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55화 (253/301)

255화

이노우에 고토는 퇴근했다. 정말 오랜만의 퇴근이었다. 앞으로 치이고 뒤로 쓸리는 것은 그의 일상이다. 그러나 밑에서 쑤시고 위에서 짓밟기 시작하면 고달프다. 게다가 이번에 위에선 작정하고 탭댄스를 추어대니 답이 없었다. 그게 요즘 일상이었으니 그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한계에 달한 것이다.

“좀 살겠네.”

불쌍한 군사정보국장은 군사정보국을 나서며 보안용 안구를 일상용 안구로 교체했다. 그러자 각종 시각정보가 달리던 세상이 깔끔해졌다. 서류를 봐도 글자 그대로 보이고, 사물을 봐도 별다른 설명이 없다. 마치 시야가 조용해진 느낌이다.

“나 왔어용.”

고토는 군사정보국 옆에 있는 관사로 들어갔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아내와 딸이 와있다고 했는데 관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다른 귀한 손님이 와있었다.

“오옷, 김 소령.”

고토는 거실의 의자에 앉아있던 사람을 보고 반색하며 인사했다. 선글라스를 쓴 빈우가 먼저 방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놈하고 마주치면 얼굴색이 급변할 수밖에 없다.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빈우는 의자에서 일어나 고토에게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던 고토의 앞에 멈춰 섰다.

“참, 이건 예의가 아니죠.”

선글라스를 벗은 빈우의 눈을 본 고토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알아볼 수 있다. 빈우의 눈은 지금 샤다이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눈에서 금색 섬광이 일렁이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고토의 눈은 금색 말고도 다른 섬광을 보았다. 그리고 섬광이 가신 다음 본 것은 의자 다리였다. 빈우가 그의 턱을 후려갈긴 것이다.

“므무무무! 무슨 짓인가.”

바닥에 넘어져 소리치는 고토를 보던 빈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말투가 뭣같아서.”

그러고는 도로 선글라스를 쓰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 대 맞았다고 계속 그렇게 누워있을 거요?”

빈우는 의자에 앉은 채 심드렁하게 물었다. 마치 자신의 주먹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했다.

“뭐어, 자네를 그렇게 교육한 건 나긴 하네만.”

고토는 구시렁대며 일어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참, 아내와 쿄코는?”

마치 집에 들어오니 가족들은 안 보이고 손님만 덩그러니 있어서 의아해하며 묻는 말투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인지 빈우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머리핀과 손목시계다. 머리핀은 붉은색 꽃잎장식이 아기자기 붙어있고, 손목시계는 태엽으로 움직이는 골동품이다. 하지만 고토는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내의 시계와 딸의 머리핀이다.

“대답이 되었습니까?”

“흐응, 사람은 어디 가고 이것만 있는고?”

“곧 만나게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빈우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어떤 상태로 만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토는 미소를 띠며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두 분 오시기 전에 몇 가지 물어봅시다.”

“물어보시게.”

고토는 겉으로는 태연자약했지만, 속으로는 몇 가지 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와 딸을 구하는 방법. 자신도 구하면 좋겠지만 거기까진 무리일 것 같다.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경호원이나 로봇들의 반응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뭐, 당연한가.’

군사정보국장은 속으로 조용히 푸념했다. 그와 마주 앉은 김 빈우는 바로 그 자신이 길러낸 최고 걸작품이다. 게다가 각 부서를 돌며 인류가 할 수 있는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모조리 섭렵한 닉스 레벨 3이다. 백주대낮에 사람을 죽이고도 박수갈채와 표창장을 받을 능력이 되는 놈인 것이다.

“울토르 클론들의 OS. 2217년 12월 23일의 업데이트는 누가 한 거요.”

빈우의 질문에 고토는 끙하며 팔짱을 꼈다. 빈우가 말하는 업데이트 일시는 마카로니 직전에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업데이트로 인해 울토르 클론들은 두뇌칩이 없는 개척민들을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그 결과 클론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떠한 제재 없이 인간을 살육할 수 있었다.

“날세.”

시원한 고토의 대답에 빈우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선글라스로 가려졌지만, 그 눈이 어떤지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눈 안쪽의 감정이 어떤지까지는 볼 수가 없었다. 잠시 침묵 뒤에 빈우가 입을 열었다.

“손님 대접 이러기요.”

“엇찻차. 이거 미안하구만. 뭐라도 내옴세.”

고토는 어마 뜨거라, 일어나서 찬장에서 뭔가 챙겨왔다. 안드로이드 없이 손수 간단한 다과와 차를 내오자 빈우는 그것을 넙죽 받았다. 이어서 과자 씹는 소리, 그리고 차를 마시는 소리. 그다음으로 잠시 정적이 잠시 찾아왔고, 그것을 깬 건 빈우였다.

“왜 바꾸었소.”

이번에도 역시 고토는 팔짱을 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대답을 하기 전에 이 답을 들을 사람이 어느 쪽에 서 있는지 확실히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고토는 빈우가 서 있는 자리가 어느 쪽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의 업데이트와 울토르 중대의 행보가 너무 수상했거든.”

그의 대답이 나오자 다시 빈우의 입으로 과자가 들어갔다. 둘 사이의 정적 속에서 들리는 것이라곤 바삭거리는 과자 씹는 소리뿐이다.

울토르 중대는 포말하우트 게이트에서 샤다이들에게-정확히는 리퍼들에게 습격당한 다음 면밀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보안국뿐만이 아니라, 각 부서에서 이리저리 숟가락을 놓은 조사라 혼란한 와중에 잠수한 빈우와 그의 클론에 대해서는 미처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 솔리드 베타와 클론 중대는 조사를 하며 부대의 가치를 알아본 여러 부서의 부름에 따라 이리저리 불려 다녔고, 거기서 이런저런 업데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고토는 그 행보 자체에 대해 수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자세히라, 그러면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텐데 괜찮겠나?”

고토의 반문에 빈우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시선을 다시 탁자 위로 돌렸다. 차와 다과가 아니라 그 옆에 놓인 시계와 머리핀을 향해서다.

“시간 조절 잘하셔야 할 거요. 잘못하면 가족 상봉할지도 모르니까.”

천하의 이노우에 고토에게 공갈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 허나 그 상대가 빈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거기다 눈을 샤다이의 것으로 교체한 또라이 빈우라면 더더욱.

“울토르 프로젝트는 이케가미 소이치로 상원의장의 지휘하에 정보사령본부가 주도해서 진행한 프로젝트였지. 물론 현장 지휘관은 자네였고. 하지만 말이야, 나는 처음부터 클론들의 원본이 자네란 것에서 납득할 수가 없었다네.”

그러면서 고토도 과자를 들었다. 모나카를 입에 넣고 씹자 시럽에 졸인 머스켓이 팍하고 터져 나온다. 고토는 혀를 그 단맛으로 달래며, 열심히 놀렸다.

“자네는 가족의 희망을 한 몸에 받고 자란 외동아들이었어. 아, 단순히 단 한 명의 아들이란 의미가 아니라 숫제 가족의 염원을 받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키워졌다는 인식이 들 정도였어. 그러나 어릴 적의 사고로 인해 심적 상처를 입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심한 꼴을 겪었더군.”

요원들의 가족사는 아무리 사소한 것도 국장에게 보고되고,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렇게 자라온 결과 자네는 자신의 가치와 결백을 증명할 곳이 필요해 군으로 도망쳤지. 그리고 거기서 연방은 바르고 옳은 것이라고 맹신하게 되었고 말일세.”

빈우의 손이 딸기찹쌀떡으로 갈 때 고토가 먼저 낼름 가로챘다.

“내가 본 자네는 방해가 되는 존재는 모조리 제거하고, 연방의 오점이 되는 부분은 모조리 자네 자신이 뒤집어 쓰려고 하지. 마치 순교자처럼 말일세.”

고토는 얄밉게 딸기찹쌀떡을 입에 넣고 씹었다. 문득 세대우주선에서 딸기차를 끓였던 기억이 났다.

“김 소령, 자네 혹시 위은쓸납학 기억나나?”

“알방패?”

“맞아. 거기서 자넨 그렇게 행동했어. 모두를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 천성이 그런지, 교육을 그렇게 받은 건지. 뭐 둘 다겠지. 아무튼 난 자네가 군사정보국으로 왔을 때 꽤 험하게 굴렸었지?”

“…꽤?”

빈우의 표정은 ‘고작, 겨우’를 뜻하고 있었고, 그래서 고토는 자신의 발언을 정정했다.

“엄청나게.”

그제야 빈우의 시선은 고토에서 벗어나 찻잔으로 향했다.

“난 자네를 쓰러트릴 셈이었어. 쓰러져서 못 일어나면 방출하고, 일어나면 키울 생각이었지. 하지만… 결과는 자네도 잘 알지.”

“실패작치곤 잘도 부려 먹으시더군.”

“내가 하는 일이 사람 쓰는 거 아닌가. 버릴 사람은 없어. 재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되는 일이야.”

졸지에 버림패 취급받은 빈우였지만, 그는 내색도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그래서 난 자네가 울토르 프로젝트의 지휘관이 되는 것도, 유전자 제공자가 되는 것도 내키지 않았어. 자네의 유전자를 기반으로 탄생한 클론들이 어떤 성향을 가질지 뻔했으니까. 울토르 프로젝트에 필요한 것은 냉정한 전사였지, 닥돌하는 광전사가 아니었거든. 그리고 그 클론들이 자네의 성격마저 물려받았다면, 아마 꽤나 잘 쓰러졌을 거야. 그야 일어서기도 잘 일어서겠지만, 흉터가 남는 건 그리 좋지 않거든. 그래서 개인적으론 타이 소령이 쓸 만해 보였지만 당사자는 별 관심도 없었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네는 상당히 잘 보여진 모양이더군.”

“다른 사람들, 누구?”

갑자기 말을 끊고 들어오는 빈우의 목소리에는 살기마저 서려 있었다. 눈에서 희미한 안광이 새어 나올 듯 깜빡이고 있었다.

“…오다 의원의 혐의선상에 있었고, 지금 끌려가는 사람들하고 대부분 일치해.”

그 대답에 빈우는 다시 흥미를 잃고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어쨌든, 결정적으로 자네가 스스로의 유전병을 재발시켜 보안장치로 사용하게 된 게 마무리였지.”

“그거 말고도 모종의 뒷거래가 있었을 거요. 그자들 사이에서.”

빈우가 말한 그자들이란 방금 고토가 말했고, 빈우를 선발한 자들이다.

“그래 물증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정황상 너무 확연해. 자세한 것은 오다 의원께 물어보면 알겠지. 거기선 아주 칼춤을 춘다더만.”

둘은 빈우가 울토르 프로젝트에 뽑힌 것에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했다는 것에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었다.

“이후 울토르 프로젝트는 진행되었지만, 몇 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어.”

“전투 스트레스?”

“그래, OS에 의해 여과되긴 해도 전투가 반복되자 몇몇 울토르 클론들에게 이상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는군. 하지만 중도에 의도적으로 은폐되는 바람에, 자네가 지휘관 권한으로 조작했다는 의심까지 했지 뭔가. 그런데 그때 마침 포말하우트 사건이 일어났어.”

마침 그때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과자가 동이 났다.

“더 가져올까?”

“아니, 됐소.”

“그다음부터 간섭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더군. 클론들의 이상징후도 빈번하게 보였고.”

그때부터 피에르 라캉과 응우옌 티빈은 바빠졌다. 울토르 프로젝트 외에도 개인사가 얽힌 듯하지만 고토는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그래서 요즘 후회하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반쯤 손을 떠나도 관심은 두신 모양입니다?”

“당연하지! 나도 나름 군사정보국장일세. 어느 정도의 이야기는 들어온다는 말이지. 이케가미 소이치로 의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 은거를 하고, 울토르 중대가 필요 이상으로 굴려질 때 나는 뭐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네.”

고토는 보고서를 하나 띄웠다. 정식문서가 아니라 응우옌 티빈이 비밀리에 보내온 문서였다.

“울토르 클론들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나 컸어. 그 속도가 이전 버전들에 비해 과할 정도로 빨랐단 말일세. 마치 OS의 도움을 받지 않는 구시대 인간 병사들처럼. 이 부서 저 부서 돌아가며 클론들 전투 OS를 버전업한 것은 우연을 가장해서 만든 필연이야. 마카로니에서 그게 폭발할 것은 뻔해 보였지. 마치 예전의 자네처럼 말이야. 내가 OS에 그런 조작을 하지 않았어도 클론들이 살인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나?”

빈우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물론 클론들은 직접 인간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눈먼 총에 죽는 사람은 반드시 생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클론들 사이에서 엄청난 정신 충격이 두뇌칩 연동을 통해 연쇄 폭발처럼 퍼져나갈 것이다.

“그래, 자네의 성격을 가진 장갑보병 일개 중대가 옛날의 자네처럼 자지러진다면 그것 또한 걸작이지. 그리고 뒤에선 그 걸작을 만들기 위한 열렬한 노력이 보였고. 그래서 난 그쪽을 떠볼 겸 사소한 저항을 했지.”

“그래서 마카로니의 개척민들을 클론의 제삿밥으로 주셨다?”

물론 고토가 손을 쓰지 않았어도 학살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기정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학살을 부추겼다는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 여파로 울토르 중대는 전부 워프 비스트가 되었을 것이고, 이어서 정신적 충격이 점프 통신을 타고 연방의 영역에 퍼져나가겠지. 그러면 걷잡을 수 없게 돼.”

고토의 설명에 빈우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꽤 많이까지 아시는군.”

“자네가 깜빡깜빡하는데, 난 연방군 군사정보국장일세.”

고토는 농담을 던졌지만 빈우는 받을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런 양반에게 클론을 죽인다는 선택지는 없었나?”

“적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는걸. 일단은 반응을 보며 몸을 사려야지.”

빈우는 그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조차도 마카로니에서 똑같은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클론들의 대량학살을 보고서도 모른 척 기회를 기다린 것. 군사정보국 요원들의 행동 방식이다.

“그래서 두뇌칩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도록 판단하게 했단 말이군요. 그러면 애초에 전투OS의 판단 단계에서 일어난 일이니, 살인을 한다 해도 OS의 정신 억제가 작동하지 않지요.”

“그렇지.”

“또 세뇌된 클론들이 인간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미쳐버리지도 않고.”

“바로 보았네.”

“포말하우트 사건 이후에 재생산된 클론들은 정신적으로 깨끗한 편이죠. 상처를 덜 받기도 했고. 놈들은 뒤집어진 밥상을 다시 차리느라 바빴나 봅니다.”

재깍재깍 대답하던 고토가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희미한 미소와 함께 빈우를 바라볼 뿐이다. 그 미소를 차갑게 보던 빈우가 물었다.

“언제부터 안 겁니까?”

“무엇을?”

“연방 내에 잠입한 샤다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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