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점프 준비 완료했습니다.”
함장인 지마 오르 소령이 팀장인 빈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현재 블랙 랜스는 점프 포인터 앞에서 대기 중이다. 원래 이런 항해에 관한 사항은 함장인 그의 권한이기에 팀장인 빈우의 별도의 승인 없이 그냥 통보하고 진행한다. 그러나 현재는 연방의 파벌 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어서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팀장인 빈우의 명령이 떨어지면 블랙 랜스는 게이트 너머로 점프해서 그곳에 있는 42 전단에 합류하게 된다. 참고로 지금까지 태스크 포스 373의 전원은 전투대기 상태로 있었다. 혹시 모를 보안국의 방해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점프.”
빈우의 명령과 함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블랙 랜스는 곧바로 통상공간으로 나왔다. 그리고 눈앞에는 42전단의 함선들이 펼쳐졌다.
“점프 공간 안에서의 기습은 없는 모양이군요.”
42전단의 순양함들과 합류하며 오르 함장이 말했다. 과거 빈우가 지휘하는 울토르 중대와 솔리드 베타가 포말하우트 게이트의 점프 공간 안에서 기습당한 전대미문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아쉽습니까?”
빈우가 쓴웃음과 함께 물었다.
“조금은요. 그런 것은 정말 희귀한 경험 아닙니까.”
오르 함장 역시 쓰게 웃었다. 보안국에 샤다이의 손길이 닿았다는 것은 현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가설이다. 그래서 놈들, 샤다이들이 예전에 빈우를 습격했던 방법을 다시 써서 태스크 포스 373을 습격하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반갑군, 김 팀장. 몸은 좀 어떤가?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화면에 나타나 빈우를 반긴다. 태스크 포스 373은 누벨 노르망디에서 지상 작전을 하던 중 부활한 샤다이 집정관 체메트디오프와 조우했고, 당시 빈우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워프 비스트가 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그것을 치유하고 다시 42전단에 합류하는 중이다.
“걱정해주신 덕분에 무탈합니다.”
-좋아, 그럼 이쪽으로 건너오게. 할 일이 태산이야.
“알겠습니다.
통신을 끊고 돌아서는 빈우의 옆으로 아나스타샤가 다가선다.
“근처에 보안국의 흔적은 없습니다.”
아타스타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42전단 근처엔 보안국의 함선이나 요원이 있는 기색은 없다고 한다.
“알았어. 그럼 그라디우스로 가죠.”
빈우는 격납고로 이동해서 그라디우스에 탔다. 전단 기함으로 가는 것은 팀장인 빈우 혼자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불현듯 부팀장 아룹이 다가와 질문한다. 그는 지금 그라인더에 완전무장을 한 채 대기 중이다. 42전단에 합류했는데도 말이다.
“팀장님, 아직 완전히 마음을 놓을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도 예전에 보안국과 몇 번 작전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쪽의 방법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만약의 사태를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 쪽에서 먼저 호들갑 떨 필요는 없죠.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때는 부팀장에게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빈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하며 그라디우스에 탔다.
-호위는 필요 없습니까?
이번엔 롱소드에서 우지가 물어온다. 여차하면 그라디우스를 따라나설 기세다.
“됐어. 대기하고 있다가 일 터지면 나와라.”
하지만 팀장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태연했고, 이어서 그를 태운 그라디우스가 격납고를 나갔다. 그 모습을 영상으로 보며 아나스타샤가 주먹을 꽉 쥐었다.
“아나스타샤.”
그녀의 옆으로 자매기인 크산티페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팀장님께서 다 생각하시고 하는 일일 테니까.”
“크산티페, 너는 괜찮니?”
아나스타샤가 크산티페의 손을 잡으며 돌아봤다. 그녀는 마커스 타이의 보모였던 안드로이드로서 원래는 군용이 아닌 민간용으로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우의 사건이 터지자 이번에 부랴부랴 군용으로 재등록, 개수되어 이곳까지 끌려온 것이다. 마커스는 아무래도 최악의 상황에 철저히 대비한 것 같다. 친구의 가족을 위해 자신의 가족을 버리려는 각오를 한 것이다.
“난 괜찮아. 주인님의 명령이니까.”
크산티페는 방긋 웃을 뿐이다. 그러나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얼굴-자신을 위해 희생될 자매를 향해 마주 웃어줄 수 없었다. 죄책감을 비롯한 복잡한 감정 때문이다.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쿠델카 모델 중에서도 아나스타샤처럼 이렇게 인공지능이 개화한 개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 명령….”
아나스타샤는 주인에 대한 불안감과 자매기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며 다시금 시선을 자신의 주인에게로 돌렸다. 빈우가 부디 무사하길 바라며. 만약 이번에도 주인의 신상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다는 게 그녀의 예상이었다.
* * *
지금 빈우가 가고 있는 곳은 전단장실이다. 다행히 그라디우스로 이동할 때나 격납고에 도착했을 때도 우려하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전단장실로 갈 때 역시 아무런 방해가 없었다.
“아, 들어오게. 김 팀장.”
빈우가 안으로 들어가니 전단장과 스베틀라냐 스크로도프스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의외의, 아니, 예상했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보안국장인 다샤 쿠사키나 준장이다.
“오래간만이군. 김 빈우 소령.”
“만나서 반갑습니다. 쿠사키나 국장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인사했다. 그에 반해 스베틀라냐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애초에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이번 쿠사키나 국장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굉장히 언짢았었다. 오직 연방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 매진하고 싶었던 그녀였기에, 이런 보안국 같은 내부 수사부서의 감찰에 발목을 잡히기는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쿠사키나 국장에겐 자신에게의 직접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함대사령본부의 명령서와 국방부의 협조요청서가 있는 마당이라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자네에게 수사 협조 요청을 하러 왔다는구만. 미리 언질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하지만 이게 또 사안이 사안이라서.”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드물게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42전단의 보급부대에 숨어서 따라온 보안국은 이번 자신들의 방문을 철저하게 비밀로 해달라고 했었고, 이런 종류의 일엔 서투른 그녀였기에 달리 비밀스러운 루트로 빈우에게 귀띔도 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 같은 놈을 헤아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빈우는 딱히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의 태연한 대답을 들으며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쿠사키나 국장을 힐긋 노려보았다.
“미리 연락도 주지 않고 이렇게 불쑥 나타나는 불청객은 우리도 사양이지만…. 어쩌겠나,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전단장의 불쾌한 시선에 쿠사키나 국장이 즉시 고개를 숙였다.
“기밀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양해해주십시오.”
“흥, 협조대상에게까지 기밀이란 말인가?”
“네, 김 팀장은 우리 쪽과 몇 번 트러블이 있어서 이번에도 괜스레 일을 키우긴 싫었습니다.”
보안국이 자기 임무의 내용에 대해 알리지도 않고 마구잡이 일을 벌이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좋아, 그럼 당사자도 왔으니 한번 들어보지. 도대체 무엇을 수사해야 하기에 특수전 사령부의 태스크 포스 373 팀장인 김 빈우 소령을 이렇게 데려가야 하는가? 어쭙잖은 일이라면 레드우드 사령관의 귀에 들어가기도 전에 나한테 박살 날 것이야.”
42전단은 연방군 내에서도 상당한 자유도를 보장받은 올스타팀이다. 각 함대에서 내로라하는 인재와 에이스들이 모인 부대인 것이다. 그래서 스크로도스프카 전단장은 행여 이들에게 누가 될까 보안국이 가져온 서류에 따르는 시늉은 했다. 그러나 이게 영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 바로 엎어버릴 각오 역시 하고 있었고, 전단장인 그녀가 앞장서면 그녀를 따라온 전단의 대원들도 자신의 본가까지 쑤셔 일을 크게 벌일 게 뻔했다.
“전단장님, 고정하십시오. 쿠사키나 국장도 연방을 위해서 일합니다. 음지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들을 위해 우리가 협조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목표가 된 빈우가 나서서 되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흠, 자네가 그렇다면야.”
반쯤 뗐던 그녀의 엉덩이가 다시 의자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팔짱을 끼며 약간 뒤로 앉았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어디 한번 할 테면 해보란 의미다. 오히려 지금 가장 불안한 것은 이번 일을 벌인 쿠사키나 국장이었다. 그녀의 예상에 따르면 빈우는 사전에 이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또한 피할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뒤쪽으로 여러 가지 공작을 할 수도 있었고, 방금까지도 몇 가지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우는 당당히 이곳, 호랑이 아가리에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무를 순 없지.’
결심을 한 쿠사키나 국장이 화면을 열었다.
“제가 김 팀장에게 수사 협조 요청을 한 것은 그가 이번 사건에 대해 가장 적임자이기 때문입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빈우가 어딘가의 집으로 침입하는 모습이다.
“이곳은 과학기술국의 응우옌 티빈 중령이 요양 중인 안전 가옥입니다. 응우옌 중령은 정신 건강상의 이유로 장기휴가를 신청했고, 이곳에서 휴식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전 이자가 침입한 겁니다.”
화면 속의 빈우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촬영하던 화면이 점차 뒤를 밟아 다가간다.
“촬영하는 이들은 저희 보안국의 경호 병력입니다. 당시 응우옌 중령을 호위하고 있었죠. 이 안전 가옥은 보안카메라를 비롯한 다수의 보안시설들이 있었습니다만, 당시 이것들은 전부 무력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태스크 포스 373의 김 팀장이었기에 달리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콧방귀를 꼈다. 쿠사키나 국장의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빈우가 저 집에 침입했을 때 보안국 경호팀의 눈에 처음부터 안 띄었으면 모를까, 한 번 보인 다음에는 잡힐 게 뻔하다. 지금은 그냥 들여보내 준 것이다. 십중팔구 무슨 꿍꿍이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래서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옆의 빈우에게 뭐라고 말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빈우의 표정이 너무 온화했기 때문이다. 심각하지도, 당황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예상했던 것을 본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달리 말을 꺼내지 않고 영상을 마저 보기로 했다.
“경호팀은 김 팀장의 행방을 쫓던 중, 일단은 요인을 보호하기로 했습니다. 김 팀장의 목적이 무엇이든 요인 보호가 우선이기 때문이지요.”
화면은 창밖에서 방 안을 찍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찍힌 것은 빈우가 갑작스레 발광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날뛰던 그가 갑자기 방에 있던 거울을 깨고 그것을 미친 듯이 짓밟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응우옌 티빈 중령은 침대 위에서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빈우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들어온 사람을 잡았다. 들어온 사람은 남자아이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잡히는 순간 이미 목이 꺾여 즉사했다.
“헛.”
짧은 숨을 삼킨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빈우를 보았다. 그러나 빈우는 아무런 반응이 없이 태연했다.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다. 죽은 아이와 그 아이를 죽여서 들고 있는 자신을.
-돌입! 돌입!
뒤늦은 보안국 경호팀의 돌입. 가벼운 위장복을 입은 무장병력들이 창문을 깨고 들어갔지만, 침입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총성과 비명도 잠시, 경호팀들은 차례차례 사망했다. 조카의 시신을 앉고 울부짖던 응우옌 티빈 중령마저 뒤에서 다가온 빈우에게 총을 맞고 사망했다. 이어서 뇌와 두뇌칩마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여기까지 화면을 재생한 쿠사키나 국장이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과 빈우를 돌아보았다.
“아, 물론 이자는 김 팀장이 아닙니다. 시간대가 맞지 않아요. 범인은 울토르 중대에서 탈주한 울트로 클론으로 추정됩니다. 이 클론은 현재 연방을 떠돌며 요인들을 암살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이 클론을 체포, 혹은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울토르 부대의 지휘관이자 원본이었던 김 빈우 소령의 협조가 필수입니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빈우와 쿠사키나 국장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 정도 안건이라면 빈우에게 협조를 요청할만하다. 아니, 그보다는 중요참고인으로 체포를 할 정도다.
“글쎄요. 저는 지금 울토르 프로젝트에서 제외된 상태이고, 두뇌칩에 있는 울토르 프로젝트의 정보 또한 포말하우트에서 샤다이에게 습격당한 이후론 잠긴 상태입니다. 저를 데려가셔도 별다른 이득은 없을 텐데요?”
능청스러운 빈우의 대답이다. 자신의 형태를 한 존재가 벌인 범죄를 보고도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이에 쿠사키나 국장 역시 부드럽게 접근했다.
“하지만 저때 자네의 행적이 정확하지 않아. 특수전 사령부에 정박한 블랙 랜스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면서? 그 당시의 일이라도 조사하게 해주게. 그리고 이것.”
그녀가 보여주는 것은 명령서와 요청서들이다. 물론 빈우를 대상으로 한 것들이다. 빈우는 그것들을 받고는 차분히 읽어보았다.
“어떤가?”
쿠사키나 국장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채근했다. 그때 빈우가 명령서를 탁자 위로 툭 하고 던졌다. 별들 앞에서 소령이 할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별들은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다.
“체포는 아니죠?”
빈우의 물음에 쿠사키나 국장이 바로 대답한다.
“물론이야. 수사 협조 요청과 중요 참고인 소환일 뿐이야.”
그 말을 들은 빈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빈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함내통신으로 비상 통신이 들어왔다.
-여기는 태스크 포스 373의 부팀장 아룹 라마누잔이다. 현재 김 빈우 소령을 반란 혐의로 긴급체포한다.
이어서 화면 속으로 태스크 포스 373 소속의 그라디우스 한 대가 격납고로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