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몸은 좀 어떠십니까? 좀 놀았다고 녹슨 거 아닙니까?”
위르겐이 히죽 웃으며 빈우에게 다가왔다. 지금 태스크 포스 373의 대원들은 블랙랜스의 격납고 옆 연습실에 모여 빈우의 재활훈련을 돕고 있었다.
“신품으로 갈았는데 녹슬긴 개뿔.”
빈우가 툴툴거리며 상의를 벗었다. 그리곤 그걸 한창 몸 풀고 있는 위르겐에게 집어던졌다. 하지만 시야가 가려진 위르겐은 당황하지 않고 옷에 덮은 채 바로 태클로 반격해 왔다.
“꺅!”
하지만 빈우는 낼름 피했고, 그 바람에 불쌍한 모니카가 팀장의 뒤에 서 있다가 위르겐의 태클에 정통으로 피폭당했다.
“좀 보고 박아. 새끼야.”
빈우는 비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며 어버버 하는 위르겐을 짓밟았다. 애먼 모니카도 그 밑에서 함께 짓밟혔지만 빈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저봐, 저거저거 사심 잔뜩 들어갔지 싶은데. 입자포 때문이죠? 그쵸?”
뒤에서 파트리샤가 뭐라뭐라 말을 걸지만, 빈우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그럼 다음은 저와 하시죠.”
이어서 아룹이 마카롱을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며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빈우는 진저리를 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부팀장하고? 잠깐, 나 장갑복 입어도 됩니까?”
“무기 사용 가능한 겁니까? 저야 좋죠.”
“…아뇨, 그냥 맨몸으로 붙읍시다.”
둘이 맞붙게 되자, 난다긴다하는 빈우지만 역시나 베테랑 아룹 앞에선 살기에 급급했다.
“팀장님 몸 다 나았다고 이렇게 바로 가도 됩니까?”
아룹이 넘어진 빈우 위에 올라타서 파운딩을 한다. 주먹을 막는 빈우의 등 뒤로 격납고 바닥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우산을, 갈아타야죠. 특수전, 사령부보다는 42. 전단으로, 컥.”
막아도 숨이 턱턱 막히는 아룹의 주먹에 빈우는 짧게 끊어서 대답했다. 현재 빈우는 워프 비스트 변이가 치유되자마자 블랙 랜스를 몰고 특수전 사령부를 떠나 다시 42전단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주변에선 특수전 사령부에 있으라고 만류했지만 빈우는 막무가내였다
“42전단이라….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도 딱히 그런 쪽으로 잘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데 말입니다.”
반면 아룹은 여유롭게 빈우를 후드려 패고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특수전사령관 조지 레드우드나 42전단장 스베틀라냐 스크로도프스카나 둘 다 전투에 몰빵한 맹장이다. 그래서 정치질이나 뒷공작에는 서툴거나 아예 신경을 끄고 있었다.
“42전단에는-뒷배가 든든-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동하는 부대라서-썅. 보안국 쪽에서 씨-비 걸기 힘들다고.”
두 사람은 오고 가는 주먹과 함께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음, 그런데 지금까지 모은 증거로 보안국을 바로 조이면 안 됩니까? 이렇게.”
씩씩대는 빈우와 달리 아룹은 느긋하게 두 손으로 팀장의 두개골을 조였다. 빈우는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이미 경고음이 뜨고 난리가 났다. 빈우는 자신의 머리를 조이는 아룹의 겨드랑이를 강하게 치며 밑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아룹은 즉시 따라붙어 빈우를 옭아맸다.
“조여요? 보안국을? 지금? 켁켁.”
“군사정보국의 타이 차장님이 증거를 모조리 가져갔지만, 그때 우리랑 싸웠던 그라인더는 보안국 아닙니까? 놈들이 샤다이와 내통하고 있는 상황에서 팀장님이 워프 비스트로 변이 도중 치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쳐들어올 텐데요. 그전에 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이제 둘은 서로 드잡이질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헤드락을 거는 아룹의 팔 사이에 가까스로 손을 집어넣은 빈우는 그제야 간신히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보안국이 이런 식으로 뒷공작 꾸미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스파이를 잡는 부서니 스파이처럼 행동한다고 변명할 수 있죠. 지금 태스크 포스 373으로 놈들의 공작에 대응하긴 힘듭니다. 도와줄 세력이라고 해봤자 군사정보국은 지금 보안국과 짝짜꿍 붙은 것 같으니 제외-그리고 오다 의원님은 일단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현재 보안국은 호시탐탐 빈우를 노리고 있다. 저번에 히토미에게 한번 된통 당했다지만 그런다고 포기할 보안국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현재의 빈우는 놈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어야 할 뜨거운 감자다. 조만간 어떤 루트를 통해서라도 행동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우선 빈우의 본가랄 수 있는 군사정보국에서 국장인 이노우에 고토는 이상하리만치 보안국에 협조적이었다. 원래 협조와 반목을 밥 먹듯 하는 두 부서긴 한데, 지금은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아무래도 군사정보국과 보안국 사이에 모종의 밀약이 있는 게 확실했다.
다음, 군사정보국 내에서 유일한 우방이랄 수 있는 마커스 타이는 국방부 쪽으로 이동했다. 국방부 차관쯤 되면 정보사령본부 하위부서에 콧방귀깨나 뀔 권력이 있지만, 지금 그는 국방부로 간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에다 뻐꾸기 작전으로 인해 이쪽 일에 제대로 신경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파워가 센 오다 히토미 상원의원은 연방에 숨은 샤다이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자신의 파벌들과 함께 잠시 숨을 죽인 상태다. 물론 태스크 포스 373 및 빈우와 오다 히토미가 속한 파벌은 협조 관계를 구축했기 때문에 보안국이 나서면 바로 대응하기로 되어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하에선 보안국이 일정 수준의 행동을 할 때까진 경고나 제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보안국의 뒷공작이 펼쳐질 대로 펼쳐진 다음에는 어떻게든 대응해도 늦다.
이런 빈우의 설명을 들은 아룹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늙었나 봅니다. 저한테 처맞는 놈이 이렇게 나불대는 건 처음이군요.”
아룹은 빈우의 멱살을 잡고 번쩍 들더니 바닥에 패대기쳤다.
“응?”
빈우가 바닥에 부딪혔다가 그 반동으로 튀어 오를 것을 기다리고 있던 아룹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빈우는 부서진 바닥을 잡고 버틴 다음 아룹의 무릎을 걸고 넘어졌다. 아니, 넘어트리려고 바둥거리기만 했다.
“역시 팀장님, 제법입니다. 이쯤 하죠.”
아룹은 먼지 털듯 손을 툭툭 털어 무릎에 붙은 빈우를 떨어냈다.
“시발, 죽겠네.”
대자로 뻗었던 빈우는 주섬주섬 일어나서 등에 박힌 파편들을 뽑아냈다. 아룹은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거의 전신을 교체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빨리 재활에 적응할 줄은 몰랐습니다.”
신체 교환은 언뜻 쉬워 보여도 파고들면 나름 까다로운 시술이다. 일상생활에 문제없을 정도가 되기까지엔 금방이지만, 빈우 같은 군인의 육체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사지 길이와 무게 및 전투 OS에 관련해 정밀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많이 해봤거든요.”
빈우는 울토르 클론으로 위장해 있을 때 좀 심하다 싶은 부상이면 바로 교체했으니 이런 쪽으론 나름 노하우가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바로 워프 비스트 변이다. 그 비정상적인 재생능력이 혹시 이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
그런 빈우에게 차가운 커피잔이 불쑥 내밀어졌다. 아나스타샤였다.
“고마워.”
빈우는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커피를 받아 마셨다. 그 모습을 보며 화사하게 웃는 안드로이드에게 곧 주인의 호된 질책이 퍼부어졌다.
“야아! 이거 몇 칼로리야!”
한입 대는 순간 알았다. 커피 향이 나는 이 액체는 커피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진짜 커피는 아니고 군용 착향 음료일 거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해도 해도 정도가 심한 것이다.
“에? 한- 만오천?”
주인의 추궁에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리는 아나스타샤를 보며 빈우가 길길이 뛰었다.
“뭐? 얼마? 자알 한다. 얼씨구 불붙겠네.”
빈우는 그렇게 툴툴거리면서도 원샷하곤 잔을 넘겼다. 아나스타샤는 잔을 쟁반에 받으며 다시 한번 방긋 웃었다.
“몸에 좋은 약은 쓰대요.”
“하나도 안 쓰던데? 비려, 누린내 쩔어. 아니, 분명히 미각센서가 작동하는데도 이 정도 맛이 날 정도면 뭐냐 이거. 그건 그렇고, 이 커피 도대체 생성기 설정 어떻게 한 거냐? 아무리 봐도 한 잔에 이렇게 못 때려 박을 건데?”
주인의 질문에 메이드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고, 거기엔 모니카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과학기술국의 엘리트 장교라면 음식물 생성기 손보는 것쯤은 누워서 떡 먹기다.
“몸보신 좀 하시라구요. 제 마음의 선물.”
모니카의 미소 위로 그녀의 가운데 손가락이 올라갔고, 빈우 역시 싱긋이 마주 웃어주며 명령했다.
“위르겐, 한 번 더 박아.”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위르겐이 모니카를 땅바닥에 메다꽂았다.
“자, 그럼 이번엔 난가?”
이번엔 파트리샤가 나섰다. 얼굴은 헤실헤실 웃고 있지만, 안구 센서는 빈우의 몸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아룹한테 두들겨 맞은 부위를 집중적으로 노릴 기세다. 모두가 웃고 있는 훈련실에서 빈우만 울상이다.
“뭐 시발 오늘 잔치하냐?”
빈우는 으르렁대면서 자세를 잡았고, 파르티샤는 웃음을 거두지 않고 빈우의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그러면서 빠져나가려는 아나스타샤의 근처로 다가갔다. 아나스타샤는 훈련에 방해되지 않게 발걸음을 서둘렀지만, 파트리샤는 웃음을 더욱 짓궂게 하며 따라붙었다.
‘보아하니 아샤 가지고 뭔가 수를 쓰겠네.’
빈우는 대충 무슨 수가 나올지 짐작하며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파트리샤가 아나스타샤의 뒤에 숨을지, 아니면 그녀를 무기 삼아 집어던질지 예상하며 자세를 잡았다.
“와아, 역시 팀장님. 대가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그러면 팀장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달려가려던 파트리샤가 빈우의 제지에 주춤했다.
“잠깐, 그전에 너도 이거 한잔해. 아나스타샤.”
빈우의 손짓에 아나스타샤가 특제 커피를 들고 서서 파트리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엣? 예? 이거, 피아프 중위님께 드리라고요?”
“그래, 몸에 좋은 거라며. 그런 건 부하하고 나눠 먹어야지. 아, 파트리샤가 너한테 가는 게 커피 때문이었구나. 퍼줘.”
능청스러운 빈우의 말에 파트리샤와 아나스타샤 둘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아니, 나의 사랑을 남한테 주다니.”
모니카는 확실히 373팀원이 된 듯, 바닥에 나자빠진 채로 빈우에게 투덜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들은 빈우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으며, 그 소릴 들은 위르겐은 두 눈 딱 감고 모니카를 걷어찼다. 걷어차인 모니카는 대번에 고릴라 스패너를 꺼내 들고 일어났고, 중간에 끼인 불쌍한 뱅가드 대원은 사방으로 욕을 하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해? 한잔 죽- 따라.”
빈우는 다시 커피를 권했다. 그러자 아나스타샤는 할 수 없다는 듯 파트리샤에게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커피를 따랐고, 파트리샤는 또 파트리샤대로 두 눈을 질끈 감고 커피잔을 들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던 파트리샤가 갑자기 공중에 떠올랐다.
“씨바랄!”
파트리샤가 눈을 뜨자 상황은 예상한 대로였다. 빈우가 그녀를 잡고 들어 올린 것이다. 자기가 아나스타샤를 가지고 술수를 쓰려고 했는데, 역시 이런 쪽은 빈우가 한 수 위였다.
빈우는 있는 힘껏 파트리샤를 바닥에 메다꽂았고, 굉음과 함께 파트리샤는 바닥에 처박혔다.
“자, 이걸로 끝이지?”
빈우는 파트리샤를 보내버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그의 재활 훈련을 도와줄 사람은 더 이상 없어 보였다.
“응?”
갑자기 빈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앞에 있는 아나스타샤로, 그녀는 말없이 치맛자락을 꽉 쥐고 있었다.
“아샤, 무슨 일이야?”
아나스타샤는 빨갛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아, 아무것도 아니네요. 네. 아니지요. 에헴.”
그때 저기서 위르겐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팀장님이 피아프 여사를 패대기치는 바람에 아나스타샤 치마가 펄럭였잖습니까.”
안드로이드 메이드가 놀라서 위르겐을 보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말은 나온 다음이다. 빈우가 시선을 돌려보니 아룹이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하는 게 보였다. 그런 걸 보면 치마가 꽤 많이 뒤집힌 모양이다.
“어- 아샤. 미안.”
빈우는 계면쩍게 사과했고, 아나스타샤는 아무 말 없이 샐쭉하니 뽀르르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빈우는 겉보기엔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내는 아니었다. 방금 본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살구색 스타킹에 흰색 팬티라….’
뜬금없이 안드로이드의 속옷을 생각하는 게 아니다. 빈우가 워프 비스트가 되려고 결심했을 때 본 것은 그의 보모인 아나스타샤가 작동 정지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는 검은색 속옷을 입고 있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