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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57화 (255/301)

257화

빈우의 추적에 대해 생각하던 히토미에게 문득 42전단의 전단주임원사 페르디난도 아키노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녀는 팀장인 아룹의 소개로 과거 닉스 레벨 3이었던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닉스 레벨 3은 같은 닉스 레벨 3만으로만 대처가 가능하다고요?”

히토미가 의아한 반응을 보일 법도 한 게, 그녀는 자신이 이끄는 373팀의 실력을 아주 정확히 평가했던 반면, 페르디난도는 373팀을 아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네, 의원님. 닉스 레벨 3은 단순한 전투 요원이 아닙니다. 누구를 지휘하고 작전을 짜서 실행할 전략자원들입니다. 물론 의원님들의 팀이 일류 중에서도 일류인 것은 압니다. 하지만 이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 팀원들로는 역부족입니다.”

경험자의 충고는 귀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자가 궤도 아래에 있는 행성을 가리켰다.

“보십시오. 저런 시가지에 김 소령이 숨어들면 어쩌실 겁니까? 아룹과 파트리샤는 우수한 요원들이지만 첩보나 이런 시가지 추적 작전 쪽으론 그리 뛰어나질 않습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보안국이나 연방중앙정보국이 적임이겠죠.”

히토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검뿔이나 실리콘 나이트는 모두 공격용 부대지 대테러나 방첩 임무와는 동떨어져 있다. 한다 해도 전문부서에 파견 나가거나 지원으로 가는 경우다.

“그렇다면… 원사님이라면 이렇게 숨으면서 도망치는 김 소령을 어떻게 잡으실 건가요?”

상원의원의 질문에 페르디난도의 대답은 시원하게 나왔다.

“그야 궤도포격으로 날려버려야죠. 아예 황폐화를 시켜버려야 합니다.”

너무나 시원한 이 대답에 히토미는 잠시 말을 잊었다. 42전단 주임원사는 행성 위에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시작했다. 먼저 전함들의 궤도포격으로 표면을 쓸어버린 다음, 지각침투 폭탄에 바이러스 탄두를 심어 지하의 대피소를 모조리 공격한다. 마지막으로 행성궤도 곳곳에 중력 거울을 만들어 지표 전체를 소각함과 동시에 녹여버렸다.

“사망자는 백억 가량, 그리고 행성의 파멸. 이 정도로 닉스레벨 3을 잡았다면 수지맞는 장사입니다.”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지만, 경험자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자신이 추적해야 할 대상의 위험도를 다시금 체감한 히토미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데 왜 이런 위험인물이 탈주했는데도 통합사령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죠?”

닉스 레벨 3은 특정 부서, 부대의 소속이 아니라 대원의 훈련 및 수료등급을 나타내는 것이라, 직접적인 명령은 해당 요원이 소속된 조직이 한다. 다만 그 전략적 가치가 대단히 높아 통합사령부의 관리 또한 받는다.

“그쪽에서 별말이 없는 것을 보면, 그러니까 다른 닉스 레벨 3의 요원들을 추적자로 붙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큰일은 아니란 거겠죠.”

지금 42전단의 주임원사는 자기가 소속된 전단에서 일어난 사고, 그러니까 보안국과의 무력 충돌과 인공지능의 파괴행위를 ‘큰일’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닉스 3레벨에게 탈영은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연방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기 때문이죠. 편한 행동을 위해 회색지대에서 움직이는 것은 일상입니다. 김 소령의 경우는 군사정보국과 특수전 사령부의 팔 사이에 있었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팔꿈치에 붙어있더군요. 상대방을 팰 때는 언제든지 써라, 대신 나를 가지고 포크질 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거죠.”

적절한 예시에 히토미는 웃었다. 하지만 다음 질문은 웃을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러면 군에선 김 소령이 태스크포스 373을 버리고 도망간 것도, 인공지능을 폭주시킨 것도, 전부 보안국의 추적을 뿌리치고 연방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입니까?”

“맞습니다. 상부는 그의 의견을 존중하며 추이를 지켜보는 겁니다. 그래서 의원님같은 허술한 목걸이를 채워놓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지으려는 거죠.”

“케트쿤에서 탈주한 닉스 레벨 3은요?”

히토미의 말에 페르디난도의 눈썹이 모로 휘었다. 빈우가 케트쿤에서 대형 사고를 쳐가며 제거한 요원이다.

“자세한 내막은 좀 복잡합니다만, 그 요원 또한 연방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다만, 그 방법의 문제로 마찰이 있었지요. 의원님께서라면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번엔 히토미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결국 그 요원도 연방 내부의 파워 게임에 휘말린 버림패였던 것이다. 그리고 빈우 또한 그렇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의원님?”

아나스타샤의 부름이 히토미의 정신을 과거에서 현재로 끌고 왔다.

“어머, 미안해. 잠시 생각 좀 하느라.”

히토미는 다시 알탄훼아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을 뽑아서 도망간 빈우. 군에서 그의 행동을 두고 본다는 결정을 내렸다지만, 히토미는 뭔가 석연찮은 점을 느꼈다.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해 그의 탈주를 봐주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샤다이는 아닐 것이다. 놈들 입장에선 미친개를 길가에 풀어놓는 격이다.

‘그렇다면 샤다이 외에도 또 다른 세력이 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샤다이끼리도 의견이 갈리나? 아!’

거기까지 생각하고서야 히토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샤다이의 분열된 세력 중 하나를 이끌었던 수장에게로.

“알탄훼아나 씨,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죠.”

“좋아.”

“이번 사태, 그러니까 샤다이가 인류의 정신을 적셔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사태의 기원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히토미의 말에 알탄훼아나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과거에 일어난 우주 가장자리의 붕괴, 선조들의 동요와 도주, 다른 고차원의 존재와 거기에 놀아난 선조 샤다이들. 이어서 선조들이 다시 이 우주로 귀환하면서 일어난 일들. 마지막으로 아니꼬운 선조들을 인류에 담아 모조리 쓸어버리려는 집정관 체메트디오프의 행보까지.

“맙소사.”

흐릿하고 파편적으로 알았던 정보들이 명확하게 밝혀지자 히토미는 낮은 비명을 질렀다.

“그래서 난 선조들의 귀환을 거부한다. 우리는 이 우주에서 운명을 맞이해야 해. 그게 순리야.”

그렇게 말을 맺는 알탄훼아나는 처연해 보였지만, 말을 들은 히토미는 머리가 복잡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알탄훼아나 씨는 귀환 반대파라고 하셨죠?”

“그래.”

“하지만 거부 반대파 중에서도 강경파는 인간을 완전히 죽이려고 한다고 하셨죠. 아예 내려올 몸이 없도록.”

“맞아. 또 찬성파 중에서도 어느 파벌은 인간을 번영시켜야 한다며 가면을 쓰고는 우호적인 접촉을 하고 있고, 또 어디는 인간을 고문해 계단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

히토미는 한숨을 쉬었다. 인간과 사고방식이 비슷해서인지 저쪽도 비슷한 개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단, 보고를 해야겠어요.”

서둘러 자리를 일어나려는 히토미를 알탄훼아나가 붙잡았다.

“잠깐만.”

눈이 안 보이는 그녀는 서둘러 일어나서 말을 걸었다.

“나도, 나도 도울 수 있게 해다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알탄훼아나의 다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아, 알겠으니까 우선 앉으세요.”

아나스타샤가 부드럽게 다가와 알탄훼아나를 다시 앉혔다. 그리고 히토미를 돌아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하자는 뜻이군.’

히토미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탄훼아나는 지금 다시 일어서려고 하고 있지만, 한때 무섭고 무거운 의무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신의 눈마저 뽑아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도 정신상태가 완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알탄훼아나 씨는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쉬세요.”

“아니, 내 시민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그 말이 히토미의 다리를 잡았다. 알탄훼아나는 호민관의 지위에서 귀환 반대파를 이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인류에게 적극적인 적대행위는 하지 않은 듯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세력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샤다이와 접촉이라, 이럴 경우는 반드시 군사정보국이 있어야 하지. 그러나 지금이라면.’

현재 군사정보국은 조사팀에 적어도 겉으로는 적극 협력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깊이가 어디까지냐는 것이다.

“내가, 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해다오. 내 동포들을 바른길로 이끌 수 있도록 도와다오.”

알탄훼아나도 적극적이었다. 아마도 잠시나마 자신의 의무와 동포를 저버렸다는 죄책감이 그녀를 괴롭게 하고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 마음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건에 대해선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확답드리기가 힘들군요. 자세한 회의를 거친 후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은 피곤하실 테니 이만 쉬시죠.”

히토미는 알탄훼아나를 아나스타샤에게 맡기고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 군사정보국의 국장에게로 직통 회선을 열었다. 저번 거래의 수확 중 하나다.

“고토 국장님, 이야기 가능한가요?”

-아이구, 이거 의원님 아니십니까. 이야기 가능하지요. 말씀하십시오.

회선 너머로는 굽신굽신하는 고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히토미는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그리고 알탄훼아나의 의중에 대해서 설명했다. 어느덧 굽신거리는 목소리가 날카롭게 일어서 있었다.

-그렇습니까. 흐음, 아귀가 맞아떨어지는군요. 무엇보다 샤다이 호민관이었던 그녀의 말이니 신빙성은 높을 겁니다.

고토의 말을 들으며 히토미는 혀를 찼다. 그는 아귀가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군사정보국은 단편적이나마 이런 사실에 대해서 정보를 구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밖으로, 히토미에게도 비밀로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무슨 생각이신지 압니다만, 추측에 불과한 이야기를 함부로 퍼트려서야 되겠습니까? 명색이 군사정보국인데 말이죠.

다시 고토의 말이 느물느물해졌다. 이런 경우가 짜증 난다. 부러지지도, 꺾이지도 않으며 질척질척 들러붙은 타입이 상대하기 힘들다.

-의원님과 조사팀이 샤다이과 접촉하고 협력하는 것에는 저희가 같이하는 것으로 해두겠습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이런 과정은 중요하다. 현재 히토미의 팀은 42전단 못지않게 관심의 대상이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참, 그리고 김 소령의 소식은 들으신 바 없습니까?

빈우가 탈주한 지는 시일이 조금 흘렀지만,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가 고의적으로 남긴 흔적 외에는.

“제 데이터 베이스에 접근한 흔적 이후로는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요, 아쉽군요. 제가 힘들게 키웠던 인재인데, 키운 스승이자 전 상관인 저를 만나러 와보지도 않아서 조금 섭섭했습니다. 그 초롱초롱했던 눈망울이 요즘 따라 그립거든요.

실실 웃는 고토의 말에 히토미는 방금 삼켰던 입속의 침이 납으로 변해 목을 지나는 것 같았다.

-그럼 언제든지 필요만 하시면 이 고토를 불러주십시오. 견마지로가 무엇인지 확실히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신을 끊고 히토미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방금 대화에서 고토가 굳이 빈우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뭘까. 그것도 도청이 불가능한 기밀회선에서 이렇게 에둘러 표현까지 하면서. 굳이 눈 이야기까지 하면서.

‘김 소령이 군사정보국과 접촉했다.’

그리고 고토가 이렇게 간접적으로 알린 이유 또한 알 수 있었다.

‘이 사실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당신만 알고 있어라.’

왜 빈우의 접촉을 히토미에게만 알려야 했을까. 아마 현재 빈우의 상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알려져선 안 되는 상태. 극히 미묘하고 위험한 상태.

‘설마.’

자기가 한 추측의 결과에 히토미는 발걸음을 멈췄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탓이다. 빈우는 현재 인류의 몸에 숨어든 샤다이를 판별하는 능력이 있다. 즉 고토는 그의 능력에 인간이라고 판별되어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빈우는 인간임이 판명된 고토와도 협력을 거부하고 그저 자료만 빼갔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철저하게 손을 잡지 않겠다는 의미로군.’

애초에 대원들을 공격하고, 가족이었던 아나스타샤까지 버려가며 길을 떠난 빈우다. 이제 그를 잡을 방법은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히토미는 한층 더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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