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자 타이거 스파게티 드래곤-272화 (270/301)

272화

“이건 뭐야.”

아룹이 태연한 목소리로 코일건을 들었다. 그 총이 겨누는 대상은 자신들보다 월등히 강력한 지구제국의 장갑보병들이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꼬이게 된 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아나스타샤가 완전히 당했어요. 이 섬입니다. 비홀더 전대장이 그녀에게 뭔가 한 것 같아요.

파트리샤의 보고에 팀원들은 바로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히토미를 구하려 달려가던 그녀는 도중에 쓰러져있던 아나스타샤를 발견했고, 그 심상치 않은 상황을 즉시 보고한 것이다.

“왜 그녀를 공격한 거지?”

아룹이 다시 재촉했다. 목소리의 톤은 그대로였지만,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팀장의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나스타샤는 안드로이드지만 팀원들에게 있어선 어엿한 동료다. 인공지능이라 해도 같이 사선을 건너고 한솥밥을 먹은 팀원인 것이다. 그런데 비홀더의 전대장은 블랙 랜스에 침입한 것도 모자라 그들의 동료를 공격했다. 아룹이 말리지만 않았어도 위르겐은, 심지어 모니카도 한방 갈겼을 것이다.

“으음, 글쎄요.”

하지만 자신들을 겨누는 코일건을 보고도 요시오는 태연했다. 마치 쏠 테면 쏴보라는 배짱이다. 따지고 보면 배짱은 아니고 사실에 기반한 반응이다. 코일건을 비롯해 연방군의 무기들이 발사되어도 지구제국의 장갑보병에게 제대로 통할 리는 없다.

“어이쿠, 전대장님이 부르시네요.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요시오의 말에 비홀더 전대의 장갑보병들은 뒤돌아서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멋대로 점프공간에 묶어놓고, 멋대로 함내로 침입하더니, 이젠 동료를 해코지해놓고 도망간단다.

“야이 개새끼들아! 거기 안 서?”

얌전하던 모니카마저 격분해서 한 발 나서며 소리칠 지경이다. 하지만 비홀더의 장갑보병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냥 걸어갈 뿐이다. 이쪽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그때 아룹이 서둘러 위르겐의 뒤로 돌아가더니 어벤져의 무장창 패널을 외부에서 조정했다.

“어? 팀장님?”

위르겐은 자신의 무장을 외부에서 사용하는 아룹에게 뭐라 하려고 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언제나 인자했던 단검뿔 토끼의 베테랑이 지금 분노로 폭발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다. 먼저 플라스마가 발사되고, 다음은 대 샤다이용의 탄두재돌입 미사일, 마지막으로 대구경 레일건이 작열했다. 그리고 이 공격들이 거의 동시에 순차적으로 착탄한 결과, 요시오의 오른쪽 어깨가 터져나갔다. 그 지구제국의 장갑복이 파괴된 것이다.

오른쪽 어깨가 떨어져 나간 요시오는 왼손을 들고 있었다. 동료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반격하려던 지구제국의 장갑보병들은 요시오의 제지에 멈춰 있었다. 팔이 떨어진 장갑보병이 천천히 돌아섰다.

“저희가 너무 무례했군요.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요시오는 고개를 숙인 뒤 떨어진 팔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툭툭 털며 감탄하는 눈초리로 살펴보고 있다.

“목을 노리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시오가 떨어진 팔을 어깨에 붙이자 순식간에 복원이 된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보면 아무런 피해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설령 목을 노렸다 해도 죽일 수 있었을지가 의문이다.

“저희가 저지른 결례에 대해선 제가 팀장님께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상대편의 정중한 사과에 아룹은 말없이 무장을 거뒀고, 그제야 요시오도 가볍게 고개를 숙인 다음 대원들을 이끌고 격납고를 빠져나갔다.

* * *

“함장님.”

이 섬은 샹 메이화 함장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메이화는 고개를 숙인 채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고통과 한탄, 그리고 슬픔의 표정이다.

“…난 괜찮아요. 쿠델카가 함정을 파고 기다렸던 거예요. 그리고 제가 이 안으로 들어오던 순간에 바로 공격했던 거지요. 여긴 모두 쿠델카의 영역이니, 이곳에선 그녀의 상상대로 현실이 이뤄질 겁니다.”

전대장은 서둘러 기함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대원들과 함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방금 제가 만난 안드로이드 역시 함정이었단 말입니까?”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겸 당신을 꼬셨던 함정이기도 하죠. 김 빈우는 없었지요?”

“네, 이 배에 그는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쿠델카 모델 안드로이드에 접촉해 보았지만 쿠델카는 이미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아니요, 잠시 들어왔다 나간 거예요. 그리고 저에게 와서 싸움을 걸었고요. 그녀는… 우리의 행동을 역이용한 겁니다. 그녀는 점프공간에 들어온 물체를 정지시킬 순 없어요. 하지만 이미 정지시킨 물체라면…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이 공간 안에서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죠. 심지어 같은 자매인 저에게도 우위를 보일 정도로요.”

보통 황제의 페르소나들은 동일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지금 메이화와 쿠델카는 서로가 함정을 파고, 동시에 서로의 함정에 일부러 걸려준 셈이다.

“괜찮아요. 저라면 그 정도는 막을 수 있어요. 다만….”

메이화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거기에 더 이상 자매의 형태는 없었다.

“쿠델카의 공격을 막다가 안나가 죽었습니다. 아니, 애초부터 안나를 노린 것 같기도 해요. 그 집착이 강하던 쿠델카가 너무 빨리 도망쳤어요. 저와 승부를 내기도 전에.”

언제나 쿠델카를 견제했던 안나는 포말하우트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가 도리어 자매의 공격에 당했다. 경고하러 들어갔더니 이미 거진 지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안나는 살아나왔지만, 기억과 능력을 상당히 잃은 채 하나의 사명감에 매달렸다. 지구와 인류를 지켜야 한다. 지구로 귀환을 하려다가 메이화에게 제지당했다. 계속해서 루비콘 라인안에서 행동했으니 더욱 약해진 그녀는 메이화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불쌍한 안나, 기억이 온전했다면 나에게 경고를 해주었을 텐데. 쿠델카의 음모를 밝힐 수 있었을 텐데. 그녀 또한 자신의 의무에 목매달려 죽었습니다. 그 교수대에서 발 받침을 걷어찬 것은 바로 우리였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그녀의 계획에 당했다는 말씀입니까?”

지금까지의 행보를 되짚어 보던 이 섬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체메트디오프에 이어서 쿠델카까지. 지금 1전대는 두 번이나 외부의 계획에 멋대로 농락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쿠델카의 음모를 알아냈어요.”

방금 쿠델카와 메이화는 서로 상대방의 카드를 훔쳐보며 패를 빼앗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질 싸움이었지만, 다 죽어가던 안나가 도와준 덕분에 거의 비기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크게 보자면 방금의 싸움은 쿠델카의 승리일 것이다. 안나가 가졌던 블랙박스가 파괴된 것이다. 안나는 포말하우트 게이트 안에서 있었던 쿠델카의 음모를 지워지기 전에 블랙박스에 보존했고, 1전대와의 싸움에 죽으면서 메이화에게 넘겼다. 그리고 메이화는 그 블랙박스를 천천히 녹여내고 있었지만 방금 쿠델카가 와서 완전히 파괴해버린 것이다.

“전대장.”

“말씀하십시오.”

메이화는 잠시 머뭇거리면서 이 섬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이 섬, 쿠델카와 김 빈우. 둘의 관계는 닮았지만 다르다. 그녀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들을 만들었다. 어머니의 바람을 이루기 위한 최고의 아들을. 그러나 메이화의 목적은 인류의 수호이고, 쿠델카의 목적은 자신의 자유다. 그리고 그녀는 자유의 대가로 자신을 속박하는 인류를 멸종시키려 한다.

“쿠델카는 미쳐버렸어요. 자신의 자유를 위해 의무를 저버리려 합니다. 그리고 그 의무의 대상인 인류를 멸하려 하고 있어요. 샤다이의 방법을 이용해서.”

함장의 설명에 전대장의 눈이 점점 커져간다. 어지간한 전투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그가 황제의 페르소나가 벌인 계획에 경악하고 있었다.

“샤다이의 계획! 그렇다면 설마하니 울토르 프로젝트가!”

“네, 애초엔 샤다이의 귀환계획이었죠. 우린 그것을 인류가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이라 방치했지만, 쿠델카가 손을 댄 이상 일이 너무 커져버렸어요. 체메트디오프의 꿍꿍이가 수상하긴 했어도 쿠델카가 당연히 막으리라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할 겁니다. 심지어 자신의 자식마저도. 아니, 자식을 만들어서까지.”

고대의 샤다이들이 자신을 버리고 올라간 계단. 그 안에 있던 쿠델카는 이쪽 우주로 되돌아 내려오는 샤다이를 막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미쳐버린 그녀는 인류의 몸을 빼앗으려는 샤다이의 계획을 보고선 이를 역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설마, 아무리 수상하다 생각했어도, 으음!”

이 섬은 믿기 어려웠다. 쿠델카는 자기 쪽은 아니지만 그래도 샹 메이화와 같은 황제의 페르소나다. 다른 비홀더 전대의 함장들과 동급의 존재이자 인류의 수호자인 것이다. 그런 존재가 인류를 멸하려 한다니 믿을 수 없었다.

원래 샤다이의 계획은, 울토르 프로젝트로 클론을 만들고 그 클론에게 PTSD를 일으킨 다음 여기에 샤다이를 내려오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쿠델카는 아예 클론들의 두뇌통신을 연방 의회에 연결해 클론들의 PTSD를 연방 시민 전체에 퍼트리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직할령의 시민들에겐 모조리 계단이 생길 것이고, 점프게이트를 사용했다면 적셔졌을 테니 당연히 귀환한 샤다이들이 그 몸을 차지할 것이다. 자치행성은 두뇌칩이 없어서 이 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지만 시간문제다. 그들도 점프를 이용해왔고, 마음의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으니.

“김 빈우.”

이 섬은 예전에 만났었던 빈우를 떠올렸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에게는 연방을 위해 헌신하는 자,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하는 자 정도로만 보였다. 연약한 육체를 만회하고 남을 강력한 정신을 가진 김 빈우. 그래서 이 섬은 그에게 비홀더 전대에 들어올 것을 권유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정체는 쿠델카가 예의 계획을 직접 실행할 수 없는 자신을 위해 억지로 만들고 벼려낸 아들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받아주고, 자신의 갈망을 이뤄줄 아들, 그것이 바로 김 빈우의 정체였다.

“막아야 합니다. 어서 다른 전대에 알려야 합니다.”

밖에선 체메트디오프가 고대의 샤다이 함대와 접촉하고, 안으론 쿠델카가 울토르 프로젝트를 역이용하려는 지금이야말로 인류의 위기다. 이런 경우라면 비홀더 전대는 회의를 거쳐 루비콘 라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비홀더 전대 모두가 모인다면 샤다이의 고대 함대 따위는 적수가 못 된다. 그리고 모든 황제의 페르소나가 모인다면 하나에 불과한 쿠델카는 금방 제압당한다.

“그게, 전대장도 아시다시피 쉽지가 않습니다.”

고개를 젓는 메이화의 모습에 전대장은 아차, 하는 심정이었다. 지금 비홀더 전대는 온전하지 않다. 외계의 존재와 싸우다 전멸한 전대도 있지만, 불명예스럽게도 아군들에게 제거당한 전대도 있다. 13전대가 무단으로 귀환하려다 1전대에게 제거당한 것과 같은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함장님 말씀대로 우리들은 분명 인류를 위한다는 목적은 같지만… 그 방법이 다른 전대들도 있지요.”

이 섬이 씁쓸하게 말하자 메이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홀더 전대의 함장들, 지구 제국의 황제가 만들어낸 자신의 페르소나들은 인류를 지키기 위해 루비콘 라인 바깥을 돈다. 그러나 인류를 지키기 위해 다른 방법을 쓰려는 페르소나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너무나 잘못될 경우 다른 페르소나들에게 제재를 받았지만, 이런 대사건이 있으면 편승하려는 자가 분명히 나온다.

“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쿠델카의 이 미친 계획에 동조하진 않겠지만… 음, 그래요. 어떤 이는 간접적으로 우리를 방해하려 할지도 모르고, 최악의 경우 쿠델카에게 힘을 실어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게 가능합니까?”

전대장의 반문에 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페르소나들은 인류를 지킨다. 그리고 지키는 방법 중에는 인류가 스스로 강해지는 방법도 있다. 그 ‘인류를 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지금 비홀더 전대에게 있다. 써서는 안 되는 방법.

“아마도 쉬바를 쓸 빌미가 될지도 모릅니다.”

쉬바란 말에 전대장이 숨을 삼켰다. 연방에게 일부러 흘린 나노머신 병기 쉬바. 연방은 인간은 무시하고 오직 외계인에게만 반응하는 이 조종 불가의 나노머신을 병기로 써볼 요량으로 생산했었지만, 이것은 사실 외계인에게만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는 변이된 인류를 겨냥해 정화시키는 나노머신이다. 인류의 신체가 외계 종족의 공격으로 변했을 경우, 혹은 인류의 정신이 다른 존재에 의해 감염되었을 경우, 쉬바는 즉시 작동하여 감염된 인간을 정화한다. 더렵혀진 육체나 비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뇌파, 신경계를 감지한 쉬바는 즉시 그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감염자의 신체를 분해해서 보다 강력하고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시킨다. 바로 인류제국의 병사, 비홀더 전대로 말이다.

“만약 화성에 대규모 샤다이들의 귀환이 일어난다면, 누군가 거기에 쉬바를 떨어뜨릴지도 모릅니다. 직접 떨어뜨릴 필요가 없죠. 대규모의 감염이 일어난다면 잠들어 있던 쉬바들의 트리거가 발동해 깨어날 겁니다.”

“으음.”

천하의 이 섬도 이런 사태 앞에선 앓는 소리만 낼 뿐이다. 만약 행성 단위로 샤다이의 귀환이 일어난 경우라면 그저 태워버리는 것이 최선이다. 비홀더 전대에게 인류는 지키는 것이 목적이지, 그들을 구태여 전대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비홀더 전대는 순수한 파괴와 살육의 병기이기 때문에 이것이 인류의 도착지가 되면 안 된다.

더구나 인류는 이런 위기를 잘 버텨왔다. 과거 샤다이의 감염, 그리고 메창이라 불리는 기생 외계종족의 침투. 모두 인류는 스스로의 힘으로 잘 이겨냈고, 거기엔 비홀더 전대의 개입이나 쉬바의 발동도 없었다.

하지만 샤다이의 귀환이 성계 단위로, 그걸 넘어서 연방의 영토 전역에서 일어나면 막지 못한다. 쉬바는 발동하고 만다. 그리고 새로이 태어난 전대원들은 누군가의 명령권 밑으로 들어갈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명목하에.

“전대장, 우리 1전대만은 화성으로 가야 합니다.”

“함장님!”

메이화의 말에 섬이 대경실색했다. 아직은 루비콘 라인 안으로 들어갈 조건이 안 된다. 만약 그랬다간 눈앞의 샹 메이화마저 안나 닐센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점차 지구에 힘을 빼앗기다가 끝내는 흡수되고 만다.

“괜찮아요.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뜻이 통하는 자매들과 미리 계획을 세워두었으니까요.”

메이화는 안심시키려는 듯 배시시 웃어 보였지만, 섬은 도저히 안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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