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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48화 (246/301)

248화

“하하하, 역시, 역시! 원본이 되는 당신은 저항하는군요.”

빈우는 자신의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불쾌한 감정을 억눌렀다. 마치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한 듯한, 동생의 죽음을 마주한 듯한 기분. 그것들이 빈우의 안으로 들어오고, 또 빈우의 안에서 클론들에게로 뻗어나갔다.

“이 새… 끼… 가.”

빈우 역시 이를 악물며 몸을 떨었다. 체메트디오프가 이런 설명을 하는 이유는 빈우가 중요한 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빈우는, 놈이 어떻게든 그 키를 타락시키기 위해, 자신의 정신을 붕괴시키기 위해 설명을 이어나가는 게 아닐까 싶어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때 체메트디오프가 다가오자 빈우의 정신이 급속도로 안정되는 게 느껴졌다.

“이런. 오해 마십시오. 자자, 제가 좀 도와주죠. 뭐, 발버둥 치며 들으세요. 사실 이건 제 계획이 아닙니다. 예전부터 지구제국에 스며든 우리 동족들의 일이죠. 그들은 오래전부터 당신들 속에 암약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국이 계단, 당신들 말로 점프 게이트를 발견하고 사용하면서 인류에게도 우리의 정보가 적셔졌습니다. 아시겠나요? 당신들이 우주로 진출해서 계단을 쓰던 제국 시절부터 이미 우린 당신들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던 겁니다.”

지구 제국 시절이라면 현재 인류연방의 전신이긴 하지만 그 연결점의 상당수가 고의로 단절되어있다. 샤다이들의 인류 침투는 현재까지 연방에 알려진 적이 없었다. 단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고의로 감춘 것일까.

“그때 다른 동포들은 들떴죠. 몸을 차지해도 변이하지 않은 종이라니, 우리 샤다이의 정신을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종족은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어리석은 이들은 신이 나서 당신들 속으로 들어갔지만, 곧 발각되었고 아쉽게도 황제에게 막혔어요. 그리고 황제에 의해 저쪽 위의 계단이 부서져 버리는 바람에 잠시 동안은 내려오기 힘들었습니다. 맞아요. 여기저기 들쭉날쭉 내려오니까 들키고 막히는 겁니다. 내려올 때는 기회를 봐서 한꺼번에 내려와야죠.”

빈우가 진정이 되었을 때는 다른 클론들은 모두 무력화되어있었다. 빈우는 재빨리 중대 상황을 점검해 보았다. 살아남은 상당수의 대원들도 이미 변이가 시작되었고, 예비용으로 수면 중인 대원들만 정상적으로 남아있었다. 그중 빈우의 히든카드 역시 살아남아 있었다.

“연방 상원의장인 이케가미 소이치로와 바로 당신, 김 빈우가 실행한 울토르 프로젝트. 당신들이야 이 계획을 진두지휘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 밑과 뒤에서 열심히 지지해오던 세력은 눈치챘으려나요?”

빈우는 몰래 열었던 창을 닫고 대답했다.

“고대 샤다이.”

“맞아요. 애초에 울토르 프로젝트는 당신들 틈으로 숨어든 우리 동족들이 당신들의 몸을 빼앗기 위한 거대한 방주 프로젝트였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프로젝트가 실은 샤다이들의 농간에 놀아난 것이라고 하니 굉장히 기분이 더러워진 빈우였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했다. 자칫 잘못하면 정신에 계단이 생겨버릴 수 있고, 그러면 안으로 들어온 고대 샤다이들에게 몸을 빼앗길 것이다.

“후후후, 그리고 두뇌칩의 연결이라고 했나요? 클론들의 두뇌칩 연결이 빠르고 깊은 것은 부작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권장된 거죠. 복제체 개인의 정신적 충격은 두뇌칩에서 치료한다고 쳐도 그 간접적인 흉터가 두뇌 통신으로 전이되는 것은 못 막지요. 게다가.”

체메트디오프는 정말 반갑다는 듯한 표정으로 빈우의 양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환영했다.

“당신 자체가 키 아닙니까. 당신의 어두운 추억, 어린 시절의 상처, 극복하지 못한 고통.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었던 추악한 욕망의 찌꺼기들! 그것들이 그대로 당신의 복제체로 넘어간 겁니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여 마음의 상처가 되고, 저렇게 계단이 됩니다.”

빈우는 이런 것은 상상도 못 했었다. 스스로가 버리려고 했고 부정하고 싶었던 과거가 끝내 자신에게 달라붙었던 것이다.

“아, 물론. 당신들의 황제가 계단을 부순 다음부터는 제대로 내려오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렇게 괴물로 변하는 겁니다. 때문에 동포들은 이 울토르 프로젝트를 방주이자 실험의 장으로 만든 겁니다.”

앞뒤는 맞는 설명이다. 계획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그러나 빈우에겐 가장 중요한 의문이 남아있었다.

“왜 이걸 가르쳐주지?”

“말씀드렸지 않나요? 당신은 중요한 키니까요. 협조를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할까요? 그렇다면 우리 둘의 신뢰 관계 확립을 위해서 정보를 공유하는 게 마땅한 절차 아니겠습니까?”

이용관계겠지, 라고 빈우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놈은 샤다이 외 다른 종족을 인격체로 대우하지도 않는다. 지금 빈우에게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것은 이 열등한 종족에게 이용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하하, 어리석은 우리 동포는 선조를 다시 이 우주에 강림시키려 합니다. 우릴 버리고 도망친 장난감 종자들을!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그들은 죽어 마땅합니다. 이 멸망하는 우주는 우리의 것이에요. 도망자의 것이 아니라 버림받은 우리의 것이란 말입니다!”

체메트디오프의 얼굴과 목소리에 깃든 분노로 보아 그가 버림받았던 존재임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집정관의 지위에 있는 그가 현재 자신의 지위를 빼앗기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 실례 너무 흥분했군요. 결론을 내자면 저는 그들을 죽일 겁니다. 다만 정보정신체인 그들을 죽일 수는 없지요. 제가 뭔 짓을 해도 계단 안에 있는 선조들은 죽일 수가 없더라고요. 그때 저는 이 울토르 프로젝트를 알아냈습니다. 선조들을 다시 물질계에 귀환시키는 계획. 제 계획은 아니었지만 저는 기뻤어요. 일단 물질계로 돌아온 선조들은 죽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추악한 도망자들을 당신들 유에네스의 몸속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 죽일 겁니다.”

빈우가 결론을 내자면, 다른 샤다이나 이 체메트디오프나 결국 울토르 프로젝트를 통해서 고대 샤다이를 강림시킨다는 것까지는 같았다. 다만 체메트디오프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조를 죽인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뭐가 되었건 인간은 죽는다.

빈우는 최대한 무표정으로 체메트디오프를 노려보았고, 그는 또 그 나름대로 미래의 협력자를 위해 열심히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 울토르 프로젝트들을 더 굴릴 겁니다. 그러면 마음속의 상처와 흉터도 자신도 모르는 채 서서히 커지겠죠. 그리고 당신들의 하원이라고 했나요? 당신네 종족들은 수면 중에 두뇌 통신을 통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한다고 했죠? 그걸 쓰는 겁니다. 울토르 복제체들이 겪은 고통과 공포를 인간들에게도 심어주자- 이 말입니다.”

얼굴은 무표정하지만 빈우의 속마음은 미칠 것만 같았다. 인류를 위해서, 그리고 연방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해가며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실은 샤다이의 것이고, 인류를 공격하기 위해 쓰인다고 하니 절망과 분노의 폭풍우에 익사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정보국 요원은 필사적으로 태연을 가장하며 냉정하게 말했다.

“군인은 의회 채널에 접속할 수 없어.”

연방의 모든 시민은 기본적으로 하원의원이다. 그러나 군인이나 다른 특별한 직업에 종사하게 되면 그때부터 참정권에 제약을 받고 두뇌 동기화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체메트디오프는 싱긋 웃을 뿐이다.

“하면 되지요.”

맞는 말이다. 법안으로 금지되어있다 뿐이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빈우는 연결만 하면 의회 동기화 회선에 접속할 수 있다.

“고르고 골라서, 정제하고 추려서. 가장 짙고 진한 마음의 상처. 당신들은 PTSD라고 하죠? 그것을 당신들의 연결된 정신체로 흘려 넣는 겁니다. 당신들은 이미 선조들의 정보에 푸욱 절여져 있습니다. 몇몇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요. 다만 황제가 막았던 덕에 발생하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계단을 만들고 제가 연결만 하면 선조들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겁니다.”

“지금 내려오면 괴물로 변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들이 내려올까?”

“물론이죠. 지금은 황제가 수작을 부려놓은 덕에 제대로 내려오긴 힘들어요. 그래서 계단 위의 선조들은 내려오고 싶어서 애가 탔어요. 그러니 이렇게 상황만 설정해주면 알아서 뛰어내릴 거란 말입니다.”

체메트디오프가 변이한 울토르 중대원들을 가리켰다. 빈우의 클론들. 거기엔 고대 샤다이들이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되어 강림했으며, 집정관의 손짓 한 번에 증발했다. 계단에서 돌아 내려온 샤다이들이 죽임당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동기화를 통해 PTSD가 인류사회로 퍼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요. 선조의 숫자는 여차저차 욱여넣으면 7조 정도 될 겁니다. 그 정도는 협조해 주실 수 있겠죠? 7조의 동포를 죽여 7조의 샤다이를 죽이고 남은 동포를 구하는 겁니다. 어때요? 수지맞는 장사잖습니까?”

지금 빈우는 최대한 참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은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만은 살리고 싶었다. 현재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대기 중이며, 그곳에는 샤다이들의 공격이 닿지 않았다. 어떻게든 통상공간으로 빠져나가 아나스타샤가 탈출할 시간은 벌어주어야 한다.

“왜 나에게 협조를 구하지?”

“시간 절약을 위해섭니다. 이건 당신이 지휘한 프로젝트, 그 내부의 숨겨진 길은 속속들이 알고 있겠죠? 당신이 협조해 준다면 선조들이 내려오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물론 대가는 선조들의 죽음이죠. 저는 그들이 죽는다면 그걸로 되었어요. 굳이 제가 죽일 필요도 없죠. 복수를 위해 당신이 죽이는 것도 아름답겠죠.”

뭐를 받든 독주다. 식탁 위에 가득 채워진 독주의 잔에 빈우는 결코 손을 뻗을 수 없다. 그렇다면 식탁에 잔을 추가해야 한다. 그가 잔을 내리고 자신이 잔을 올리도록 거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빈우는 처음부터 조심스레 강수를 두었다.

“내가 거부한다면?”

“그럼 당신의 누나에게 부탁해야죠.”

일말의 재고 없이 즉시 나온 대답에 빈우는 잠시 멍해졌다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놈은 설마 과전을 노리는가? 아냐. 샤다이는 어디든지 이동이 가능하다. 만약 놈들이….’

빈우가 무표정을 가장한 채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했다. 지금 체메트디오프는 빈우의 가족 사항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으며 그녀들을 인질로 쓰려는 것이다. 그때 빈우를 푸근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체메트디오프가 주변의 샤다이들에게 짧게 명령했다. 아주 충격적인 내용의 명령을.

“그 로봇 하녀를 데려오세요.”

로봇 하녀. 그 말에 빈우는 체메트디오프가 말한 누나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아나스타샤였다. 지금 체메트디오프는 아나스타샤를 인질로 삼아 빈우를 협박하려는 것이다.

“이 새끼!”

빈우가 폭발하고, 어벤져의 제트백도 폭발했다. 그러나 그 폭발이 체메트디오프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좌우의 샤다이들이 빈우를 억눌렀고, 그 손아귀의 플라스마들이 어벤져를 훑어 폭파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 고온의 고통과 샤다이들의 완력도 빈우의 분노를 억누를 수는 없었다.

“그래요, 그 눈. 멋져요, 나를 위해 그렇게 분노해 주다니. 더 증오해 주세요. 어쩌면 그녀를 통해 당신 마음속의 상처를 더 후벼 팔 수 있겠군요. 자, 어서 그걸 데려오세요.”

체메트디오프의 눈은 따뜻하다. 마치 길바닥에 쓰러진 개에게 먹이를 던져줄 때처럼 측은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그 눈이 금빛으로 일렁이며 빈우를 탐하고 있었다.

“아아, 황홀한 눈빛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고 날뛰지 않고, 분노를 하면서도 그 안에서는 이성을 갈아 반격의 칼날을 벼리고 있군요. 훌륭합니다. 하지만 안됐군요. 시간이 당신 편이 아니었습니다.”

빈우는 생각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그러나 어떻게 해야 아나스타샤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답까지 도달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엄마가 시간을 벌어줘야겠지?”

갑자기 빈우의 뒤에서 웃는 목소리와 함께 또각또각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빈우의 위에서 항상 웃고 있던 체메트디오프의 표정이 정말로 당황한 듯 일그러져 갔다. 그것은 빈우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결코 들려선 안 되는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빈우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거기엔 아나스타샤가 있었다.

“아나스타샤… 도망-.”

외치려던 빈우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자신의 누나이자 엄마였던 쿠델카 모델이 아주 낯설게 보였다. 육체는 아나스타샤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 안에 든 것이 전혀 달랐다.

“제 사랑스러운 아들과 놀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빈우의 엄마입니다.”

그리고 그 안드로이드는 아주 우아하게, 그리고 과장되게 치마를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그때 꿇어 앉아있던 빈우는 알 수 있었다. 저 안드로이드는 아나스타샤가 아니었다. 아샤였다면 결코 입지 않았을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간만이야. 아들.”

히죽히죽 비릿하게 웃는 쿠델카 모델의 얼굴이 빈우에게 바짝 다가온다. 그리고 주변의 샤다이는 아랑곳 않고 허리를 숙여 넋을 잃은 빈우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녀의 입술이 이마에 닿았을 때 빈우는 기억해낼 수 있었다. 이 입맞춤은 어릴 적에 자신을 재우던, 달래던 아나스타샤의 입맞춤이 아니었다. ‘그녀’였다. 예전에 자신을 눕히고 탐했던 존재였다. 입술이 떨어질 때 그녀의 혀가 빈우의 이마를 살짝 핥자, 그의 귀에서 예전에 잊어버리려 했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왔다.

‘이렇게 해줄까?’

빈우가 쿠델카 모델이 나오는 성인 영상물을 보았을 무렵, 아나스타샤에게 검은색 망사팬티를 선물했을 무렵, 그녀를 안고 침대로 넘어졌을 무렵의 일이었다. 빈우는 어둡고 축축한 기억 속에서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나스타샤가 방에 찾아왔다. 그녀는 아나스타샤였지만 아나스타샤는 아니었다. 겁에 질려 바둥거리던 빈우를 놓고 가지고 놀려던 존재였다.

그때 처음으로 당황한 체메트디오프의 말이 들려왔다.

“음? 어어. 황제? 이런, 이거야… 이건 정말 예상 못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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