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마커스 타이 국방 차관은 잠시 업무화면을 닫았다. 뻐꾸기 작전을 비롯해 42전단의 작전개요와 각지에서 일어난 외계 종족의 소요, 치안 부재 지역에 군을 투입할지 경찰을 투입할지에 대한 안건. 군사정보국의 것에 비하면 기밀도와 위험도는 떨어져도 그 무게감만큼은 한결 더 묵직한 업무들이다.
“끄응.”
닫는 순간 절로 입에서 신음 소리가 나오고, 손이 뭔가 입에 넣을 것을 찾아 책상 옆을 휘저었다. 그러나 거기엔 빈 포장지만 바스락거릴 뿐이어서 괜스레 배만 더 고파졌다. 그래서 더욱 뭔가 먹고 싶어졌다. 한 입만 먹어도 든든해지는 간식.
“허참.”
마커스는 방금 자신이 했던 생각에 실소를 터트렸다. 입이 심심하자 마카롱 생각이 난 것이다. 군을 나오면 쳐다보지도 않을 거라 맹세했던 마카롱이.
“버릇 참 무섭다. 생각나는 게 그 토악질 나는 마카롱이라니.”
그는 킬킬거리며 일어나 음식물 생성기로 걸어갔다. 아직 군용 육체를 하고 있는 마커스는 에너지 소모가 커서 군용 식량이 아니면 배가 빨리 꺼진다. 오죽했으면 지금처럼 마카롱을 찾을 정도다.
“뭐야, 이건. 스테이크?”
생성기 메뉴 중에는 정식 메뉴도 있었다. 보통 사무실의 생성기에는 다과나 간식들 위주로 세팅되어 있는데-군사정보국에서도-이런 식사까지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면 작정하고 사람을 사무실에 가둬놓고 빡세게 돌리겠다는 의미가 여실히 드러났다.
“칼로리 높은 걸로 검색하긴 했는데, 이거 일반식이잖아.”
스테이크라 해봐야 사이드 포함해도 2천 칼로리가 조금 넘는다. 마커스는 스테이크만 대여섯 개 꺼내놓고 그대로 손으로 잡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그래도 칼로리만 따지면 마카롱 한 알 분량이다. 그는 명색이 국방부 차관이란 양반이 사무실에서 스테이크를 맨손으로 잡아 뜯는 꼬락서니를 생각하자 자기도 우스웠는지 고기를 씹으면서도 쿡쿡 웃었다.
“어머니가 보셨으면 기겁하셨겠지.”
그의 어머니인 아만다 타이는 예의범절, 특히나 식사 예절에 대해서는 깐깐했다. 마커스가 조금이라도 식탁에서 매너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아들의 친구인 빈우에겐 달랐다. 아만다는 정찬 예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빈우한테는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고, 규칙이라면 질색팔색하는 녀석도 그것만큼은 제대로 배우고 따랐었다.
‘나도 그랬지만.’
그러고 보니 빈우와 마커스가 친해지게 된 계기 중 하나엔 식사 예절에 관한 것도 있었다. 비록 직할령이라곤 해도 농업 행성에서 거칠게 살아 온 빈우는 식사 시간마다 동기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녀석이 발끈하기 전에 중간에서 막아선 것은 바로 마커스였었다.
‘식사 시간만큼은 즐겁게.’
‘무지로 인한 무례는 나무라지 말고 친절히 가르쳐 주어야 한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않은 마커스는 빈우에게 기본적인 식사 예절에 대해 가르쳐 주었고, 다행히 그 녀석도 재수 없는 도련님의 말을 곧잘 따라주었다.
‘식사라.’
국방부 차관이 간식거리 스테이크를 다 먹고 손을 닦을까, 핥을까 고민하는 사이 피부가 이미 기름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먹고 있는 것이다. 아직 군용 육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노무 새끼는 밥이나 제대로 챙겨 먹고 다닐라나.”
빈우가 자신의 유전적 결함을 빌미로 충성서약을 했다는 것은 마커스 또한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태스크포스 373을 탈주했고, 한때 자신의 아군이었던 오다 히토미가 이끄는 조사팀의 추적을 받고 있다. 하긴 녀석이라면 어떻게든 식사는 구할 것이다.
현재 오다 히토미의 팀에는 뱅가드와 단검뿔 토끼, 실리콘 나이트 등의 연방 최고의 특수부대원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이 모이면 제아무리 날고기는 빈우라 해도 당한다. 그러나 도주하는 닉스 레벨 3을 이들이 잡는다? 도망자와 추적자의 실력을 정확히 알고 있는 마커스는 이게 불가능한 일임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봤자 눈 가리고 아웅이지.’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통합사령부나 국방부에서도 빈우를 단순탈주로 보지 않고 작전을 위한 위장으로 추측한다 했고, 그래서 마커스도 큰 신경은 쓰지 않았다. 비록 자신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고 하지만 어련히 잘하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이 있으면-정말로 문제가 된다면-가장 먼저 움직이는 곳은 보안국이다. 비록 다샤 쿠사키나 국장을 비롯한 간부진이 오다 상원의원에 의해 물갈이당해 엉망진창이 된 보안국이지만, 부서의 중요성 때문에 서둘러 빈자리를 채워 어찌저찌 작동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보안국이 가만히 있다는 것은 분명 이 사건에 관해 상부에서 무슨 명령이나 요청이 오고 갔다는 의미다.
‘빈우가 도망친 것이 보안국,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샤다이가 이유라면 지금쯤 거의 해결되었을 건데… 아직 정체를 감추고 있다는 것은 배후 세력이 더 크다는 말이겠지.’
그래서 마커스는 친구 빈우가 생각이 난 김에 과거 자신이 있었던 직장에 잠시 접속해 보았다. 바로 군사정보국이다.
“어엇?”
뜻밖의 사실에 마커스는 저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냈다. 군사정보국 3차장의 라인이 살아있는 것은 이해한다. 이노우에 고토 국장은 마커스가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짓고 국방부 차관에서 물러나면 다시 불러들일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커스의 권한으로, 군사정보국 차장의 권한으로 기밀에 접속된 사실이 문제다. 누가 접속했을까. 이 라인을 쓸 사람이 달리 누가 있을까.
‘빈우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선 빈우 혼자서 접속했을 리는 없다. 십중팔구 이노우에 고토 국장이 협력했거나, 묵인했겠지.
마커스는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그 기록들을 열람해 보았다. 일단은 비공식적인 비밀 작전 중이라는 닉스 레벨 3이 과연 무슨 짓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본 마커스는 식은땀을 흘림과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위은쓸납학 클론부대.’
마커스는 고토 국장과 함께 위은쓸납학의 세대우주선을 나포한 적이 있다. 놈들은 지상전에서 스퀵테르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기에 생체병기로서의 활용도가 꽤 높았다. 그래서 군사정보국은 비밀리에 동맹종족인 케트쿤의 모성에 있는 울토르 클론 공장에서 위은쓸납학을 병기로 제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빈우가 이 정보를 가져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케트쿤 여왕 불임.’
공식적으론 우주선 붕괴 사고에 의한 후유증이었지만, 이건 연방이 동맹인 케트쿤을 보다 수월하게 다루기 위해 진행했던 비밀 작전이다. 이 작전 당시엔 빈우도 참가했었다.
‘아앤아!’
라출노그의 장성인 아앤아는 지금 군사정보국이 연금하고 있었다. 태스크포스 373이 샤다이와 라출노그 사이의 관계를 조사하던 중 빈우와 마커스의 사관학교 동기였던 아앤아가 관련이 있음이 드러났고, 그의 보호와 사건의 은폐를 위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라출노그인 장성을 비밀장소에 감금했었다.
“아나 이런 미친 새끼가.”
그것 말고도 크고 작은 기밀 여럿이 자신의 권한에 의해, 즉 빈우에 의해 조회되었다. 마커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상하다. 하나만 드러나도 연방 내에 태풍이 몰아칠 기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조회되었다. 그것도 현재 탈주 중인 빈우에 의해서. 게다가 녀석은 조회기록을 감추지도 않고 그대로 드러내놓고 나갔다. 자신에 의해 들킬 것을 알고도.
‘혹시 나에게 뭔가 메시지를 보낸 건가?’
마커스는 갑자기 마카로니에서 있었던 둘만의 비밀 암호가 기억났다. 빈우가 잠수에서 부상한 다음 서로 빵에 꿀과 버터를 암호로 발라가며 나눴던 비밀 대화다. 당시 마커스는 울토르 프로젝트와 아나스타샤를 위해 움직이느라 이노우에 국장을 비롯해 내외로 견제를 받고 있었고, 빈우는 막 잠수에서 깨어난 상태에다 머릿속에 트리니티 패턴이 있어서 요주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위험한 상황에 처한 친구들끼리 서로 돕자고 한 대화였었다.
‘이상하군, 나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이렇게 일을 벌일 놈이 아닌데?’
보통 빈우는 이런 일을 하면 마커스에게 어떻게든 연락을 하거나 언질을 준다. 게다가 고토 국장과는 접촉했으면서 자신과는 접촉하지 않았다면 뭔가 대단히 수상하다.
마커스는 마지막으로 빈우와 만났을 때를 되새겨 보았다.
워프 비스트로 변하던 도중에 치료를 받는 빈우, 그리고 마커스는 그에게 군사정보국 차장을 그만두고 국방부 차관을 한다고 말했다. 물론 둘 사이에 의심이나 불화는 일체 없었다. 단지 급변하는 새로운 상황에 대해 다른 대처를 하는 것이었다. 헤어지기 전에 마커스는 빈우에게 어머니께 연락이나 한번 하라고 말을 흘렸고, 빈우 역시 그러마고 대답했다. 둘 사이에 변화가 없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후 보안국이 돌출행동을 했고, 그때 빈우는 탈주했다.’
원인은 다름 아닌 울토르 클론에 의한 응우옌 티빈 중령 암살 사건이다. 과학기술국의 응우옌 티빈 중령은 보안국의 감시를 받고 있었는데, 클론은 그것을 뚫고 들어가 응우옌 중령을 죽이고, 감시하고 있던 보안국 요원도 모조리 쓸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보안국은 빈우를 체포하려 했고 빈우는 자신의 팀을 배반하고 탈주했다.
“차관님, 크산티페로부터 연락입니다.”
마커스가 한창 추리를 하고 있을 무렵, 그의 비서 AI가 알림을 울렸다. 본가에서 크산티페가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급한 일이 아니면 나중에 하라고 해.”
지금 그는 친구에 대한 일을 걱정하고 있다. 어지간한 일이면 나중으로 돌리라고 할 것이다.
“실은 차관님 어머님께 관련된 급보입니다.”
어머님, 급보. 이 두 가지 단어가 마커스로 하여금 추리를 멈추고 연락을 받게 만들었다.
“그래, 크산티페. 무슨 일이야?”
마커스는 어머니인 아만다가 요즘 현직에서 조금 물러섰다는 것은 알고 있고, 그 때문에 정신적 피로감이 상당하다는 말을 들었다. 휴식을 한다고 쉬었는데 오히려 지치다니, 아이러니 한 일이다. 하지만 마커스는 자신의 어머니라면 그럴 것이라 생각했었다.
“…뭐라고?”
마커스 타이 국방 차관은 크산티페로부터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그럴 리가 없어.”
누구를 향한 말도 아니다. 하지만 그 말에 화면 너머의 크산티페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사실입니다, 차관님.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은 마커스는 충격에 빠졌다.
-김 빈우 소령님께서 마님을, 죽였습니다.
마커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어머니 아만다 타이는 자신의 친구인 빈우를 아들의 친구 이상이자 친아들처럼 아꼈고, 빈우 역시 그녀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대했다. 그런 빈우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믿을 수 없었다.
‘설마 울토르 클론인가!’
“크산티페! 당시의 영상을 이쪽으로 돌려. 어서!”
어머니의 저택에 있던 보안기록 영상들이 마커스에게 전해진다. 갑작스레 저택에 나타난 빈우와 막아서는 크산티페. 그리고 빈우를 반기는 어머니 아만다. 그러나 빈우가 선글라스를 벗자 아만다가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눈이…!’
빈우가 선글라스를 벗자 거기에는 인간의 눈이, 군용 안구가 아닌 샤다이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안일했다.’
마커스도 빈우가 샤다이의 호민관인 알탄훼아나의 눈을 뽑아갔다는 보고는 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모종의 도구로 이용할 것이라 생각했지, 설마 자신의 눈에 직접 박아 넣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다 팀의 보고에 의하면 알탄훼아나의 육체에 인류의 기술로 만든 의안은 아직 이식하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빈우는 그 반대인 경우를 성공시키고 있었다. 제아무리 군용 강화 육체라 해도 샤다이의 신체 기관을 받아들이기는 무리다. 하지만 마커스는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빈우는….’
마커스는 워프 비스트, 뒤틀린 샤다이가 되어가는 빈우를 봤었다. 반쯤은 인간이고, 반쯤은 샤다이인 육체. 알탄훼아나의 협력 덕분에 그것을 고쳤다고는 했지만, 빈우는 다시 자신의 선택으로 그 당시의 몸으로 돌아간 것이 분명하다.
‘…왜 샤다이의 눈을 자기에게 이식했을까.’
그리고 보안국으로부터 도망을 치면서 왜 굳이 호민관의 눈을 뽑아갔을까. 보안국은 고대 샤다이의 입김이 가장 많이 닿았다고 추정되는 곳이며, 그 때문에 빈우는 탈주했다. 샤다이로부터 도망치며 가져간 샤다이의 눈.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삼았다면 그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 샤다이의 눈으로 무엇을 보려 한 것일까.
‘호민관의 눈은 인류 속으로 숨어든 샤다이를 판별할 수 있다고 했다.’
마커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까지 생각이 닿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소름 끼치는 대답을 끌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