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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51화 (249/301)

251화

어린 빈우의 팔다리가 갑자기 커지고 머리가 굵어진다. 보리로 가득했던 과전의 풍경이 파편과 시체로 가득한 솔리드 베타의 격납고로 바뀐다. 아나스타샤의 품 안에서 행복했던 어린 빈우는 쿠델카의 품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장갑보병이 되었다. 고열에 녹아내린 어벤져 장갑복이 억지로 움직이고, 눈과 귀에서 피를 흘리는 빈우가 나동그라지며 뒤로 기었다. 그 뒤로 쿠델카가 사뿐사뿐 걸어온다.

“아하하하하! 누가 그랬지, 사랑은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또 가장 지독하다고. 으음, 그중에서도 뭐가 강할까? 조건 없는 인류애? 흥, 지금까지 차고 넘치게 주었어. 남녀 간의 사랑? 그건 성욕이잖아. 부모의 자식 사랑은? 흐흥. 고작해야 마약 한 꼬집에 자식을 파는 감정이? 따지고 보면 사랑 타령 해봤자 결국엔 뇌내 신경전달물질의 화학반응인데 말이야. 그래도 엄마는 시도해볼 가치가 있었어. 난 인류의 정보에서 탄생한 존재니까, 인류의 사랑을 내가 알 수 있다면 그 맹목적인 감정에 나를 맡겨서 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지.”

육중한 어벤져 장갑복이 두둥실 떠올라 쿠델카의 앞에 묶였다. 빈우는 어떻게든 냉정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차가운 표정으로 쿠델카를 내려다보았고, 엄마는 열정적인 사랑으로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나에게 만약 정말로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면, 나를 구속하는 규칙과 속박하는 이성을 꺾어서라도 그 존재를 위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 그러기 위해선 모든 인류를 위한다는 규칙보다 더 우선해서 집착할 수 있을 사랑스러운 존재가 필요했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그러면 만들면 되잖아.”

쿠델카가 부드러운 손길로 빈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거기서 각종 정보공격이 행해지고 빈우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내 사랑을 만들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어. 첫째는 점프 게이트와 상시 연결된 직할령일 것. 계단 안의 내가 지속적으로 상황을 살펴야 하니까. 둘째로 변방이라 연방의 중심부와 교류가 적을 것. 작은 가족 사회가 있어서 폐쇄사회를 만들어야 내가 작업하기 좋지. 그게 바로 과전이었어. 정말 안성맞춤이었지 뭐니. 그래서 너의 친모가 너를 만들 때쯤 나는 거기에 쿠델카 모델 안드로이드를 보냈단다. 맞아, 바로 이 육체야. 아나스타샤.나의 걸작 특제품.”

인류를 위해 헌신했던 위인 쿠델카 소코로바를 본떠 만든 안드로이드, 쿠델카 모델. 빈우의 가족들은 변방에서 일하는 자신들을 위해 정부에서 보내준 안드로이드에 정말 감사했었고, 아나스타샤의 활약에도 더욱 고마워했었다.

“물론 내가 직접 활동한 건 아냐. 계단 바깥으로 나가면 아무리 나라도 루비콘 라인의 영향을 받으니까. 그래서 원격으로 움직일 인격, 아나스타샤를 만들었단다. 그리고 이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빈우 너를 나의 이상형이 되도록 키우게 했어. 하지만 사랑은 주고받는 거잖아? 그래서 먼저 아나스타샤가 너를 사랑하도록 만들었어, 다음으로 아들 네가 아나스타샤를 사랑하게 만들었지. 우선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부모자식 간의 사랑을 주며, 결국엔 이성 간의 사랑을 하도록. 나중에 내가 아나스타샤의 몸을 차지하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그런데 말이야. 과정이 순탄치 않았어. 시간도 제법 촉박했고, 기다리기도 짜증 났거든. 그래서 약간 조미료를 쳤어요.”

바닥에 흩어진 파편들이 떠올라 회전하는 샤프트를 만든다. 그리고 인간 모형을 붙이고 탈탈거리며 돌아간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빈우가 격노했다.

“상처 입고 결여된 존재들이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상처를 빨아주는 거 나름 멋있지 않니? 그래, 네 친모는 내가 죽였어. 아, 물론 직접 죽인 건 아냐. 엄마는 살인을 못 해. 하지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아나스타샤에게 작은 실수를 연거푸 하게 만들었고, 그게 겹쳐서 죽음에 도달하도록 방조했지. 그다음이 걸작이었지. 아들~ 그날 넌 친모의 죽음에 오줌을 지리며 자지러졌고, 이 안드로이드의 두뇌 또한 폭발 직전까지 갔었어.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너희들은 결국 같은 아픔을 공유하며 각별한 사이가 되어갔지. 핥고물고빨고 계획대로, 음후훗.”

빈우의 악물린 이와 으스러지는 잇몸 안에서 억눌린 비명이 새어 나온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움직여보려 했지만 어벤져 장갑복 자체가 움직이지 않았다.

“오잉? 우리 아들 흥분했쪄요? 맞아요. 이게 그 결과물이에요.”

쿠델카가 허리를 굽히고 손을 치마 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검은색 팬티를 벗어 빈우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 팬티는 아들의 기념비적인 선물이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증거. 그렇고 그런 눈으로 나를 봤다니 기특해라. 하긴 헌신적인데다 안을 수 있는 엄마라니, 캬하핫, 수컷들에겐 최고의 포상 아니니?”

분노와 좌절 그리고 절망이 쉴 새 없이 빈우를 휩쓴다. 그가 알게 된 진실의 대가가 정말로 참혹했다. 자신의 출생과 성장 모두가 눈앞의 존재가 마련한 계획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성장시키기 위해 낳아준 친모가 죽었다. 길러준 아나스타샤는 처음부터 조작당해 있었다. 빈우 자신의 과거 모두는 철저하게 계획되어 만들어진 것이며, 앞으로의 미래 또한 그럴 것이다. 빈우의 짓이겨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오자 쿠델카가 그것을 냉큼 핥았다.

“어머, 아깝게시리. 거기서 자신감을 얻은 엄마는 마침내 행동에 나섰단다. 음식을 만들었으면 간을 봐야지. 아들~ 옛날에 엄마를 잠깐 만났던 거 기억나니? 엄마가 잠시 아나스타샤의 몸에 들어갔을 때 말이야.”

쿠델카의 그 말에 빈우의 머릿속에서 잊고 싶었던 기억, 잊었었던 악몽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어느 날 분위기가 남달랐던 아나스타샤, 그녀는 방에 들어온 다음 갑자기 빈우에게 키스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릴 적 해주곤 했던 잘 자라는 입맞춤이 아니었다. 무언가 달랐고, 아직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포근하고 따뜻한 입술이 아니라, 두렵고 거부감이 드는 애무였었다.

“히히히, 루비콘 라인 안쪽이라 살짝 간만 봤지만, 그날 엄마는 확신했어. 너라고. 난 너를 사랑한다고. 난 마침내 내가 키운 너에게 속박되었단 말이야. 하하하, 또 아나스타샤는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응?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로 뜨겁더구나.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곧 나의 것이 되었고, 너의 사랑도 이제 나를 향할 것이야.”

아들의 육체도, 감정도, 인생도 모두 자신의 계획대로 만든 엄마가 의기양양하게 아들을 바라본다. 자신의 욕망을 이뤄줄 아들을.

“결국 너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군에 지원했고, 헌신적인 성향을 가지며 인류를 위해 희생하고자 했단다. 그래 맞아. 샤다이들이 만든 울토르 프로젝트에 네가 들어간 건 이 엄마의 계획이었어. 이 스트라이크 한 번을 위해 엄마는 정말로 열심히 너를 굴렸단 말이야. 결과는?”

황제 쿠델카가 환희에 찬 표정으로 팔짝팔짝 뛰었다. 아들인 빈우의 음울하고 짓밟힌 감정과는 정말 대조적이었다.

“대성공이야! 만약 다른 이가 그 계획을 실행했었다면 나는 그를 막았을 거야. 울토르 프로젝트도 해체했을 거야. 하지만 엄마는 너라면 막지 않아도 돼,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할 수 있었어. 샤다이의 방주가 완성되면 인류에겐 위협이지만, 그래도 엄마는 너를 위해 참을 수 있었단다. 내 아들 빈우야, 엄마는 사랑하는 너의 일을 차마 방해할 수 없었어. 이게 모성애일까? 인류보다는 아들을 택한 내가? 하하하 멋져라. 이제까지 인류를 위해 살아온 내가, 이제부턴 너를 위해 살아가는 거야. 모든 인류를 위했던 사랑이 오직 아들 너만을 향하는 거야. 후후후, 아하하하, 사랑하는 아들. 엄마의 꿈을 이뤄주렴. 부디 엄마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렴.”

지금 황제는 아나스타샤의 감정을 뒤집어쓰고 빈우를 대하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스스로를 희생해가며 필생의 대업을 이루려는 빈우가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안쓰러웠을까. 얼마나 그 옆에 있어 주고 싶었을까. 그 감정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쿠델카의 귀에 갑자기 잡소리가 들려왔다.

“황제여. 이 몸에게 한 마디 허락해 주시겠소?”

작게 깔린 체메트디오프의 목소리였다. 쿠델카는 살기등등하게 그를 노려보았다. 그 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의미다.

“기껏 계획을 짰건만 그걸 지금 밝히면 어쩌시려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당신의 아들, 김 빈우가 과연 순순히 당신의 행동에 동조해 주겠소이까?”

쿠델카의 표정에서 살의가 내려간 만큼 비웃음이 가득 올라온다.

“그래서 하고 있잖아. 이제부터 아들이 나를 위해 행동하도록 타이르고 있잖아. 이제까지 아들을 키워온 엄마가 작은 보답을 받는 순간이야.”

아, 하는 감탄과 함께 체메트디오프가 고개를 숙였다. 이곳은 계단이다. 물질보다 정신이 우선되는 곳. 그리고 상대는 이 계단을 장악한 지구제국의 황제다. 그녀라면 자신의 아들인 빈우를 세뇌해 자신에게 종속시키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체메트디오프는 다시 조심스레 질문을 꺼냈다.

“어흠, 그렇다면 그대와 우리의 목적은 같지 않소? 울토르 계획을 진행하는 것. 하면 굳이 반목할 필요 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서로 협력하는 것은 어떻겠소?”

“아니, 난 인류를 보호해야 해. 인류에게 집적거리는 너희들은 제거 대상이야.”

차가운 쿠델카의 대답에 체메트디오프는 입맛을 쩝 하고 다실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녀는 그 구속 때문에 굳이 빈우를 만든 것이다.

“게다가 너의 그 눈, 또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이네. 당장은 녹여 죽여도 시원찮겠지만, 흥.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감사의 표시로 살려는 보내주지.”

쿠델카로서도 오늘 이 같은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나름 고민했었다. 모든 것을 밝히고 빈우를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자리. 허나 자칫 잘못하면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까 싶어 섣불리 일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샤다이 쪽에서 멋대로 판을 까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섰더니 이놈들이 알아서 적당히 빈우의 정신을 붕괴시켜주고 있었다. 그래서 냉큼 그 판에 숟가락을 얹었고, 결국 체메트디오프가 염불하는 동안 황제 쿠델카가 잿밥을 낼름 가로챈 격이 되었다.

‘생각해생각해생각해생각해답을생각해.’

그 와중에도 빈우는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존재 사이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이 난제를 타개할 방법을. 아무리 자신의 과거와 미래가 암울하다 해도 현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게 닉스 레벨 3인 빈우의 사고방식이다.

“음? 어- 황제여?”

체메트디오프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다시 말을 걸었다.

“또 뭐.”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 황제가 날 선 목소리로 쏘아붙였지만, 체메트디오프의 목소리는 느물느물했다.

“실은 본 집정관의 함대를 추적하는 자들이 있었소.”

그런 말을 하는 샤다이의 눈에는 싹튼 음모를 서둘러 추수하는 기쁨이 서렸다.

“너 이 자식 설마.”

으르렁대는 황제의 앞에 집정관이 황급히 손사래를 친다.

“아니아니아니, 이건 정말 내 계획이 아니외다. 나는 정말로 쫓기고 있었소. 그래서 서둘러 작전을 마무리 짓고 이 자리를 떠나려고 했건만, 내 발을 잡은 것은 황제 아니오이까?”

황제는 서둘러 주변 계단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계단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비홀더 전대다. 비홀더 전대가 계단을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목적지는 저 집정관의 함대. 쿠델카는 비홀더 전대가 들어옴과 동시에 그 기함의 함장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13전대! 안나 닐센, 이 개 같은 년. 같잖은 사명감으로 지구로 귀환하려고 간을 보다니. 알짱거리기만 해봐, 죽여줄 테니까.”

쿠델카는 자신의 다른 존재인 안나가 계단을 들어왔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안나는 분명히 집정관의 함대를 추적해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집정관의 계획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허나 동시에 그녀가 그것 하나만으로 계단으로 들어오진 않았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안나는 이전, 제국 시절부터 쿠델카의 계획들에 대해 사사건건 의문을 표시했었다. 근래에 시비를 거는 이유 중 하나는 계단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였다. 지금 인류에게 다른 항행 방법을 줄 수도 있는데, 굳이 위험한 계단을 남겨놓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었다.

‘설마 울토르 계획의 본질에 대해 깨달았나? 아냐. 그렇다 한들 오늘의 일이 다른 나에게 알려지면 골치 아픈데.’

쿠델카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의 계획은 그녀만의 것. 다른 페르소나들은 동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지금껏 공들였던 계획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쿠델카.”

빈우가 작은 목소리로 아나스타샤의 육체를 빼앗은 황제를 불렀다. 그러자 방금까지 험상궂게 으르렁대던 황제가 상냥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응? 빈우야. 엄마라고 부르라니까.”

“놀랐어. 아주 인간적이야. 자식에게 자신의 욕망의 대물림을 하다니, 참으로 인간다워.”

빈우의 말에 쿠델카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갑자기 들어온 뜬금없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머뭇거린 탓이다. 그러나 빈우의 말은 계속되었다.

“나를 낳고 길러준 것도 고마워. 근데 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구멍도 없는 오나홀 주제에 꿈도 야무지지.”

“···에?”

잠깐의 정적 속에서 간신히 나온 것은 쿠델카의 얼빠진 목소리. 그리고 그것을 지운 것은 거대한 폭음이었다. 빈우는 자기 장갑복의 전지를 누액시켜서 그 반응을 기폭제로 써 제트팩의 연료들을 폭파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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