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70화 (268/301)

270화

“너무 서두르시는 것 아닙니까?”

오르 함장의 말대로 상원의 임시회의까지는 아직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히토미는 한시라도 서둘러 화성으로 가려고 했다. 그래서 블랙 랜스는 42전단과 헤어진 다음 부랴부랴 점프를 해서 화성으로 가는 중이다.

“네, 서둘러야 합니다. 일단은 타이 차관과도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르 함장은 히토미가 미처 다하지 못한 말이 무엇인지 대강 짐작이 갔다. 화성은 연방의 수도이고, 연방의 관료들과 엘리트들의 집합소다. 당연히 숨어든 샤다이도 많을 것이다. 그 증거로 그녀가 속한 파벌과의 물밑 전투가 가장 치열할 곳 또한 화성이다.

만약 그곳에 샤다이를 알아볼 수 있는 빈우가 들어간다면? 연쇄 살인 사건 당첨이다. 그는 비록 인간을 해치진 않을 사람이긴 하지만, 동시에 목적을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김 소령의 일이 걱정되시는군요.”

“네, 화성이 쑥대밭이 되는 것은 막아야지요.”

둘은 한숨을 쉬었다. 과거에 그들이 알고 있는 빈우의 모습은 그저 뛰어난 특수부대 요원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알아 가면 갈수록 그의 어두운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연방을 위해서란 명목하에 이뤄지는 학살과 파괴.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인류와 연방이었지, 외계종족은 아니었다. 빈우에게 있어서 외계종족은 잠재적 제거 대상에 불과했고, 연방과 동맹을 맺은 종족 정도가 아군이란 이유로 그 대상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그의 목적에 방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쳐낸다.

만약 그가 연방의 수도 화성에서 대학살을 벌이는 와중에 외계종족 고위층이 휘말려 든다면? 이건 심각한 외교문제가 된다. 설령 그렇다 해도 연방 내에 숨어든 샤다이가 더 심각한 상황이긴 해서 빈우는 저울질하다가 이해득실의 눈금이 기울면 바로 저질러 버릴 인간이다.

“이제 점프합니다.”

오르 함장의 말과 함께 블랙 랜스가 점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이 게이트를 지나면 화성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나오지 않았다.

“이건… 뭐죠?”

히토미는 처음 본 광경에 어리둥절했다. 정확히는 직접 보는 것이 처음이다. 그녀와 팀원들은 이런 현상을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빈우로부터.

“함이 점프 공간에서 멈췄습니다. 전원 전투태세!”

오르 함장의 명령과 함께 무인 롱소드들이 사출되고, 우지의 롱소드도 발사되었다. 현재 블랙 랜스는 점프 도중 점프 공간 안에 잡혀버린 것이다. 마치 과거에 울토르 중대와 솔리드 베타가 포말하우트 게이트 안에서 잡힌 것처럼.

“샤다이인가요?”

“모릅니다. 의원님, 어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블랙 랜스의 주변으로 부유 포대와 방어 드론들이 대형을 갖춘다. 지상팀도 장갑복을 입고 격납고로 달려가 전투 준비를 한다. 히토미는 밖으로 달려가 자신의 방으로 갈 것이고 거기서 아나스타샤가 그녀를 지킬 것이다. 알탄훼아나도 자료실에 있다가 경보를 듣고 방으로 가는 중이다.

오르 함장은 점프 공간에서 상대를 감지하자마자 공격을 개시했다. 이렇게 점프 공간에서 간섭해올 수 있는 존재는 현재 샤다이 뿐이다. 그래서 나타난 적을 향해 입자가속포로 선제공격을 가한 것이다. 그러나 블랙 랜스의 공격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적은…!”

점프 공간 안에서 다가오는 함선을 파악한 오르 함장은 경악했다. 그 배는 그리폰이었다. 그리폰급 순양함 1번 함 그리폰, 바로 비홀더 전대 1전대의 기함이었다.

“설마하니.”

오르 함장은 없는 이를 악물었다. 인류 연방과 구 지구 제국군은 비록 아군은 아니지만 적은 결코 아니다. 마치 같은 농장에 있는 소와 닭과 같아서 때에 따라서는 협력하는 경우도 있다. 비홀더 전대가 연방군에게 적대적인 행위를 할 경우는 오직 하나, 연방이 먼저 시비를 걸었을 경우뿐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 무시로 일관한다.

“함이, 움직이지 않아.”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심각했다. 그리폰에서 나온 역장이 블랙 랜스를 묶어 놓은 것이다. 전신이 구축함의 기관과 연동된 오르 함장은 마치 자신의 사지가 구속당한 기분이 들었다. 왜 비홀더 전대가 이쪽을 적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대한 제국의 순양함이 블랙랜스를 잡아먹을 심산이란 것은 확실하다. 블랙 랜스보다 열 배는 큰 그리폰의 하부 격납고가 열리며 그 안으로 꼼짝달싹도 못 하는 작은 구축함이 그대로 들어갔다.

* * *

“아이, 씨바랄.”

“누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되네요.”

지상팀은 지금 격납고에서 투덜대고 있었다. 점프 공간에 묶였다는 사실과 전투경보에 팀원들은 부랴부랴 장갑복을 입고 대 샤다이 전투를 준비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비홀더 전대가 등장한 것이다. 다행히도 저쪽에 공격할 의사는 없어 보였지만 블랙 랜스를 역장으로 묶어서 끌고 가는 것에 좋은 의도가 있다고 보기엔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쪽에서 선제공격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현재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뿐더러, 체급 차이가 너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쪽의 포격이 소용이 없었지?”

아룹의 말에 파트리샤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입자가속포가 명중했는데, 효과가 없었어요. 방어력으로 막아냈다가 아니라 아예 반응이 없었다고요.”

아룹이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블랙 랜스는 비홀더 전대가 준 입자가속포로 무장하고 있다. 대 샤다이 전투에 이것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금 이 입자가속포로 비홀더 전대를 공격했었지만 이에 대한 반응이 없었다. 명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에너지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상대방의 방어막에 흡수된 것처럼 보였다.

“이 새끼들, 애초에 이런 속셈으로 준 것이 아닐까요?”

위르겐이 투덜댄다. 중화기병인 그는 현재 주무장이 입자가속포다. 주무장이 모조리 못쓰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글쎄다. 하지만 우리가 이걸로 샤다이를 쳐 잡은 것은 사실이지.”

아룹이 코일건을 점검했다. 상대가 누구이든 블랙 랜스에 흙발로 들어오는 자는 열렬히 환영해줄 생각이었다. 초음속의 속도로.

-아룹 팀장.

그때 오르 함장이 아룹에게 통신을 넣었다.

“말씀하십시오. 함장님.”

-현재 비홀더 전대 장갑보병들이 격납고 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공격을 하고 있진 않습니다만, 주의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전원 전투 준비.”

아룹의 말에 팀원들이 각자 무장을 점검하며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때 격납고의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는 소리라기보다는 작은 진동이다.

-저, 팀장님.

그 소리를 들은 파트리샤가 희한하다는 투로 말했다.

-저 소리, 저거 혹시나 말인데요. 제가 아는 그거 맞죠?

아룹도 저 소리가 무슨 소린지 알아들었다.

“그래, 노크 소리군.”

지금 비홀더 전대는 격납고 바깥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바깥 화면을 봐도 거구의 제국 장갑보병들이 격납고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문을 쾅쾅 두들기고 있었다. 또 이들에게 달리 무장은 없었다. 그들 자체만으로도 흉악한 병기이긴 하지만.

“…열어줘.”

아룹의 말에 격납고의 문이 열리자, 비홀더 전대원 한 명이 먼저 들어오더니 손에 든 것을 대뜸 내밀었다.

“쏘지 마세요.”

그의 손에는 백기가 들려있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비홀더 1전대의 노노무라 요시오 상사라고 합니다. 거시기 뭐냐, 우린 댁네들 칠 생각이 없었는데요. 전대장님 성격이 지랄맞아서, 헤헤.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뭐 어쩌겠습니까. 그러려니 하고 협조 좀 해주십쇼.”

헬멧을 벗은 요시오의 얼굴에 적의라곤 없었다. 오히려 사고를 쳐서 미안하다는 쓴웃음으로 굽신거리고 있었다.

“지상팀장인 아룹 라마누단 원사요. 비홀더 전대가 우리 함을 잡아둔 이유가 뭡니까?”

아룹 또한 총을 거두고 나서서 대화를 시도했다.

“이유요? 에, 그렇죠. 그게… 뭘까요? 야야.”

요시오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옆에 있는 동료를 쿡쿡 찔렀다.

“묻지 마. 나도 몰라, 병신아.”

지구제국 장갑보병들은 서로를 보며 쑥덕거리고 있었다. 굳이 통상 공간이 아닌 점프 공간에서 접촉하고는, 더구나 강제로 끌어들여 놓고선 이유를 모른다고 하니 말이 안 된다.

‘아니지, 말이 되지.’

아룹은 맞은편의 존재들도 엄연히 군인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군인은 명령에 따른다.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아무리 불합리하다 해도, 위에서 내려온 명령은 그것을 합리적으로 강제해 버린다. 스멀스멀 불길한 예감이 아룹의 등골을 타고 올라간다.

“저기, 사실은 여기 와서 사고 친 거 사과하란 말만 들었습니다.”

우물쭈물하는 요시오의 말에 아룹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끝까지 올라간 예감이 식은땀으로 맺혀 떨어진다.

“아뿔싸, 파트리샤!”

아룹의 외침에 파트리샤는 대답 없이 바로 달렸다. 원래 이런 자리에 나와야 될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이 지금 자신의 할 일을 다른 곳에서 하고 있다는 뜻이다. 비홀더 1전대장 이 섬 준위. 그가 지금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상팀의 시야 바깥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아나스타샤, 의원님이 위험하다!”

아룹은 명령과 함께 현재의 상황을 아나스타샤에게 보냈다. 지금 이 섬이 이 자리에 없다면 십중팔구 팀의 머리에게로 갈 것이다. 바로 오다 히토미 상원 의원에게로. 그가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블랙 랜스 외벽 쪽에 파손경보가 떴다. 역시나 거주 구역 쪽이다.

-알겠습니다. 즉시 대응하겠습니다.

아나스타샤는 히토미의 방을 블록째 이동시키고 자신은 무장을 하면서 복도를 달렸다. 굳이 점프 공간 안에서, 그리고 굳이 이 섬이 모습을 감춰가며 이리로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그가 할 행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할 만한 행동과 말은 아닐 것이다.

* * *

알탄훼아나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거인을 보고 굳어버렸다. 그녀는 얼마 전 모니카의 도움으로 간신히 새로운 의안을 끼워 넣을 수 있었다. 덕분에 과거 자신의 눈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외부의 시각과 전파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이 새로운 눈으로 차마 봐선 안 될 것을 보고만 것이다.

“으으으….”

눈으로 본 것을 확인하자 절로 입이 떨린다. 당연하다. 자신을 잡아서 고문한 제국의 군인. 동료와 부하들을 무참하게 죽인 악마. 그 이 섬이 소리소문없이 블랙 랜스 안으로 침입해 거주 구역 내를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다.

-알탄훼아나 씨, 피해요!

아나스타샤의 비명이 통신기를 통해 들려온다.

“어, 어억.”

그 덕에 겁에 질린 알탄훼아나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뒷걸음을 치지만, 걸어오는 이 섬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 긴 보폭의 제국 군인이 성큼성큼 걷자 둘의 거리가 급격히 좁아진다.

“이, 이 섬! 네놈.”

-안 돼요, 도망치세요.

안드로이드가 이리로 달려오지만, 시간이 맞지 않을 것이다. 그전에 이 섬이 알탄훼아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리라.

“도망? 도망을? 다시 달아나라고?”

알탄훼아나는 공포의 끝자락에서 분노를 찾아내었다. 동포를 죽인 자, 동료를 죽인 자, 부하를 죽인 자, 자신을 고문한 자. 고통스러운 기운을 마주한 채 복수심으로 간신히 이겨낸 그녀가 어떻게든 버티고 서서 이 섬에게 맞서려 시도한다.

‘안 돼, 부를 수 없다.’

그러나 샤다이의 능력을 상당수 잃은 지금의 그녀로선 플라스마를 쓸 수 없었다. 게다가 아무런 무기도, 방어구도 없다. 그렇다면 맨몸으로 중무장한 제국 군인에게 맞서야 한다. 홀로 샤다이 정예를 전멸시킨 자에게 혼자 맨손으로 덤벼야 하지만, 알탄훼아나는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들었다.

“악!”

짧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알탄훼아나는 나뒹굴었다. 걸어가는 이 섬에게 부딪혀 튕겨 나간 것이다. 그는 알탄훼아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심지어 시선조차도 보내지 않았다. 그저 없는 셈 치고 계속 걸어 나간 것뿐이었다.

“으윽.”

단순히 부딪힌 것이지만 알탄훼아나가 입은 충격은 상당했다. 뼈가 부러진 곳을 부여잡고 몸을 일으키려는 그녀는 이 섬을 보았다. 그때 이 섬이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알탄훼아나는 더럭 겁을 먹었다. 그리고 심장이 죄어들어갔다. 제국 군인의 고개가 이쪽으로 돌아올 때마다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은 공포가 그녀의 몸을 타고 올랐다.

“흠.”

그러나 이 섬은 그저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린 것뿐이었다. 갈 방향이 어딘지 가늠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본 것에 불과했다. 그는 뒤는 돌아보지 않고 다시 자기 갈 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에 알탄훼아나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무시당했다는 굴욕을 동시에 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