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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38화 (236/301)

238화

파트리샤와 빈우를 태운 롱소드가 블랙 랜스에 긴급 착함했다.

“으와아, 두 사람 괜찮을까요?”

격납고로 뛰어내리는 파트리샤가 뒤에 남겨진 팀원들을 걱정한다. 독기가 오른 보안국과 까부는 놈은 다 족쳐버리겠다는 42전단의 장갑보병들 사이에 부팀장 아룹과 위르겐을 남겨 놓고 온 것이다. 물론 저 두 사람이라면 자기 몸 하나는 건사할 실력이 되고, 여차하면 투항해서 42전단 쪽에 붙는 방법도 있으니 크게 위험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일언반구 없이 내버려 두고 자신과 빈우만 도망친 것이 파트리샤의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지금 내가 잡히면 말짱 도루묵이다. 나라도 도망쳐야지.”

빈우는 서둘러 달려 격납고의 조작패널로 가서 뭔가를 열심히 조작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빈우의 말이 맞다. 보안국이 빈우를 잡으러 왔으니 거기서 순순히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우지, 긴급출격이다. 블랙랜스 근처로 접근하는 보안국은 모조리 행동 불능으로 빠트려.”

-알겠습니다.

빈우의 명령에 롱소드가 날아올라 격납고를 빠져나갔다. 이어서 오르 함장이 함내 회선으로 현재 외부 상황을 알려온다.

-팀장님, 보안국으로 추정되는 수송선들이 42전단의 위험물 방어체계에 공격받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42전단 소속으로 표시되던 보안국의 위장수송선들이 지금은 적기로 표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운석이나 파편을 파괴하기 위한 42전단의 근거리 무장에 얻어맞고 있었다. 이 위험물 방어체계는 사거리가 짧고 저출력이긴 하지만 엄연한 무기이고, 인간의 허락이 없어도 인공지능이 항상 자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을 지키기 위한 이 무기들이 지금은 인간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의 공격이군요. 어떻게 이런 일이….

사태를 파악한 오르 함장은 꽤나 놀란 듯 말끝을 흐렸다. 연방의 인공지능이 생명을 해치는 것은 흔하다. 적대적인 외계 종족과 싸울 때 인공지능들은 인간들의 훌륭한 아군이 되어 적들을 학살한다. 하지만 인간의 명령도 없이 행동해서 주인인 인간을 해치는 행위는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것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파트리샤도 당황하고 있었지만, 사건의 주동자인 빈우는 태연했다.

“물론 인공지능은 인간을 해칠 수 없지요. 그러나 군용 인공지능은 둘을 살리기 위해 하나를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보안국이 소수에 들어간 것뿐입니다.”

파트리샤는 그 계기가 뭔지 물어보려고 했다. 지금 그녀의 예감은 인공지능 쪽에 도가 튼 팀장이 이번 사태에 뭔가 관계가 있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빈우 쪽이 선수를 쳤다.

“파트리샤.”

“네, 팀장님.”

대답하는 파트리샤에게 빈우의 손이 다가와 그녀의 가슴을, 인필트레이터의 흉부 장갑을 잡았다.

“엥?”

뜻밖의 상황에 어이없어하는 파트리샤가 본 것은 뒤돌아서서 달리는 빈우였다.

‘지금 상황에서 가슴 만지고 도망치는 장난을 한다고? 저 인간이?’

그 모습에 불길한 느낌이 든 파트리샤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자 거기엔 수류탄이 붙어있었다. 숱한 전투 경험을 쌓아 날고기는 베테랑인 파트리샤였지만, 그녀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이미 수류탄이 터졌다. 동시에 격납고의 중력이 꺼지고, 파트리샤 뒤쪽의 해치도 열렸다. 폭발의 충격으로 파트리샤, 인필트레이터가 격납고 바깥으로 날아가 버린다.

‘씨바랄!’

파트리샤는 심장을 직격당하는 바람에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인필트레이터는 전력에 의해 변형하는 부정형 장갑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본적인 방어력은 낮지만, 외부에서 충격이 들어오면 장갑의 겉은 단단히, 속은 부드럽게 해서 방어력을 확보한다. 그러나 지금같이 장갑 표면에 바로 붙어서 터지는 폭탄에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고, 빈우는 이점을 정확히 노리고 공격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공격은 파트리샤의 정신과 육체 양면을 동시에 공격했다.

-함장님! 함장님!

파트리샤는 날아가는 와중에도 이 이변을 알리려고 했다. 그러나 빈우가 먼저 팀장 권한으로 통신회선에서 파트리샤를 추방해 버렸다. 그렇게 바깥으로 사출된 인필트레이터는 바둥거리며 무중력 공간을 날아갔다.

-아나스타샤.

격납고를 나선 빈우는 복도에서 달리며 아나스타샤를 불렀다.

-네, 주인님.

-넌 지금부터 모니카 보르자 대위를 지켜. 지금 블랙 랜스는 보안국의 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진 그녀가 방 바깥으로 나오게 해선 안 돼. 절대로. 알겠어?

-네, 그러면 알탄훼아나 씨는 어떻게 할까요?

-일단 감금해. 내 명령부터 먼저 실행해.

-알겠습니다.

빈우의 전투정보 화면에 아나스타샤가 알탄훼아나의 방을 나가 서둘러 모니카가 있는 방으로 이동하는 것이 보인다. 그는 달리면서 그녀의 위치를 체크하고 있다가 아나스타샤가 모니카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그 구역을 폐쇄해 버렸다. 이제 아무도 그 방에 들어올 수도 없고, 나갈 수도 없다.

“크산티페.”

다음은 마커스의 메이드인 크산티페다. 보안국이 감히 국방부 차관의 안드로이드를 어떻게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나름 보호는 해줘야 한다.

“크산티페?”

그러나 크산티페로부터 대답이 없었다. 대신 그녀가 빈우가 가는 방향을 향해 급히 이동하는 게 보인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빈우와 만나게 될 것이다.

-설마 마커스가 다른 명령을 심어놓았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며 나아가는 빈우의 눈앞에 마침내 크산티페가 나타났다. 하지만 빈우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저 안드로이드는 크산티페가 아니었다.

“…어떻게 한 거지?”

빈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크산티페로 표기되는 쿠델카 모델 안드로이드가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크산티페가 얘기한 적이 있어요. 만약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면 자기와 나의 신분을 바꾸자고요. 그 아이는 나를 지켜야 된다고 했어요. 자기 주인인 타이 소령님의 뜻도 그렇고,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었대요. 그래서, 그래서 지금 해본 거예요. 우리 둘이 바꾸었어요. 어때요? 감쪽같죠?”

다시 쿠델카 모델 안드로이드의 인식반응이 크산티페에서 아나스타샤로 돌아오고 있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못된 주인을 따라다니다가 못된 것만 배운 모양이다. 그리고 아나스타샤의 입에서 찢어지는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거짓말쟁이!”

빈우의 가슴을 후벼 파는 한마디. 그리고 아나스타샤는 입술을 깨물며 참다가 마침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날 속였어! 날 버리지 않는다고 해놓고선! 날 속였어어어!”

안드로이드가 오열하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빈우는 멈추지 않고 걸어갔다. 아나스타샤에게로가 아니다. 그녀의 너머, 저 뒤쪽이 그의 목적지였다.

“가지 마세요.”

지나치려던 빈우를 아나스타샤가 붙잡았다.

“제발 가지 마세요. 절 버리고 떠나지 마세요. 같이 있자고 했잖아요.”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는 아나스타샤. 그러나 빈우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걸어갈 뿐이다.

“제발, 뭐든지 할게요. 시키시는 대로 다 할게요. 지금까지 잘못했어요. 제가 너무 건방졌어요. 그러니까 절 떠나지 마세요. 절 버리지 말아 주세요.”

안드로이드가 아무리 힘써 봤자 강화군인을 막을 수는 없다. 아나스타샤는 질질 끌려가면서도 결코 빈우를 놓지 않았다.

“왜, 왜 나를 안 봐요? 왜 놓으라고 하지 않아요? 명령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되잖아요. 그것도 하기 싫어요?”

그 말에 빈우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손을 들고 아나스타샤의 손을 잡더니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풀었다. 그리고 빈우는 아나스타샤와 눈을 마주치면서 조용히 말했다.

“안녕.”

말 자체는 조용하고 어눌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명확하고 단호했다.

“안돼, 안돼! 안돼! 싫어, 싫어어어!”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아나스타샤를 뒤로한 채 빈우는 자신의 목적지로 향했다.

* * *

알탄훼아나는 자신의 방의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녀의 곁에 모니카나 파트리샤가 감시역으로 있거나 아나스타샤가 치료를 위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것이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다.

‘바깥이… 보이질 않아.’

알탄훼아나는 다시금 멀어버린 두 눈을 비볐다. 지구 제국에 잡혀서 고문당했을 때, 그녀는 시력을 잃었다. 빈우에게 넘겨져 치료를 받았어도 고문과 정신적 충격에 의한 후유증 때문에 알탄훼아나는 자신이 얻었던 능력은 물론이고, 샤다이로서의 능력마저 대부분 상실했었다. 그러나 아나스타샤란 여인의 도움으로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고, 마침내 잃어버린 능력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무서워.’

그러나 그다음부터 시작된 일은 다시금 알탄훼아나를 괴롭게 했다. 빈우에게 협력하는 것, 그리고 선조에게 적셔진 빈우를 치유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거기다 그 일은 알탄훼아나 자신의 상처를 다시 헤집는 것이기도 했었다. 아물었다고 생각한 상처는 사실 제대로 치유된 게 아니었고, 그저 임시방편으로 땜질한 것에 불과하다고 아나스타샤가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알탄훼아나는 그것을 알고도 행동에 나섰고, 결국 그 대가로 능력을 다시 잃어버렸다.

‘무서워.’

빈우는 자신의 몸으로 들어온 고대 샤다이들을 도륙했다. 그들을 고문하고 고통을 줘 정신적으로 말살시켜 버렸다. 그리고 알탄훼아나는 그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했었고, 그것이 그녀를 괴롭게 했었다.

‘무서워.’

현재 그녀의 시각은 인간의 것과 비슷하다. 그저 가시광선만 받아들이고 해석할 뿐, 전파나자기장, 그리고 그 너머의 파장들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안구는 회복되었지만, 정신적인 문제다. 마음의 상처가 도져 일어난 일인 것이다. 다시 한번 그런 광경을 보게 되면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알탄훼아나 스스로가 마음을 닫아버린 결과다.

“여기 있었군.”

그때 빈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침대에서 몸을 웅크린 채, 마음마저 웅크리고 있는 알탄훼아나는 화들짝 놀랐다. 빈우를 보고 놀랐다기보다는 그가 들어옴으로써 자신에게 다시 보이게 된 운명 때문에 놀란 것이다. 자신의 앞에 펼쳐진 여러 가지 미래들, 선택의 결과물들, 그것들 중에서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들이 멀어버린 그녀의 눈에 다시금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비, 빈우? 왔어?”

자신의 운명을 본 알탄훼아나는 필사적이었다. 겁에 질린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억지로 마주 보려고 발버둥 쳤다. 그런 알탄훼아나의 모습에서 빈우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보이는가?”

빈우의 물음에 알탄훼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직 공포에 다 집어삼켜지진 않았지만, 자신의 발치에서부터 계속 기어 올라오는 어두운 물결에 익사 직전이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빈우도 보았다. 알탄훼아나가 본 선택의 흔적을. 자신이 하게 될 행동과 그것으로 인해 그녀의 앞에 펼쳐질 운명을.

“해줘.”

알탄훼아나는 떨리는 몸을 한사코 가눠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빈우에게 팔을 활짝 펴 들어 보이고는 울음과 웃음이 섞인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어서, 해줘.”

마치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질려 생을 포기하는 모습 같다. 빈우는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 * *

‘헤헹, 나를 얕봐도 유분수지.’

밖으로 쫓겨났던 파트리샤는 간신히 블랙 랜스의 표면에 붙어 자신의 모함 안으로 침입해 돌아왔다. 아무리 기습을 당하고 외부로 쫓겨났다 한들 그녀는 연방의 정예 실리콘 나이트다. 이 정도 위기쯤은 가뿐하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가만, 근데 이 양반이 설마 그걸 모를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파트리샤는 더럭 불안감이 들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팀장의 공격을 이겨냈다고 잠시나마 의기양양했었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빈우라면 이 정도는 분명히 예측하고도 남는다.

그 김 빈우는 아까 수류탄을 인필트레이터 가슴에 붙였을 때 파트리샤를 죽이려면 죽일 수도 있었고, 무력화시키려면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팀장은 파트리샤를 그저 배 바깥으로 쫓아내기만 했을 뿐이다. 이게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파트리샤는 금세 눈치챘다.

‘시간 끌기.’

결론을 낸 파트리샤는 달렸다. 방금까지 빈우의 반응이 있었던 곳으로.

-팀장님! 팀장님!

파트리샤가 달려가며 공용회선으로 빈우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373 기밀 회선이나 지상팀 전용 두뇌칩 회선으로 불러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태스크 포스 373의 팀장인 빈우는 샤다이 포로인 알탄훼아나가 있는 방으로 간 다음에 통신이 두절된 것이다.

-어? 어? 야야야, 빈우야.

통신 두절 외에도 또 다른 사실을 하나 더 알아낸 파트리샤가 애가 타서 혼잣말을 한다.

-젠장! 반응이 없어! 없다고!

이어서 회복된 통신으로 파트리샤가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그러자 오르 함장이 받았다.

-진정하세요, 피아프 중위. 지금 추적을 피하려고 통신을 끈 것일 수도 있잖습니까.

하지만 파트리샤는 이를 악물며 벽을 쳤다.

-함장님도 아시죠? 지금 팀장님의 위치가 블랙랜스에서 파악되지 않습니다. 이건 단지 몸을 숨긴 게 아니에요. 지상팀의 두뇌칩 회선에서 두뇌칩 반응이 아예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오르 함장이 혀를 찼다. 현재 블랙 랜스 안에선 빈우의 두뇌칩 반응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빈우가 같은 팀인 태스크 포스 373으로부터 완전히 모습을 감춘 것이다. 373 팀원들은 기밀 회선을 쓰는데도 그의 두뇌칩 반응이 없다는 것은 그가 사망했거나 완전히 이탈했을 때뿐이다.

-팀장니임!

파트리샤가 문을 부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방안에는 알탄훼아나만이 홀로 주저앉아있었다. 그리고 넋이 나간 채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팀장님 어디 갔어, 씹것아! 우리 팀장님 어디 갔냐고!

뭐같이 돌아가는 상황에서 웃고 있는 샤다이가 오죽 눈꼴셨을까. 짜증이 난 파트리샤가 알탄훼아나를 거칠게 잡아들었다. 그러나.

“…이런 씨바랄.”

알탄훼아나와 눈이 마주친 파트리샤는 그녀를 내려놓으며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샤다이 여인의 두 눈에는 푸른 피를 흘리는 검은 구멍만이 있었다. 안구 째로 뽑혀나간 것이다.

“이제… 보이지 않아…. 아하, 하하하.”

알탄훼아나는 뻥 뚫린 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정말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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