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아만다 타이는 자신의 집 정원에서 손님들과 함께 티타임을 가지는 중이다. 다만 이 혈기왕성한 손님들이 자신들만의 볼일로 갑작스레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그녀 혼자 차를 마시고 있다. 그녀가 다음에 일어날 사건을 기대하며 찻잔을 들자 홍차 향이 코를 자극하고, 타이밍 좋게 시끄러운 고함이 귀를 자극한다.
“놔 이새끼야- 으아악!”
위에서 아들 마커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이어서 7층 다락방에서 와장창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난다. 저걸 깨다니 역시 군인은 군인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 깨진 창문으로 아들인 마커스 타이가 튀어나왔다. 정확히는 튀어 ‘나왔다’ 보다는 ‘던져졌다’겠지. 우악- 하는 아들의 비명이 위에서 아래로 도플러 효과를 뽐내며 흐르고, 마지막으로 쿵, 으억 하는 둔탁한 소리들이 연이어 들린다.
“카하하! 내 승리로군. 풀옵션 쿠델카 모델 잘 먹겠습니다.”
깨진 창문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들의 친구인 김 빈우다.
“마무리!”
의기양양한 외침과 함께 7층에서 뛰어내린 빈우는 아쉽게도 목표물인 마커스를 놓치고 옆에 있는 가로등에 부딪혀 튕겨져 나갔다.
“으, 으윽, 코리올리 효과를 깜빡했다.”
“등신아. 거기서 뛰는데 무슨 코리올리냐.”
이 몸만 큰 악동 둘은 곧 엉겨 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악동이라 해도 명색이 군인. 둘이서 벌이는 초고속 드잡이질은 민간인인 아만다의 시각으론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녀가 스콘에 크림을 듬뿍 바를 때쯤, 바닥에 쓰러진 마커스의 목을 빈우가 밟고 섰다.
“이제 크산티페는 내 것인가? 중고도 나쁘지 않지. 너무 슬퍼 말거라. 이로써 너와 나의 관계가 더더욱 돈독해지는 거 아니겠냐.”
전신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웃는 빈우의 모습이 흡사 사냥감을 놓고 싸우던 선사시대의 야만 전사 같았다.
“까고 자빠졌네. 걔 원래 아버지 비서였어. 내가 왜 손대냐고.”
그러나 마커스는 질세라 그 상황에서도 반격을 했고, 그 반격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어? 으응? 음… 네 아버지? 흠! 제이크 타이 의원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어응. 이 새끼야, 그걸 왜 지금 말해.”
계획이 틀어지자 빈우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고, 거기에 쐐기를 박은 것은 아만다의 목소리였다.
“어머나, 그러면 나도 크산티페를 통해서 빈우 씨와 그렇고 그런 관계도에 들어가는 건가?”
“에엑!”
아만다의 말에 빈우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허둥대며 채 말도 꺼내지 못하는 빈우의 모습에 아만다는 미소를 지으며 홀로그램을 껐다. 이제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시끌벅적하던 십여 년 전의 저택이 아니라 적적한 지금의 저택이었다. 로봇과 안드로이드들이 있었기에 저택의 모습은 그때와 다를 바가 없지만, 분위기만큼은 사람의 온기가 없어서 차갑기 그지없다.
“그렇게 시끄럽던 집도 이젠 조용하구나.”
“다들 바쁘시니까요.”
아만다의 혼잣말에 크산티페가 찻잔을 채워주었다.
“흥, 바쁘다고? 아들 키워놔야 말짱 헛거야. 그렇지 않니? 크산티페.”
“마님도 차암. 마커스님은 지금 차관 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셔서 정말로 바쁘세요.”
“그래, 그래. 그 나이에 국방부 차관이라니. 제 아버지보다 빠르다니까.”
남편인 제이크 타이는 국방부 차관에서 이제는 상원의원이다. 또한 아들 마커스 타이는 군사정보국 차장에서 지금은 국방부 차관, 자랑스러울 만하다. 다만 아만다 자신은 연방 유수 군사업체의 이사였다가 서서히 현직에서 물러나는 참이다.
“그러시는 마님도 아직 한창이시지 않나요? 왜 벌써 물러나려 하세요.”
크산티페가 마주 앉아서 같이 차를 마신다. 시중을 드는 것보다 같이 이야기를 나눠주길 바랐던 아만다의 바람이었다.
“나이가 아냐. 마음이 지쳤어. 나는 연방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냈건만, 그 결과가 고작 이거라니.”
아만다는 오랜 시간 연방을 위해 일해 왔다. 정말 오랜 시간이었다. 가정도, 자식도 많이 거쳐 갔다. 그러나 이번에 가진 가족은 특별했다. 특히 아들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렇게나 뛰어난 자질은 아만다의 생에서도 드물었다.
“그러고 보니 김 소령, 맞지? 김 소령과도 이야기해본 지 오래되었군.”
마커스의 사관학교 동기였던 빈우는 아들에게 정말 흔치 않은 친구였다. 마커스의 실력에 따라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성격 또한 잘 맞았다. 정반대인 성격이라서 그런지 둘은 정말 찰떡같이 치고받았다. 방금 봤던 홀로그램처럼. 이건 원래 보안상 항상 찍는 것이긴 한데, 워낙에 웃겨서 따로 뽑아놓았다가 심심하면 트는 리스트 중의 하나였다.
“크산티페, 너 얼마 전에 김 소령과 만났다면서?”
저번에 마커스가 갑자기 군사정보국에서 묵혀두던 크산티페를 가져갔다고 했었다.
“죄송합니다. 제 기록에는 없습니다.”
크산티페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녀는 돌아올 때 당시의 기록이 완전히 삭제된 상태였다.
“뻔하지. 마커스 그놈 짓 아니겠어.”
아만다는 쓴웃음과 함께 차를 마셨다. 별 특수한 능력이 없는 크산티페를 마커스가 왜 데려갔을까? 그저 어릴 적 자기의 보모였기 때문에?
‘그럴 리가. 분명히 김 소령과 관계가 있어.’
마커스와 빈우가 친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바로 서로의 보모였던 쿠델카 모델들이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보모들 덕에 잠시나마 동질감을 가졌던 둘은 친해지기가 무섭게 곧 죽자고 싸우게 되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꽤 미묘했었다. 크산티페가 비서에서 보모로 전환한 것이었다면, 아나스타샤는 처음부터 육아를 위해 만들어진 차이라고 했었다. 둘이 싸운 이유야 안 봐도 뻔하다. ‘우리 누나가 제일 잘나가’.
‘하여간 남자들이란.’
그 두 사람에게 있어 쿠델카 모델 안드로이드는 나름 중요한 키였다. 과거의 기억에 쿡쿡 웃던 아만다는 당시의 다른 홀로그램을 틀어보려고 리스트를 훑었다. 그러다가 홀로그램 너머, 정원 저쪽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고 놀라서 일어섰다.
“에그머니, 이게 누구냐.”
“마님! 물러나세요.”
반색하는 주인과 달리 크산티페는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 이 안드로이드는 허락받지 않고, 거기다 이 저택의 모든 보안을 뚫고 들어온 손님을 경계하는 것이다. 아무리 손님이 그라 해도 안드로이드는 명령받은 대로 행할 뿐이다.
“호들갑은, 크산티페. 얼른 자리 마련해.”
아만다는 주인으로서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와요, 김 소령.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식어버린 이 저택에 찾아온 빈우를 각별히 반겼다.
“그러고 보니 김 소령이 군사정보국의 중대 프로젝트를 한 이후론 처음이죠? 그동안 연락도 안 하시고. 이해해요. 바쁘셨겠죠.”
빈우는 아만다가 권한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저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었다.
“김 소령?”
의아해하는 아만다의 물음에 빈우는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여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떴다.
“아아.”
눈꺼풀에 감춰져있던 눈을 본 아만다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눈이 금색을 빛날 때, 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빈우가 있는 곳은 군사정보국, 외계인을 척살하는 곳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에 있는 것은 호민관의 눈, 그것도 발 가르단 하스의 교육에 의해 계단을 직접 볼 수 있는 눈이 분명하다. 아만다는 과거 자신들을 이끌었던 자가 저런 눈을 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지금 빈우는 그 눈을 통해 자신의 정체를 파악한 것이 확실하다.
넓은 저택의 정원에 채워진 것이라곤 침묵이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아만다의 숨소리와 심장박동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었다.
“왜.”
거기서 들려온 빈우의 말은 작았지만 마치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글쎄요, 왜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살기 위해서?”
아만다가 할 수 있는 것은 씁쓸한 미소뿐이다. 그리고 그녀에겐 지금 자신의 안위보다 아들과 아들의 친구가 겪을 일이 더 큰 일이었다.
“어째서.”
조금 커진 목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빈우. 크산티페 역시 한걸음 나섰지만 아만다가 말렸다.
“괜찮아, 크산티페.”
충실한 메이드를 물러나게 한 아만다는 아들의 친구를 슬프게 올려다보았다. 빈우는 친아들인 마커스와 정반대의 성격이었지만, 아만다는 그를 정말 자신의 아들처럼 대했었다. 그리고 빈우도 자신을 거의 친모처럼 여긴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슬펐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빈우와 마커스 둘 사이에 벌어질 일들이 걱정되었다.
“마커스는?”
최대한 냉정하게 연기한 빈우의 말. 덕분에 아만다는 이 일에 마커스는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인간이에요. 순수한 인간.”
아만다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빈우에겐 조금이나마 못 미더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그래서 덧붙였다.
“보면 알 것 아닌가요.”
“난 더 이상 마커스를 만날 일이 없습니다.”
슬픈 대답이었다. 그가 단지 친구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그녀 눈앞에 서 있는 빈우는 무언가 큰 결심을 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가 버리려는 것은 얼마나 많을까.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도 거기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군요. 허면 여긴 어쩐 일인가요?”
“…마커스가… 마커스가 인사라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겸사겸사 도움을 얻을….”
빈우는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말하죠. 전 의심도 안 했습니다. 난 그저, 그저 안심하고 싶어서 봤을 뿐입니다.”
빈우의 말에 아만다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만다가 샤다이는 아닐 거라 생각하고, 그리고 그게 아닌 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 능력을 썼을 것이다. 단지 아만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빈우가 처음에 머뭇거렸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허나 아쉽게도 결과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안 빈우는 왜 이렇게 괴로워할까.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그 결심… 무를 수는 없나요.”
아만다의 물음에 빈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라리 큰 소리로 아니라고 외쳤으면 좋았으리라. 분노하며 손찌검을 했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빈우를 보며 아만다는 가슴이 시렸다.
“그 눈은 어떻게 된 거죠?”
아만다는 빈우가 왜 그런 눈을 하고 있는지 걱정되었다. 저것은 인공적인 것이 아니다. 인류의 기술도 아니다. 샤다이의 간부계급이 자신의 능력을 각성시켜 쓰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자칫 잘못하면 빈우의 몸이 위험할 수도 있다.
허나 방금 아만다는 순수하게 걱정해서 한 말이었지만, 빈우에게서 돌아온 것은 의심의 눈초리였다.
‘당연하겠지.’
“진정하세요, 김 소령. 변명 같겠지만 저는 연방을 위해서 살았어요. 동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제 사업체를 보면 알잖아요. 회사에서 만든 무기는 군에 납품되어….”
아만다의 말에 빈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가증스럽다고 여겨도 좋다. 아만다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설명을 해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김 소령,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계단을 돌아 내려온 자들 전부가 인류를 적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저처럼 그저 인간 속에서 인간과 같이 살아가길 택한 부류도 있어요. 그들과 조율을 해서 힘을 합친다면 인류는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인간.”
그 단어를 뱉은 빈우의 목소리는 정말 공허하게 들렸다.
“네, 아만다 씨. 당신은 인간이겠죠. 연방 어딜 가도, 누가 봐도, 무엇으로 검사해도 당신을 인간이라고 판명할 겁니다.”
빈우의 눈이 아만다를 보고 있다. 샤다이의 눈이 인간을 보고 있다. 그리고 빈우가 일어나 서서히 걸어온다.
“그러면 저는 과연 인간일까요? 검사하면 아니라고 할 겁니다. 또 이런 눈을 하고, 이런 능력을 쓰는 제가 인간일까요?”
빈우의 손이 아만다의 목을 향했다. 그리고 목을 조르려는 듯 부여잡았다.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제가, 어머니가 죽게 내버려 둔 제가, 그리고!”
떨리는 손, 그리고 흔들리는 눈이 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지금 친구의 어머니에게 이런 짓을 하는 제가 인간일까요?”
바로 조이진 않았다. 무엇이 그의 손을 막고 있을까? 슬픔? 분노? 죄책감? 양심?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걸까요!”
억눌린 빈우의 비명과 함께 그의 손이 아만다의 목을 졸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