리에 알탄훼아나가 흠칫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더듬더듬 말했다.
“이제, 이제 끝났어. 치료는 끝이야. 그들은 다 죽었어.”
빈우는 주저앉아 흐느끼는 그녀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치료가 끝난 것은 확실해?”
대답 대신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인다.
“싫어, 더 이상은 못 하겠어. 못 하겠어.”
이젠 알탄훼아나에게 치료가 필요할 지경이다.
“크산티페.”
빈우의 말에 크산티페가 서둘러 알탄훼아나에게로 갔다. 그리고 겁에 질려 발버둥 치는 그녀를 안아 들어서 옆에 있는 침대에 눕혔다. 빈우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다시 의료 로봇을 불렀다. 치료가 끝났다면 다시 불탄 부위를 교체해야 하는 것이다.
잠시 후 빈우의 신체 부품들이 도착했고, 로봇들이 다시 수술을 시작했다.
“이거 좀 수상한데….”
빈우는 수술 과정을 보며 불안한 듯 말끝을 흐렸다. 재생속도가 너무 빠르다. 마치 방금 있었던 워프 비스트의 침식처럼 새로 붙은 팔다리가 금세 동화되어 버렸다. 교환된 장기들도 막 수술하던 중에 원래의 자리에 붙어 작동을 시작한다.
“변이는… 없군.”
다만 아까와는 달리 다시 붙은 팔다리에선 더 이상의 워프비스트 변이는 없었다. 그냥 빈우의 팔다리다. 그는 두뇌칩으로 몸 전체를 점검해 보았다. 그리고 외부의 센서로 정밀 점검을 해보았다.
“팀장님, 신체에 어떠한 변이 반응도 없습니다.”
어느새 크산티페가 다가와 의료기기들을 살피고 있었다. 빈우가 봐도 화면 속에는 정상적인 빈우의 육체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샤다이의 기술은 인류의 수준으로는 발견하기 힘든 것이 많아서 이것으로 확실한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지.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몰라.”
“창고 안의 불 뿜는 용처럼요?”
빈우의 혼잣말을 크사티페가 넙죽 받았다. 그 말을 들은 빈우가 고개를 돌려 크산티페를 바라보자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은 행동을 했습니다.”
“아냐, 제법 재밌었어.”
“감사합니다. 그러면, 구속구를 풀까요?”
현재 빈우는 장갑복으로도 풀 수 없는 다중 구속 장치로 묶여있는 상태다. 그중에는 위험한 행동을 감지했을 때 터지는 폭탄들도 있었고, 구역째로 방출해서 소각하는 장치도 있다.
“아니, 당분간은 상태를 지켜보자. 알탄훼아나가 정신을 차리면 한 번 더 확인해봐야겠어.”
인류의 기술로 확인할 수 없으면 결국 전문가를 불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전문가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니 잠시 기다려야 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알탄훼아나가 이번 충격으로 다시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녀는 지구제국의 고문을 받아 그 후유증으로 잠시 능력을 잃었었다. 비단 능력뿐만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반폐인이 되었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의 도움 덕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한데 방금 빈우의 치료과정에서 다시 한번 큰 충격을 받았으니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크산티페.”
“네, 김 팀장님.”
“아나스타샤는 좀 어때?”
빈우의 질문에 크산티페의 대답은 조금 늦게 나왔다.
“그건 아나스타샤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그녀의 당돌한 대답에 빈우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크산티페는 그런 빈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두뇌칩으로 무선통신은 안 되지만 여기 폐쇄 회선은 있습니다. 제게 말씀만 하시면 연락을 하실 수 있도록 바로 회선을 열어드리죠.”
또각또각 다가온 크산티페는 빈우 앞에 바로 서서 그의 명령을 기다렸다.
“…잠시 쉬었다가 할게.”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기다리겠습니다.”
빈우는 한숨을 쉬곤 다시 명령을 내렸다.
“아니, 나는 시간마다 점검을 하도록 하고, 너는 알탄훼아나를 돌봐줘. 일단은 그녀를 정상적으로 되돌려 놓은 다음 나를 다시 한 번 더 검사한다. 아나스타샤를 만나는 것은 그다음이야.”
“알겠습니다. 레드우드 사령관님이나 라마누잔 부팀장님께는 알릴까요?”
빈우가 치료가 되었다고 하니 일단은 보고를 해야 한다.
“아니, 보고는 마지막 검사까지 마친 다음에 한다. 그전에 일단 부팀장에겐 블랙랜스 주변으로 접근하는 것들을 모조리 쳐내라고 해. 다소 거친 방법을 써도 상관없어. 아, 물론 거칠다는 기준은 이곳 기준이야.”
이곳은 연방군에서 내로라하는 흉악한 인간 병기들이 모인 특수전 사령부다. 다른 곳에선 징계를 받고도 남을 사고가 일상다반사로 벌어지는 곳이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그러더니 크산티페는 회선을 열어 부팀장 아룹에게 빈우의 명령을 전달했다. 아나스타샤에 대한 연락은 직접 하라고 대들더니 이런 명령은 또 잘 듣는다. 사이가 좋은 자매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