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54화 (252/301)

254화

찰리 하나팔은 순간 빈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서 인류연방을 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개인에게 가능한 일도 아니다.

“왜, 왜 그렇게 하지? 그것도, 그것조차….”

찰리 하나팔이 채 맺지 못하는 말을 빈우가 받았다.

“맞아, 그래. 내가 지금 이러는 것조차도 쿠델카의 교육일 수도 있지.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이유가 쿠델카가 그렇게 하도록 기른 방향의 결과일 가능성은 높아.”

빈우는 찰리 하나팔의 의문을 순순히 긍정했다. 좋든 싫든 빈우는 쿠델카의 손에 의해 태어났고, 길러졌다. 그러니 그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에 쿠델카가 크게 관여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말이야. 어차피 우리 인간은 유전자에 프로그램된 대로 움직이지 않나?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맘에 들면 구애하고, 맘에 안 들면 모가지 날리고. 인간이란, 아니, 애초에 생명이란 것이 원래 그렇게 움직이잖아.”

빈우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찰리 하나팔은 그저 묵묵히 들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마음먹는 것에 또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야. 모두 생존을 위해서야. 샤다이를 봐. 멸망하는 세계에서 도망쳤다가 다시 살기 위해 돌아오고 있어. 체메트디오프? 사탕발림은 근사하지만, 고대 종족이 돌아오니 현재 집정관인 자기 자리가 위태하겠지. 그래서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샤다이를 죽이는 거 아니겠어?”

빈우는 말을 이어나가며 서서히 다가갔고, 찰리 하나팔은 그 위세에 압도당한 듯 서서히 뒤로 물러섰다.

“황제? 하! 황제라고 우릴 죽이려는 데 뭐 거창한 이유가 있겠냐. 자다가 똥 냄새에 이끌려 나와 보니까 거기가 하필 구더기 구덩이였고, 정신 차려보니 구더기들이 자신의 몸을 파먹고 있어. 아차 하면 앞으로 구더기 노예로 살판이잖아. 그럼 털어내야지. 근데 그렇다고 또 구더기가 아이구 예, 죽어주지요~ 하면서 죽어줄 것 같아? 발버둥은 쳐봐야지 않겠어.”

빈우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거기에 박힌 샤다이의 안구가 마치 빈우의 내면을 표현하듯, 불규칙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라캉 중령이 말했지. 우린 치즈 속의 구더기라고. 하지만 그 구더기들도 발악하지. 그 꿈틀거림에 생명의 숭고함이니 자연의 섭리니 뭐 이따위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냐. 그저 살기 위해 바둥대는 거지. 앞으로 인간이, 인류가 죽어 나간다는데 쿠델카가 뭐라건 말건 그게 가만히 있어야 할 이유는 안 되잖아.”

찰리 하나팔은 빈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쿠델카의 음모로 인해 빈우의 육체적, 정신적 자유가 조종받는다 해도, 그녀의 최종목표가 인류에게 위협이 된다면 음모의 결과물인 빈우가 즉시 인류를 구하기 위해 나설 것이란 의미다.

“그런데 너는 어쩔 거냐? 계속 그렇게 있을 거냐?”

갑작스러운 빈우의 질문에 찰리 하나팔은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네가 지적했다시피 난 쿠델카의 작품이다. 행동도, 사고도 모두 그녀에게 추적당하거나 예측당할 수도 있어. 더군다나 점프 게이트 안에서 이런저런 정보침식을 당했기 때문에 조금 불안한 면도 없잖아 있지. 하지만.”

빈우가 손가락을 들어 찰리 하나팔을 가리켰다.

“나라면 못해도, 내가 만든 너라면 할 수 있어. 쿠델카가 과연 너의 행동 방식도 예측할까? 글쎄, C열은 주로 예비신체 제조용이라 다른 부서의 시선이 비교적 얕게 닿았고, 쿠델카의 단말이랄 수 있는 아나스타샤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넌 그녀의 사고 범위 바깥에서 움직일 수 있는 존재야.”

찰리 하나팔은 자신을 가리키는 빈우의 손가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손가락 뒤의, 그 손가락 주인이 지키기 위해 짊어지고 있는 것도 보았다. 찰리 하나팔도 잘 아는 것들이다.

연방과 연방의 시민들. 개척 행성의 대기를 바꾸며 가쁜 숨을 들이켜는 개척자들, 보다 나은 법안을 위해 밤잠을 설치며 동기화하는 하원의원들, 외계로 파병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딸, 고된 외우주작업을 하며 은하계 반대편의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아버지. 찰리 하나팔은 짧은 인생이지만 그들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았다. 그때 그의 다리에서 무언가 무겁고 부드러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찰리…….”

유전자 조작 목양견이 클론의 다리에 몸을 비비고 있었다. 찰리 하나팔은 개척지를 떠도는 이 녀석의 삶이 언뜻 자신과 비슷해 보여 데려와 길렀다. 그리고 그 녀석을 다리 삼아 주변 개척민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쌀쌀맞던 찰리 하나팔을 멀리했던 개척민들도 넉살 좋은 찰리를 보고선 점차 주변에 다가왔고, 그렇게 서서히 찰리 하나팔과도 말문을 트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찰리 하나팔의 성격이 변하게 된 계기였다.

‘살인자! 저놈이 살인자다.’

그러나 친해졌던 이웃들에게 그는 결국 이방인이었다. 찰리 하나팔에겐 누명이 씌워졌고, 그에겐 누명을 풀 마음도,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그 누명을 씌운 자는 처참하게 죽었다. 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의 손에 의해.

“네가 죽인 그 사람….”

나직한 찰리 하나팔의 말에 빈우가 귀를 기울였다.

“샤다이였나?”

“물론, 이 눈은 샤다이 호민관의 것이지. 체메트디오프의 딸, 알탄훼아나의 것이다. 그녀는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온 동족을 파악할 능력이 있어. 뭐, 사정이 복잡하지만, 지금은 내가 그 눈을 잘 쓰고 있지.”

클론의 눈과 원본의 눈이 교차한다. 강화인간의 시각센서와 샤다이의 집광기구가 서로를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아니야. 그래. 그렇게 하는 이유를 알겠어.”

찰리 하나팔은 바로 자신의 옆에까지 침입해 들어온 샤다이를 방금 보았다. 그런 놈이 지금 얼마만큼 연방에 숨어들어와 있는지는 모른다. 이케가미 상원의장이 계단을 부쉈지만 샤다이들은 다른 방법으로 침투를 시도했었고, 알탄훼아나 호민관이 다시 조치를 취했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지는 모른다. 그리고 방금처럼 이미 연방에 들어와 있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 바로 김 빈우를 제외하고는.

그리고 빈우는 홀로 싸워나갈 작정이다. 주변에 믿을 존재는 없고, 믿을 사람이라고 해봐야 위험에 처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찰리 하나팔은 클론으로서 각인된 명령 외에 자기 스스로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해야만 하는 것.’

찰리 하나팔의 머릿속으로 마리 라캉이나 엘리자베트 허드슨, 그 외에도 자신의 오해로 죽어간 무고한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짓을 다시 하긴 싫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는 프리마에서 죽어간 아미라를 보았다. 클론을 살리기 위해 죽어간 니티의 유서를 보았다. 엄마의 젖을 찾다가 자신의 품 안에서 죽어간 테테루의 촉감은 아직까지도 느껴진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찰리 하나팔의 바람은 소박했다. 그저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게 좋았다. 힘든 일을 마치고 먹는 밥은 맛있었고, 하루하루 늘어가는 개척지를 보는 것도 행복했다. 무엇보다 옆에 있는 사람이 자신과 함께 웃는 것이 좋았다. 찰리 하나팔은 행복하고 싶었고,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다.

잠시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던 찰리 하나팔이 입을 열었다.

“쿠델카는 점프 공간 안에서 너를 세뇌하려고 했으나 실패했지.”

그말에 빈우가 싱긋 웃으며 선글라스를 다시 썼다.

“맞아,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심지어 뉴 소노라나 누벨 노르망디에서 체메트디오프와 만났을 때조차도.”

뉴 소노라에서 알탄훼아나와 함께 체메트디오프를 만났을 때, 그는 빈우를 아는 척을 하긴 했었다. 그러나 포말하우트 게이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선 그냥 지나가듯 이야기했고 중요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또 누벨 노르망디에선 아나스타샤의 몸을 보고서도 아무런 내색을 않았다.

“체메트디오프라… 누벨 노르망디에서 만났을 때 황제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나?”

클론의 질문에 원본이 고개를 흔들었다.

“없었어.”

그 대답에 이번엔 클론이 고개를 저었다. 마치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이상하군. 너를 망가뜨리기 좋은 소재인데도 말이야.”

찰리 하나팔의 말에 빈우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난 그때 아나스타샤를 구하기 위해 내 몸속의 샤다이들을 잠시 받아들였어. 만약 그날 놈이 나에게 쿠델카에 대한 진실을 밝혔다면 나는 그대로 붕괴되었을 거야.”

체메트디오프와 빈우는 몇 번 만났지만, 그때마다 쿠델카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샤다이의 집정관, 죽어도 부활한다면서?”

그렇게 질문하는 클론의 눈에 다시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군사정보국 요원의 눈매다.

“맞아. 누벨 노르망디에서는 지하에서 동족의 몸을 빼앗은 것으로 보인다.”

빈우의 대답을 들은 찰리 하나팔이 개의 목을 세차게 주무르더니 빈우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밀었다. 목양견 찰리는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머뭇머뭇 빈우에게로 다가왔다. 그러자 빈우도 씨익 웃고는 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찰리 하나팔이 입을 열었다.

“몸을 빼앗다…. 혹시 그게 무슨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 놈은 자신이 가진 키를 적극 활용할 놈이야. 쿠델카란 정보를 알았으면 어떻게든 썼을 거야.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무언가 이유가 있어.”

클론의 추리에 빈우는 개의 머리를 끄덕이며 자기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을 참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겠지. 아니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위험이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모르거나.”

이어 붙은 찰리 하나팔의 말에 빈우의 손이 잠시 멈췄다. 그러자 목양견이 더 해달라고 조르듯이 빈우에게 달라붙었다. 빈우는 다시 개의 목덜미를 주무르면서 질문했다.

“체메트디오프가 그날의 일을 모른다는 거야?”

“그래, 가설이지만 그날 죽었을 수도 있지.”

클론의 가설에 원본이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흐흠, 맞아. 그놈들 부활 매커니즘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뭔가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지. 기억의 백업지점이 그 이전이란 식으로 말이야.”

이번엔 빈우가 개를 찰리 쪽으로 보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잠수한 다음의 일은 모르니까, 그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몰라.”

당시 포말하우트 게이트의 점프게이트는 정말 개판 오 분 전이었다. 물질세계가 아닌 점프공간에서 샤다이와 조우, 그리고 제국 황제의 강림, 마무리는 13전대의 난입. 그러나 당시의 기록은 빈우가 전부 지웠고, 지워지도록 조작해놓은 상태였다.

“빈우, 네가 잠수한 다음 13전대가 왔었지?”

찰리 하나팔은 자신에게 공유한 정보를 되새겨 보았다. 어머니 같은 존재의 고함이 떠오른다.

-13전대! 안나 닐센, 이 개 같은 년. 같잖은 사명감으로 지구로 귀환하려고 간을 보다니. 알짱거리기만 해봐, 죽여줄 테니까.

당시 쿠델카는 비홀더 13전대를 알아보았고, 적대하고 있었다. 같은 황제에게서 갈라져 나온 페르소나들끼리 적대한다면 방향성이 상당히 다르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후의 상황은 쿠델카, 체메트디오프, 13전대의 삼파전으로 흘러갔을 공산이 대단히 크다.

“맞아, 하지만 13전대는 카이사르급 전함을 건조해 뉴 소노라에 왔었고, 거기서 1전대와 싸운 끝에 전멸당했다.”

그날 뉴 소노라의 궤도도 실로 남 부끄럽지 않은 개판 오 분 전이었다. 점프 포인트로 나타난 워프 비스트들, 이어서 따라온 샤다이의 귀환 찬성파와 반대파, 이를 중재하려는 호민관, 부추기는 집정관, 여기에 등이 터져나가는 연방 측 함대.

그리고 마무리로는 이 모든 것을 터트려버리는 비홀더 1전대와 13전대의 전투.

“13전대가 전멸이라….”

찰리 하나팔이 아쉽다는 듯이 혼잣말을 했다. 포말하우트 게이트의 단서를 가진 존재 중 그나마 말을 붙여볼 만한 대상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애초에 비홀더 전대와 접촉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지만, 그 단서를 가진 이조차 우주의 먼지로 흩어진 상황이니 이젠 정말 단서가 없어 보였다.

“무언가 있다.”

“확실히 있지.”

클론과 원본이 적들의 음모에 대해 쑥떡찰떡 주고받던 중 빈우가 질문했다.

“그러면 복귀하는 거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에서 굴러야지.”

투덜대는 찰리 하나팔의 대답에 빈우가 낄낄대며 웃었다.

“그래서, 너 그렇게 굴러서 뭘 어쩔 건데.”

“그건 빈우 네가 이미 말했잖아. 앞에 무슨 꿍꿍이가 있다 해도 그게 인류를 구하는 일을 멈출 이유는 안 된다고.”

빈우는 그런 말을 하는 찰리 하나팔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마치 거울 같지만 조금 다른 느낌의 거울이다. 녀석도 빈우처럼 자신의 앞에 닥친 문제에 눈을 돌리지 않고 마주 보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또한 인류의 앞에 닥친 문제에도 몸을 피하지 않고 맞서나갈 것이다. 적어도 잠깐 동안은.

피에르 라캉, 응우옌 티빈 같은 엘리트 요원조차 포기했던 길이다. 같이 걸어 나갈 존재가 하나라도 있다는 점에서 빈우는 마음이 든든해졌다.

“난 변이가 시작된 것 같다. 너와는 반응이 틀려. 이미 포말하우트 게이트에서 한 차례 변했고, 쿠델카가 그것을 막았지. 그리고 얼마 전에도 한번 거하게 터졌다가 알탄훼아나의 도움으로 다시 돌아왔고.”

빈우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샤다이의 눈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마 그 영향이 클 거야. 그래서 말인데, 부탁 하나 하자.”

그러면서 빈우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찰리 하나팔 앞으로 던졌다. 군사정보국에서 쓰는 고밀도 데이터칩이다. 승인된 안구에 가져다 대면 바로 해석해서 자료가 뇌로 전송된다.

“받아. 아나스타샤의 데이터다. 지금의 너에겐 없는 거지. 아샤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시시콜콜 빼곡히 적혀있다.”

그걸 보며 어리둥절해 하는 찰리 하나팔에게 빈우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모든 게 마무리되면, 그리고 살아남는다면 어디 둘이 가서 편하게 살아.”

찰리 하나팔이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빈우의 말이 먼저였다.

“그녀도 쿠델카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야. 지금까지 꼭두각시로 살아온 그녀에게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지 않겠어? 만약에 네가 살아남고, 아나스타샤도 그녀의 인격 그대로 살아남는다면… 그녀와 함께 어디 숨어서 살아. 아마 아나스타샤는… 너를 나로 인식할 거야. 옛날부터 주인님과 어디서 함께 농사짓고 살고 싶다가 아샤의 꿈이었으니까. 행복하겠지. 뭐 네가 싫음 말고.”

즉 빈우의 말은 쿠델카의 소멸을,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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