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안녕하십니까아-. 의원님, 뭐 하세요?”
그때 파트리샤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대답은 듣지 못했다.
“어머, 피아프 중위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아나스타샤가 허둥지둥 나서지만, 오히려 방 주인인 히토미는 태연했다.
“아니, 괜찮아. 중위가 그렇게 들어온 것을 보면 급한 소식이겠죠?”
“네에. 급하다기보다는 좋은 소식을 빨리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달려왔습니다. 자아, 그럼 뭐부터 말할까나. 일단 조사팀은 편성 완료되었습니다. 중간에 팀장님이 쿠션 역할을 잘해주셔서 무난하게 넘어갔습니다.”
방싯방싯 웃으며 자리에 앉은 파트리샤는 자신의 잔을 만들어 히토미에게 척 내밀었다. 그녀가 말한 조사팀이란 상원 조사위원회의 조사원인 히토미의 지휘하에 움직이는 팀을 말한다. 이들은 태스크 포스 373 팀원들로 재구성되었으며, 팀장은 아룹 라마누잔 원사다. 히토미가 파트리샤의 잔에 맥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제 조사팀에 예전 373팀원들을 그대로 데려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어떻게 보면 김 소령이 지휘했던 팀이라 공범으로 조사받을 뻔도 했지만, 그 짓을 할 보안국이 먼저 박살이 났지요. 게다가 이쪽 편을 들어준 세력이 많아서 그럴 염려는 없었군요.”
이어서 히토미는 자신의 잔에도 맥주를 따른 다음, 두 사람이 건배했다. 그녀는 태스크 포스 373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발품을 팔았었다. 한 모금 마신 히토미는 찰랑이는 맥주를 보며 자신이 했던 행적을 되새겨 보았다. 빈우의 탈주 후 현장은 태스크 포스 373과 보안국, 42전단이 어우러져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것을 진정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었다. 게다가 이것을 진정시킨 다음의 일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빈우가 지휘했던 태스크 포스 373에도 혐의가 씌워진 상황이었던 것이다. 만약 군사정보국의 이노우에 고토나 합동참모본부의 캐서린 시슬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373팀은 히토미가 데려오긴커녕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을 것이다.
“레드우드 사령관께서 제 의견을 들어주셔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히토미는 당시의 사태를 파악한 다음 태스크 포스 373이 혐의를 벗자마자 이들을 자신의 조사팀으로 영입했다. 잡음이 있긴 했지만 어떻게든 밀어붙였고, 오늘에야 정식으로 인가를 받았다고 한다.
우선 태스크 포스 373은 레드우드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데려온 엘리트들로 구성된 부대이며, 다행히도 그는 히토미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래서 히토미가 태스크 포스 373을 그대로 빈우의 사건 조사팀을 꾸리겠다고 하자 오히려 반색하며 찬성해 주었다.
“뭐, 우리야 그 영감님이 까라면 까는데, 단지 블랙 랜스가 조금 골치였죠.”
파트리샤는 블랙 랜스를 회수해 가려는 과학기술국을 상대로 노발대발하던 레드우드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블랙 랜스는 과학기술국의 기술실증함이며, 그쪽에서 모니카 보르자 대위와 함께 넘어왔다. 다만 모니카가 속한 파벌은 레드우드에게 우호적이었지만, 블랙 랜스쪽 파벌은 묘하게 난색을 표했었다. 그때 같은 정보사령본부의 고토 국장이 나서서 다리를 놔줬고, 그 덕에 블랙 랜스는 계속해서 조사팀의 모함으로 있을 수 있었다.
“호호, 중간에서 중위님이 말린다고 고생했다고 들었습니다. 또 라마누잔 팀장님 덕도 톡톡히 봤습니다. 특수전 사령부는 제가 레드우드 사령관님과 상의를 했는데, 42전단은 팀장님과 중위가 가셨나요?”
“아뇨, 팀장님하고 위르겐이요. 그 녀석 뱅가드에선 나름 유망주인데다가 이래저래 인망이 있더라고요.”
42전단은 보안국과 빈우의 공격에 폭발 직전까지 갔고, 아룹과 위르겐이 나서서야 간신히 달랠 수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듣는 히토미의 잔에, 파트리샤가 어느새 비웠던 자신의 잔을 채우곤 다시 쨍하고 부딪혀 왔다.
“뭐, 의원님께는 이래저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마터면 우리 그날 박살 날 뻔했거든요. 해체 같은 거 말고 그날 42전단의 포격에 빵야 하고 말이에요. 근데 뭣 좀 여쭤봐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
“왜 태스크 포스 373을 이번 사건 수사팀, 그러니까 김 빈우 소령 추격팀으로 편성하셨죠?”
빈우가 저지른 짓은 꽤 크고 무겁다. 허위명령서 작성에 42전단의 인공지능 세뇌. 특히 후자는 그가 있었던 태스크 포스 373이 공중분해 되어도 당연할 정도, 아니, 당연히 공중분해 되었어야 할 정도의 중죄다.
“그야 첫째는 여러분이 연방 최고의 대원이기 때문입니다. 연방 최고의 기밀을 가지고 탈주한 사람을 잡으려면 최고의 사냥꾼이 필요하죠. 둘째는 앞서 말한 것의 연장선입니다. 태스크 포스 373 대원들은 김 빈우 소령과 가장 가까이서 생활한 사람입니다. 그의 습성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있죠. 마지막 세 번째는 선전입니다.”
“선전요?”
안주를 집어 먹던 파트리샤가 눈을 똥그랗게 떴다.
“네, 이 팀이 그대로 유지됨으로써 김 소령의 무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즉, 히토미를 위시한 파벌은 태스크 포스 373의 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 보안국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한 것이다. 다시 말해 빈우와 태스크 포스 373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보안국의 치밀한 모략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의미다.
“엑, 더러워.”
파트리샤의 솔직한 대답에 아나스타샤가 조마조마 눈치를 보지만, 히토미는 잔잔하게 웃을 뿐이다.
“참, 중위. 저도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넵.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요.”
“김 소령은 왜 그날 샤다이 알탄훼아나의 눈을 뽑았고, 왜 태스크 포스 373에서 탈출해야 했을까요?”
안주를 집던 파트리샤의 손이 멈춘다. 대신 맥주잔을 들어 입 안에 있던 것을 꿀꺽 삼켜버렸다.
“프하, 으음. 그러려면 팀장, 아니, 소령님의 행동 동기에 대해 파악해봐야 하죠. 그것도 아주 근원적인 걸로.”
“근원적인?”
파트리샤가 미소를 지우자, 히토미의 얼굴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네, 김 빈우 소령의 목적은 연방의 안전입니다. 그 양반은 언제나 그것을 위해 움직이죠. 의원님께서도… 이케가미 전 상원의장의 죽음을 기억하시죠?
히토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빈우가 보여준 아버지의 죽음. 거기에서 빈우는 목숨을 걸고 그를 구하려 했다.
“뉴 소노라에선? 홍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워프 비스트 속에서 자치 행성을 구하기 위해서 뛰어들었죠.”
그때 히토미는 아나스타샤와 함께 자신의 방에 있었다. 만약의 경우, 상원의원인 그녀와 그녀가 가진 정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극약처방이 실시될 정도로 위급한 순간이었다.
“다른 팀원들도 같이 뛰어드셨잖아요.”
히토미의 말에 파트리샤가 어깨를 으쓱한다.
“네, 그게 우리 일이긴 하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소령님이 먼저 나섰기 때문이에요. 만약 그날 다른 지휘관이 후퇴하라고 했다면 우린 후퇴했을 겁니다. 장갑 보병 일개 분대로 할 수 있는 게 뻔하거든요. 하지만 김 소령은 그런 인물이 아니죠. 그리고 우리도 그 양반이라면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것이라 믿었고요. 또 솔직히 우린 그 정도 되는 인물이 이끌면 같이 싸우다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싶었기도 했고 말입니다. 씨바랄, 따지고 보니 그 양반이 자기 묫자리로 드러눕는 게 몇 번이야.”
투덜대며 지난 일을 회상하던 파트리샤의 눈이 다시 현실을 보았다.
“아시겠습니까. 김 빈우란 인간이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그는 연방의 안전을 위해선 얼마든지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요. 그리고 그런 자리가 생기면 자기가 가장 먼저 나설 사람이란 말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파트리샤는 아차 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희생양의 개인 비서인 아나스타샤가 있었다.
“네, 중위님 말씀대로예요. 주인님은 연방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고, 또 그렇게 하십니다. 병적으로요. 아마도… 어릴 적의 트라우마가 원인인 듯합니다.”
아나스타샤는 그 원인을 안다. 어머니의 죽음과 동생의 죽음, 그리고 가족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빈우는 무의식적으로 그에 대한 회개를 위해 언제나 자신을 채찍질해왔었다. 아나스타샤는 그 채찍을 대신 맞아주고 싶었지만, 주인은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했다.
“희생… 헌신….”
히토미는 한숨을 내쉬며 잔을 내렸다. 그리고 눈꺼풀도 내렸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히토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빈우가 치유되자마자 42전단으로 간 것과 이어서 42전단을 탈출한 사건을, 그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다시 복기해 보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눈동자는 조바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위험해요. 위험해, 위험해. 그렇다면 그가 우릴 버린 이유는 명약관화합니다. 그는 연방의 적을 뿌리 뽑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셈이에요. 그리고 김 소령은 앞으로 일어날 그 사건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또 우리가 방해가 되기 때문에 떠난 겁니다.”
그 말에 파트리샤가 놀라서 질문했다.
“연방의 적? 보안국과 의회의 적 말입니까? 그건 의원님과 군사정보국에서 대응하고 있지 않나요?”
“아뇨, 그날 김 소령은 느꼈을 겁니다. 보안국이 직접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통합사령부의 명령서를 꺼내 들었을 때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파악한 거예요. 물론 처음엔 자신을 미끼로 삼아 움직였겠죠. 숨죽이던 우리 앞으로 보안국이 달려들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일해 봤자 깃털만 뽑을 거고, 몸뚱이는 멀쩡히 살아있을 것을 깨달은 겁니다. 그래서 즉시 다음 안을 실행한 거죠. 그 몸뚱이를 다름 아닌 자신이 직접 치기 위해 움직인 거예요. 그리고 아마 그건…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겁니다.”
히토미 말에 아나스타샤가 그날의 장면을 떠올렸다. 주인이 자신에게 작별을 고하던 순간을. 단순한 ‘안녕’이란 말에 어떤 의미들이 억눌려 담겼는지 이해했던 그 순간을.
“네, 아마도요. 주인님께선 자신이 죽을 자리로 홀로 떠나신 겁니다. 자기 혼자서요.”
결론을 내린 세 여인 사이엔 경악과 정적만이 감도들뿐이었다.
* * *
술자리는 다른 곳에서도 펼쳐졌다. 42전단의 이그젝틀리에서 전단 주임 원사인 페르디난도 아키노와 조사팀의 팀장인 아룹 라마누잔 원사가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덕분에 살았다.”
아룹은 자신의 전우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경력만큼 발도 넓어 42전단의 장갑보병 전대장 데이먼 중령과도 아는 사이다. 그러나 페르디난도와는 군에 오면서부터 알게 된 막역한 사이다. 페르디난도는 아룹이 따라주는 잔을 받으며 코웃음을 쳤다.
“흠, 우리 전단장님이 니들 저번 팀장을 꽤나 좋게 본 모양이야.”
솔직히 그날 일어난 일은 42전단이 자기 재량으로 블랙 랜스를 격침시켜도 할 말 없는 수준이었다. 전단의 인공지능들이 전부 맛이 가 빈우를 편든 것이다.
“그거 다행이군. 인공지능들은 어때?”
아룹이 짐짓 겁먹은 척 어깨를 움찔했다. 42전단의 인공지능들이 빈우의 손을 거쳐 주인의 명령을 거부하고 보안국을 공격하는 대형 사고를 쳤던 날, 아룹은 진짜로 겁을 먹고 어깨를 움츠렸었다. 그 정도로 대형 사고였다. 이렇게 부드럽게 마무리된 게 기적이었다.
“김 소령이 터트린 논리폭탄의 후유증이 심해. 그래서 인공지능 전부 김 소령 만나기 전으로 롤백한 다음 해당 알고리즘을 대대적으로 손봤다. 근데 그 해결 알고리즘, 누가 만든 건지 알아?”
페르디난도가 물어보는 기색이 심상치 않아, 아룹은 그가 누구인지 대강 눈치챘다.
“김 소령?”
“맞아. 사건 이후 드러나도록 숨겨놨더라. 병 주고 약 주고도 정도가 있지. 그 양반,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해결책과 앞으로의 예방법을 다 마련해놨더라고.”
페르디난도가 질린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술을 들이켰다.
“치밀한 사람이니까.”
아룹도 같은 심정으로 잔을 비웠다.
“근데 너, 김 소령 추적팀이라면서?”
이번엔 페르디난도가 아룹의 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조사팀.”
“그거나 저거나.”
“그래, 그거 때문이라도 한번 물어보자. 너도 닉스 3레벨이었잖아.”
“한때는.”
페르디난도 역시 닉스 3레벨의 우수한 요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임무에서 오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현장에서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그 후 스크로도프스카 전단장의 부름을 받고 그녀를 따르다가 42전단을 구성할 때 전단 주임원사로 오게 되었다.
“어때, 잡을 수 있겠어?”
아룹의 질문에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되어있었지만 페르디난도는 이해했고, 거기에 조건을 하나 더 붙였다.
“잡히지. 도망자와 추적자의 싸움은 대부분 추적자의 승리야. 하지만 그러려면 심판이 필요해.”
“심판?”
아룹은 의아했다. 도망자와 추적자 사이에 누가 심판으로 나설까? 도망자? 추적자? 아니면 상부?
“시간.”
페르디난도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흐음, 그런 의미였냐?”
아룹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대강 짐작했다. 추적팀이 빈우를 따라가면 언젠가는 잡게 된다. 그러나 페르디난도가 말한 문제는, 빈우가 또 다른 대형 사고를 치기 전에 붙잡아야 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