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그러나 빈우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발사된 리벳은 빈우의 얼굴에 명중했지만, 피부에 긁힌 상처만을 냈을 뿐이다. 이어서 지져진 레이저도 표피만을 구울 뿐이고, 그마저도 순식간에 재생된다. 그러자 리벳건에 맞은 빈우가 사과한다.
“그 마음 이해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리벳건을 맞고도 태연히 걸어오는 빈우의 모습에 오히려 쏘고 있는 민영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가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인간 같지 않은 그 모습에 민영은 무언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군인이다. 연방의 군용인간.
민영은 연방 하원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을 할 때 군에 관련된 기록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실제 군인을 본 것이 아니라 기록을 열람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 창작물이나 선전물에 나오는 군인들과 실제 군인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전까지만 해도 군인들이란 평화를 위해 부득이하게 폭력을 쓰는 직업이라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기록을 열람하자 그 환상은 순식간에 깨어져 버렸다. 연방의 군인들이 평화를 창조하는 방법은 평화를 방해하는 모든 존재를 파괴함으로써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눈앞의 사내가 그 군용 강화 인간, 군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공포가 그녀 속의 분노를 덮었다.
‘군인이 왜 여기에?’
연방과 그 시민을 지키기 위한 군인이 왜 연방 시민을 해쳤을까.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답은 알고 있다. 지금 민영이 가진 방법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저자를 해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혁수를 무참하게 해친 군인이 다음에 무엇을 할까. 다음은 자신이 죽을 차례인 것이다. 민영은 서둘러 트랙터로 달렸다. 그리고 시동이 켜진 트랙터에 올라탄 다음 전속력으로 달렸다.
“여기는 하다 지구의 민영 농장입니다. 누가 도와주세요. 군인이 나타나 사람을 죽였어요. 전 하다 지구의 민영입니다. 우리 농장에 살인자가 있습니다. 근처 분들은 조심하세요. 그리고 아무나, 누구든 제발 우릴 도와주세요. 제 남편이 죽고 저와 딸은 도망치고 있습니다.”
민영이 트랙터의 무전기를 들고 통신을 날렸다. 이제 이 개척 행성 멜론 베이컨에 있는 개척민들 모두가 그녀의 통신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답신이 없었다.
“하다 지구의 최 민영입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가, 아무도 제 말이 들리질 않나요?”
몇 차례 더 시도해보았지만 역시나 답은 없었다. 통신기 고장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민영은 다른 이들과 통신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통신을 들었다고 한들 민영이 있는 곳까지 오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이곳이 통신과 교통 인프라가 빈약한 개척지인 탓이다. 통신기를 내려놓은 민영은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미안해, 혁수야. 미안해. 미안해.”
혁수의 마지막 모습에 민영은 울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점심 전엔 일 마치겠다고 나간 혁수였다. 여긴 두뇌통신 서버가 없으니까 통신 안 되도 울지 말라고 놀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원 의회에서 의견 차이로 다투면서 만난 혁수, 딸의 외로웠던 부분을 보듬어 주던 혁수. 그랬던 혁수가 죽었다. 그것도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무참히, 갈기갈기 찢어져 죽었다. 하지만 민영은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슬퍼하기보단 혐오했다. 애도보다는역겨워했다. 때문에 그때의 생각이, 그때의 자신이 다시 떠오르자 공포와 죄스러움이 그녀를 옭아맨다.
민영이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을 품고 트랙터를 몰아가고 있을 때, 마침내 저기서 딸 수나가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는 게 보인다. 딸은 양손을 하늘 높이 들고 휘휘 젓고 있었다. 마치 엄마인 민영을 부르는 것 같았다.
“수나야! 수나야! 아빠가, 혁수 씨가.”
민영이 울부짖으며 수나를 불러보았지만, 아직 들릴 거리가 아니다. 서로 고래고래 고함만 지를 뿐이다. 트랙터가 좀 더 다가가자 그제야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뒤에.”
수나의 말에 섬찟한 민영이 돌아보자, 아까 남편 혁수를 죽였던 남자가 트랙터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아뿔싸!’
민영은 자신이 안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정말로 군인이었다면 험지를 달리는 트랙터의 속도는 손쉽게 따라잡는다. 그는 민영을 따라온 것이다.
“수나야!”
트랙터에서 나동그라지듯 내린 엄마가 딸을 안고 뛰었다. 살인자는 트랙터를 뒤집고 통신기를 살피고 있었다. 민영은 수나와 함께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문을 잠갔다. 연방의 개척용 임시 주택은 튼튼하다. 어지간한 충격과 적대적 환경에도 너끈히 견뎌내는 물건이다.
‘하지만.’
그래도 민영은 불안했다. 바깥의 살인자는 군인이다. 그는 어떻게든 파괴할 방법을 찾을 것이고, 어떻게든 살인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엄마, 왜 그래? 아빠는?”
품 안에서 울먹이는 딸의 모습이 민영을 정신 차리게 했다.
“수나야, 잘 들어. 네 방으로 가서 보호복 입어.”
민영이 수나를 내려놓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왜? 보호복은 왜?”
“밖에 나쁜 사람이 있어. 어서 보호복 입어.”
개척용 보호복은 간이 우주복이라 제법 뛰어난 방호력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군인 상대론 없는 것보단 나은 수준에 불과하겠지. 수나가 자기 방으로 뛰어갈 동안 민영은 공구함을 뒤졌다. 무언가 무기가 필요했다. 허나 리벳건을 맞고도 죽지 않는 자를 죽일 무기는 여기에 없다. 만들 수도 없다. 민간용 물질생성기로 아무리 만들어 봤자 그것 가지곤 군용 물품에는 상처를 입히지 못한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지?’
그걸 잘 아는 민영은 엉겁결에 자신의 손에 들린 단분자 커터를 처연하게 내려 보았다. ‘무엇’이든 잘라버리는 이 단분자 커터도 그 ‘무엇’에는 민간용 물건만 포함된다. 분자결합이 강화된 군용장갑에는 오히려 이쪽 날이 나간다. 반면에 군용 진동 나이프는 대상의 진동수를 찾아 정말 무엇이든 잘라버린다.
‘무인기, 산화제!’
순간 민영의 머릿속을 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개척지의 하늘을 비행하는 무인기는 가끔씩 대기권을 넘어가기도 한다. 그때는 연료에 산화제를 넣어 진공상태에서도 비행하게 한다. 이때 쓰이는 산화제가 주로 과산화수소와 플루오린이고, 이것들은 고농도로 쓰인다면 군인의 피부에도 유효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군인들의 피부는 산소호흡을 하기 위해서 외부와 반응한다. 단지 피하조직 내의 방탄 방열 조직이 강한 것이다. 이런 산화제라면 피부를 뚫고 내려가고, 반응성이 좋은 군인의 조직에는 더욱 빠른 반응이 일어난다.
‘잠깐이라면 충분해.’
물론 그 반응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잠깐만이라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민영에게 중요했다. 딸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복수를 위해서.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때 살인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부수지도 않고 그냥 열고 들어온 것이다.
“믿기 어려우시겠습니다만, 저는 여러분을 해칠 의도가 없습니다. 지금 제 목표는 오직 혁수였으니까요. 염치없는 말이지만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정중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아까의 참극이 겹쳐지자 민영은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 나 옷 다 입었어.”
하필이면 그때 딸의 목소리가 들렸고, 빈우의 발소리도 그쪽으로 향했다.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점차 딸의 방으로 향했고, 가벼운 수나의 발걸음 소리도 덩달아 움직였다.
“야 이 새끼야아아!”
민영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여기다 이 새끼야! 이쪽이야 이쪽!”
그녀는 소리치며 달렸다. 벽을 두드리며 달렸다.
“난 여기다! 부탁해봐! 부탁해보라고!”
떨리는 손으로 창고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행여 수나가 들어갈까 봐 모녀간에 썼던 암호가 아니라 혁수와 자신이 만든 암호다. 하지만 손가락이 빗겨나가 암호가 틀린다. 다시 누르고 있을 때 이미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꺾어 들어왔다.
“진정하십시오. 부탁할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때 민영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잠그지 않고 그냥 달렸다. 만약 지금 두뇌 통신이 된다면 수나에게 모든 것을 알리고 도망치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척지인 이곳은 그게 안 된다. 지금 딸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답답함과 조바심이 뒤섞여 민영의 심장을 옥죈다.
“산화제, 산화제, 산화제.”
민영은 봄베들을 찾아 꺼냈다. 원래는 보호복을 입고 희석시켜서 연료에 넣는 독성물질들이다. 자칫 피부에 닿기라도 한다면 그냥 부상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이것들은 신체조직과 반응해 몸 안으로 파고드는 물질인 것이다. 옆을 보니 비료의 원재료로 모아둔 질산도 있다. 모두 고농도의 원자재라 자칫 인체에 노출되면 걷잡을 수 없는 치명상을 입는다.
“민영 씨?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살인자가 문을 노크하며 여는 동시에 민영도 봄베들의 밸브를 열었다. 떨리는 손을 억지로 부여잡고 하나하나 열었다. 그걸 본 빈우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민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뒤로 가며 밸브를 열었다. 그녀가 발로 거치대를 걷어차자 위에 실렸던 봄베가 떨어지며 통로를 막는다. 독성가스들이 나와 창고를 채운다.
“위험합니다! 그만두세요.”
빈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민영은 그만둘 수 없었다. 공포에 질려 관성에 따라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녀는 모든 밸브를 열고 도망치자 어느덧 창고 안쪽으로 몰린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수나야.”
그제야 민영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 딸은 홀로 바깥에 있고, 자신은 독성 가스 속에 갇혔으며, 살인자는 그 사이에 있다.
“혁수야.”
어리지만 사려 깊었고, 잔인하게 죽은 새 남편이 떠오른다.
“여기입니까?”
살인자가 걸어 들어온다. 아직 혁수의 피가 손에 묻어있는 놈이 보이자, 민영의 가슴속에선 공포와 슬픔보단 분노가 솟구쳤다.
“으아아아!”
그녀는 괴성을 지르며 거치대를 기어올라 위쪽 봄베를 잡았다. 그리고 밸브를 열고 빈우에게 집어 던졌다. 놈은 봄베를 잡고 밸브를 잠그려 하지만 이미 가스에 뒤덮이고 있었다.
“아아악!”
이어 민영이 비명을 질렀다. 뭔가 모를 물질이 손을 뒤덮은 것이다. 그녀가 손을 놓치고 바닥에 떨어지자 산화제와 연료, 기타 독성물질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창고에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거치대가 녹으며 휘어지자 상층부의 봄베들이 터져나가며 민영을 덮쳐 내린다.
‘죽는가.’
서서히 자신에게 떨어지는 액체들을 보며 민영의 뇌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치달았다. 공포와 절망, 곧이어 죽을 자신, 남겨진 딸, 먼저 죽은 혁수. 이미 자기 손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시야가 새카매진다.
“부인, 괜찮으십니까?”
민영의 뇌는 엄청난 가속도에 못 이겨 블랙아웃이 일어나 시각과 청각이 잠시 정지됐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의 눈엔 자신을 내려다보는 빈우가 있었고, 그녀의 귀엔 딸 수나의 울음이 들리고 있었다. 어느새 그녀는 창고 바깥으로 나와 있는 것이다.
“엄마, 엄마아아.”
“…울지마, 엄마는 괜찮아.”
조심스레 수나를 달래는 빈우의 얼굴은 녹아내리고 있었다. 피부가 녹고 그 안의 조직과 근육이 보이고 있다. 피부가 재생하려 하지만 제대로 붙지 못하고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자, 숨을 들이켜세요.”
그런 빈우가 뭔가 가져오며 말하자 민영은 저도 모르게 숨을 쉬었고, 그때 기도 속으로 관이 들어갔다. 가벼운 고통에 민영이 움찔했지만 빈우가 달랜다.
“진정하세요. 폐 안에 들어간 가스들을 뽑는 겁니다.”
민영은 관을 문 채 자신을 간호하는 자를 올려다보았다. 빈우는 여러 가지 치료제를 꺼내 민영의 손과 얼굴에 바르고 있다. 자신의 부상이 더 심할 텐데 그 상처는 돌보지 않고 민영을 먼저 치료하고 있다. 그리고 방금까지 혁수의 피가 묻은 그의 손은 여기저기 벗겨져 이젠 자신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일단 응급처치는 했습니다. 잠시 기다리세요.”
일어서는 빈우의 다리는 더욱 엉망이었다. 그는 녹아내려 피가 흐르는 자신의 다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 움직여 치료제와 의료기기를 가져왔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민영부터 치료했다.
‘왜… 어째서….’
민영은 기도에 관이 들어간 상태라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왜 혁수를 죽였나, 왜 나를 구하나, 왜 그렇게까지 하나. 하지만 그저 쉭쉭 거리는 숨소리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올 뿐이다. 그러나 빈우는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제 존재 이유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