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60화 (258/301)

260화

빈우를 따라 바깥으로 나간 아스탄은 곧 다른 이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위은쓸납학도, 유에네스도 아니었다.

“케트쿤입니다. 이곳 원주민들이죠.”

빈우가 케트쿤이라 말한 종족은 마치 곤충 종족처럼 보였다. 바닥과 벽을 기어 다니던 이들 중 더듬이가 긴 개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더듬이를 들어 이쪽을 향해 흔들었다.

“진정하세요. 이들의 대화수단입니다.”

저도 모르게 허리칼날을 들었던 아스탄을 빈우가 제지했다. 그리고 그 역시 가슴에서 막대기 같은 것을 두 개 꺼내 손에 들더니 앞으로 나온 케트쿤의 더듬이에 맞댔다.

“이들은 페로몬으로 대화를 합니다. 그래서 이런 통역기가 필요하죠.”

그러고 보니 아까 빈우도 말을 할 때 어떤 기계를 통해서 한 것 같았다. 빈우의 막대기형 통역기를 통해 케트쿤의 페로몬이 들어오고, 그것이 다시 번역되어 들린다.

-무리는 약속을 지켰다.

케트쿤의 말에 빈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게 했다.

-알았다, 가나. 아침 이슬의 향기가 그대를 감싸길.

빈우가 케트쿤 특유의 관용적 표현을 사용하자 상대 케트쿤인 가나는 놀란 듯 더듬이를 약간 뒤로 물렸다. 이런 향기에 관한 표현은 서로 간의 계급이나 위치, 시간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하기 때문에 다른 종족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물렁한 껍질은 그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쓰고 있었다. 그만큼 케트쿤이란 종족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즉 친구일 때는 더없이 든든하지만, 적이 되면 극도로 위험한 인물이다.

-이것이 약속했던 보답이다.

빈우가 작은 알약을 꺼내어 가나에게 건네주었다. 가나는 그것을 앞발의 미세촉수로 잡아서 보관주머니에 조심스레 넣었다.

-이런 것이 정말 효과가 있는가?

가나의 페로몬엔 미약한 흐트러짐이 있었다. 이런 알약 형태의 약물은 케트쿤 문화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이다. 그저 여왕의 입에만 넣으면 돼. 그러면 저절로 소화기관으로 들어간 다음 신체에 작용한다. 그것으로 무리의 여왕은 다시 정상적으로 알을 낳을 수 있다.

빈우가 발한 페로몬에 케트쿤이 흥분해서 턱을 달각거렸다. 케트쿤은 오직 여왕을 통해서만 번식한다. 그러나 과거에 일어났던 사고의 여파로 여왕은 알을 제대로 낳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새로운 여왕을 옹립해야 한다는 개혁파벌과 기존의 여왕을 모시며 치료해야 한다는 기존파벌이 내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여왕이 알을 낳지 못하게 된 사건의 발단은 개혁파가 연방의 구형 함선을 들고 와 운용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운용상의 실수로 함선은 대파해서 케트쿤의 지표를 휩쓸었고, 그때 여왕도 심한 부상을 입어 알을 낳기 힘들 지경까지 달했었다.

과거 개혁파를 도와주며 지지했던 연방은 이번 내전에선 기존 세력의 손을 들어 주었고, 그렇게 둘 간의 파워 밸런스를 적절히 조절해 협력을 힘들게 하고 길게 이어져 온 내분을 더욱 연장해나갔다.

-병 주고 약 주고냐? 되지도 않는 자비를 베풀기는.

서둘러 달려가는 가나를 지나쳐 무뚝뚝한 기계 음성과 함께 투명한 캡슐이 걸어오자, 아스탄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방 바깥으로 나온 그에겐 신기한 것 천지였다. 이 물체는 얼핏 보면 위은쓸납학이나 클론 병사가 들어있는 캡슐 같아 보이지만 보행을 위한 다리가 있고, 그 안에는 처음 보는 종족이 들어있었다.

“그는 라출노그인 아앤아입니다. 물속에 사는 종족이죠.

빈우는 소개를 했지만 서로 간의 통성명은 없었다. 아스탄에게는 그럴 경황이 없었고, 아앤아에겐 그럴 마음이 없었다.

-저자에게 사실을 말했는가?

라출노그 어항의 통역기를 통해서 나오는 말이지만, 그 기계 음색만으로도 아앤아의 심기가 불편함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방금 내가 밝힌 진실만으로도 벅차 보이는데, 차차 말하지.”

빈우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라출노그인이 인간을 지긋이 노려보았다.

-동지가 아닌가, 제대로 밝혀야지.

“물론 밝혔어. 총알받이를 해달라고 했지.”

-그것 말고.

아앤아가 밝히라고 한 것은 방금 설명한 사건의 자세한 내막이었다. 여기까지 하자 빈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아스탄에게 설명을 보탰다.

“뭐, 이것도 연방의 더러운 술수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지금 저들에게 전해준 것은 이들의 여왕을 치료하는 약입니다… 만.”

거기까지 말한 빈우는 빙긋 웃었지만, 아스탄에게 있어서 인류의 웃는 모습은 본능적인 혐오감과 불신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리고 이어진 설명이 이를 뒷받침해주었다.

“저들의 여왕이 부상을 입은 것은 제 계획이었죠. 제가 저들의 궤도상에서 배를 파괴시켰고, 그것이 도시에 추락해 여왕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복구하는 척하면서 대기 정화 장치에 생식기에 자생하는 곰팡이 균을 집어넣었고 말입니다. 원래는 생식기를 보호하는 이로운 곰팡이들이지만, 주입한 것은 살짝 손을 좀 본 연방의 특제품이죠. 그렇게 해서 여왕의 몸은 다 나았지만, 결과는 원인 모를 출산율의 대감소로 이어졌고 말입니다.”

즉 궤도상의 사고에 이어 여왕의 출산 장애에 이르기까지 모두 연방의 술책이었다는 의미다.

“그러면 저것이 치료제인가. 네놈이 준 병의?”

“네, 덕분에 케트쿤이란 든든한 아군을 얻게 되었습니다.”

-총알받이를 위한 무기를 만드는 노예겠지.

퉁명스러운 아앤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빈우는 익숙한 듯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아앤아, 함선 건조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빈우의 질문에 아앤아는 아가미를 씰룩였다. 그러고는 홀로그램을 띄웠다. 거기엔 아귀급을 넘어선 라출노그제 함선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는데, 그 주변으론 수많은 케트쿤인들이 빼곡히 모여 있었다.

-케트쿤의 생산량은 정말 대단해.

아앤아의 감탄에 빈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연방이 알고 있는 종족 중에서 케트쿤의 생산량을 앞지르는 종족은 없다. 케트쿤은 종족 하나하나가 생체 부품들이다. 개미들이 무리를 모여 집을 짓는 것처럼, 케트쿤들은 서로 모여 공장의 라인을 만든다. 각자의 더듬이가 연결되어 페로몬 통로가 활성화되면 이들의 뇌는 하나가 되어 연결된 수많은 팔과 다리, 턱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라인은 생산품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화하며 물건을 제작하는데, 그 속도와 양은 연방의 물질생성기는 물론이고 전문화된 자동화 공장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리고 함선 운용력은 너희들 라출노그가 최고지.”

그 말에 아앤아는 아가미를 꽉 하고 닫아 강한 긍정을 표시했다. 같은 기술력의 함선이라면 라출노그는 연방에게 지지 않는다.

“그리고 지상전에선 당신들 위은쓸납학도 대단하지요. 저희가 제공한 무기를 사용한다면 연방과의 지상 전투에서 대등한 싸움이 가능할 겁니다.”

그러면서 빈우는 배양 캡슐에 든 위은쓸납학들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아스탄은 씁쓸함을 느꼈다. 저들은, 아스탄의 동포들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돌진할 것이다. 선조와 부모가 받아야 할 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피를 빨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쪽 또한 그만큼의 피를 흘릴 것은 자명하다.

-스퀵테르는 포섭하지 못했나?

아스탄이 상념에 빠져있을 동안 빈우와 아앤아는 이미 저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안됐지만 이제 스퀵테르는 완전한 친연방파다.”

암석으로 이뤄진 종족 스퀵테르에 대한 것은 아앤아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체적인 기술력과 전투기술만으로도 지상전에서만큼은 연방에게 꽤 위협적인 존재다. 아앤아가 연방 사관학교에 유학하며 배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과 당신이 싸울 일은 없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스탄 선장. 당신이 싸울 것은 오직…?”

빈우가 빙글 돌아보며 말했지만 아스탄은 가만히 서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다.

“케트쿤, 라출노그, 스퀵테르.”

아스탄은 처음 듣고 보는 종족들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자신의 유전자 제공자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머나먼 이웃들이다.

“하나 묻지.”

“말씀하시죠.”

축 늘어진 허리칼날이 지금 아스탄의 심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너희들 종족은 이들과 이웃이 아닌가?”

“이웃이지요. 모두 연방의 동맹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친하게 지내지 않지? 너희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전쟁을 준비하는 것 같아. 대화로 풀 수 없는 문제인 건가?”

아스탄은 슬프고 또한 억울했다. 이 넓고 넓은 우주에서 어렵사리 만난 이들끼리 왜 굳이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 비록 각인된 기록이긴 하지만 자신과 선조들은 우주 먼 곳까지 이주를 떠났고, 그 와중에 새로운 이웃을 만날 것이란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선조들은 이웃을 만나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했고, 오늘 만나게 된 그 이웃들은 서로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주는 그리 친절한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서로를 위한 적절한 예의범절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죠? 제가 속한 인류연방은 만나는 종족마다 세 번의 기회를 줍니다. 평화적인 기회. 하지만 아쉽게도 이게 제대로 통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목타하란 이웃이 그렇게 사라졌죠. 그리고 당신들 위은쓸납학의 고향도 마찬가지 꼴이 되었고요. 당신은 지금 연방과 대화를 하고 싶습니까?”

빈우가 아스탄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아앤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흥, 예의범절? 전쟁을 위한 예의범절이겠지.

아앤아는 내막을 아는 듯 빈우의 설명에 딴죽을 걸고 있었다.

-아스탄이라고 했나? 저놈 말에 속지 마시게. 연방이 세 번이나 화평을 권하는 것은 자신들의 하원을 납득시키기 위한 수작이야. 앞으로 싸울 종족은 평화를 세 번이나 거절한 존재라고 못 박기 위함이지. 그 때문에 다음으로 이어지는 전쟁은 연방 시민들의 복수심으로 인해 결코 멈추지 않아. 평화를 거절하고 전쟁을 원한 자들에게 응징을 한다는 알량한 복수심과 선민의식이 하원의 두뇌통신을 떠돌지.

라출노그인의 성난 부연 설명에 인간은 달리 부정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먹히지도 않을 화평으로 도발을 하고 판을 뒤집어. 그러고선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자신을 속이지. 아, 물론 그때도 대화는 멈추지 않아. 다만 번역기로는 총과 칼이 필요하지. 상대방 시체에 평화란 글자를 새기기 위해서 말이야.”

아스탄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 해도 증오와 분노로 복수를 다짐했다. 다른 종족이라고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일단은 쉬시죠. 그리고 다시 이야기합시다. 저쪽 케트쿤인을 따라가면 됩니다.”

걸어가는 아스탄의 발걸음은 진실의 대가 때문에 무거웠다. 꿈과 희망이 가득 찬 곳이라 제멋대로 상상하고 여행을 떠났던 우주는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만나면 친해질 수 있으리라 꿈꿨던 것은 오만한 망상이었다.

아스탄이 사라지자 아앤아는 빈우에게 다시금 말을 걸었다.

-이 작전은 인류연방을 위한 작전이 확실하겠지?

분노와 짜증에 찬 방금과는 달리 지금은 작게나마 절박함이 엿보이고 있었다.

“물론. 이것으로 라출노그는 연방의 위기를 해결하고 확실한 아군이 될 것이다. 아니지, 아군이 뭐야. 연방에 확실한 빚을, 잘만하면 목줄까지 채울 수 있을지도 몰라.”

빈우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앤아는 탐탁지 않았다. 지금까지 진행된 사실만 보아도 영 수상쩍은 것이다. 케트쿤에겐 연방의 공작을 풀고 라출노그 전함을 만들게 한다. 실험체였던 위은쓸납학들에겐 진실을 밝히고 복수를 종용한다. 라출노그에겐 연방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한다. 말은 쉬워도 실행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아군이라.’

아앤아는 연금 중인 자신에게 찾아온 빈우를 보고 놀랐었다. 잠시 보지 못하면 사람이 변한다지만 빈우는 변해도 너무나 변해있었다. 그리고 하는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화성을 친다.’

연방의 수도인 화성은 인류연방의 중심이며, 당연히 엄중한 보안과 철통같은 방어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빈우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이다. 그리고는 동료들을 모으면서도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이득을 당근 삼아 다른 종족을 꾀어냈고, 총알받이로 쓸 속셈이었다.

‘속셈이라고 하기엔 다 밝혔지.’

아앤아의 아가미에서 기포가 뽀글 하고 올라온다. 빈우는 자신의 계획에 다른 종족을 총알받이로 쓰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게끔 상대방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왔다.

‘종복의 부흥과 생존. 그리고 연방에 대한 복수.’

실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허나 빈우는 연방의 수도인 화성을 친다고 해서 어떻게 라출노그가 연방과 긴밀한 관계가 되는지는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때문에 아앤아는 빈우가 흘린 정보를 바탕으로 현재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연방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파벌싸움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빈우가 지휘하는 무리가 끼어들어 판을 뒤집어 놓을 계획이겠지. 그가 생각하기에 바른 방향으로.’

아앤아로서는 빈우의 계획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아앤아가 여기서 가만히 있다면, 라출노그의 미래 또한 케트쿤이나 위은쓸납학처럼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움직이면 나는 죽는다. 허나 움직이지 않으면 종족이 죽는다.’

그렇다면 타야 할 물길은 명확하다. 뭍으로 끌려 나가 말라 죽는 이는 아앤아 자신이면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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