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30화 (228/301)

230화

“…마리 라캉과 자크 라캉, 리처드 허드슨과 엘리자베트 허드슨.”

빈우는 자신이 클론인지의 여부는 뒤로 미루었다. 그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는 지금 들끓는 내면을 억누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공포에 절여진 티빈의 눈이 그 단어들을 듣고 다시금 번들거린다.

“이들은 너희 조직의 편인가?”

빈우의 말을 들은 응우옌 티빈 중령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 조직이란 게 뭐지?”

그녀는 지금 자신이 찾아낸 죽음의 공포에 미쳐 있었다. 공포에 맞서 저항하지 못한 사람은 대개 이런 반응을 보인다. 마치 궁지에 몰린 쥐가 날뛰듯. 그리고 빈우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런 티빈의 어깨에 빈우의 손이 서서히 내려가 닿았다. 그러자 그녀 안에 생겨난 자포자기의 광기에 공포란 고삐가 다시 채워졌다.

“울토르 프로젝트를 진행한 조직. 이케가미 소이치로를 앞에 두고 그의 애국심을 방패 삼아 뒤에서 야금야금 밀어붙인 조직 말이야.”

빈우의 나직한 질문. 조금이나마 이성을 되찾은 티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냐, 아냐. 그들은 아냐. 나도 그런 조직이 있단 것은 눈치챘어. 하지만 마리 라캉과 리처드 허드슨은 그저 같은 정보사령본부의 사람이었기에 정보관리에 용이하단 이유로 이용당했을 뿐이야. 나도 마찬가지고. 나 말고도 몇몇은 그런 조직이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아. 하지만 나 역시도 단지 이용당했을 뿐이라고. 정말이야. 믿어줘.”

티빈이 말한 이용당했다, 란 의미가 뭔지 빈우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가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정보사령본부 내부 부서들의 요원 가족들 중에서 보안국에는 자크 라캉, 정보분석국에는 엘리자베트 허드슨, 과학기술국에는 응우옌 반쭝이 워프 비스트로 변했다. 군사정보국에는 누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누가 감히 연방군 정보사령본부의 가족을 건드리고 이용까지 했단 말인가.

이런 일이 가능한 조직은 얼마 없다. 군에서라면 최상위 기관인 통합전투사령부마저도 정보사령본부만큼은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놈들을 쫓는다면 적어도 상원이나 국방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렇다면 부뉴엘가는 어찌 되었을까.’

문득 빈우는 자치 정부의 마약상을 떠올렸다. 설마하니 그가 군사정보국 요원이었을까? 그럴 리는 없다. 만약 그랬다면 빈우는 반드시 알아봤을 것이다.

‘셋의 공통점은 정보사령본부 요원의 자식이란 점. 넷의 공통점은 아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빈우는 자신의 발밑에서 떨고 있는 응우옌 티빈을 보았다.

‘…부모와 함께 살해당했다.’

그것도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빈우 자신의 손에 의해 살해당했다. 자식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다 죽은 것이다. 응우옌 중령 역시 자신의 조카 응우옌 반쭝을 위해 움직였으리라. 그리고 그녀의 말에 따르면 라캉가와 허드슨가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라캉가와 허드슨가는 너와 무슨 관계가 있지? …아니지. 아냐.”

빈우가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보자 그 한기만으로도 티빈은 벌벌 떨었다. 그 모습을 본 빈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장 물어볼 것이 많지만 여기선 일단 차분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 우선 울토르 프로젝트에서부터 설명해. 네가 말한 조직이 울토르 부대에 어디까지 관여하고 조작을 했는지.”

빈우는 차근차근 순서에 맞게 사실을 캐내고 싶었다. 그러나 찰리하나팔에겐 순서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대장님! 말 돌리지 마십쇼! 마리 라캉과 리처드 허드슨이 조직원이었는지,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는지부터 확인하시란 말입니다!”

놈이 물어보려는 사실은 이미 데이터 패드에 들어있다.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다. 짜증이 솟구치는 빈우의 귀에 티빈의 목소리가 웅얼거리며 들려온다.

“아아아- 나도 그 조직에 대해선 잘 몰-.”

하지만 티빈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성난 빈우의 발길질에 차여 날아갔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로 벽에 부딪혔고, 땅에 떨어지기 전 빈우의 주먹을 맞고 벽에 꽂혔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꺽꺽대는 티빈의 귀에 빈우가 속삭였다.

“아는 대로 말해. 내가 실종된 다음부터 아이들이 워프 비스트로 변한 시기까지 전부.”

티빈은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귀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더 무서웠다. 빈우는 겁에 질린 그녀를 부드럽게 들어 침대에 내려놨고, 자신은 의자를 가져와 티빈의 앞에 앉았다. 압박감에 못 이긴 응우옌 티빈은 저도 모르게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우- 울토르 프로젝트는 김 소령 자네와 이케가미 상원의장이 지휘해서 진행한 거잖아. 네가 모르면 누가 안다는 거야. 아아, 아니지. 넌, 김 빈우가 아니지.”

빈우는 이케가미 소이치로와 함께 울토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었다. 그러나 배후에 있는 조직에 대해선 눈치채지도 못했다. 아마 빈우는 최전선에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자신의 기록이 맞다면 말이다.

하지만 후방에서 클론 제작을 담당한 응우옌 티빈은 눈치챘다고 했었다. 전체를 총괄 지휘한 이케가미 소이치로 역시 그들을 눈치채고 도망친 다음, 자신 혼자서나마 해결책을 마련하려 했다. 상원의장이란 사람이 그럴 정도였다니 조직의 수완과 범위가 얼마나 광대한지 짐작조차 안 된다.

“아는 대로.”

빈우의 조용한 재촉에 티빈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나나, 나는 울토르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자네가 포말하우트에서 실종된 다음 프로젝트에서 제외되었어. 어차피 프로젝트가 동결되었으니까.”

울토르 중대는 포말하우트에서 리퍼에게 습격당해 괴멸 직전의 피해를 입었었다. 그리고 빈우는 당시 탈출포드를 타고 가까스로 도망을 쳤으며, 위은쓸납학에 불시착한 다음 한참 뒤에 깨어났다. 중간중간 두뇌칩의 기록에 손실이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가 있었다.

‘내가 지휘했던 울토르 프로젝트에는 연방을 위협하는 음모가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고대 샤다이가 인간의 몸을 빼앗아 위장하고 있다. 나는 이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 나는 연방을 지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 이외에 누구도 믿지 말아라.’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남긴 사명이다. 그래서 빈우는 스스로 정보를 모으며 홀로 연방의 적을 추적하고 사냥했다. 군사정보국에도 스파이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극비리에 행동했었다. 과거의 자신이 스스로에게 누구도 믿지 말라고 당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점들이 점차 발견되었다. 우선 자신이 탈출한 시간이 맞지 않았다. 처음엔 포말하우트에서 습격당시 탈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조사를 하면서 탈출시간대는 훨씬 뒤인 것으로 밝혀졌다. 울토르 중대가 위은쓸납학에서 활동했을 당시다. 지금 보면 아마 빈우 자신의 정체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빈우가 스스로에게 되새겼던 다짐 또한 이상하다. 지금의 자신이 클론이라면 여기에서 나온 ‘나’란 존재가 지금의 클론 빈우가 아니라 원본인 인간 빈우인 가능성이 더 크단 의미다.

그때 흐느끼는 티빈의 목소리가 빈우의 귀에 들려온다.

“그리고 워프 비스트를 조사하고 치료하는 팀이 만들어지자 나는 그리로 소속되었지. 처음엔 그저 정체불명의 새로운 질병이라고 생각했었고, 난 변이한 부위를 클론 신체로 교환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었어. 하지만 아니었지. 신체를 교체해도 변이는 계속되었단 말이야. 후에 피에르 라캉 중령이 자신만의 루트로 치료법을 구해 가져왔지만, 이미 그의 아들 자크 라캉을 치료하기엔 너무 늦었어. 사실….”

티빈은 겁먹은 표정으로 빈우를 보았다. 빈우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설명이 계속되었다.

“사실 내가 그 팀에 소속된 것은 내가 클론 제조의 기술자였기 때문이야. 난 신체의 일부만 제작하면 될 줄 알았지만, 그들은 전신 클론을 만들길 원했어. 괴물로 변해가는 자크 라캉의 인간체 클론 말이야. 알다시피 연방에서 자아를 가진 클론 제작은 불법이지. 하지만 난 울토르 중대를 제작하며 자아를 가진 클론들의 제작 경험을 많이 쌓았어. 그렇게, 난 자크 라캉의 클론을 만들었어. 같은 실험을 반복해서 같은 증상을 발현시키고, 치료법을 찾으려고 했던 거야.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치료법을 찾으려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워. 오히려 워프 비스트들을 더 많이 만들려는 실험 같았어.”

빈우는 케트쿤에서 보았던 자크 라캉의 클론들을 떠올렸다. 묶여서 고통받는 워프 비스트들. 그리고 엄마를 찾는 불쌍한 실험체 아이. 뒤이어 마카로니에서 자신이 죽였던 로봇이 떠오른다. 그것은 자신을 자크 라캉이라고 생각했던 허수아비였다.

“마리 라캉, 그분에겐 정말 미안해. 라캉 중령에게도 난 몹쓸 짓을 했지. 마리 여사는 아들인 자크의 치료를 우리에게 맡겼지만, 우린 그 불쌍한 아이로 실험만 했던 거야. 그것도 클론 기술로 신체를 복제하고, 그 아이의 고통스러운 기억마저 복제해가며. 결국 그녀는 자신의 그 연줄과 능력으로 자크 라캉을 되찾으려고 했지.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내자….”

그 과정은 티빈의 데이터 패드에도 있었다. 마리 라캉은 자신의 아들이 어떤 실험을 받았는지 알게 되자 미쳐버렸다. 더불어 그 실험의 정체와 그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조직의 크기, 그리고 놈들의 그림자가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알고는 절망했다. 자신들이 아무리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 쳐도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잠겼다는 사실은 그녀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버거웠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가정용 로봇에 아들의 허수아비를 심고 그것을 아들이라 믿으며 아들을 지키기 위해 도망쳤다. 하지만 이 불쌍한 모자는 마카로니에서 빈우에게 잡혀 죽었다. 혼자서 조사했던 빈우는 그 조직에서 탈주한 마리 라캉을 자신이 목표로 한 조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심문했다. 그리고 제거했다. 허드슨가 또한 마찬가지다. 핵심에는 다가가지 못한 채 애먼 깃털에만, 아니, 오히려 희생자에게 분풀이를 퍼부은 격이다.

“놈들이 언제부터 울토르 프로젝트에 관여했는지는 정확히는 나도 몰라. 하지만, 빈우, 와 이케가미 상원의장이 인류를 지키기 위해 울토르 프로젝트를 계획했을 때, 주변에서는 이미 그들에게 공작을 행했어. 울토르 프로젝트에 클론이 들어가도록 말이야.”

그건 기록에도 남아있다. 이케가미 소이치로는 인류를 지킬 강력한 군대를 원했고, 그 지휘자로 닉스레벨 3의 빈우를 원했다. 결국 그는 빈우를 복제해 우수한 병사들을 계속해서 뽑아낼 계획으로 울토르 프로젝트를 소개했고, 빈우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실은 이 모든 안배가 전부 다 샤다이들의 계책이었던 것이다. 빈우는 처음부터 놈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것에 불과했다.

‘샤다이들이 왜 인간의 클론으로 이뤄진 군대를 원했을까. 뻔하지. 놈들은 자신들이 돌아올 몸을 원했던 게 분명하다.’

거기까지 생각한 빈우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난 진짜 빈우가 아니라 클론인데!’

자신이 클론이라면 포말하우트 게이트에서 스스로 탈출한 것이 아니라 원본이 탈출시킨 것이리라. 아니면 원본인 빈우가 위은쓸납학에 백업으로 숨겨놨던 클론일 수도 있다. 자신이 굳게 믿고 행동하게 한 사명은 실은 원본이 각인한 명령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죽은 라캉 일가와 허드슨 일가는? 데이터 패드에도 나와 있지만 빈우는 한 번 더 확인해야 했다. 아는 사실이지만, 당사자의 입으로 답을 듣고 싶었다.

“라캉 일가와 허드슨 일가는? 그들은 조직원들인가?”

티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들은 조직원이 아니야. 내가 말했듯이 그저, 그저 이용당한 사람들 뿐이야.”

의심하던 것이 확인이 되었다. 결국 그들은 죽어 마땅한 연방의 적이 아니라, 클론의 손에 죽은 무고한 희생자들이란 것이 증명되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짧은 지식만 가지고 나댄 클론에게 죽은 불쌍한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부뉴엘가는? 그들은 마약상이라서 나에게 죽어야 했나? 아냐 아냐, 내 눈앞의 응우옌 티빈은? 그녀는 인간일까? 그 조직원일까? 아니면 샤다이일까?’

혼란스러움과 죄책감에 빈우가 몸서리를 쳤다. 죄책감, 왜 빈우가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 왜 클론이 죄책감을 느낄까. 울토르 클론들은 전투 OS에서 이런 부분의 감정들을 느끼지 않도록 개조 받는다. 또한 전투에서 필요 이상의 충격을 받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아니, 그전에 울토르 클론은 인간을 해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그런데 빈우는 인간을 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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