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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31화 (229/301)

231화

‘나는 어떻게 그들을 죽일 수 있었지? 그들을 인류의 적이라고 믿었기에 해칠 수 있었던 것일까? 놈들의 정체가 샤다이였기 때문에? 워프 비스트였기 때문에?’

울토르 클론들은 생산될 때부터 모두 자신이 클론임을 자각하도록 만들어지고, 각인 받는다. 그리고 태어난 후 군용 강화를 받으며 결코 인간을 죽일 수 없도록 OS에 의한 제약을 걸어놓는다. 게다가 행여 실수로 인간을 죽인다 하더라도 후에 이를 깨닫게 되는 순간 엄청난 정신적 반동이 오게 되어있을 정도다.

하지만 빈우에겐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클론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고 행동했었다. 그것 때문일까.’

빈우는 여지껏 자신을 인간으로 믿었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된 이유는 자신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던 중 뭔가 어긋난 점이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다. 그래서 조직의 간부이자 울토르 클론 제작자인 응우옌 티빈 중령을 목표로 삼았고, 방금 그 결과가 나왔다. 충격의 연속이다. 설마 했던 의구심들이 사실이 되어 빈우를 덮쳐온다.

우선 자신이 빈우가 만든 특제품 클론일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아니, 사실이다. 게다가 그 말을 들은 지금도 자신을 클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자각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잠수나 세뇌 같은 것으로 속인 것도 아니다. 애초에 인간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졌다. 더구나 두뇌칩에도 일체의 제약 프로그램이 없다. 덕분에 그는 지금까지 아주 냉정하고 태연하게 목표물을 제거해 왔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런 것들로 인해 빈우는 혼란에 빠져있다. 현재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 죄책감은 OS의 정신제약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손에 죽은 무고한 이들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었다. 그때 뒤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찰리하나팔의 목소리다. 놈이 웃고 있었다.

“뭐가 우습지?”

빈우가 성난 목소리로 으르렁대며 돌아섰다. 그러자 자신의 얼굴이, 찰리하나팔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킥킥킥, 대장님.”

찰리하나팔의 웃음은 비웃음이었다. 놈은 빈우를 보며 비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하고 타협하면 안 된다니까요.”

빈우는 비웃음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찰리하나팔이 깨어져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러나 놈은 비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진실이 밝혀지니 좆 같습니까? 숭고한 사명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실은 클론의 뻘짓으로 밝혀지니까 기분이 어떻습니까?”

빈우는 발을 들어 짓밟았다.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부서진 거울 조각이 다시 한번 더 산산조각이 났다.

“뭐- 대장님은 각인 받은 명령대로 행동한 클론이니까, 인간이 아니니까, 내가 뭐라고 해도 귀 기울여 들을 필요는 없죠. 아니, 애시당초 내 말이 들린다는 게 희한합니다. 클론 주제에. 아, 특제 생산품이라 그런가? 그래서 제가 한 말은 이때까지 잘 들렸죠? 네? 그런데 왜 그렇게 괴로워 하시냐구요오. 자기가 들어놓고선.”

찰리하나팔은 언제나 빈우에게 속삭여 왔었다. 엘리자베트 허드슨을 죽이려 갈 때 계단에서 막아섰다. 홀로 남은 하비에르 부뉴엘을 살려달라고 막아섰다. 케트쿤에서도 자신의 추리를 도왔다. 프리마에선 다 죽어가는 모녀를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빈우는 놈의 속삭임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차라리 듣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자신이 망가지진 않았을 것이다.

“닥쳐! 닥쳐!”

빈우는 계속해서 짓밟았다. 완전히 가루가 되고 나서야 찰리하나팔의 비아냥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메아리가 아직도 빈우의 귓속으로 파고든다.

“나하고 타협하지 말라면서-.”

이를 악문 빈우는 격렬한 도리질을 하며 귀를 막았다. 잠시 후 속삭임이 들리지 않자 빈우는 손을 떼었다.

“왜, 왜 그래.”

겁먹은 티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지금 빈우의 난동을 보고 겁에 질려 웅크리고 있었다. 강화군인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씩씩대고 있고, 과학기술국의 간부는 침대에서 벌벌 떨고 있다.

빈우가 갑자기 광분해서 벽의 거울을 깨고 그것을 짓밟은 것을 본 응우옌 티빈은 침대 옆 서랍에서 조심스레 뭔가를 꺼낸다. 그것은 푸른색 머리카락이었다.

“이건 뭐지.”

어느새 빈우가 티빈의 손목을 잡고 있다. 엄청난 악력에 팔이 으스러질 것 같아 티빈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빈우가 힘을 약간 빼자 티빈이 눈물을 흘리며 해명했다.

“이건, 무기가 아냐. 피에르, 라캉 중령이 알아낸 거야. 샤다이의 플라스마 제어기관을 떼어내 원격으로 워프 비스트 변이를 제약하는 거야.”

“워프 비스트라고? 그런데 왜 나를?”

응우옌 티빈이 재촉하는 빈우의 눈을 피한다. 그런 그녀의 턱을 빈우가 억세게 쥐어 잡았다.

“말해!”

공포에 질린 티빈이 이를 딱딱거리며 말했다.

“나, 난 네가 그들처럼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줄 알았어.”

“그들?”

“우, 울토르 클론들.”

빈우가 손을 놓은 것은 납득해서가 아니었다. 잠시 까먹고 있던 또 다른 충격 때문이었다. 티빈은 빈우가 손을 놓자 벌벌 떨며 설명했다. 살기 위해.

“포말하우트 이후야. 그때부터, 전투 경험이 많았던 울토르 클론들에게 이상한 현상이 발현되었어. 문서상으론 전투 피로에 의한 발작이라고 되어있었지만, 당시 울토르 중대엔 우리가 손을 대기 힘들어서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어. 나중에 되어서야 그것이 신체 변이를 동반한 발작이었고, 실은 워프 비스트란 것을 알게 되었어. 또 서류상에선 제거라고 했지만 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지. 상부에선 이미 변이가 발생한 울토르 클론들을 빼돌리고 있었던 거야.”

이제 확실해졌다. 울토르 중대는 워프 비스트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가 분명하다. 예상이 현실이 되는 것은 언제나 입맛이 쓰다. 빈우는 데이터 패드에서 해당 내용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것은 한 번 더 잠겨있었다.

“풀어.”

빈우가 데이터 패드를 내밀자 티빈은 서둘러 보안을 해제하고 패드를 돌려주었다. 빈우가 보게 된 것은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클론이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과정이었다. 인간의 육체가 뒤틀리고 송곳니와 발톱이 나온다. 그러나 즉시 주변의 클론들이 달려들어 제압한다.

원본의 기억에도 있는 장면이다. 전투 중 발작을 일으킨 형제는 조용히 치료된다. 그러나 사실은 워프 비스트가 되어 다른 곳으로 간 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했나?”

빈우는 마른세수를 하면서 질문했다. 그러나 이미 답은 예상하고 있었다.

“했지.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 그래서 도망치고 있는 거야.”

손을 뗀 빈우는 고개를 들어 티빈과 눈을 마주쳤다. 눈만 봐도 그녀가 한계에 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중령씩이나 되는 그녀가 이런 외딴곳에 은거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이 참가한 프로젝트가 사실은 샤다이에 의한 것이고, 이 진실을 알릴만한 주변 인물은 없으며, 자신의 조카마저 워프비스트로 변하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것이다.

애초에 정보사령본부의 주요 인물들은 경호와 그 외의 이유로 보안국의 요원들이 주시한다. 명목은 보호지만 감시의 뜻도 있다. 이들은 끈질기고 집요하다. 보안국의 피에르 라캉 중령과 전 상원의장인 이케가미 소이치로마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단독행동을 했을 정도였으니, 그녀 같은 비전투 요원이라면 어찌할 방법이 없다.

데이터 패드에 그녀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응우옌 티빈은 필사적으로 조직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고 있었다. 건강상의 이유, 연구를 위한 보안등의 명목으로 이곳에 은거한 그녀는 차근차근 도망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끝은 마리 라캉과 별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빈우든 보안국이든 추적자의 손에 죽을 것이고, 그녀도 이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지금은 갑작스러운 빈우의 침입에 이어서 무자비한 정보의 폭로마저 이어졌다. 그리고 눈앞의 빈우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녀를 다시 한번 궁지의 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피에르 라캉.’

빈우는 저런 눈을 본 기억이 난다. 정확히는 자신과 연결되었던 자-아마도 원본 빈우-의 기억에서 보았다. 절망한 자의 눈이다.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의 주변이 모두 붕괴된 다음 자신마저 부서져 버린 사람. 하지만 눈앞의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케가미 소이치로처럼 맞서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조카 응우옌 반쭝을 위해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자료를 보던 빈우는 특이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몰래 파헤치고 훔쳐낸 자료가 아니라, 과학기술국 중령으로서 단독으로 연구한 자료들이었다.

“이건… 혼자서 연구한 거요?”

빈우가 해당 자료를 들어 보이며 질문하자 티빈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울토르 클론들의 과도한 감정 공유는 서로간의 정신적 상처를 공유할 수도 있어. 원래 하나의 클론이 가진 전투 경험은 데이터로서 두뇌칩에 의해 공유되지만, 전투에 의한 충격이나 공포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넘어가지 않아. 하지만 울토르 클론들의 부작용은, 아니, 나는 이것을 부작용이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라고 보고 있어. 아무튼 이 감정의 공유가 전투OS의 정신치료 프로그램마저 뚫어버리고 있었던 거야. 두뇌칩의 프로그램들은 해당 클론이 겪은 경험에 대해서만 조언하고 치료하지, 이렇게 공유된 감정까지는 손보지 못해.”

연구 자료는 자세하고 방대했다. 그리고 빈우는 이 자료를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울토르 클론들이 워프 비스트가 되는 것을 막고 이를 치료하려고 했었다. 그녀 역시 반격의 실마리를 잡고자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구일지에는 하나의 클론을 샤다이의 플라스마 제어기관으로 치료하고 이를 점차 다른 클론들에게도 옮긴다는 가설이 쓰여져 있었다. 피에르 라캉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제물 삼아 알탄훼아나에게 계단을 부숴달라고 한 것과도 같다.

“응우옌 중령.”

데이터 패드를 닫은 빈우의 목소리 톤은 확연히 바뀌어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협력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 물론 아까 제가 협력하라고 협박한 것은 잊어주십시오. 저는 지금까지 당신을 적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티빈의 마음속 저울이 흔들리고 있다.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추가 되어 저울 위로 떨어진다.

“무, 무슨 말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하겠지만 응우옌 티빈은 빈우를 믿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러 온 자가 협력해달라고 하다니, 그것도 협박이 아닌 의미로 협력해달라고 하니 선뜻 믿지 못하는 것이다.

빈우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나는 연방을 지키고 워프 비스트를 막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마리 라캉과 리처드 허드슨을 죽인 것은 온전히 내 실수입니다. 나는 그들을 예의 그 조직에 소속된 자들로 알고 있었고 그래서 죽인 것입니다. 지금의 당신 또한 그러려고 했었고요. 허나 사실이 밝혀진 지금은 이 모든 게 무의미합니다. 우린, 연방을 지켜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빈우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티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내가 왜 클론을 믿어야 하지?”

그녀의 이 말에 빈우는 까먹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자신이 클론이란 것을. 방금했던 말도 자신을 인간이라 생각하고 했던 말이다. 스스로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했던 말이다. 그러나 실은 인간이 각인시킨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빈우가 혼란스러워하며 다시 말을 고르고 있을 바로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시선을 돌리니 잠겼던 방문이 열리는 중이다. 방 안으로 들어온 침입자는 손에 무기를 들고 있었다. 진동 나이프다, 연방군의 근접전 무장이다.

빈우는 즉시 행동했다. 딱히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와중에 그저 코가 간지러워서 재채기하듯 해버린 반사적인 행동이었을 뿐이다. 그 결과 지금 목이 꺾인 응우옌 반쭝이 빈우의 손에 들려있다. 헤 벌어진 입에선 희미한 타코 냄새가 난다.

불쌍한 반쭝. 워프 비스트의 증상을 치료했지만 결국 클론의 손에 죽고 말았다.

“안돼에에에!”

조카의 죽음을 본 고모가 절규한다. 뒤에서 들려오는 응우옌 티빈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빈우는 자신을 다시 한번 더 나락 속으로 밀어 넣었다. 손안에 놓인 아이의 시체를 보며 다시 한번 더 절망 속으로 뛰어들었다.

부서진 파편을 모아 간신히 일으킨 탑이 다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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