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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40화 (238/301)

240화

히토미는 그때를 떠올리자 마치 정말로 입을 맞춘 것처럼 불쾌한 기분이 입안에 맴돌았다. 그래서 그것을 씻어내듯 서둘러 맥주를 마셨다.

“의원님,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근데 아나스타샤.”

“말씀하세요.”

잔을 비운 히토미가 아나스타샤를 돌아보았다. 한동안 광란 상태에 빠졌던 이 안드로이드 메이드는 지금은 평온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주인에게 버림받았던 당시의 그녀는 너무나도 맹렬하게 폭주했기에 하마터면 히토미가 데려온 병력들에게 사살될 뻔했었다. 물론 아나스타샤에게 총구를 겨눴던 장갑보병들은 비무장의 373팀원들에게 척추가 접혔고, 히토미가 중간에서 말려야 했다. 그리고 급히 달려온 크산티페와 373팀원들이 그녀를 설득하고, 히토미가 ‘빈우를 구출하자’라고 권유를 한 다음에야 고분고분해졌다.

“의원님?”

그때를 회상하며 잠시 말없는 히토미에게 아나스타샤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불러온다. 그러자 히토미가 화들짝 놀랐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아나스타샤 너, 군사정보국에서 제법 오래 있었지?”

“네. 주인님을 모시며 비서로 일했습니다.”

그 때문에 아나스타샤는 군사정보국의 기밀이 들어있는 안드로이드지만, 이노우에 국장은 선심 쓰듯이 그녀를 먼저 넘겨주었다. 히토미가 뺏기 전에 말이다.

“그러면 그쪽 사람들 행동이나 하는 방식도 알고 있고?”

“네. 하지만 이번 일과 관련되지 않은 기밀 사항에 대해선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거기까지 들은 히토미는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편한 자세로 다리를 꼬았다.

“흐음, 그런 건 아냐. 다만 내 경험에 물어볼 게 있어. 이번 군사정보국의 행동이 과연 사실일까?”

즉 군사정보국이 특수전 사령부와 보안국 사이에서 이중 스파이 역을 하면서 특수전 사령부와 빈우를 도왔냐는 뜻이다. 히토미의 질문에 아나스타샤는 쟁반을 내려놓고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니요. 아마 이번 사건 직전까지만 해도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은 협력 중이었을 겁니다. 의원님이 주신 권한으로 자료를 살펴봐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이번에 보안국은 주인님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외의 정황을 보면 같은 시기의 군사정보국은 울토르 클론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두 부서 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역시 그렇지?”

다시금 진중한 이노우에 국장의 표정이 떠오르자 히토미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어제까지 협력하던 동지를 오늘 살기 위해 팔아넘겼다. 군사정보국은 이번에 정말 맛깔나게 보안국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이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태세 전환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히토미는 보안국과 연방 내부의 불온 세력을 상당수 잡아 족칠 수 있었고, 특수전 사령부는 방해 세력을 치우고 혐의를 벗었으며, 군사정보국은 뱀의 꼬리를 자른 대가로 용의 머리를 얻었다. 연방 내 부서 간의 파워 밸런스에 이변이 생긴 것이다.

“설마, 김 소령이 이걸 다 염두에 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요.”

히토미의 혼잣말에 두 여인이 서로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한데 비약이 무지막지하긴 해도 마냥 헛소리라 치부할 수 없다. 빈우는 닉스 레벨 3의 전략 병기고, 음모와 책략의 화수분인 것이다.

“…으음, 의원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예전에 주인님께서 군사정보국의 방식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장난치신 게 생각났어요.”

그러면서 아나스타샤가 빈 맥주잔을 채워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저한테 반지를 주시더라고요. 생성기로 만든 싸구려였지만, 저는 나름 순환 펌프가 두근두근했답니다. 그때 주인님께선 ‘이 반지는 사실 코에 거는 귀걸이란다’라면서 다가오시던데, 세상에 그걸 제 발가락에 끼우시지 뭐예요.”

“뭐어? 파하하.”

그 순간을 상상하며 히토미는 깔깔 웃었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뜻은 의미심장했다. 정보에는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해석이 있고, 받아들이는 자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치가 있다. 마치 원통이 앞에서 보면 직사각형이지만 위에서 보면 원인 것처럼. 같은 사건이 이쪽에 이득이 되면 저쪽에선 손해가 된다.

이번에 이노우에 국장이 살기 위해 퍼트린 것은 여지없는 진실이다. 다만 그는 그 정보들을 이상한 관점에서 비추어 퍼트렸고, 또 주변에서는 이를 각자의 입맛에 맞게 받아들였다. 그 결과 42전단의 사고는 ‘빈우와 관계된 부서들인 군사정보국과 특수전 사령부는 사전에 빈우의 음모를 깨닫고 비밀리에 그를 견제 혹은 체포하려 했으나, 보안국이 중간에 방해하는 바람에 사건이 크게 발생한 것’으로 매듭지어질 예정이다. 덕분에 이번 사건의 모든 혐의와 원인은 빈우와 보안국에게 쏠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빈우가 자신의 탈출을 위해 거짓으로 내세운 내란혐의가 진실로 낙인찍어진 셈이다.

그리고 지금 히토미 파벌의 상원의원들은 이 진실을 바탕으로 조사위원회를 꾸려 이번 일을 철저히 조사할 예정이었다, 이번 기회에 연방에 숨어든 샤다이들을 일거에 쳐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타이밍을 잘못 맞추면 빈우를 구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건 그렇고 울토르 클론 말이야.”

히토미가 화제를 바꿔 화면을 띄웠다. 빈우의 모습을 한 클론이 응우옌 일가를 죽이고 보안국과 싸우는 장면이다.

“이것도 나름대로 중요한 사건이지.”

지금까지 울토르 클론의 사건에 대해서는 빈우가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샤다이와의 전면전이 일어나자 잠시 손을 뗄 수밖에 없었고, 이번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는 그의 행적에 대해 더욱 수상한 점이 되어버렸다.

덧붙여 응우옌 일가 사건 역시 울토르 클론이 벌인 일이었지만, 보안국은 이를 숨기고 있었다, 라고 군사정보국이 밝혔다. 게다가 이노우에 국장은 보안국이 최근까지 울토르 클론을 운용했고, 자치 행성 프리마에서 권한 밖의 작전을 진행한 사실마저 폭로했다. 보안국은 프리마의 개척민들이 샤다이에게 감염되고 포섭되었기에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했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조사위원회다.

“김 소령은 샤다이와 싸우면서도 이 사건을 받아들였어. 당시 나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도 굳이 떠맡았단 말이야?”

히토미가 샐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은인이 위험에 빠지는 게 싫어서 충고했지만, 빈우는 듣고선 흘려버렸던 것이다.

“주인님께선 외통수로 몰리시기 전에 먼저 장군을 부르시려는 속셈이었을 겁니다.”

울토르 클론이 벌인 일련의 사건들은 원래는 군사정보국과 보안국이 가져온 사건이었다. 두 부서는 각자 이 건에 대해 자기들만의 조사를 하고 있었으나, 그 진의를 교묘하게 숨기고 빈우를 끌어들일 미끼로 사용했다. 하지만 빈우는 이 독이 든 잔을 기꺼이 마셨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우선 울토프 프로젝트의 지휘자는 전 연방 상원의장이었던 이케가미 소이치로, 히토미의 아버지였다. 그는 울토르 프로젝트에 샤다이의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 가르단 하스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샤다이들의 계단을 부쉈다. 함께 울토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빈우에게 있어서 그의 마지막 희생은 자신에게도 그 사명을 물려받게끔 만들었다. 울토르 프로젝트의 비밀을 파헤치고 음모를 부수도록 말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군사정보국장인 이노우에 고토는 빈우가 이 일을 거부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빈우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고, 빈우가 희생자인 엄마와 아들의 죽음을, 아빠와 딸의 죽음을 결코 지나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이 사건을 넘겼던 것이다.

“그리고 주인님은 자신의 클론이 벌이는 사건이 자신과 깊게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아나스타샤의 말에 히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빈우가 조사한 결과, 이 울토르 클론을 만들어서 외부로 탈출시킨 인물은 빈우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 시기는 울토르 중대가 포말하우트에서 습격당했을 때이며, 그 실행 동기는 빈우의 머릿속에 트리니티 패턴으로 잠겨있어 알 수 없다. 그래서 빈우는 울토르 클론을 조사하려 했었다. 당시의 일에 대한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아나스타샤. 네 주인….”

히토미는 다음에 꺼낼 단어가 꽤 민감한 것이어서 말끝을 조금 어물거렸다.

“…인간이지?”

“네! 그건 확실합니다. 저는 울토르 중대에 있으면서 주인님과 울트로 클론들을 함께 만났습니다. 두뇌칩 반응만이 아니더라도 바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표시가 나요. 다만….”

아나스타샤는 처음 대답은 곧바로 했지만, 그녀 역시 말을 이어가다가 점차 끝을 흐렸다. 그리고 당당했던 표정 또한 차츰 불안해져 갔다.

“다만?”

“그 클론은 일반적인 울트로 클론이 아니에요. 아마 주인님께서 특별히, 비밀리에 제작하신 것이 분명해요.”

빈우가 자신의 클론을 가지고 했던 섬뜩한 실험에 아나스타샤는 얼굴을 굳히며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주인이 자신의 클론 태아에 지구제국의 나노머신 병기 쉬바를 주입하던 날이 떠오르자 안드로이드는 저도 모르게 섬뜩한 감각에 몸을 떨었다.

“흐음, 일반적인 클론이 아니란 말이지.”

히토미가 그 의미심장한 단어를 되새기며 맥주를 마셨다. 연방에서 클론은 널리 쓰이는 기술이고, 주로 손상된 신체를 대체하기 위해서 쓴다. 다만 울토르 클론처럼 자아를 가진 클론은 불법이며, 엄중히 관리한다. 그 때문에 울토르 중대는 연방법이 미치지 않는 동맹종족의 영토에 공장을 세우고, 해당 법령을 누더기처럼 억지로 끼워 맞춘 끝에 탄생한 부대다. 그것만으로도 일반적인 클론이 아닌데, 그보다 더한 클론이라면 대체 어떤 괴물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면 김 팀장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탁하고 빈 잔이 내려오는 소리에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상원의원이 있었다. 그녀의 눈은 친절한 히토미가 아니라 연방의 오다 의원의 것이었다.

“추측 가능한 루트가 몇 가지 있습니다만, 주인님께선 이미 파악하고 계실 겁니다.”

“상관없어. 말해 봐.”

아나스타샤는 심호흡을 하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는 주인님 자신의 클론을 추적하는 것입니다. 살인사건을 일으킨 클론은 트리니티 패턴으로 잠기지 않은 당시의 주인님께서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그날의 일에 대해, 그리고 울토르 프로젝트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녀가 첫 번째로 꼽은 만큼 가장 가능성이 높다. 빈우는 자신의 과거 중 일부를 잃어버린 상태고 그것이 중요하단 것은 자신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두 번째는 복수입니다.”

이어지는 아나스타샤의 말에 히토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복수?”

빈우의 복수라면 보안국이 그 대상일 것이고, 그 보안국은 지금 자신이 열심히 조지는 중이다.

“네, 다만 보안국뿐만이 아니라 연방에 들어온 샤다이들, 이번에 자신을 공격한 적들에게 반격하려는 것입니다.”

그 말에 히토미로서도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빈우와 조사를 하면서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한 적이 있었는데, 빈우가 탈출한 이후 상원 데이터베이스에 히토미가 접속한 기록이 생겼다. 히토미 본인은 접속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자료들은 히토미 파벌이 예의 주시하고 있는 인물들에 관한 것이었고, 샤다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는 인물들이다. 아마 접속자는 십중팔구 빈우일 것이다. 그리고 빈우라면 일부러 흔적을 남겼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울토르 클론의 임무와 비슷할 수도 있겠군.”

히토미가 모은 자료에 의하면 울토르 클론이 살해한 자들은 모두 워프 비스트로 변하는 자식이 있었다. 이들은 알탄훼아나가 퍼트리고 피에르 라캉이 수집한 치료법으로 간신히 인간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클론의 손에 죽임당했다. 어쩌면 죽은 마리 라캉과 응우옌 티빈이 샤다이에 몸을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들이 샤다이에게 몸을 빼앗겼는지는 현재의 기술로는 알 수가 없지?”

상원의원의 질문에 안드로이드가 쓰게 웃으며 대답한다.

“네, 현재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알탄훼아나 씨는 특정 파장을 감지할 신체 기관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다만 예전에 정신적으로 꽤 위험한 상태였지만, 눈을 잃은 다음 지금은 오히려 정신적으로 많은 안정을 찾으셨습니다.”

히토미는 알탄훼아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눈에 패드를 감은 샤다이는 드물게 밝은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눈을 잃었음에도 말이다.

‘빈우는 왜 그녀의 눈을 뽑았을까?’

당시 빈우는 도망을 치면서 몇 가지 술수를 써놨다. 우선 같은 팀원들에게 해코지를 했다. 아룹과 위르겐을 버렸고, 파트리샤를 공격했으며, 모니카와 크산티페를 감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것들이 태스크 포스 373이 빈우와는 관련이 없고 무고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런데 눈을 뽑은 이유에 대해선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었다.

“아나스타샤, 너의 주인은 왜 샤다이의 눈을 뽑고, 왜 태스크 포스 373에서 탈출해야 했을까?”

히토미의 질문은 반쯤 혼잣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아나스타샤는 움찔하더니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에겐 아직 마주하기 버거운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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