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착함허가도 없이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 태스크 포스 373의 그라디우스 때문에 격납고에선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그 광경이 세 사람의 앞에서 생생한 화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들이 들고 들어온 명령서 때문에 큰 소란이 일어났다. 바로 이곳에서.
“이게 무슨 짓이야!”
노기가 서린 스크로도스프카 전단장의 말과 달리 빈우는 느긋하다.
“글쎄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특수전 사령부에서 저를 체포한다고 합니다. 어이쿠, 명령서까지 있네요. 이거야 원, 조지 레드우드 사령관의 사인에다가 보안국의 다샤 쿠사키나 국장께서 직접 수사에 협조해 주셨군요. 쿠사키나 국장님, 설마 이겁니까.”
그 뒤를 이어 쿠사키나 국장이 잽싸게 말을 붙인다.
“이건 김 팀장의 수작입니다. 말려선 안 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둘 다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에겐 통하지도 않을 변명이었다.
“개소리 집어치워! 네년놈들이 지금 내 앞에서 무슨 수작을 꾸미는 거야! 바른대로 말해.”
그녀의 살벌한 시선이 373의 팀장과 보안국장을 거세게 찌른다. 조금이라도 거슬렸다간 바로 작살이 날 기세다. 이번에도 선수를 친 것은 빈우였다.
“간단한 겁니다. 보안국은 저를 데려간다고 하고, 특수전사령부는 저를 체포하려고 합니다. 하나의 일에 발을 걸친 두 부서간의 파워 게임이죠.”
그러고 나서 의자에 푹 기대는 빈우의 모습이 이 사태에, 그리고 자신을 향한 별들의 시선에 초탈한 모습이다.
“내가 자네를 지켜준다고 했을 텐데! 내 호의를 이런 식으로 배반하나!”
물론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보안국이 찝찝한 꿍꿍이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협력했다. 그러나 같이 싸웠던 태스크 포스 373을 지켜주기 위해 꽤 무리할 각오도 되어있었고, 그렇게 밝혔다. 그녀가 자신의 직속 부하가 아니라 타 부대의 트러블 메이커를 위해 나서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우가 자신의 전단 안에서 이런 사고를 쳐대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빈우는 태연히 대꾸했다. 의자에 기댄 채로.
“까놓고 말하겠습니다. 전단장님께서 보르시를 아무리 맛있게 끓인다고 하셔도, 제 아나스타샤의 것보단 맛이 없을 겁니다. 잘 아시잖습니까? 세상일이란 게 그런 거죠.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뭣.”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이 순간 움찔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빈우를 말릴 생각도 못 했다. 자신의 모토가 생각난 것이다. 자기 분야 바깥의 일에 필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전문가의 일은 전문가에게 맡긴다. 빈우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간다. 이런 더러운 일에는 자신이 전문이니 나서지 말란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예 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김 빈우를 즉시 체포하라!”
그러나 명령은 다샤 쿠사키나 보안국장이 먼저 내렸다.
“죄송합니다. 전단장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제 부하들을 보내겠습니다.”
“이것들이 감히…!”
자기 밥상에서 감 놔라 배 놔라, 어라 고기가 없네 엎자, 이러는 두 년놈의 모습에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이구, 이번엔 보안국에서 저를 체포한다는군요. 그럼 착한 저는 자수하러 가겠습니다.”
잽싸게 밖으로 도망가는 빈우의 마무리에 전단장은 드디어 폭발했다.
* * *
격납고는 또 격납고대로 난리가 났다.
“위르겐 이 개새끼야! 미쳤냐!”
“이여~ 위르겐 상사님, 바깥바람 쐬더니 돌았습니까? 대가리 까드릴까요?”
그라디우스 주변에 뱅가드 대원들이 우르르 몰려서 떠들어댄다. 반쯤은 화가 났고, 반쯤은 신이 났지만, 뒤에서 이를 지켜보는 잔뼈 굵은 몇몇은 이 사태가 어떻게 돌아갈지 대강 눈치채고 서서히 얼굴이 굳어졌다.
“씨양노무 호로새끼들아! 이거 안보이냐아!”
어벤져를 입은 위르겐이 나서서 명령서를 높이 들었다. 그러자 뱅가드 대원들의 안구가 해당 명령서를 인식하고 두뇌칩이 그 명령을 해독했다.
“시발 진짜네?”
“뭐야? 그럼 정말로 니들 팀장님 체포하는 거야? 도와줘?”
“재밌겠다. 나도 할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위르겐은 뱅가드 대원이다. 그리고 42전단의 지상병력은 전원 뱅가드 대원들이다. 죽이 착착 맞는 게 당연하다.
“아, 됐고. 비켜. 나 지금 빨리 팀장님 잡아야 돼.”
위르겐의 어벤져와 아룹의 그라인더가 서둘러 걷자, 둘러쌌던 뱅가드 대원들이 길을 터줬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격납고에 있는 뱅가드 대원들에게 전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전단장이다. 태스크 포스 373과 보안국 요원들은 전원 체포해. 명령이다.
이 명령에 흩어지던 뱅가드 대원들이 어깨 한번 으쓱, 고개 한번 갸웃하더니 도로 모여든다. 갑작스러운 사태의 변화에, 영문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명령은 명령이니까 따르는 것이다.
“푸헤헤, 위르겐 이씹새야 너 체포.”
“위르겐 이새꺄 너 무슨 사고 친 거야. 와봐 인마.”
체포하라고 해도 딱히 적의는 없다. 그저 명령이니까 너 좆되게 해 줄게 이런 심보다. 하지만 그들의 뒤로는 각자의 장갑복이 무인기동을 시작해 각자의 주인에게로 저벅저벅 걸어오는 모습이 아차 하면 둘러싸일 위기다. 제아무리 태스크 포스 373이 날고 기어도 이런 상황에 몰리면 답이 없다. 그때 모여드는 뱅가드 대원들 사이로 위르겐이 뛰어올라 동료들을 밟고 섰다.
“자자, 이거 봐, 이거 봐. 여기 이게 누구 명령서인지를!”
그가 들고 흔드는 명령서에는 특수전 사령관의 사인이 찍혀있었다. 뱅가드 연대와 단검뿔 토끼, 실리콘 나이트를 아우르는 조지 레드우드 말이다. 캐서린 시슬과 더불어 현재의 특수전 사령부가 있게 한 그 이름의 여파는 크다. 당연히 뱅가드 연대들이 주춤한다.
“어어? 저거 영감님이 찍었어?”
“와, 그럼 어쩌냐.”
“니미 길 막았다가는 우리 영감님 나중에 지랄지랄할 건데.”
레드우드의 이름 앞에 우물쭈물하는 대원들의 뒤로 호통이 터져 나온다.
“이 등신들아! 뭐 하는 짓이야!”
바로 42전단의 장갑보병 전대장인 브릭스 데이먼 중령이다.
“정신 차려, 이 새끼들아! 우리가 레드우드 사령관의 사병이야?”
그 말에 뱅가드 대원들이 정신을 차렸다. 뱅가드가 특수전 사령부의 부대이고, 그들의 상관이 특수전 사령관인 조지 레드우드 중장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이들은 42전단 소속이며, 군인인 이상 정당한 절차에 의해 내려진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명령은 지금의 직속상관이자 바로 여기에 있는 스베틀라냐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명령이 최우선이다. 게다가 특수전 사령부와 싸우라는 것도 아니고, 휘하 태스크 포스 하나가 격납고에서 깽판 치는 것을 잡으라고 하니 다들 납득하고 373에게로 다시 다가갔다.
“괜찮겠습니까?”
부전대장인 요한 비트겐슈타인이 슬쩍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뭐가?”
조용히, 그러나 퉁명스러운 데이먼 전대장이다.
“지금 태스크 포스 373의 김 빈우 하나를 두고 세 곳이 붙었습니다. 보안국과 특수전 사령부는 정식명령서를 가지고 날뛰고 있고, 우린 거기에 꼽사리 낀 거고 말입니다. 전단장님이 이렇게 나오시면 나중에 뒷감당이….”
비트겐슈타인 부전대장은 현재 상황이 보기도 싫은지 말에 질색하는 기색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지금 자신들은 샤다이와 싸우려고 전선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는데, 뒤에서 자기들끼리 쌈질을 하니 좋게 보려야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 요한 네놈 말대로 이건 저 새끼들끼리 알아서 싸우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 앞에서 지랄하는 꼴은 못 보지.”
그리고 타이밍 좋게 저쪽에서 어벤져 한 무리가 격납고의 수송기에서 내린다. 보안국 소속 팀이 쿠사키나 국장의 명령을 받고 나선 것이다.
“동작 그만! 저새끼들도 잡아!”
데이먼 전대장의 호령이 떨어지자 42전단의 뱅가드 어벤져들이 날아가 보안국 소속의 어벤져와 맞붙었다.
“이 미친놈들아! 뭐 하는 거야!”
보안국 소속 요원들이 대경실색해서 바둥거린다. 열 명도 안 되는 어벤져들이 숫자에 밀려 순식간에 붙잡혔다. 그리곤 바닥에 처박혀 짓밟히고 있다. 가만히 둘러싸인 태스크 포스 373과는 대조적이다.
“니들 후회할 거다. 지금 보안국이 작전 중이란 말이다.”
보안국 어벤져가 헬멧을 열고 길길이 뛴다. 그 요원 앞으로 데이먼 전대장의 어벤져가 걸어왔다. 그리고 맨얼굴을 장갑복의 발로 걷어찼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방금까지 화내던 요원의 턱 부분이 함몰되었고, 즉시 조용해졌다.
“보안국이고 나발이고 지랄하면 죽는다.”
데이먼 전대장의 엄포에 다른 보안국 요원들도 즉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가 시선을 돌리자 눈이 마주친 위르겐이 헤벌쭉 웃으며 손을 휙휙 흔든다.
“후우, 저 새끼가.”
데이먼이 한숨을 내쉬며 373 팀에게로 다가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전선에서 싸운 팀이었기에 딱히 적대할 마음은 없었다. 저쪽이 까불지만 않는다면.
“오랜만입니다.”
위르겐은 넉살 좋게 웃고 있지만, 데이먼은 대답 없이 혀를 찰 뿐이다. 그리곤 옆에 있는 그라인더를 보았다.
“이거 뭐 하자는 거요.”
퉁명스러운 질문에 그라인더의 헬멧이 열리며 아룹의 쓴웃음이 보인다.
“어쩌긴요. 김 소령을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하는 거지요.”
브릭스 데이먼과 아룹 라마누잔은 예전부터 알아 오던 사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목숨을 빚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쇼. 댁들하고 보안국이 무슨-”
그러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전단 내의 회선으로 경보가 울린 것이다.
-난 보안국의 다샤 쿠사키나 국장이다. 현재 통합전투사령부의 명령으로 김 빈우 소령을 체포한다. 반복한다. 통합전투사령부의 명령으로 김 빈우 소령을 긴급체포한다. 42 전단의 모든 인원은 이를 방해해선 안 된다. 또한 태스크 포스 373의 명령서는 이 시간부로 무효화 한다.
“이건 또 뭐야.”
데이먼 전대장의 말은 이가는 소리로 끝맺어졌다. 그들의 두뇌칩으로 들어오는 명령은 틀림없는 통합전투사령부의 명령이다. 이유 불문하고 김 빈우를 체포해야겠으니 방해하지 말란 내용이다. 통합전투사령부는 연방군 최고 사령부다. 그곳의 직통 명령이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놔, 놓으라고 이 새끼들아.”
짓밟혔던 보안국 요원들이 일어난다. 아쉽다는 듯 발을 치우는 뱅가드 대원들을 제치고 아까 데이먼 전대장에게 걷어 채였던 요원이 자신을 걷어찬 사람 쪽으로 다가온다. 함몰되었던 턱은 어떻게 재생이 되고 있었지만, 표정까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무슨 표정일지는 뻔하다.
“이봐, 중령.”
아물어가는 턱에서 어떻게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나왔다.
“지랄하면 죽는댔지?”
그리고 놈의 눈빛만큼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확실한 우위에서 확실히 밑에 있는 자를 짓밟는 자의 눈이다. 놈의 눈가로 주먹이 올라갔다. 그리고 앞으로 뻗어져 데이먼 전대장의 얼굴을 가격했다. 헬멧을 벗은 맨얼굴에 맞아 피와 뼛조각과 이빨이 날린다. 그리고 고함 소리도 날린다.
“씨바아알!”
“저 새끼 죽여!”
대장이 맞았다고 굽신거리는 뱅가드는 없다. 명령이고 나발이고 폭발한 뱅가드의 무리에 휩쓸려 보안국 요원들은 다시 짓밟혔고, 373팀은 잠시 자유를 얻었다. 상황 보던 아룹의 시선이 위르겐을 향하자, 그 뜻을 눈치챈 위르겐도 재빠르게 움직였다.
-파트리샤가 팀장님을 만났다. 이쪽으로 올 거다.
숨어 들어간 파트리샤가 빈우를 데리고 온다고 했으니, 빨리 체포해서 블랙랜스로 가면 된다. 그리고 특수전 사령부로 호송하면 이번 작전은 끝. 보안국이나 통합전투사령부에서 뭐라고 하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할 일. 지금은 일단 팀장을 호랑이 아가리에서 꺼내야 한다.
“저저, 저 새끼들 뭡니까?”
달리던 위르겐의 눈에 격납고로 들이닥치는 수송기들이 보인다.
“뭐긴 뭐야, 보안국이지.”
이제 보안국은 대놓고 행동을 시작했다. 전단 내 함선 곳곳으로 통합전투사령부의 명령과 보안국의 명령이 쇄도한다. 하지만 격납고로 들어오던 보안국 소속 수송기들이 착함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작업을 위한 로봇암들이 수송기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눈치 하나는 기막히게 빠른 자에게 위르겐은 엄지를 척 세우며 달렸다. 그때 그 눈치 빠른 자의 말이 함내 회선을 타고 들려온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왜 김 팀장님을 체포하는 거지요?
바로 전단장을 보좌하는 인공지능 발렌티나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