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66화 (264/301)

266화

동 중잉 함장은 자신의 순양함, 타이런트의 전투지휘실에서 정찰기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는 보고에 대한 솔직한 감상으로 마시던 차를 뱉었다.

“뭐? 미확인 아군 함이라고?”

참 듣기 싫은 단어다. 연방의 함선이나 전투기들은 모두 피아식별 코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단 이 코드를 주고받아 아군임을 증명하고, 나머지는 미확인으로 판명된다. 그리고 미확인기 중에선 다시 분류를 거쳐 적인지 기타 세력인지를 파악한다.

“아군이란 말이지….”

미확인 아군이라면 피아식별 코드가 등록되어 있지 않거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봐도 아군 함선이란 의미다. 물론 정찰기나 비밀작전을 하는 함선들은 통신이나 전파를 제한하기 때문에 이런 코드 자체를 발산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정찰 영상에 뜨는 함선들은 일체의 전파를 내지도 않으면서도, 함의 형상 자체가 기존의 데이터베이스에 없었다. 동 함장의 경험상 이런 경우는 대개 군사정보국이나 연방중앙정보국의 비밀작전함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설마하니 개척지 전투함이나 해적은 아니겠지.”

자신이 말해놓고 어이가 없는지 동 함장은 피식 웃었다. 지금 그가 타고 있는 헤라클레스급 순양함 타이런트 이하 분함대가 있는 곳은 샤다이 거주행성 부근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연방의 함선은 42전단 외엔 달리 없다.

“이건 또 뭔가.”

정찰기가 보내온 영상 속의 함선을 보던 동 함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보고로 아군으로 추정된다고는 하는데, 아군이라고 하기엔 그 형태가 상당히 해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감상이 나온 이유를 부장인 펑센이 해설해 주었다.

“함선을 만든 것은 연방의 기술이지만, 설계 사상은 라출노그입니다.”

“그렇지.”

미확인 아군함의 숫자는 모두 다섯 척. 이 함선들은 중앙의 거대한 모함과 그 주변에 붙어있는 작은 포격함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도킹한 포격함의 추진기로 이동하고 있는 저 모습은 영락없는 라출노그 전투함이다. 그런데 또 재질이나 추진기 등의 기술은 어딜 봐도 연방이다.

“저거 데넥샬이냐, 슈흘루냐.”

동 함장은 라출노그 내부 파벌의 이름을 읊었다. 친연방파와 반연방 파벌들이다.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로는 모르지요.”

부장 AI인 펑센은 수집한 자료를 분석해 자신만의 결과를 냈고, 거기에 동 중잉 함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또 저들은 기본적인 무선 관제는 하고는 있습니다만, 이쪽을 의식하면서도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쪽을 의식은 한단 말이지.”

부장의 말을 곱씹던 함장이 무의식적으로 부장 쪽으로 곁눈질을 했다. 얼마 전 42전단의 AI들은 빈우가 탈주하며 몇 가지 수작을 부린 덕에 대규모 폭주를 일으켰다. 때문에 전단의 작전에는 크나큰 차질이 있었고, 하마터면 보안국이나 다른 부대들과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갔었다. 다행히 상원의원인 오다 히토미가 중간에서 중재해주었고, 빈우 또한 사고를 저지르는 것과 동시에 AI들의 취약점과 그 해결책들을 상세하게 지적해 놓아 문제점을 빠르게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 놀라는 법이다.

“뭐어, 함장님께서 미덥지 않은 것도 이해합니다.”

둥 중잉의 곁눈질을 본 루 펑센이 씁쓸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난….”

뭐라고 얼버무리려던 동 함장은 한숨을 쉬며 긍정했다.

“그래, 미안하다. 그날 이후로 조금, 뭐랄까….”

“역시 그렇죠?”

동 중잉 함장과 루 펑센은 오랜 시간 같이 지내온 전우다. 그랬던 전우가 갑자기 명령을 무시하고 돌출 행동을 했으니 인간으로선 AI에게 찝찝한 마음이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펑센은 전혀 마음 상한 기색이 없었다. AI라도 녀석 같은 고성능이면 나름 반응을 할 텐데도 말이다.

“함장님, 아무래도 저놈들. 선수 치려는 모양인데요?”

“뭐?”

펑센의 말대로 정체불명의 라출노그 전투함대는 샤다이 행성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다섯 척뿐이지만 그 대형은 어딜 봐도 전투태세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지켜보자.”

지금 동 함장이 이끄는 분함대는 게이트를 만들어 장거리 정찰을 하는 중이다. 즉 본대가 오기 전의 정찰부대인 셈인데, 자칫하면 저 정체불명의 부대에게 목표물을 빼앗길 기세다.

“싸우는 것을 보면 놈들 정체가 드러나겠지.”

라출노그 형태의 전투함들이 샤다이 행성 쪽으로 접근하자 그쪽에서도 방어 함대가 나왔다. 그러나 샤다이의 움직임엔 급한 기색은 없었다.

애초에 샤다이가 공격하는 것은 인류 연방뿐이고, 다른 외계종족들에 대해선 딱히 적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우호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연방은 동맹종족에게 샤다이에 대한 공동전선을 펴달라고는 하지만 동맹종족의 기술로는 샤다이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없었고, 샤다이 또한 인류 외의 종족은 딱히 공격하지 않아 전투는 언제나 연방과 샤다이 사이에서만 벌어졌다.

“공격 시작합니다.”

펑센의 말대로 라출노그 쪽은 대화할 생각은 없는지 모함 주변으로 포격함들이 사출되었다. 그리고 대형을 갖춘 포격함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입자가속포!”

라출노그 함선들의 공격을 본 동 중잉 함장은 놀라서 소리쳤다. 저들이 쓰는 것은 42전단이 쓰는 신형 입자가속포인 것이다. 샤다이의 방어막을 관통하는 공격에 샤다이들의 배들이 속속들이 격침된다.

“네, 그것도 아군 것보다 고성능입니다.”

펑센이 즉시 저 포격함들의 성능을 분석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저 포격함의 입자가속포는 함체의 전면부를 통째로 쓰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마치 함체를 코일건의 포신으로 쓰는 연방 구축함과도 같다.

“일격에 전열함이 격침이라고.”

동 함장이 감탄했다. 포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위력도 절륜했다. 타이런트의 입자가속포 모두를 합친 것 보다 저 전투함의 화력이 월등했다.

“흠, 그러나 딱히 연방에는 위협적이지 않군요.”

“그거야 그렇지.”

눈앞에 보이는 엄청난 화력에도 불구하고 펑센은 박한 평가를 했고, 동 함장도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저 함대의 구성은 철저하게 대 샤다이 전투를 위해 짜여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저들의 무장인 입자가속포만 봐도 그렇다. 입자가속포는 물리 에너지와 열에너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효율이 낮다. 물리 공격이라면 코일건이나 레일건 같은 자기가속 무기가, 열에너지라면 레이저나 플라스마 같은 것이 에너지 소모 대비 화력이 높다. 샤다이 전투가 아니라면 저런 무장 구성은 전체적인 전투력 약화를 가져온다.

또 연방은 구축함 주포의 위력을 지닌 주력 전투기 롱소드를 적진 내 침투시키는 방법을 즐겨 쓴다. 그러나 저 라출노그 함대는 기존의 것과는 달리 대공병기가 일체 없었다. 애초에 저 전투함들은 설계 사상이나 전투 교리 자체가 대 샤다이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만약 저 함대들과 연방의 함대가 붙는다면 연방의 압승일 게 뻔하다.

“일종의 실험부대 같은데요? 동맹종족을 어떻게 잘 구슬렸나 봅니다.”

“그건 기쁜 일이로군.”

펑센과 동 함장은 불안감은 지워버리고 순수하고 기뻐하고 있었다. 연방은 동맹종족에게 고급 군사기술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동맹종족은 대 샤다이 전투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었다.

‘신형 입자가속포가 절묘하군.’

동 함장이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대 샤다이 전투에 특효약인 신형 입자가속포는 분명 연방의 최신 무기다. 그러나 그 화력은 기존의 것에 비해 쳐지고, 오직 샤다이의 방어막을 뚫는다는 특징만 있을 뿐이다. 그런 병기로 무장한 동맹함선이라면 환영이다. 아군에게 위협적이지 않고, 적만을 치는 동맹이니 반기지 않을 리 없다.

“허! 벌써 끝인가!”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포격이 잦아들자 동 중잉이 놀랬다. 역시 우주 함대전은 라출노그의 영역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포격함들의 움직임은 사각 없이 샤다이 함대를 유린했고, 얼마 있지 않은 샤다이 방어함대는 순식간에 전멸했다.

그리고 라출노그 함대는 행성 궤도까지 접근해선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

“지상부대가 강하하는군.”

“네, 포드가 상당히 크군요. 전차나 지상용 기동 병기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라출노그 전투함에서 사출되는 강하포드는 장갑보병이 쓰는 것보다 대형이었다. 주로 중장비나 전차를 강하시킬 때 쓰는 대형포드인데, 샤다이와의 전투에는 전차를 잘 쓰지 않는다.

“흐음, 전차라… 그렇다면 입자가속포를 쓰는 게 아닐까? 라이노에 그런 것을 달면 괜찮았잖아. 누가 그랬더라?”

“김 빈우 소령입니다.”

“아….”

42전단에도 지상병력은 있다. 뱅가드의 장갑보병들. 그들도 라이노에 입자가속포를 달아 샤다이 도륙에 열심이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잠시 협력했던 태스크포스 373의 팀장 김 빈우의 것이었다. 사고 치고 도망간 그놈이 떠오르자 동 함장은 한숨을 쉬었다.

“설마하니 그놈, 도망가서 저기로 갔을라나.”

“설마겠죠. 그런 사고를 치고 저런 곳을 갈까요?”

“저런 곳이니까.”

인간과 AI가 잡담을 하고 있는 사이 부장인 펑센에게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다.

“함장님, 저 정체불명의 함선에 대한 조회를 정보사령본부에 의뢰했는데,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 그래? 어디 소속이야?”

“군사정보국입니다. 국방부 의뢰로 만든 실험부대랍니다.”

“국방부라….”

동 함장이 묘하단 표정으로 턱을 긁었다. 군사정보국은 적대적 외계종족만을 상대한다. 때문에 동맹종족과의 작전은 거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마 중간에서 국방부가 다리를 놨겠지.

“비밀부대인데 이번에 작전영역이 겹쳐서 미안하다는군요.”

“뭐 우리도 정찰하러 온 거니까 그럴 수 있지.”

정체불명 함대의 정체가 밝혀지자 동 함장은 한시름 놓은 듯 의자에 털썩 앉았다.

“자, 그럼 여긴 저놈들에게 맡기고 우린 다른 목표물 찾으러 갈까?”

“네, 그게 좋겠군요. 좌표는 어디로 할까요? 제2 목표로 그대로 갑니까?”

“음, 그렇게 하지. 그리고 게이트 충전하는 동안 최대한 저쪽 함대 촬영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42전단의 동 함장은 앞으로 새로운 아군이 되어줄지 모를 새로운 함대를 보다가 자신의 업무로 돌아갔다.

* * *

강하하는 포드 안에서 아스탄은 떨었다. 포드의 떨림이 아니라 몸이 떨려온다. 그렇게나 훈련을 했음에도 몸이 떨려온다. 이 떨림에는 첫 실전이란 긴장도 있지만, 드디어 복수가 시작된다는 환희도 분명 있을 것이다.

포드가 최종 감속 단계로 들어가자 한 차례 큰 진동이 있었고, 곧이어 포드가 지표와 착지-충돌했다.

“가자!”

동포들이 포효하며 포드를 뛰쳐나갔다. 그리고 포를 쏘고 칼날을 휘둘렀다. 입자가속포가 작열하고 진동칼날이 피를 흩날린다. 조그만 인간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간다. 푸른 피부, 기다란 귀. 조금 다르지만 인간이다. 두 다리와 두 팔을 가진 인간이다.

동족을 죽이고, 실험체로 삼았던 증오스러운 존재들이다. 아스탄은 빈우의 속내가 무엇이든 간에 복수의 장을 마련해 준다면 기꺼이 어울려줄 속셈이었다. 그의 도구가 되더라도 눈앞에서 인간만을 죽일 수 있다면 가장 앞서서 놈들의 피를 빨아먹을 것이다.

“인간을 죽여라!”

“복수다!”

인류의 기술로 무장한 위은쓸납학들이 인간의 도시로 진격한다. 조그만 존재들이 복수의 제물이 되었고, 이제 놈들 자신이 희생양이 될 차례였다.

“네라미 알루!”

두 발 달린 조그마한 생명체-인간이 손을 들어 외친다. 아스탄은 알 수 없는 언어. 그러나 알고 싶지도 않다. 알아볼 수 없는 표정. 그것이 고통과 공포였으면 좋겠다.

아스탄은 허리칼날을 휘둘렀다. 칼날에 달린 연방제 진동 칼날이 인간을 토막 내며 푸른 피를 사방으로 튀겼다.

“인간들이 반격한다!”

동료의 경고에 돌아보자 거기서 플라스마 사격이 날아오고 있었다. 고온의 공격에 맞은 동료의 반신이 장갑복 째로 날아갔다.

“방패를 만들어! 흥분하지 말고 대응해.”

공격에 눈이 팔린 동료들은 포드를 나서며 방패조차 만들지 않았다. 아스탄의 외침에 지상부대들은 서둘러 방패를 만들었다. 골조에 발포 장갑들이 들어차고 내열방패들이 만들어진다. 이어서 날아오는 플라스마 공격을 방패로 막자 섬광과 함께 장갑이 증발한다. 나머지 파편과 열기가 날아오지만 장갑복이 막아준다.

“응사해!”

위은쓸납학 지상부대는 입자포를 쏘았다. 인간들이 쓰기엔 크지만, 위은쓸납학들이 쓰기엔 안성맞춤인 크기였다.

“꼴좋다!”

자신들이 만든 무기에 죽어가는 인간들을 보며 아스탄은 광소를 터트렸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자신이 이런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실험체로 살아온 자신이 이런 충족감을 얻을 수 있다면, 아스탄은 얼마든지 빈우의 명령을 따를 의사가 있었다.

“인간들을 죽여라!”

위은쓸납학 장갑보병들이 포효하며 진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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