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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28화 (226/301)

228화

야심한 시각, 반쭝은 식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요즘 들어 생긴 나쁜 버릇이다. 그는 한창 성장기인 아이인데다 몸이 원래 상태로 돌아온 다음부턴 고모와 재활 삼아 여러 가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여간해선 허기가 다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 한 입 거리 될 만한 것을 찾아 식당으로 들어간 반쭝은 먼저 와있는 사람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안녕. 네가 응우옌 반쭝이지?”

식탁에서 앉아 뭘 만들고 있던 형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반갑다. 난 빈우라고 해. 김 빈우. 네 고모의 부하지. 일하다가 배가 고파서 잠시 내려온 거야.”

그리고 그 형은 요리기구와 음식물 생성기를 사용해 뭔가 먹을 것을 만들고 있었다.

“아아.”

반쭝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모의 부하라는 사람들은 이 집에 시간을 가리지 않고 찾아왔었다. 이곳에 출입할 수 있고, 이 집의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초대받은 손님임이 분명하기에 언제나처럼 잠깐 의아해했을 뿐, 곧 의심을 거두었다.

“병에 걸린 곳은 괜찮니?”

빈우의 말에 반쭝이 자기도 모르게 팔을 가렸다. 한동안 잊어버렸던 사실인데 그의 말에 다시 떠오른 것이다.

“아이쿠, 미안. 신경 쓰고 있었구나. 근데 그렇게 감출 필요 없어. 아저씨는 고모에게서 다 들었으니까. 그 팔, 치료한 다음에는 다시 변하지 않고 있지?”

빈우는 쓴웃음과 함께 반쭝을 다독였고, 소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 나은 거야. 다행이구나. 고모가 치료해준 덕분이지?”

이어지는 질문에 반쭝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힘겹게 입술을 열었다.

“저 말고도, 이런 병이… 있대요.”

“왜 그러는 거니. 그 병은 전염병이 아니야.”

“어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런 병이-.”

소년이 뭐라 말하려고 할 때 빈우의 손이 내려와 그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걸린 거야. 너하곤 관계없다니까? 애가 착하긴.”

그러면서 빈우는 자신이 만들던 음식을 접시에 담아 반쭝에게 내밀었다.

“아저씨가 야식으로 만들어본 건데, 하나 먹어 볼래? 타코야.”

“와,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출출하던 참이었던 반쭝은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타코를 들어 덥석 물었다. 아직 손과 입이 작아 반대쪽으로 고기와 콩이 줄줄 흐르자 빈우가 냅킨을 만들어 받쳐주었다.

“먹으면서 들어. 너 혹시 고모방 비밀번호 아니?”

반쭝이 타코를 우물우물 씹으며 빈우를 올려다보자 그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아저씨가 고모한테 드릴 선물이 있는데. 좀 몰래 드려야 되거든.”

타코는 맛있었다. 그리고 빈우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있지만, 반쭝은 고민했다. 고모의 방 비밀번호는 함부로 알려줘선 안 되는 것이다.

“음- 그럼 이건 어떠니?”

빈우가 꺼낸 것을 본 반쭝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와, 진동 나이프다!”

빈우의 손에 들린 진동 나이프는 민간용이 아니었다. 군인이 쓰는 실제 군용무기로서 활달한 남자아이의 시선을 빼앗기엔 안성맞춤인 물건이었다.

“자, 이걸 볼래.”

빈우가 진동 나이프의 전원을 켜고 타코를 잘랐다. 그의 손에서 타코가 깔끔하게 잘린다. 슬며시 지나갔음에도 단면은 부드럽게 잘렸고, 날에도 양념하나 묻지 않았다. 반쭝의 손에 한입 크기로 썰린 타코가 올라가지만, 아이의 시선은 타코가 아니라 칼에 가 있었다. 그 기선을 눈치챈 빈우는 히죽 웃더니 칼을 반쭝의 앞에 내밀었다.

“자, 아저씨가 주는 선물이야.”

반쭝은 잠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반응이 잠시 늦었다.

“저! 정말이에요?”

곧이어 아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동동 뛴다.

“그럼 물론이지.”

그렇게 말한 빈우는 칼을 천천히 반쭝의 앞으로 밀었다. 반쭝도 머뭇거리며 손을 뻗었다. 막 잡으려는 순간 빈우가 손목을 꺾어 잠시 칼을 자신 쪽으로 돌렸다.

“단, 고모에겐 비밀이다.”

이어진 빈우의 말에 반쭝의 고개를 휙휙 끄덕인다. 그제야 진동 나이프가 아이의 손에 들려졌다. 이어서 어마무시한 장난감에 넋이 나간 반쭝에게 빈우가 다가가 슬쩍 한마디 꺼냈다.

“자, 그럼 형한테 비밀 하나 가르쳐 줄래?”

고모방의 비밀번호. 그리고 진동나이프란 비밀. 눈앞의 형과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 반쭝은 선물의 보답 겸으로 고모방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고맙다, 반쭝. 그거 먹고 얼른 자. 칼은 고모한테 안 들키게 잘 숨기고.”

신난 아이를 뒤로하고 빈우가 식당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그는 복도에서 끈질긴 동료와 마주쳤다.

“제가 들어갈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대장님.”

복도에선 찰리하나팔이 안도하는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용케 살아남았구나. 그리고 용케 여기까지 왔고.”

차갑게 내뱉으며 지나치는 빈우의 뒤로 찰리하나팔이 냉큼 따라붙었다.

“대장님이 어딜 갈지 아는데 당연히 따라오죠.”

“식당에서 아이와 함께 있지 그래.”

“끝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대장님이 어딜 가시든 말이죠.”

찰리하나팔의 말에 빈우가 피식 웃었다. 끝까지. 이제 슬슬 끝이 보이려 하고 있었다.

* * *

응우옌 티빈은 불안감에 잠에서 깨어났다. 이 집의 보안 시스템은 아무런 경보를 울리지 않았고, 그녀 개인의 센서 또한 어떠한 이상을 감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유 모를 불안감에 서늘함을 느낀 그녀는 잠자리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그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불안감의 근원이 침대 머리맡에서 거리를 두고 의자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한때 울토르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했던 동지. 군사정보국의 김 빈우 소령이다.

“오랜만입니다. 응우옌 티빈 중령.”

그러나 티빈은 혼란스러웠다. 빈우가 왜 여기 와있을까. 그는 솔리드 베타에 숨어 있다가 부상한 뒤로 태스크포스 373으로 갔다고 했다. 한데 왜 지금 그녀의 은신처에 와 있단 말인가. 오히려 이자가 빈우가 아닐 가능성이 더 높았다.

급하게 보안 시스템을 작동시키려던 티빈은 섬뜩함을 느꼈다. 모든 시스템이 다운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빈우가 여기에 온 이유가 딱히 우호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된 티빈은 조심스레 말을 꺼내려 했다.

“김 소령.”

거기까지 말한 티빈은 다음 말을 고르고 있었다. 당당하게 누가 보내서 추적을 해왔냐고 물을까, 아니면 능청스럽게 여긴 웬일이냐고 할까. 막 잠에서 깨어난 그녀가 상황을 파악하려 할 때 빈우가 먼저 질문했다.

“왜 울토르 프로젝트에 참가했소?”

갑작스러운 질문에 티빈은 바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안전한 대답을 찾을 뿐이었다.

“그야, 나는 과학기술국의 연구원으로서 연방의 중요한 프로젝트에 부름을 받아-.”

티빈의 대답을 듣던 빈우는 말없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칼집이다. 티빈도 명색이 군인이라 그것이 진동 나이프의 칼집인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이프가 들어가 있어야 할 곳이 비어있었다.

“이 칼은 지금 반쭝과 함께 있소.”

그 말을 들은 티빈의 머리는 하얘졌다. 조카인 반쭝은 그녀의 모든 것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 대신 자신을 키워온 오빠는 샤다이의 공격에 아내와 함께 사망했다. 아직 보육기에 있던 갓난아기 반쭝을 여동생인 티빈에게 남겨둔 채로. 그때부터 응우옌 티빈은 조카인 반쭝을 마치 자신의 아들인 양 열심히 키웠다. 오빠가 자신을 키웠던 것처럼.

그런 아이의 이름이 지금 눈앞에 있는 살육병기의 입에서 나오니, 그녀로선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그녀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지금 반쭝의 상태는 눈앞에 있는 존재에게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그 아이는 상관없어!”

자기도 모르게 격한 목소리가 나왔다.

“다, 다 치료했어. 그 아이는 인간이야.”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차가운 빈우의 목소리에 티빈의 심장 또한 차갑게 식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눈앞의 빈우가 누구인지는 두뇌칩이 먼저 알려주고 있다. 가장 먼저 뜨는 신상정보는 피자타이거의 김 빈우, 대외적으로 뜨는 위장정보다. 이어서 과학기술국 소속의 응우옌 티빈에게는 그의 실제 정체가 군사정보국 소속 김 빈우라는 것까지도 보인다. 하지만 태스크포스 373이란 정보는 뜨질 않는다. 현재 응우옌 티빈의 보안 레벨로는 조회할 수 없는 정보일 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 현재 눈앞에 있는 빈우가 여기 있어선 안 되는 빈우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그 가능성은 대단히 높았다.

“워프 비스트가 아니야. 다 치료했다고.”

그래서 응우옌 티빈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침을 삼켜 달랜다. 만약 여기 있는 빈우가 워프 비스트와 정보사령본부의 관계자를 노리는 빈우라면 그녀와 반쭝의 목숨은 풍전등화다.

“일단 겉보기에는 인간 같아 보이더군요. 워프 비스트 변이도 흔적은 없고 제대로 치료된 모양입니다.”

빈우는 티빈의 눈을 마주 보며 건조하게 말했다. 마치 감정 모듈이 제거된 안드로이드 같다. 그래서 응우옌 중령은 안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외모가 인간의 모습이라고, 그것이 인간일까요?”

인간일까요. 그녀가 언제나 가졌던 의문과 불안이다. 그래서 마치 자신에게 외치듯 크게 대답했다.

“반쭝은 인간이야! 확실해. 내가 다 검사했어. 하나도 남김없이.”

그녀는 자기의 권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장비와 절차로 조카인 응우옌 반쭝을 검사했다. 그리고 치료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엘리자베트 허드슨처럼 흉한 흔적이 계속 남았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눈앞의 저자에게 약을 먹고 죽었을 것이다. 혹 시기를 놓쳤다면 자크 라캉처럼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허수아비만 남겨져 제정신을 잃은 어머니에게 노리개로 넘겨졌겠지.

어떻게 보면 그 아이들과 가족의 희생 덕에 반쭝이 치료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준 피에르 라캉과 리처드 허드슨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은 계속해서 그녀의 양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티빈의 외침 후, 방안은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 정적을 깬 것은 빈우였다.

“그렇다면 나는 인간일까요?”

그 질문에 티빈은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뿐더러, 그녀로선 눈앞의 존재가 어떤 빈우인지 모른다. 원본 인간인지 울토르 클론인지 알 수 없으니 대답할 수 없었다.

“무, 무슨 마, 말인지 모르겠는데?”

같은 정보사령본부라 해도 군사정보국, 보안국과 과학기술국, 정보분석국은 성격이 꽤 다르다. 전자가 군인, 그것도 특수부대라면 후자는 연구원이란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티빈은 지금 같은 상황에선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거래를 합시다.”

감정이 없던 그의 목에서 호랑이의 으르렁거림이 울린다. 마치 자기의 꼬리를 동앗줄마냥 흔드는 것 같다.

“응우옌 중령, 당신의 조카는 내 칼과 함께 있소. 그리고 당신의 앞에는 내가 있고. 만약 나에게 제대로 협조를 하면 그만한 대가를 드리지.”

티빈은 빈우의 말에 곧바로 응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김 빈우란 존재를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울토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그는 냉혹하고 잔인한 살인자였다. 인류를 위한다는 대의 앞에 홀로코스트를 펼치고도 남을 위인이다. 만약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티빈과 빈쭝은 흔적도 없이 치워버릴 것이다.

또 시점을 달리하면, 그녀가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은, 이 빈우를 전혀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눈앞의 빈우가 위은쓸납학에서 탈출한 클론이라고 한다면-그게 오히려 본인일 수도 있지만-이 존재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최종 조절한 빈우만이 알 뿐이다. 울토르 클론의 제작담당이었던 그녀, 응우옌 티빈의 손을 떠난 존재인 것이다.

“자, 협조하시겠소?”

무엇을 어떻게 협조하란 건지도 모르지만, 응우옌 티빈은 불청객 김 빈우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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