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45화 (243/301)

245화

빈우는 마지막 밸브를 잠그고 시동을 켰다. 그러자 잠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엔진이 다시 돌아간다. 이어 기어를 올리자 샤프트가 돌아가며 바퀴도 돈다.

“다 됐다.”

골동품 농기계를 수리한 빈우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일어섰다. 그때 무언가가 다가와 그의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찰리 그만해.”

빈우가 허리를 숙여 찰리의 목덜미를 잡고 쓰다듬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걸 뿌리치고 헥헥거리며 빈우의 다리 사이를 알짱거린다. 자세히 보자 이 유전자 개량 목양견은 어느새 커다란 지렁이 하나를 물고 와 주인에게 자랑을 하고 있었다. 개척화 초기에 토양 개선을 위해 뿌렸던 지렁이다. 인간이 먹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찰리같은 개들은 먹을 수 있다.

“잘했어. 먹어.”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찰리는 허겁지겁 지렁이를 뜯어먹었다. 개척 초기의 행성에서 함부로 이상한 음식을 먹어선 큰일 나기 때문에 녀석들은 꼭 주인의 명령을 받아야만 먹도록 훈련이 되어있었다. 사람 팔뚝만 한 지렁이를 뜯어먹던 목양견은 급히 먹다 사레가 들렸는지 켁켁거렸고, 빈우는 찰리의 목 부분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목에 걸렸던 큰 건더기가 내려가자 찰리는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좋겠다.”

개가 정신없이 식사하는 모습을 본 빈우는 피식 웃었다. 개척 행성에 살기 위해 유전자 개량된 견종, 인간을 돕고 적대적 생물에게 대응하기 위한 프로그램. 어찌 보면 빈우 자신의 모습 같아 보였다. 게다가 이 녀석도 클론이다. 찰리는 하나의 우수한 개체를 클론으로 대량생산한 개인 것이다.

“행복하냐?”

지렁이를 다 먹은 찰리는 헤벌쭉 웃으며 빈우에게 비벼왔다.

“그래그래. 이것만 다하고 놀자.”

녀석은 행복할 것이다. 주인이 주는 먹이를 먹고, 주인과 놀며, 유전자에 각인된 대로 행동하면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빈우 자신도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빈우는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같은 만들어진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각인된 대로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빈우는 행복하지 못했다.

‘나는 인간을 죽였다.’

빈우는 인간을 죽였다. 그것도 무고한 인간을 죽였다. 자신의 사명으로 믿고 행동했던 것이 단순한 살인이었다. 범인을 잡고자 했는데 오히려 피해자를 죽인 것이다. 그런 사실들을 깨닫게 된 빈우는 무너져버렸다. 아니, 징조는 그전에도 있었다. 창조자가 각인시킨 인공본능과 자기 스스로의 이성이 충돌하는 사이에서 그는 양심의 환영을 봤었다. 자기가 했으면 하는 행동, 자기가 했으면 하는 말을 녀석은 대신해주었다. 그때마다 빈우는 작은 마음의 안식을 얻었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환영에 불과했다.

‘찰리 하나팔.’

그는 원래 자신의 코드명을 녀석에게 붙여주었다. 아니, 어쩌면 그 존재가 정말로 찰리 하나팔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빈우가 녀석의 몸을 빼앗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창조자였으면 결코 타협하지 않았을 존재와 타협한 대가는 꽤 컸다. 처음부터 의지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의지했던 다리 한쪽이 사라지자 빈우는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었다.

그때 찰리의 귀가 쫑긋했다. 아마 이 개도 빈우가 들은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무슨 일이지?”

멀리서 트랙터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도 한두 대가 아니다. 근처의 트랙터는 다 몰려오는 것 같았다. 설마 자신의 기계가 고장 난 것을 알고 도와주러 오는가 싶은 빈우는 찰리와 함께 마중 나가기 위해 걸었다.

“구스베리 씨.”

걸어가던 빈우는 ‘무슨 일입니까’라고 웃으며 인사할 수 없었다. 앞장서서 달려오는 구스베리의 표정이 장난 아니게 흉흉했던 탓이다.

“멍멍!”

익숙한 이웃들의 트랙터 모습에 찰리가 기뻐서 짖었다. 그들은 빈우의 집에 들를 때마다 꼭 선물을 주었고, 거기엔 찰리의 간식도 들어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선물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손님들의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멍멍멍!”

찰리는 자신들을 둘러싸는 트랙터를 이리저리 쫓아가며 꼬리를 흔들었다.

“저리가! 쉭.”

트랙터에서 내리는 인간이 소리치자, 찰리가 겁먹으며 뒤로 물러선다. 이전 같았으면 친절했을 이웃이 지금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협박하니 당연하다. 그리고 그 표정과 협박은 서서히 가운데에 서 있는 빈우에게로 모였다. 그리고 사람들도 모였다.

“빈우.”

중년의 사내가 험악한 얼굴로 빈우를 마주보았다.

“구스베리 씨.”

빈우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에 올 상황이 어떨지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의 죄가 드러난 거겠지. 숨겼던 살인이 결국 밝혀진 거겠지. 하지만 빈우는 저항할 의사가 없었다. 그들이 잡으면 순순히 잡혀서 죄과를 치를 생각이었다.

“너, 하다 지구의 박 혁수를 죽였다면서?”

구스베리의 그 말에 빈우는 얼떨떨해졌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말이 나온 것이다.

“…뭐라고요?”

저도 모르게 반문하자 뒤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시치미 떼지 마. 여기 증거가 있어. 네가 그 사람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인 증거가 있다고!”

소리친 사람은 덱스터 씨였다. 언제나 갓 정착한 빈우에게 농사에 대한 조언을 해주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핏대를 세우며 카메라를 들고나왔다. 그리고 무인기에 찍힌 영상을 재생하기 시작했다. 거기엔 짓다 만 건물로 끌려가는 인간과 그를 끌고 가는 빈우가 보였다. 그리고 그 빈우는 인간을 갈기갈기 해체하기 시작했다.

“세상에에···.”

차마 눈 뜨고 못 볼 광경에 낮은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것이 마치 무인기가 녹음하지 못한 당시의 비명처럼 들린다. 어떤 이는 탄식을 삼키던 입으로 토하기도 했다.

“이, 이건 제가 아닙니다.”

당황한 빈우가 해명하려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얘기였다. 하다 지구는 이곳과는 정 반대쪽에 위치한 곳이다. 아직은 빈약한 개척 행성 메론 베이컨의 이동 수단으론 그 시간에 오고갈 수 없는 거리다. 하지만 찍힌 영상이 너무나 결정적인 증거였다.

“이 살인자 새끼가!”

누가 뒤에서 걷어찬 발에 빈우가 앞으로 넘어졌다. 원래 강화 육체인 그에게 이 정도의 발길질론 피해를 주기 힘들다. 그러나 ‘살인자’란 단어가 빈우에게 무엇보다 강렬한 통증을 안겨주어 그를 넘어뜨렸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전, 저는-.”

빈우는 땅에 엎드려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이어서 나올 말은 ‘죽이지 않았습니다’였다. 그러나 빈우는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살인자인 것을 너무나도 잘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영상은 뭐야. 말해봐. 왜 혁수란 사람을 죽인 거야.”

빈우의 머리카락이 잡혀 얼굴이 들리고, 그의 눈앞에 다시 해당 영상이 재생된다. 하지만 빈우는 차마 그 영상을 다시 볼 수가 없었다.

“말해보란 말이다!”

이어지는 호통에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필사적으로 힘없이.

“……경찰을 불러주세요.”

빈우는 저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과 같은 클론이거나 최악의 경우 원본이겠지. 그리고 그게 누구이든 간에 이곳 개척민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존재임은 분명했다. 그래서 빈우는 순수하게 이들을 걱정해서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게 어디서 감히!”

격노한 개척민들의 주먹과 발길질이 빈우에게 쏟아졌다. 빈우의 말이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변명으로 들렸던 것이다.

“뒤늦게 털레털레 들어와서 좋게 봐줬더니!”

발길질이 빈우의 머리를 찬다. 응우옌 가에서 사고를 저지른 빈우는 도망을 쳤다. 그리고 정체를 감추고 이곳 멜론 베이컨의 개척민 사이로 숨어들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아아!”

쇠 파이프가 빈우의 허리를 때린다. 응우옌 일가와 보안국 요원들을 죽인 빈우는 한때는 자수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음모의 줄기가 너무 거대했던 탓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치명적인 사실들이라 함부로 알릴 수도 없는 것이었다.

“살인자 새끼!”

그 말이 송곳이 되어 빈우의 관자놀이를 헤집었다. 빈우는 자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음모에 맞서 싸우지도 않았다. 어떠한 해결책도 마련하지 않고 이 개척지의 삶에 숨어 그저 도망만 치고 있었던 것이다. 살인자 주제에.

“경찰? 오냐. 경찰 불러주마. 대신 살아서는 못 만날 거다!”

분노의 폭력이 빈우를 두들긴다. 상처도 없고, 아프지도 않다. 하지만 이들의 폭력이 근원적으론 선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빈우를 괴롭게 했다. 개척민들의 동질감은 대단히 끈끈하다. 설령 안 지 얼마 안 된 빈우가 저렇게 당했다고 해도 이들은 빈우의 복수를 위해 나섰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빈우는 차마 저항할 수 없었다. 자신의 누명을 벗어보려고 해도 자신의 죄가 그것을 허락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세요….”

빈우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구타하던 사람들의 손이 잠시 멈췄다.

“가만 있어 봐. 이 새끼가 뭐라고 한다.”

일행들이 빈우의 어깨와 팔을 잡고 일으켰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그래서 빈우는 말했다. 그는 이들이 살인자가 되길 원치 않았다. 자신처럼 엉뚱한 사람을 죽이고 그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길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저를 죽이지 마세요.”

잠시간의 정적. 그리고 분노의 포효.

“이 새끼! 이 새끼 이 새끼!”

개척민들이 머리끝까지 화가 나 다시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빈우에겐 아무런 피해가 없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멍멍멍!”

개척민들의 발 사이로 찰리가 보인다. 녀석은 두들겨 맞고 있는 빈우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때 찰리가 멈칫했다. 이쪽을 보더니 갑자기 자기 옆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두들겨 맞고 있는 빈우를 본 다음 또 한 번 옆을 보았다. 그렇게 우왕좌왕 하던 녀석이 머뭇머뭇 걸어가 누군가의 옆에 섰다. 이어서 찰리가 그의 발 앞에 앉아 낑낑대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뭐 하고 있는 거야.”

뒤에서 울려 퍼진 강렬한 고함 소리에 사람들이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소리가 난 곳으로 돌아보았다.

“어어?”

방금까지 화를 못 이겨 날뛰던 사람들이 얼어붙었다. 이어서 경악한 표정으로 굳었다.

“뭐야? 뭐야?”

그들은 혼란스러워하며 새로 나타난 사람과 바닥에 쓰러진 빈우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당혹감에 물든 얼굴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왠지 불길했다. 그리고 좌우로 흩어지는 사람들 너머로 빈우와 똑같은 얼굴을 한 사내가 웃고 있었다. 차이라면 그는 눈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고, 팔다리에 재생된 흔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가 웃었다. 아니, 비웃었다. 이 광경 전체를.

“시발 역시 나야. 난 정말 대단하다니까.”

그러나 그는 찰리 하나팔이 아니었다. 빈우가 타협한 양심이 아니었다. 그는 좀 더, 좀 더 악의와 증오로 가득한 존재였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둘의 두뇌칩의 회선이 혼선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실도 알게 되었다.

“김 빈우.”

빈우는, 아니, 바닥에 쓰러진 클론 찰리 하나팔은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러자 그를 내려다보던 원본 빈우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여기서 뭐 하냐. 김 빈우.”

원본인 김 빈우가 자신의 클론인 찰리 하나팔을 보고 김 빈우라고 부르고 있었다. 찰리 하나팔이 혼란해할 무렵, 빈우가 행동을 시작했다.

“얘기하기 전에 주변 정리 좀 할까?”

그의 선글라스 안에서 금빛 섬광이 뿜어져 나온다. 그 순간 빈우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이미 덱스터 씨의 멱살을 잡아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너구나? 혁수하고 짝짜꿍 붙은 놈이? 그 새끼 연락받고 무인기 영상 빼돌렸지?”

덱스터는 겁에 질린 얼굴로 바둥거리고 있었다. 목이 졸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있다.

“부활이고 계단이고 다 필요 없고, 니들 죽이는 데는 이게 직빵이지.”

빈우는 왼손으로 덱스터를 든 채 오른손으로 그를 도축하기 시작했다. 덱스터와, 개척민과, 찰리 하나팔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그 속에서 빈우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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