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다샤 쿠사키나 준장. 연방군 정보사령본부 산하 보안국의 국장. 한때는 군 내부에서 목소리 한 번 쩌렁쩌렁 울렸었다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다.
지금 그녀는 상원의 조사위원회에 구금되어 이것저것 빨리고 있었다. 나름 보안국에서 굴러온 잔뼈가 있었다고 생각한 그녀였지만, 상원의 조사는 그것과 격을 달리했다.
이들의 심문은 보안국의 조사를 가내수공업으로 폄하할 만큼 광범위하고 질적으로 우수했다. 애초에 상원 의회란 연방 시민들의 권력 집집합체였으니, 이들로 구성된 특별조사팀이 가진 권력은 일개 군이나 행정부의 것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였다.
“하아.”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식욕이 없다. 식사는 분명히 질 좋고 맛있는 것이지만 먹는 사람이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다. 다샤가 밖을 보자 소용돌이치는 염기성 폭풍우가 쏟아지고 있다. 조사위원회는 군 교도소가 아닌 외곽 개척지의 안전가옥에 그녀를 가둬놓고 있었다. 아마 다른 부서의 방해를 피해 제대로 일을 벌일 속셈인 듯하다.
그때 의외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이렇게 하는 것인가? 응? 쿠사키나 국장?”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어벤져 장갑복이었다. 뜬금없이 나타난 장갑복에 다샤는 한 번 놀랬고, 헬멧이 열리고 나타난 얼굴에 두 번 놀랬으며, 그의 눈이 빛나는 것으로 세 번이나 놀랬다.
“어어, 기, 김소령.”
갑작스레 나타는 빈우의 존재에 다샤는 말을 잇지 못했다.
‘뭐지? 왜 그가? 그도 조사위원회 소속인가? 오다 의원과 같이 있었으니, 아니야. 그는 탈주했잖아. 아니, 혹시 탈주도 연극이었나? 아니, 그것보다!’
그녀의 머릿속은 창밖의 폭풍우는 저리 가라 할 만큼 맹렬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왜, 자네가 그, 그 눈을 하고 있는 것이지? 그건 샤다이 눈이잖아.”
떨리는 다샤의 질문에 빈우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눈이 문제가 아닐 텐데요? 제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아신다면 기겁하실 겁니다.”
빈우의 말에 다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그녀가 감금된 곳은 외곽지대의 외딴곳. 거기다 특수전 사령부에서 엄선해 보내온 대원들이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설마. 네놈이 특수전 사령부와 한통속이었나?”
다샤가 쏘아붙였지만 빈우는 피식하고 웃을 뿐,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육중한 장갑복으로 사뿐사뿐 걸어오기 시작했다.
“감히!”
그 기세에 한 발 물러선 다샤를 보고 빈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딱히 해를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 여기 온 것은 저로서도 예상 밖의 일입니다. 말하자면 사고지요. 뭐 그래도 이렇게 뵙게 되었으니 잠깐 얘기라도 좀 할까요?”
태연한 빈우와 달리 다샤는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녀는 24시간 감시당하고 있는 몸이다. 만약 빈우가 어떤 돌발행동이라도 한다면 경비병력이 달려올 것이다. 아니 바로 문밖에서 뛰어 들어오겠지.
‘그러나 오지 않는다면?’
빈우의 방문과 행동이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된 것이라면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천하의 다샤 쿠사키나 준장께서 왜 이리 겁쟁이가 되셨습니까? 방해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오히려 다샤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각오를 하자 차분해졌다.
“사실 전 댁이 샤다이인 줄로만 알았소.”
가당찮은 말에 다샤는 코웃음만 칠뿐이다. 역시나 이놈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왜 샤다이와 협력했습니까?”
뜬금없는 빈우의 질문에 다샤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받았던 질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심문 기술에서 기본 중의 기본. 같은 질문을 반복해 상대방에게 스트레스와 오류를 쌓게 만드는 것이다.
“인류를 위해서.”
언제나 같은 질문에 언제나 같은 대답. 이게 수없이 반복되자 오히려 그 사실에 의미포화를 일으킨다. 오죽하면 다샤 자신은 진실을 말했을지언정 그에 대해 혼란이 생길 지경이다.
“푸흡.”
그러나 빈우의 반응은 색달랐다. 기막혀하던가, 분노하던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전 심문관에 비하면 아주 색달랐다.
“하참. 명색이 보안국장이란 아줌마가 뭐요? 인류를 위해서?”
그렇게 감탄 반, 비웃음 반의 웃음이 잠시 방을 채웠다.
“뭐가 웃기냐! 네놈이 샤다이의 진면목을 알기나 해?”
“알다마다. 멸망을 피해 도망갔다가 자신의 정체를 깨닫고 돌아온 그림자들이지.”
웃음기가 사라진 빈우의 말이 날카롭게 돌아온다. 귀로 들려야 할 말이 목덜미를 스산하게 스치는 것 같다. 다샤는 지지 않으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그들은··그들은 이 우주를 이해하고 있다. 맨몸으로 우주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했어. 스스로 별과 별 사이를 이동하고, 별 안에 들어있는 에너지를 사용하고, 샤다이들이야 말로 이 우주를 이끌어 나가야 할 종족이란 말이다. 우리 인류는 그들을 받아들이는 게 올바른 섭리야. 그리고 인류로 하여금 알맞은 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야.”
다샤로서는 진심 어린 열변이었지만, 빈우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염세주의자신가, 인간혐오자신가.”
그는 기도 안 찬다는 듯 비웃음과 함께 의자에 앉아 다샤를 쳐다보았다.
“그놈들에게 속아서 넘어간 거요, 아니면 자기가 다 알고도 넘어간 거요? 뭐, 나에게 거짓을 알아보는 시야가 없어서 아쉽군요. 아차, 이거 이거. 걷기도 전에 뛰는 놈의 슬픔이구만. 원래 상대의 파장을 파악해 참 거짓을 알아보는 게 가장 기본기라던데···하, 그러면 잘만하면 나와 인연이 깊은 자의 미래도 보이려나?”
빈우의 눈에는 현재 샤다이의 안구가 들어있다. 그래서 다샤는 그의 초점이 지금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응? 아아, 존트 얘기요. 존트. 샤다이들의 순간이동. 정식명칭은 뭐라더라? 아무튼 방금 배워서 썼거든. 프레드릭이던가, 아시려나 모르겠네? 난 체메트디오프의 그 말만 곧이 믿고 좌표만 죽자고 계산했는데 아니었어. 오히려 모니카의 가설대로였지.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의 중력을 계산한 다음 그 중력장을 왜곡해서 통로를 만드는 거 말이오. 그러면 공간이 왜곡되고, 공간이 왜곡되면 자연히 시간도 같이 왜곡되지. 응? 아니 근데 댁이 이걸 물었던가?”
말뿐만이 아니라 빈우의 행동 또한 이상하다. 조금 산만해 보이는 손의 움직임, 초점을 알 수 없는 시선 처리. 지금 빈우의 안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 언뜻 보니 그의 이빨이 제법 길어진 게 보인다. 예전에는 저렇게까진 길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넌 누구지?”
다샤는 슬쩍 반격을 시도해 보았다. 넘치기 직전의 찰랑이는 컵을 슬쩍 밀어본 것이다.
“내가 누구냐고?”
샤다이의 눈이 희번득거리며 다샤를 쳐다본다. 그 투명한 안구 너머로 무엇이 있는지는 다샤는 짐작할 수 없었다.
“나? 인간이지. 인간 김 빈우지. 바로 이렇게.”
빈우가 홀로그램을 띄워 학살 현장을 보여준다. 굉음과 비명 사이로 샤다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연방제 무기로 무장한 위은쓸납학들이 진군하며 샤다이들을 죽이고 있다. 대 샤다이전 전술에 신형입자가속포로 철저하게 준비한 침공군. 반면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샤다이들은 처참하게 죽어간다.
“모두 내 명령이오. 내가 이간질시켜서 싸움을 붙였지. 샤다이를 죽이는 데 위은쓸납학을 썼어. 하! 이게 인간이 아니면 뭐란 말이요. 이게 빈우가 아니면 누구란 말이요.”
전장의 화염과 살육의 피보라 속에서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선 순수한 인간의 악의를 엿볼 수 있었다.
“갓 태어난 클론들.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아기들이랑 다를 바 없지. 그들에게 가짜 정보를 줘서 싸우게 하고 그걸 구경하는 것은, 진짜 재미지더군요. 히히히.”
망가진 자의 웃음, 무언가를 잃어버린 자의 웃음. 다샤가 살아오며 숱하게 봐온 웃음이다.
‘그래, 빈우는 예전에 이런 적이 있었다.’
다샤도 본적이 있다. 울토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빈우가 딱 저랬었다.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상의 실체를 알고 절망한 엘리트 장교는 그 이상을 위해 달려나갔다. 더럽혀진 가치를 깨끗이 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무너져 내리고, 다시 일어서고, 또 무너져 내리기를 반복한다.
‘왜 그는 스스로를 저렇게까지 밀어붙일까. 왜 저런 성향을 띄게 되었을까.’
보안국 국장이었던 다샤에게 닉스 레벨 3 요원들의 분석은 필수였다. 하나하나가 연방의 전략자원이었으니까. 하지만 다샤가 보기에 그중에서도 빈우는 특별했다. 유년기에 가족을 잃은 크나큰 충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우는 굴하지 않고 스스로 딛고 일어났다. 여기까진 흔하다. 서류상으론 그랬다. 하지만 행간을 읽으면 읽을수록 다샤는 빈우의 과거가 수상했다.
‘빈우는 만들어진 존재 같았다.’
조사를 해 새로이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빈우는 마치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키워져 사육된 것만 같았다. 아기에게 굳은살이 생길 때까지 채찍질을 하고, 그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나으면 다시 학대를 한다. 쇠를 달궈 두들기고 식히는 담금질을 사람의 생살에 한 것처럼.
물론 일련의 행위와 사건들이 누군가에 의해 직접적으로 행해진 것은 아니다.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빈우의 인생이란 핀볼게임을 보이지 않는 손이 높이 들어서 흔든 것만 같았다. 그 손은 연방의 권력체계 중에서도 상당히 이질적인-
“어이쿠.”
다샤의 생각을 깨트린 것은 경보음, 그리고 빈우의 쓴웃음이었다.
“불청객은 이만 가봐야겠소, 라고는 했지만, 통로를 만드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군.”
사이렌 소리와 함께 복도 너머로 장갑보병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 저 좀 도와주시죠.”
빈우가 다샤의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그리고 문을 보고 섰을 때, 경비병력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장갑복을 작동 정지하고 나와라!
어벤져들이 들어와 코일건을 겨눈다.
“빨리도 온다. 등신들. 쏴보던가.”
-어어?
빈우는 다샤를 방패 삼아 왼팔에 올려놓고는 코일건을 쏘았다. 대장갑용으로 설정된 탄환이 뿌려지고 기껏 들어왔던 경비병력들은 피탄 섬광만 남기고 다시 바깥으로 물러섰다.
“이거 진짜 등신들인가. 새끼들아! 다짜고짜 들어왔다가 도로 나가고, 뭐하자는 건데!”
빈우는 맨몸의 인간을 왼팔의 방패 거치대에 묶어놓고는 도발을 했다. 그때 벽을 꿰뚫고 레이저가 발사되어 빈우의 다리를 노렸다.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겠지만 레이저는 빈우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쭈? 제법.”
빈우는 레이저포에 코일건을 쏘고 다시 그 구멍으로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 저쪽도 다샤 쿠사키나가 인질로 잡혀있으니, 빈우에게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장갑복이 격돌하는 상황에서 강화가 되지 않은 맨몸의 인간은 그냥 터져버린다.
그렇게 대치한 상태로 시간이 몇 분쯤 지났을까. 빈우는 다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뭐 덕분에 시간은 벌었소. 가능하면 다음에 또 봅시다.”
그러더니 빈우의 모습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벤져 장갑복의 형상이 마치 실처럼 뽑아내어 하늘 위로 올라가더니 사라졌다. 이건 샤다이의 공간이동이다. 인간 김 빈우는 지금 샤다이의 공간이동으로 도망친 것이다.
“이럴 수가.”
다샤는 벽을 뚫고 들어오는 어벤져 사이에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떻게.”
어벤져들에 포박되는 다샤 쿠사키나의 머릿속으로 빈우의 눈이 떠오른다. 샤다이의 눈. 빈우는 지금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이빨.’
불현듯 빈우의 이빨이 떠오른다. 일반인보다 조금 더 길고 날카로운 이빨. 패션은 아닐 것이고 강화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빨이 길어질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워프 비스트?’
워프 비스트들은 샤다이들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플라스마나 레이저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금 빈우는 레이저 공격에 전혀 무반응이었다.
‘나? 인간이지. 인간 김 빈우지. 바로 이렇게.’
넌 누구냐는 다샤의 질문에 빈우는 과민 반응을 보였다. 샤다이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자신이 인간이라고 증명했다. 지신이 빈우라고 소리쳤다.
‘그는 지금 무엇일까.’
덧없는 생각이다. 다샤 쿠사키나는 고개를 흔들며 어벤져들에게 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