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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64화 (262/301)

264화

‘설마, 아냐. 아냐.’

마커스는 도리질을 하며 영상을 계속 재생했다. 선글라스를 벗은 빈우와 그것을 보고 놀란 어머니. 샤다이의 눈을 보고 놀란 아만다 타이.

-왜!

빛나는 샤다이의 눈을 가진 빈우가 작게 말했다. 아주 억울한 듯 작게 억눌린 목소리다. 마치 자신의 앞에 놓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의 모습 같다. 허나 이건 빈우답지 않았다. 녀석은 언제나 현실을 인정했었다. 그게 어떠한 현실이든지 간에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추악한 현실에는 더 추악해지는 것으로 맞섰고, 비겁한 현실에는 더더욱 비겁하게 싸웠다. 그리고 결국은 이겼었다.

반면 아만다 타이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이 또한 어머니답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불합리한 세상에 맞서 저항했으니까. 그녀는 현명하면서도 자신이 사는 세계에 좀체 적응하지 못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 왔었다. 오죽했으면 어릴 적의 마커스가, 자신의 어머니는 너무나 천재여서 이 세상이 그녀를 용납하지 못한다고 합리화할 정도였다.

-괜찮아, 크산티페.

아만다 타이의 만류하는 목소리, 여기를 기점으로 모든 자료가 끊겼다.

-죄송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외부로 빼돌린 자료들입니다. 그 외의 기록들은 모두 지워졌습니다.

화면 너머에서 크산티페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마도 빈우가 모든 기록을 지운 것이리라, 저택의 보안이나 크산티페의 저장장치까지 모두.

“아아.”

잘린 다음 나오는 장면에 마커스는 짧은 비명 소리를 냈다. 휘청거리며 화면에 다가선다. 만져질 리 없는 홀로그램 너머의 어머니를 만지려 한다.

“어머니….”

아들의 슬픈 목소리는 어머니의 시신에 닿지 않았다.

“어째서.”

마커스 또한 현실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믿고 있던 친구에게 어머니가 죽었다니, 그리고 어머니가 저렇게 처참한 시체가 되어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곧이어 훈련받은 두뇌가 반응했다. 슬픔과 충격을 뒤로하고 이성이 앞선다.

“크산티페, 경찰은 불렀니?”

-네, 차관님. 곧 도착하실 예정입니다.

“아버지께는?”

-이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크산티페는 아만다 타이의 죽음을 아들인 마커스에게 가장 먼저 알린 것이다.

“알았어…. 기다려. 내가 이번 일만 마무리하고 곧 갈게.”

통신을 끊기 전 마커스는 현장을 다시금 꼼꼼하게 살폈다. 무언가 증거를 찾고 싶었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메시지를 찾고 싶었다.

그때 마커스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 아만다 타이의 찻잔과 스푼이다. 그것들의 위치와 각도가 마커스의 눈에 들어왔다. 이건 단순히 놓은 것이 아니라 모종의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무지로 인한 무례는 나무라지 말고 친절히 가르쳐 주어야 한다.

식사 시간에 손님들이 테이블 매너를 몰라서 실수할 때면 어머니 아만다는 조용히 이런 신호를 보냈었다. 상대방의 행동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어째서.’

왜 죽은 사람이 이런 메시지를 남겼을까. 아무리 빈우라 해도 이런 메시지만큼은 모른다. 이것은 어머니와 아들 간의 비밀이었다.

‘언제 남긴 거지.’

빈우가 아만다 타이에게 살의를 보내기 전일까, 후일까. 그러나 아만다 타이가 보였던 반응으로 미루어보아 그녀는 이미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샤다이의 눈을 알아본 다음 메시지를 남겼다.’

아들 친구의 눈이 금빛으로 빛난다는 것만으로 아만다는 저렇게까지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녀도 군수산업체의 이사다 보니 샤다이에 대해서는 제법 알고 있다. 그러나 호민관의 눈에 관해서까지 알고 있을까, 그것이 인류의 몸을 차지한 고대 샤다이의 존재를 알아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렇다면 왜 이런 메시지를 남겼냔 말이야.’

아만다 타이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빈우를 앞에 두고 왜 찻잔과 티스푼을 그렇게 움직였을까. 그 숨은 뜻을 파악할 사람은 마커스 외엔 없다. 마커스에게 용서를 권한 것은 빈우의 무지에 대해서였을까, 무례에 대해서였을까.

“크산티페, 그쪽의 정리를 좀 해줘.”

-알겠습니다. 차관님.

화면이 닫히자, 국방부 차관은 생각을 가다듬으며 새로운 통신을 열었다.

-이야, 타이 차관님 아니십니까.

능글능글한 고토 국장의 얼굴이 화면에 떴다.

“빈우에게 접촉하고 넘겨준 정보가 무엇입니까.”

단도직입적인 대화에 고토 국장의 눈이 갸웃갸웃 구른다.

-음, 글쎄요. 당최 무슨 말씀이신지….

“어머니가 빈우의 손에 죽었소.”

틈을 주지 않고 바로 이어진 마커스의 말에 고토의 얼굴이 굳었다.

-이거…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화면 너머의 고토는 입을 가린 채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도 빈우와 타이가 사이의 유대를 잘 안다. 그래서 설마하니 그 빈우가 친구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은 그에게도 작지 않은 충격이었던 것이다.

-내가 김 소령에게 건네준 것은, 타이 차관의 보안 코드요. 그리고 보면 알겠지만, 그가 꺼내 간 것은 군사정보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밀 정보들이오.

마카스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고, 거기서 고토 국장은 그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김 소령은 이번 판을 엎어버릴 말들을 구하고 있소. 판 바깥에서.

고토 국장의 말에 마커스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 됨을 깨달았다. 케트쿤이 만든 연방제 무기. 그것으로 무장한 위은쓸납학과 라출노그. 이것은 현재의 연방에겐 극도로 위험하다. 게다가 그것을 지휘하는 자가 닉스 레벨 3이라면 그 위험도는 측정 불가능이다.

-그리고 그 말들의 행보가 어딘지는 차관께서도 짐작하시겠지.

마커스를 힐끗 올려보는 고토 국장의 시선은 날카롭고 차가웠다.

-그는 연방 내에 숨어든 샤다이들을 모조리 찾아 죽일 거요. 저번에 나와 만났을 때도 수틀리면 나를 죽이려고 했었지. 하지만 조건에 부합되지 않으니 살려는 놓더군. 그리고 타이 차관, 어머님의 일은 정말 유감이오만… 차관께서도 알지 않소.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마커스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샤다이를 찾아 죽이려는 빈우가 굳이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왔고, 또 죽였다는 사실이 두렵고도 괴로웠다. 어머니 아만다 타이가 샤다이였다는 사실은 정말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럼, 설마. 나도.”

이를 악물며 한 단어 한 단어씩 끊어 뱉는 마커스를 고토가 황급히 만류한다.

-아니오, 타이 차관. 차관께선 이미 검사를 받지 않으셨소. 그리고 그 결과는….

“내 어머니도 그랬어!”

터져 나온 마커스의 절규가 고토의 말을 끊었다.

“뻐꾸기 작전이 실행된 다음, 난 모두 검사했어. 가족을, 친지를, 친구들을! 모두 인간이었어! 그런데, 그런데 빈우는 내 어머니를 죽였어. 자기를 친자식처럼 사랑해준 내 어머니를, 자기가 친어머니처럼 따랐던 내 어머니를! 자기 손으로 직접 죽였단 말이야!”

잠시나마 이성을 잃은 마커스가 격렬하게 숨을 내쉬자, 고토 국장은 잠시 기다려 주었다.

“왜 빈우가 어머니를 죽였지? 놈이, 샤다이를 볼 수 있는 놈이 과연 내 어머니에게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어머니를 죽였냔 말이야.”

마커스는 친구 빈우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어머니 아만다에 대한 배신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애꿎은 책상이 으스러지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차관, 내 말 잘 들으시오.

과거 상관이었던 자가 그를 부드럽게 다독인다.

-우리는 냉정해져야 합니다. 아시겠소? 지금까지 빈우가 저지른 것이라곤 기껏해야 군사정보국의 국장을 협박해 정보를 알아내고, 다음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군수산업체 이사를 죽인 것에 불과하오.

고토 국장의 말은 어머니의 죽음을 깔아뭉개는 듯한 발언이지만, 마커스는 이해했다. 앞으로 빈우가 저지를 일에 비하면 이번 것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인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소. 이제 우린 놈이 자신이 가진 무기로 무엇을 할지 파악해야 합니다.

“누가 그걸 안단 말이오! 어떻게 막느냔 말입니다.”

마커스는 좀체 이성을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고토는 계속 냉정했다.

-우리만큼 빈우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달리 또 어디 있겠소. 우리가 알 수 없다면 연방의 누가 그를 추적한단 말이오. 그리고 아쉽게도 이미 그를 막기엔 늦었소이다. 그리고 현재 연방의 상황으로 볼 때 오히려 그의 행동을 막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앞으로 벌어질 일을 보다 이로운 방향으로 가게끔 불길을 돌리는 겁니다.

그 말에 마커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불길을 돌린다.”

빈우가 적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으면 적을 찾아 죽일 것이다. 그리고 함대와 보병을 가졌다면 전쟁을 준비할 것이다. 빈우가 과연 어디에 불을 지를까. 단순한 방화는 아니다. 놈이 라출노그 함대와 위은쓸납학 보병으로 과연 연방의 어디에 전화를 피울 것인가.

“화성!”

마커스의 대답에 고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그가 달리 어디를 가겠냔 말이외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쳤소, 자신의 부하는 물론이고 자신을 키워준 메이드마저 버리고. 그런 자가, 망설임이 없는 자가 이제 무엇을 하겠소? 김 소령은 아마 핵심부를 칠 거요. 그것으로 과거 제국 시절부터 내려온 샤다이들을 머리서부터 쳐내고 연방의 대 샤다이 패러다임을 바꿀 거요. 쩨쩨한 뻐꾸기 작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샤다이를 색출하고 학살하도록 연방 내부에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거란 말입니다.

이젠 고토마저 냉정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접한 정보가, 그 작은 불씨가 어떻게 커져 갈지 예상하자 그 상상되는 열기만으로도 그의 마음속에 있는 이성이란 얼음을 녹이고 있었다.

“이것을, 이 사실과 그에서 비롯될 결과를 상부에선 모를까요?”

마커스의 의문은 타당했다. 빈우 정도 되는 요원이 탈주했다면 이것까지는 아니더라고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상부에선 빈우의 행동이 막연히 이득이 될 거라 파악하고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만약 빈우의 작전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샤다이를 잡는 만큼 무고한 연방의 시민들도 죽을 것이다.

-차관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연방 상층부는 대단히 혼란스럽습니다. 보안국이 파멸되며 오다 의원 파벌이 그곳의 정보를 상당수 가져갔소.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연방 내부에 잠입한 샤다이를 조용히 색출하고 있지요.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선 서로 적들과 싸우면서도 동시에 야합하고 있소. 익숙한 일이지. 하지만 내가 추측한 바로는 샤다이 말고도 또 다른 세력이 있소.

“또 다른 세력? 샤다이의 내부 파벌이 아니고?”

마커스의 질문에 고토 국장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추구하는 이익이 다르오. 샤다이의 내부 파벌들의 목적은 명확하오. 인류 내부에 샤다이를 내려오게 하는 것, 그리고 소수의 반대파. 하지만 이 다른 세력의 목적에 대해선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소. 이들의 행보는 인류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인류의 파멸을 바라는 것처럼도 보이지. 그게 알 수 없는 이유요.

“골치 아프군.”

마커스는 뻐꾸기 작전이 발동한 이유를 안다. 만약 연방 내부에 외계인이 숨어들었다는 사실이 대외적으로 공표되면 그 여파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되도록 조용히 일을 처리하려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진도가 제대로 나가질 않고 있었다. 헌데 여기서 다시 삼파전이 되어버리면 그 파워 게임의 방정식은 해답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다.

-차관, 일단 마음을 가다듬으시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하시오. 내 쪽에서 알아서 방도를 마련해 보리다. 그리고 타이 차관께서도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리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소.

마커스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빈우를 막을 수는 없다. 대신 빈우가 하는 일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 반면 최대한으로 이득을 취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놈이 연방의 수도에 대규모 테러를 감행할 것이 기정사실화 되었음에도 말이다. 마치 빈우의 손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같았다.

둘 간의 통신이 끊기기 전, 이노우에 국장이 짧게 덧붙였다.

-그리고 타이 차장. 정 불안하시면… 김 소령의 앞에 서면 되지 않소.

마커스는 아까부터 자신을 감싸고 있던 불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어머니의 아들인 자신은 과연 빈우에게 무엇으로 보일까. 그리고 그의 오랜 친구는 자신에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또 자신은 어머니를 죽인 친구를 어떻게 마주하게 될까. 그리고 모든 것이 밝혀진 그때도 둘은 과연 친구로 있을 수 있을지, 마커스는 그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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