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냐. 보통의 표적이라면 네가 붙었으니까 걱정도 안 해. 하지만 닉스 3레벨은 달라. 이놈들은 군의, 아니,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나서 움직인다. 연방의 전략 전술은 물론이고 과학기술이나 법률에도 능통한 놈들이지. 특수전 사령부에서도 닉스 3레벨 훈련을 시킨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전투기술에만 국한된 거야. 그야말로 새 발의 피지.”
과거 닉스 레벨 3이었던 페르디난도는 친구 아룹의 앞길에 무엇이 펼쳐질지 상상하게 되자 갑자기 술맛이 씁쓸해져 이마를 찡그렸다. 그래도 설명은 계속했다.
“숨바꼭질로 비유하면 말이야. 모두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할 때 김 소령은 문밖으로 나가서 차 타고 도망칠 거다. 그리고 오만가지 방해를 할걸. 총칼이나 폭탄은 애교야. 갖은 정치적 술수와 법적 제재가 너희네 팀의 목과 발목에 들러붙을 거란 말이다.”
전우의 너스레에 아룹이 쓴웃음을 짓자, 페르디난도가 뭔가 생각이 난 듯 몸을 가까이했다.
“그리고 아룹, 솔직히 네 팀이 추적자로 붙은 건 의외야.”
“어째서?”
아룹의 질문에 페르디난도는 머뭇거리면서도 대답해주었다.
“닉스 3레벨도 결국은 인간이다. 먹고 자고, 울고 싸는. 그래서 배반의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지. 닉스 3레벨은 같은 닉스 3레벨로만 추적할 수 있어. 그러니 너희 같은 ‘일반’ 부대가 추적자로 붙은 건 의외였단 말이다. 혹시 또 모르지, 너네 팀은 상원의 조사팀이고, 실제 추적팀은 따로 있을지도 말이야.”
아룹은 자신을 일반 부대원이라 칭하는 페르디난도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지만, 문득 빈우의 행적을 비교해보면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빈우와 자신이 정면에서 일대일로 붙는다면,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길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부대원을 이끈 전투라면 그때부터 빈우의 악랄함은 배가 된다. 판이 커질수록, 전선이 넓어질수록 빈우의 수는 무궁무진해진다.
“페르디난도. 닉스 3레벨이 같은 3레벨을 추적한 것에 대한 자료가 있나?”
그 말에 전 닉스 3레벨 요원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반쯤 빈 술잔을 지긋이 응시했다.
“자료라…. 참고로 김 빈우는 나와 함께 배반자를 추적해서 마무리한 적이 있다.”
아룹은 빈우와 나름 오랜 기간 있었지만, 팀장은 그런 얘기는 전혀 한 적이 없었다.
“그건 처음 듣는데.”
“당연하지. 그걸 떠벌릴 리가 있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너만 알고 있어. 그리고 잊어. 그때 나도 같은 작전이었지만 활동 영역은 겹쳐지지 않아서 잘은 몰라. 그때 추적 명령을 내린 것은 이케가미 전 상원의장. 실행자는 다수의 닉스 3레벨 요원들. 작전목적은 달성했지만 동맹종족에게 상당한 피해가 갔어. 그리고 그 공로로 김 소령은 울토르 프로젝트에 뽑혔고, 나는 보시다시피….”
페르디난도는 채 말을 맺지 못하고 대신 술을 들이켰다. 그 모습에 아룹은 아마도 그때의 작전이 그로 하여금 현역에서 한발 물러나게 한 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꽤나 더럽고 추잡한 임무였음이 분명했다.
그때 아룹은 문득 그 배반자의 정체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이케가미 의원과 빈우는 울토르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했으며, 둘 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서 혹시나 그 배반자가 울토르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는지에 생각이 닿은 것이다.
“너 혹시 그때 추적했다는 배반자의 정체에 대해 알려줄 수 있어?”
“아니. 완전히 삭제되었어. 그 어디에도 정보가 남아있지 않아.”
그러면서 페르디난도의 엄지손가락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삭제되었다고 함은 연방정부 데이터베이스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뇌에서도, 란 뜻이다. 철저하게 흔적이 지워진 작전이다. 어쩌면 빈우도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더 생각해봤자 답은 안 나오리란 생각에 아룹은 그 이야기는 접기로 했다.
“좋아, 화제를 바꿔보지. 김 소령의 탈주 말이야. 샤다이의 연방 침투와 관련이 있겠지?”
“거의 확실하지. 주변에서 하도 일을 못하니까 자신이 직접 칼을 빼든 것에 한 표다.”
페르디난도가 장난삼아 말했지만 전 닉스 3레벨의 판단이라면 아주 신빙성이 높다.
“그런데 말이야, 연방의 각 부서들이 달려들어서도 지지부진한 일을 인간 개인이 해낼 수 있을까?”
아룹의 의문은 타당했다. 현재 연방은 내부에 들어온 샤다이를 쳐내기 위해 뻐꾸기 작전을 실행 중이고, 히토미의 파벌을 필두로 해서 합동참모본부의 캐서린 시슬 대장, 국방부의 마커스 타이 차관 등이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샤다이 색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바깥으로는 42전단을 구성해 샤다이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작전을 진행중이다. 그러나 이런 엘리트들조차도 자신의 조직을 써도 샤다이를 잡아내는 데에는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헌데 빈우 개인이 나섰기로서니 사건이 해결되겠냐는 것이다.
“결정적인 키만 있으면 가능하지.”
하지만 페르디난도는 꽤나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연방의 내부에 샤다이가 스며들어오는 것과 울토르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관계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울토르 프로젝트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자가 누가 있지? 울토르 중대는 포말하우트 게이트에서 습격받은 이후 여러 부서로 불려가며 소방수 역할을 했다지만 정작 깊게 아는 사람은 드물어. 지휘자였던 이케가미 전 상원의장은 기록을 봉인 당하고 사망, 클론 제작자인 응우옌 티빈 중령 사망, 내부 보안 책임자인 피에르 라캉 중령 사망, 실제 울토르 중대를 사용했던 보안국의 다샤 쿠사키나 국장은 체포되어서 심문 중, 군사정보국의 이노우에 고토 국장은 목에 방울 달린 채 협조 중, 현장 지휘관이었던 김 빈우 소령은 자유롭게 탈주. 어때? 이제 알겠어?”
아룹의 고개가 작게 끄덕였다. 현재로서 울토르 프로젝트의 가장 치명적인 키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그것을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빈우란 것이다.
“그런데 김 소령은 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지?”
아룹은 빈 잔을 내려다보며 한탄했고, 페르디난도가 옆에서 잔을 채워준다.
“너도 사람 보는 눈이 많이 갔구나. 나는 척 보면 알겠던데. 너네 전 팀장은 말야-.”
페르디난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룹이 잔을 단번에 들이켜 비웠다. 그다음 말했다.
“지옥불에 달려드는 부나비지.”
“뭐야, 잘 아네.”
아룹도 페르디난도도 빈우 같은 대원을 본 적이 있었다. 과거의 죄책감에 밀려 미래의 희생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 헌신이란 이름의 불길로 자신의 과오를 태워버리려는 듯, 스스로를 맹렬하게 불태우는 대원들은 드물게나마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은 대개 스스로를 화장시키며 끝난다. 아룹은 다시 채워지는 잔을 보며 질문했다.
“뭐 달리 조언할 거라도 없어?”
“음, 내가 말할 수 있는 선에선 정식으로 문서 작성해서 보내줄게.”
닉스 3레벨의 조언이라면 귀하다. 그 후 오랜 전우는 잠시나마 회포를 풀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늘부터 조사팀의 지휘를 맡게 된 오다 히토미입니다.”
블랙 랜스의 회의실에서 히토미가 예전 373대원들에게 다시금 자기소개를 했다. 이들은 지금부터 군을 탈주한 김 빈우 소령을 추적하며, 그가 남긴 자료를 토대로 연방에 숨어든 샤다이를 색출하는 임무 또한 맡게 된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원님.”
팀장인 아룹이 경례를 하자, 히토미가 부드럽게 받았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팀장님”
옆에서 파트리샤가 생글거리며 나섰다.
“그런데 우리 주요 임무 말이죠. 김 소령 추적인가요, 자료 수집인가요, 아니면 샤다이 사냥인가요?”
파르리샤의 물음에 히토미가 팀원들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물론 김 빈우 소령 추적입니다. 현재 그는 연방 내의 샤다이를 잡아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김 소령이 앞뒤를 안 가릴 것이란 점이죠.”
그녀의 말에 팀원들이 골치 아픈 게 역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 댔다. 김 빈우란 폭탄에겐 지금까지 군이란 안전핀이 달린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러대는 사고의 사이즈는 산전수전 다 겪은 특수부대원들조차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을 벗어던진 지금의 그가 앞으로 무슨 사고를 저지를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 아니, 하기 싫을 정도였다.
“어, 물론 샤다이를 죽인답시고 인간을 죽이진 않겠지만….”
모니카가 더듬거리는 말을 옆에서 위르겐이 받았다.
“일단 샤다이라고 판명되면 백주대낮에 일가족 몰살도 태연히 할 사람입니다. 그 양반은.”
위르겐의 말에 전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빈우는 선을 확실하게 지키는 사람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살리려고 노력한다. 외계인이라면 눈에 띄는 순간 바로 요단강 편도 티켓 끊어준다. 아군이라면 무슨 수를 써도 지키려고 나서지만, 적이라면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장을 내려는 놈이기 때문에 목적달성을 위해선 주변의 피해는 생각지도 않을 게 분명하다. 인명피해만 없다면.
“도른베르거 상사.”
“네, 의원님.”
자신의 말에 히토미가 돌아보자 위르겐이 바짝 긴장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요? 표준 행성을 정해진 시간 동안 어떻게 공격하느냐에 대해서요.”
세균 폭탄에다 세금 폭탄까지 총출동했던 당시의 이야기가 떠오르자 위르겐의 심장이 쫄깃쫄깃 박동한다.
“도른베르거 상사라면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하셨지요. 만약 김 빈우 소령이 표준 행성에 잠입하면 최악의 경우 어떤 사태가 발생합니까? 그 위험도가 대강 어느 정도로 추정되죠?”
하지만 묻는다고 넙죽넙죽 대답할 성질의 질문은 아니었다. 때문에 대답이 궁해진 위르겐 대신 아룹이 나섰다.
“지인에게 들은 겁니다만, 김 소령의 전적에 관해섭니다. 그는 과거에 탈주자를 추적하는 임무를 맡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탈주자는 케트쿤 북반구 혹서지역의 돔 도시 중 한 곳에 숨어있었는데, 김 소령은 그를 잡기 위해 궤도 엘리베이터의 저궤도 항구에 정박 중인 연방의 구형 여객선 관성제어장치에 조작을 가했답니다. 정확히는 항구 데이터베이스에 숨어들어 해당 여객선의 정박료를 체불로 조작해 전원공급이 끊어지도록 만들었다는군요. 아 물론 거기에 인간은 없었습니다.”
“아이고 맙소사.”
아룹의 말을 듣고선 모니카의 얼굴이 하얘진다. 우지도 별 다를 바가 없었고, 헬레나 겔로 이뤄진 녹색의 오르 함장의 얼굴도 기분 탓인지 하얗게 보일 지경이었다.
“으음, 그렇게나…. 관성제어장치 전원을 꺼버리면 승객들이 위험할 텐데요.”
히토미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굳은 표정이 되었지만, 빈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정확히 이해한 사람들은 기겁하면서 다시 설명했다.
“저, 의원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모니카가 허겁지겁 화면을 하나 띄웠다. 중력이 작용하는 저궤도 항구에 정박한 구형 여객선의 시뮬레이션이다.
“전장 1km가 넘는 민간 우주선은 사용되는 재료의 한계로 인해 선재 자체의 강성으로는 표준 중력권 내에선 선체 형태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행성 중력권에 접근하면 관성제어장치로 선체를 유지하지요.”
거기까지 들은 히토미는 그다음에 일어날 상황을 대강 눈치챘다.
“그렇다면 설마하니 배가….”
히토미의 머뭇거리는 질문에 아룹이 대신 나서서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여객선이 조각조각 무너져 흩어지고 궤도 엘리베이터에 밀려 산산조각 나 지표로 떨어진다.
“네, 맞습니다. 중력권인 저궤도 항구에 정박 중이던 여객선은 자기 무게를 못 이겨 자체 붕괴했고, 궤도 엘리베이터의 관성에 의해 자전 방향으로 흩뿌려져 낙하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지점에 있던 모든 돔 도시들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아룹이 보여주는 과거의 뉴스는, 사고로 인한 여객선의 추락 때문에 케트쿤 도시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히토미도 들은 적이 있는 대형 사고다. 그런데 그것이 빈우의, 그것도 탈주자 한 명을 잡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니 경악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그 경악은 아룹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더욱 커졌다.
“게다가 당시 사고가 난 연방의 구형 여객선은 케트쿤이 임대해서 사용 중이었습니다. 때문에 해당 케트쿤 여객사는 운영 미숙을 이유로 도산 직전까지 갔고, 연방이 투자해 부활시켰습니다. 그리고 파괴된 도시의 재건에도 연방이 나서서 복구 작업을 지휘했습니다. 그렇게 연방은 케트쿤에 스며들게 되었던 거죠. 결국 케트쿤의 외우주 항행 능력도, 행성 내의 자본도 연방이 손길에 상당수 침식되었고, 이 때문에 연방의 각종 비밀공장들이 케트쿤에 세워지게 되었답니다. 참고로 여객선 붕괴 이후의 작전 또한 김 빈우 소령이 미리 계획했던 것입니다. 상부는 승인을 했고요.”
겉으로만 알고 있는 사실의 뒷면을 알게 되자 팀원들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자신이 추적해야 할 대상의 진면목이 한 꺼풀씩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제까지 자신의 발치에서 아양을 피우던 늑대가 등 뒤에선 어떤 시선으로 자신을 보았을지 소름이 돋았다.
“아시겠죠. 이렇게 때문에 우리는 김 빈우 소령이 더 큰 사고를 치기 전에 그를 붙잡아야 하는 겁니다.”
때문에 당당한 히토미의 말 반쯤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